# 91
43. 딜레마 (2)
“······악마 전하?”
그 호칭에 유선은 거슬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선의 반응에 기율이 무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그에게 말했다.
“아, 이건 그냥 우리끼리의 호칭이오. 아무래도 내게는 상전이니까, 이러는 것도 재밌어서 말이오.”
“아, 그, 그렇구먼.”
유선은 왜 쓸데없이 당황했는지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루데릭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은 거는······ 아무 일도 없는데? 왜 그래?”
“최근에 뭐랄까, 좀 순해지신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순해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선은 루데릭에게 변화가 있다는 말이었기에 민감하게 파고들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게 일을 제가 잘못하면, 벌을 내렸는데······ 막 투명 의자를 시켜서 일이 끝날 때까지 자기를 앉힌 상태에서 업무 설명을 듣게 한다거나, 오감을 역전시켜서 세계가 뒤엎어진 채로 일하게 한다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마다 바늘 같은 거로 온몸을 찌르는 듯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단 말이오.”
“······.”
루데릭이 기율을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방식을 듣는 것도 깜짝 놀랐지만, 무엇보다 그가 가장 놀란 부분은 기율이 그런 것을 살짝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 마조히스트냐?”
“그런 건 아니오. 그냥 뭐랄까······ 이 사람이 나를 이끌어 주려고,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하고 감동하는 거랑 같을 거요.”
표정이 영 심상치 않은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유선은 더는 파고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주제를 바꾸며 기율에게 물었다.
“······아무튼 그런 걸 오늘 안 했다······ 이 말이냐?”
“네, 평소라면 분명히 화낼 문제인데, 한숨만 짓더니 가지고 다시 하라고만 하더군. 내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뭔가 되게 맥 빠진 것 같았소.”
기율은 그런 루데릭이 걱정스러운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짚이는 데가 없소?”
유선은 그의 말에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잘 모르겠다. 나도.”
“아, 그렇소?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래, 그렇겠지.”
“아무튼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소. 나도 이제 일하러 가 봐야지.”
기율은 그렇게 방에서 나갔다. 유선은 그가 나간 것을 보고 얼굴로 손을 덮었다.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그는 이미 알았다. 루데릭이 지금 묘하게 달라진 자신의 행동을 의식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아······, 지랄 맞네.”
루데릭은 자신을 의식하고 이도 저도 못 하는 자신의 모습을 내색하기 싫은데, 자꾸만 나왔다. 유선은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루데릭에게 그 이야기를 꺼내야만 할까? 하지만 루데릭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고 들었다.
그래서 유선은 자신의 사역수들 앞에선 반지를 낄 수가 없었다. 루데릭을 보고 깨달았다. 유선은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 그리고 세네타의 이면을 보고, 혹여나 그들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 버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컸다. 그런 것은 싫었다. 늘 평화롭게 사는 것이 그의 바람이었으니까.
***
퇴근하고 다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는 만들던 걸 마저 만들려고 거실에 모여서 옹기종기 다시 뭔가에 빠지려 했다.
“루데릭.”
유선은 루데릭이 늘 그랬듯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루데릭이 유선을 돌아보며 물었다.
“왜 그러냐?”
“자, 이거.”
유선은 퇴근 전에 샀던 물건을 꺼내 루데릭에게 건네주었다. 마카롱이 든 상자였다.
“좋아하는 마카롱이다. 들어가서 먹어.”
“오, 이런 걸 줄 줄이야······. 고맙다, 주인.”
루데릭은 그 마카롱 상자를 받자마자 바로 꺼내 들었다. 그 개수를 눈대중으로 파악하고는 기쁜 얼굴로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평소보다 많이 받는 건 처음이네. 단것 많이 먹으면 안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
“만날 고생하는데, 조금만 주기는 좀 그렇잖아. 안 그래? 좀 많이 먹어.”
유선은 미소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리고 그가 선물을 받고 미소 짓기를 바랐다.
