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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반지 (8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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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반지

정유선의 등장에 인질들은 한 줄기 희망이라도 찾은 듯한 얼굴이었다.

유선은 그 뜨거운 반응과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당황할 뿐이었다.

‘뭐지?’

유선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화장실에 들어가기, 불과 5분 전만 해도 평화로웠던 공간이 한순간에 핏빛으로 물든 공포로 변했으니 자신이 다른 세계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깐 화장실을 들른 사이에, 설마 강도질이 시작되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시민들이 겨우 희망을 찾은 것과 다르게 반대로 덩치 큰 강도는 정유선이라는 이름에 당황하며 소리쳤다.

“저, 정유선이라면 S급 헌터잖아! 우리 드, 등급으로는 못 이기는 상대라고!”

그들이 현역 시절에는 C급 헌터였던 사내들이었다. C급과 S급. 격차는 거의 하늘과 땅 차이였다. 덩치 큰 강도가 복면 안의 시퍼런 얼굴을 보이듯 당황하자, 활을 든 강도가 그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멍청한 새끼야! S급이라고 해 봐야 신체 스펙은 F급인 놈이야! 다 사역수발인 놈이라고!”

“뭐, 뭐야, 그래?”

“그래, 근데 지금 사역수가 없잖아! 그냥 F급 헌터나 다름없다고?”

유선은 홀몸이었다. 평소에 데리고 다니는 꼬마 사역수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겁을 먹은 덩치 큰 강도도 곧바로 전의를 되찾았다.

“그러면 별거 아닌 놈이었구먼!”

“그래, 그러니까 귀찮아지기 전에 네가 알아서 조져.”

덩치 큰 사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유선에게 다가왔다. 얼굴보다 더 큰 주먹을 손바닥에 대고 팡팡 치며 목을 푸는 양아치같이 유선 앞에 왔다. 가만히 서 있던 유선의 멱살을 잡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거, 미안하게 됐소. 같은 헌터끼리는 아무래도 좀 위험한지라 처리해야 해서, 흐흐.”

덩치 큰 사내가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이 좋은지 추잡한 웃음을 흘렸다. 그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필히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아니면 일격에 죽일 생각이거나.

“저기 죄송한데 뭔가 조오금 착각하신 것 같은데······.”

하지만 유선은 그가 어떤 생각을 하든지 간에 자신 앞에서는 큰 오산임을 알았다. 유선은 그의 팔을 휘감아 뻗었다. 사내는 자신의 팔을 휘감는 손의 힘을 느꼈다. 그 힘을 느낀 사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F급이라고 말했던 것과 다르게 힘이 자신보다 한 수 위였다.

“너희가 아는 건 조금 옛날 일이거든.”

“어, 어!”

유선이 사내의 팔을 확 잡아당기자, 중심이 무너지며 몸이 딸려 갔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아 쥔 주먹으로 그대로 얼굴을 강타했다.

-빠악!

유선이 때린 사내는 맷집이 단단한 탱커 클래스였다. 웬만한 공격 따위는 우습게 버텨 내는 녀석이었다. 활을 든 사내가 현역 시절 함께했던 만큼 그에 대해서 잘 알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유선의 주먹 한 방에 녹다운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유선은 자신의 손을 털며 사내에게 말했다.

“요즘은 그래도 B급은 돼.”

당연히 처리했으리라 믿었던 것과 다르게 사내는 바닥에 누운 채로 꿈틀거렸다.

“미친!”

위험한 인물임을 인지하고 얼른 화살을 시위에 걸어 잡아당겼다.

피슝!

화살이 곧게 뻗어가 유선을 향해 날아갔다. 시위를 벗어난 화살의 궤적은 정확하게 미간을 꿰뚫을 위치에 있었다.

“웃······!”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정확히 유선이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그 화살을 그대로 잡아 버렸기 때문이다. 유선은 피하지도 않고 그 화살을 바로 잡아 버렸다. 사내는 그의 과감한 행동을 보며 경악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을······!”

총알보다 느리지만, 헌터가 쏜 화살의 속도는 같은 헌터도 쉽게 잡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몸을 피하지 않고 잡는 과감한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유선은 당황하는 사내를 보며 물었다.