하나 루데릭은 웃지 않았다. 그저 유선을 쳐다볼 뿐이었다. 유선은 그런 루데릭의 표정을 보며 살짝 놀라고 말았다. 루데릭이 걱정스레 그에게 물었다.
“주인, 요즘 주인이 딴생각에 빠진 것 같구나.”
이미 알지만, 루데릭에게 직접 말을 들으니, 머리가 띵해지는 기분이었다. 유선은 그저 미소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아, 너도 그렇게 느끼는 중이야?”
유선은 하하 웃으면서 유연하게 넘기려 들었다. 하지만 루데릭은 그런 웃음을 결코 가볍게 넘기려 들지 않았다. 유선은 그저 머쓱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 무슨 고민 탓에 그러는지, 참······ 이상하다니까.”
“주인.”
루데릭이 그의 얼굴을 잡으며 말했다. 피하지 말라는 명백한 의도였다.
“다른 때는 그렇지 않다. 오직 주인이 나를 볼 때면 그렇게 느낀다. 뭔가에 사로잡혀서 말하지도 못하는 것 같구나.”
“······.”
진지한 루데릭의 표정. 유선은 고개를 낮춰 애써 루데릭의 생각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 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다면 힘이 되어 주도록 해 다오.”
말해야 할까? 루데릭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를 꺼린 만큼 나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닐까? 루데릭은 믿을 만한 아이였다. 오감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봐 왔던 생각과 머리로 생각하려는 것은 도저히 의심을 풀 수가 없었다. 오감이 향하는 곳으로 몸을 이끌었고, 그 선택에 따라 그녀에게 말했다.
“의도치 않게 네 머릿속을 봐 버렸어.”
“내 머릿속을······ 말이냐?”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 머릿속에서 네 정체에 대해서 조금 알아 버렸어.”
“내 정체라는 건······.”
유선은 루데릭의 손에 땀이 쥐어지는 것이 보였다.
“혈통을 가진다는 것 말이야. 마왕의······.”
“······.”
루데릭이 마음속에서 동요했다. 얼굴을 잡았던 양손이 파르르 떨려 왔다. 아주 미약하고, 잠깐이었다. 그래서 루데릭은 자신이 충분히 감정을 감췄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고민했느냐?”
하지만 유선은 알았다. 그가 두려워한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그대는······ 아니, 주인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를? 마왕의 자식으로 나를?”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 내가 나일 뿐이듯이, 너는 너일 뿐이잖아.”
유선은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루데릭의 붉은 눈동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그를 스쳐 가며 말했다.
“그건 내가 바라는 대답이다. 하나 그대의 대답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주인에게 진솔하게 대답해 준다. 하지만······ 주인은 내게 진솔하게 대답해 주지 않는구나.”
그의 말에 유선은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진솔한 대답. 나는 지금 진솔한 대답을 했는가······.
“다시 말해다오. 그대의 본심이 뭔지 말해 주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대체 무엇일까? 배려 속에 감춰진 그 의도가 무엇인지 유선도 알 수가 없었다. 대답을 끌어내려고 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주저했다. 한 번 말하면 술술 나올 것 같으면서도, 그 첫 문을 열기가 너무나도 버거웠다.
“미안해······ 지금은 이 말밖에 못 하겠네.”
그리고 결국 포기했다. 유선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을 잡던 루데릭이 조심스럽게 그 손을 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등을 보이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았을 때, 유선은 머리 위에 뜬 감정을 슬쩍 보고 말았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가 조심스럽게 드러났다. 혼란스러워하는 감정이. 유선에게 실망한 기색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 보였다.
유선은 멍하니 발걸음을 침대로 옮겼다. 그리고 그 위로 쓰러지듯이 누웠다.
“후으으으······.”
뒤늦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미쳐 버리겠네······.”
딜레마에 빠진 것만 같았다. 모두를 위한 일을 하려고 하면 머리가 아파 왔다. 그 대답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유선은 그것을 찾기가 힘들었다.
꼴사나웠다. 꼴사나운 자신이 너무나도 미웠다.
부우우웅-.
주머니에 넣은 휴대폰이 진동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선배, 오늘 시간 있는데, 우리랑 술 한 잔 어떠세요?
멍하니 문자를 보았다. 술. 얼마 만에 받은 술자리인가! 유선은 엘레노어가 혼란에 사로잡혔던 그 날 이후로는 술에 입을 대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술을 마시고 엘레노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에, 상당히 조심하는 중이었다.
그런 생각도 지금은 어째서인지 머릿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유선은 아무 생각 없이 가상 키보드를 열어 타자를 한 글자씩 쳤다. 몇 자를 써넣으며 바로 엔터 버튼을 눌렀다.
-그래.
그의 대화 창에 뜨는 짧은 문구. 그래.
“그래.”
유선은 그 짧은 문구를 중얼거렸다.
“조금만 마시자.”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
엘레노어는 오르넵토스에게 맡기고, 유선은 오랜만에 홀로 밖으로 나왔다. 유선이 주혁과 도연을 데리고 간 장소는 잘나가는 한우 식육 식당이었다. 잘나갈 때, 소고기를 사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고 일부러 유명하고 비싼 장소를 골랐다.
치이이익-.
주혁과 도연이 고기를 구우면서 유선에게 한탄했다.
“그래서 말이죠······. 그 망할 실기에서 하필이면 발목이 잡혀서······. 진짜 억울해 죽겠어.”
“그래도 실기에서 노력했으면 됐어. 필기는 잘했잖아, 안 그래?”
“솔직히 초딩도 1달 정도 벼락치기 하면 풀 문제들뿐이었어요. 이 바보는 그 초딩들보다 못했지만······.”
“이게, 진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초딩보다 못한 신세가 된 주혁은 발끈하며 화를 냈다. 도연은 큭큭거리며 웃었다. 쌓인 울분이 많이 해소되어서 이제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해서 합격해. 알겠지?”
“······.”
“······.”
유선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을 들은 도연과 주혁은 뭔가가 있음을 알았다. 자신들이 기억하는 정유선의 평소 이미지와 다름을 감지했다. 그걸 감지하고 나서야 그의 행동도 이상함을 알았다.
“선배······, 괜찮으세요?”
지속해서 비워지는 잔,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쉴 새 없이 채워지는 잔. 5분 사이에 잔이 몇 번이나 들락날락했는지 그들은 짐작하지 못했다. 유선은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도연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응? 왜? 계속 말해 도연 후배.”
“후배?”
평소에 쓰지 않는 호칭을 쓰면서 미소 짓는 유선. 그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선배, 무슨 일이 있으신 건가요?”
“무슨 일? 아냐. 그냥 평소처럼 마시잖아.”
“지금 혼자서 두 병째 마시는 거 아시죠?”
“두 병?”
유선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비워진 두 병의 소주병.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소주병. 유선은 그제야 자신이 주체하지 못하고 마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병을 내려놓았다.
“선배, 폭음할 때면 항상 뭔가 일이 있다는 건데······ 초장부터 이렇게 달릴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요.”
“어우, 미안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후우······.”
유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무거워지고 일시적인 정적이 흘렀다. 딴 곳으로 시선을 두던 유선이 다시 고개를 돌리며 그들에게 물었다.
“너희 기율이라고 아냐?”
“기율이라면······. 그 차기율 사장님 말씀이시죠?”
도연과 주혁은 견학 당시에 이끌어 준 모습이 기억났다. 유선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율이가 말이지······. 여자 친구가 있거든. 그 여자 친구가 꽤 박식해. 똑똑하고, 지적이고, 잘 챙겨 주는 게, 딱 봐도 차기율이 과분할 정도로 아주 큰 매력이 있는 여자란 말이야!”
“그 여자 친구가 사실 선배가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그런······ 삼류 드라마 같은 건 아니죠?”
“사랑?”
“야, 닥쳐. 계속하세요, 선배님.”