“더 말도 안 되는 짓 보여 줘?”

유선은 화살을 거꾸로 잡아 다트처럼 잡아서 들어 사내를 향해 날렸다.

피슉!

공기를 가르며 매서운 속도로 그의 머리를 노리며 들어왔다. 아니,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듯 보였지만, 궤적을 보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화살의 방향을 아는 사내는 그 궤적을 믿지 못했다.

‘뭔가가 있나?’

유선이 호언장담하는 표정이 거슬렸다. 그 화살이 빗나감을 알지만, 그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는 듯한 얼굴이었다.

뭔가가 있다!

그렇게 생각해 사내는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려고 얼른 양손을 들어 올렸다. 화살이 꺾여 자신을 향할 수도 있다는 믿음에 막아 보았다.

툭!

하지만 화살은 예정대로 자신의 머리를 지나 그의 뒤에 있는 벽을 향해 날아갔다.

“······어라!”

자신만만하게 얘기해서 당연히 머리에 맞겠거니 한 것과 달랐다. 양손을 내려 막힌 시야를 다시 밝히자, 유선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 보였다.

“미안, 구라야.”

그냥 허세일 뿐이었다. 유선은 주먹으로 그대로 사내의 턱을 올려쳤다.

뻐억!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사내의 몸이 한순간 붕 떠오르더니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유선의 주먹에 맞은 사내는 기절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단숨에 두 명을 처리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잡혔던 인질들은 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두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나 싶었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인질들을 보며 물었다.

“이게 끝이에요?”

그러자 굳었던 누군가가 유선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 아직 한 명이······.”

“야! 제대로 오늘 털었는······ 뭐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남은 한 명에 관해서 얘기하자마자 금고 속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빵빵해진 지퍼 백을 짊어지면서 나오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그대로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유선이 그 남자를 보며 물었다.

“삼인조인가? 네가 마지막이냐?”

“너, 너 이 새끼! 네가 한 짓이냐?”

대답하는 대신 역으로 물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차피 의미가 없었다. 당황하는 얼굴에 뽑아 든 검, 그리고 떠오르는 머릿속 생각들. 유선은 씩 웃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마지막이구먼.”

유선에게는 탱커를 기절시킬 힘이 있고, 궁수가 쏜 화살을 잡아낼 만큼 빨랐다. 힘과 속도 그 중간에 위치한 사내보다는 이미 한 수 위였다. 그렇기에 칼을 든 사내와의 대결 중계는 무의미하고 허무하게 마무리 지었다.

***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 뒤. 조용했던 도시의 한구석에 있는 은행 앞에 경찰차와 구급차가 입구를 메웠다.

주먹에 실신한 강도들은 손목에 묵직한 쇠고랑이 채워진 채로 이송되었고, 구급차에서는 다친 시민들이 있는지 한 명씩 상태를 살폈다. 강도질의 신호로 죽어 버린 경비를 제외하면 부상자나 사망자는 더는 나오지 않았다.

무력하게 공포에 떨던 인질들은 살아서 나와 감격하며 울음을 터트리고 서로 얼싸안으며 자축했다.

“시민들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정유선 헌터님.”

중년 형사 하나가 유선에게 거수경례하며 말했다. 유선은 손사래를 치며 그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겨우 상황을 마무리했습니다.”

정말로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하필이면 은행에 업무를 보러 갈 때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유선도 이런 우연은 처음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진술을 들어 보면, 갑자기 나오셔서 구해 주셨다고 들리는데······. 어디로 잠입해서 들어오신 게 아닙니까?”

“······ 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유선은 그 이상의 대답은 꺼린다는 듯이 얼버무렸다. 마음 같아선 볼일을 보다가 나온 찰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라리 냄새를 맡고 잠입해 들어와 구해 낸 거라는 게 더 나아 보였고, 유선은 괜한 환상을 깨는 것 같아서 말을 아끼기로 했다. 형사도 더는 물으려 들지 않고 말을 마무리했다.

“이 사건을 해결해 주신 만큼 포상금과 용감한 시민상을 표창할 겁니다만······, 시간이 되시면 오셔서 직접 받아 주시겠습니까?”