도연은 눈치 없는 주혁의 말을 바로 끊어 버렸다. 유선은 한숨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사실 다른 기업에 있는 사장님 딸이야. 경쟁 회사 쪽이거든······. 그래서 평소에 스스럼없이 대하던 태도가 좀 변하기 시작하더라고. 매사에 뭔가가 조심스럽게 변했지. 그 여자 친구라는 여자와는 확실히 사랑한다고 여기는데······ 뭔가 태도가 미묘해지는 걸 스스로 알기 시작하더라고. 여자 친구 측도 기율이가 자기 때문에 근심이 있다는 걸 알기 시작하니까 그 여자 친구도 뭔가 미안해지고 조심스러워지고 그러기 시작하더라고. 그래서 나한테 상담했는데······. 좀 어렵네, 이게······.”
“······.”
“······.”
이 정도면 주혁도 대충 눈치챘다. 이건 차기율의 이야기가 아닌 차기율과 여자 친구라는 가상의 인물을 자신과 관계자를 대입시켜 놓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흔히들 ‘내 친구 이야기인데~’ 하는 그것이었다.
그렇게 돌려 말한 만큼 도연은 조심스럽게 기율이란 사람에게 조언해 주었다.
“기율이란 사람이 너무 의식하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뭐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그 여자는 그런 의도가 없겠죠.”
“그럴까?”
“그렇겠죠. 그쪽도 순순히 사랑을 하고 싶어서 그랬을 텐데, 뭐······. 안 그럴까요?”
“흐음······.”
순수한 사랑. 유선은 그들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했다. 그에게 해 줄 말을 몰래 읊어 보았다. 그리고 마땅한 대답이 아닌 것 같아, 다시 한숨지었다.
“죽겠다, 진짜. 세상에 내 마음대로 뭔가가 됐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따라 주지 않아.”
유선은 다시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빠르게 채우고 다시 빠르게 비웠다. 쓰디쓴 숨을 내뱉으며 도연과 주혁을 보았다. 그들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불편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남의 푸념을 듣는데 기분 좋은 이가 어디 있겠는가!
유선은 그 마음을 잘 알기에 벨을 눌렀다.
“사장님!”
벨 소리와 유선의 외침에 직원 한 명이 달려왔다.
“네, 부르셨습니까?”
“여기 소고기 선물 세트 있죠?”
“소고기 선물 세트 말씀이시죠? 네, 있습니다.”
“그거 제일 비싼 게 얼마죠?”
“비싼 게······. 현재 준비해 드릴 수 있는 게 3백만 원짜리 프리미엄 2개뿐입니다만······.”
딱 됐네. 유선은 앞에 앉은 도경과 주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2개 포장해서 나갈 때, 얘네들한테 주세요.”
“서, 선배!”
주문을 접수한 직원이 돌아갔고,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유선을 보았다.
“지금도 실컷 먹고 집에 가서도 맛있게 구워 먹어라. 선배 푸념 들은 값으로 치고 말이야.”
유선은 다시 소주를 마셨다.
***
선배, 정신 차려요.
으으······, 무거워라. 예전에는 이렇게 안 무거웠던 것 같은데.
야, 너 선배 집이 어딘지 알아? 이사한 이후로는 어딘지 모르는데······.
기율 사장님한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내가 한번 물어볼······.
그러실 필요는 없을 거예요.
네?
정말 심하게 취했네요. 평소에 그렇게 안 마시던 사람이니 이만큼 마신 것도 참 대단하죠.
······죄송하지만 누구시죠?
아, 정유선 씨와 같은 회사 사람입니다. 일전에 만난 적 있죠?
일전에 만난 적이 있다뇨? 우리는 한 번도 그쪽을 본 적이······.
아뇨. 당신들은 저를 본 적 있어요. 그때는 조금 달랐으니까 말이죠.
······.
······.
아, 그때! 그분이구나!
안녕하세요?
네, 기억하셨군요. 후후.
죄송해요. 너무 미인이셔서 그만······.
이제 유선 씨를 놔두고 조용히 가 주세요. 할 수 있으시겠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