헌터들의 시간은 금임을 알기에 형사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선은 잠깐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상을 준다니 받으러 가야지요. 허허······.”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 없는 시민들이 희생당하지 않도록 구해 주셔서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가도 되겠죠?”

“네, 가셔도 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형사는 길을 비켜 주며 그에게 한 번 더 경례를 올렸다. 유선은 그 현장을 벗어 나왔다. 유선은 숨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 현장에서 나왔다고 숨을 돌릴 수 없음을 알아, 한 번 더 긴장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이 유선의 얼굴을 보고는 재빠르게 뛰어나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유선 씨, KNS 방송국에서 나왔습니다!”

“정유선 씨, NKS에서 나왔습니다! 이번 삼인조 강도 사건 해결자로 들었습니······.”

“정유선 씨!”

뒤늦게 냄새를 맡고 출동한 기자들이 유선에게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저마다 질문을 던지고 녹음하려고 애썼다. 선을 지키려고 애쓰지만, 경쟁에 밀리지 않으려 코앞까지 들이미는 스마트폰이 곧 살에 닿을 것만 같았다.

유선은 미리 준비해 둔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노코멘트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유선은 한 단어로 일관하며 그 인파를 애써 헤쳐 나갔다. 시끄럽게 다시 질문을 던져 왔지만, 유선은 그 질문을 애써 회피하고 정중하게 나오려고 애썼다.

“그래도 이 강도 사건의 해결자인 만큼 한마디는 해 주시죠!”

유선이 자꾸 나가려 하다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졸졸 따라가던 기자들이 유선이 멈추자 긴장하며 녹음 어플을 한 번 더 확인했다. 뭔가 얘기하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그 수많은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얘기했다.

“큐앤 헌터 컴퍼니 파이팅!”

“······.”

“······.”

“자, 이제 좀 지나가겠습니다.”

유선은 회사 사랑으로 모든 일을 마무리하며 벙찐 기자들 사이에서 도망쳐 나왔다.

***

유선은 기자들을 벗어나 겨우 혼자가 되자, 숨을 돌렸다.

“휴우······, 윽.”

숨을 내쉬는 사이에, 시끄러운 소리가 귀를 울렸다. 뭐가 문제인가 싶은가 보니 반지가 원인이었다. 유선은 얼른 중지에 끼워 넣은 반지를 빼 버렸다. 증폭되던 오감과 수많은 목소리가 폭풍 치다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증폭된 오감에서 벗어나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자신이 끼던 붉은 반지를 들여다보았다.

“다 좋은데, 이게 참 거슬리네, 이 반지는······.”

공방의 신, 포어셰크가 만들어 준 반지. 발록의 힘이 깃들어, 힘과 민첩도를 빌릴 수 있었다. 본래 발록의 힘과 비교하면 발톱의 때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스펙으로는 헌터 등급이 B급까지 오르는 기적을 볼 만큼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 능력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선에게 맞는 장비인 만큼, 유선의 특성에 영향력이 가장 컸다. 반지를 착용하면서 교감 레벨은 5로 극을 찍었다.

레벨 5.

헌터 중에는 아주 극소수만이 도달하는 신의 경지라 불리는 그곳이었다. 유선은 그것이 어째서 신의 경지인지 경험했다. 유선의 오감을 증폭시켜 주고 그러면서 일시적으로 시간을 느리게 해 볼 수도 있었다. 그 덕에 유선이 화살을 잡았다.

거기다가 몬스터뿐만 아니라 이제는 모든 사람의 생각을 읽었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들도 모두 유선의 눈에 꿰뚫고 들어오듯이 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들의 모든 신상 정보를 그 자리에서 알아차렸다.

그래서 유선은 이 스킬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말발로 구슬리고 협박하는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된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치부까지 의도치 않게 강제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기분 나쁘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다. 혹여나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 하는 이면을 강제로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유선은 잘 알았다.

루데릭 때문에 말이다.

루데릭. 그 이름을 떠올리자, 유선은 그 이상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유선은 아직도 그에 대한 생각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히어로로 활약하는 건 참 좋네.”

유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반지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고 회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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