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41. 공방의 신 (1)
온 곳은 다시 지하 주차장, 불과 10분 전에 탔던 차에 다시 올랐다. 그의 손에 이끌려 정신없이 온 탓에 목적지를 묻지도 못해, 차에 올라탄 유선이 그에게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
루데릭이 앞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며 그에게 말했다.
“인천공항에 갈 거다.”
“인천공항까지?”
거리가 멀지는 않았지만, 유선은 공항으로 간다는 말에 그의 의도가 더욱더 궁금해졌다. 누군가를 만나러 간다는 게 분명하지만, 없잖아 드는 생각 하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뭐 어디로 떠나자는 건 아니지?”
“아니다. 오늘 사람 한 명이 오는데 그 사람을 데리러 갈 뿐이다.”
루데릭은 이상하다는 듯이 유선을 보았고, 유선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무리수임을 인정했다.
그 뒤로는 서로 말이 없었다. 루데릭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을 보다가,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거나, 길이 막히는지만 확인했다. 유선도 그를 따라 공항까지 묵묵히 운전만 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인천공항이 보일 즈음이었다. 루데릭이 먼저 입을 열었다.
“주인, 지금부터 이것 하나만 숙지해라.”
“뭔데?”
유선은 첫 마디로 꺼낸 것이 너무 진지해서 그의 얼굴을 돌아보며 물었다. 루데릭은 그 질문에 답해 주었다.
“지금부터 만나러 가는 사람의 정체는 악마다. 그러니 절대로 당황하지 마라.”
“······.”
유선은 그런 중요한 사실을 어째서 뒤늦게 이야기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악마라면 지금 최근에 세네타와 싸운 렛놈도 있었고,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괜히 화를 돋우러 가나 싶었지만······ 루데릭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녀석은 아니었다.
“악마에게 데려가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믿을 만한 놈이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조금이라도 위협의 여지가 있다면 주인과 둘이서 오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루데릭이 꾸미는 계획이니 그만큼 안전한 만남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선은 그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알아보고자 그에게 물었다.
“그 악마라는 놈은 어떤 놈인데?”
“말하자면 공방의 신이다.”
“공방의 신? 악마가?”
유선은 악마라는 종족에 신이라는 것이 붙으니 뭔가가 아이러니하다 싶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살펴 말한 루데릭의 입장에선 그 호칭이 어색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그 녀석은 공방의 신이라고 붙는 게 어울리는 악마이긴 하다.”
“어째서?”
“그 녀석은 닥치는 대로 개발한다. 호기심이 닿는 곳은 모두 손을 대 보는 습성이 있거든. 그리고 자신의 물건을 사용해 줬으면 하는 욕구도 강하다. 그래서 많은 전쟁에서 무기 개발자로 참여해, 양국에 기술을 제공해 주기도 했지. 그쪽 세계든, 이쪽 세계든 말이다.”
파벌에 따르지 않는 중립적인 성향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어쩌면 신적인 성격이 맞아떨어졌다.
“인간에게도 많은 도움을 줬다고?”
“그렇다. 인간들에게 독이 되는 무기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독이 되는 무기도 과감하게 설계했던 놈이니까. 그래서 위험한 그 녀석을 죽이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그것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녀석은 결국 마계에서 도망쳐 나와 은둔 생활을 했다. 그게 설마 이세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구나. 유선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하자, 그를 만나러 가는 의도가 자신과 상관있음을 알았다.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게 설마······.”
“그렇다. 주인에게 맞는 물건을 제작해 달라고 의뢰하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제작하려고 이곳으로 불러내지만······.”
역시나. 그게 공방의 신이라고 불리는 악마를 부른 이유였다.
“무기라든가, 방어구 같은 건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장인들 많잖아! 굳이 외국, 공방의 신이라고 불리는 악마에게 도움을 받는 건 이유가 있어?”
무기 하나만 수십억, 수백억이 넘어가는 아주 최상급 무기를 만드는 장인들도 있을 터인데, 유선은 루데릭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 꺼낸 말은 루데릭치고는 간결했다.
“주인에게 맞는 걸 제공해 주는 유일한 놈이니까.”
루데릭과 유선은 넓은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서 루데릭이 부른 악마를 맞이하려고 기다렸다. 루데릭은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전광판을 한 번 보며 비행기 도착 시각을 살폈다. 지금 맞는 시간에 미국에서 온 여객기 하나가 도착했다는 게 보였다.
화물까지 모두 제 것을 찾고 나오는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미국에서 여행을 온 사람, 미국에 여행을 간 사람들로 섞여 다양한 인종이 몰려나왔다. 그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유심히 보던 루데릭이 한 사람을 보고는 지명했다.
“저기 있군.”
거리가 멀어서 누구를 보는지 몰랐지만, 시선을 그곳으로 두니 유선은 루데릭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금방 알아차렸다.
루데릭은 악마였다. 그래서 그의 교감에 작용해 생각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소개하려는 인물도 악마였기에 유선의 교감에 작용했다. 유선은 그 생각이 뜨는 사람의 외모를 보았다. 그리고 한 번 더 의심했다.
“설마, 정말 저 사람인가······?”
공방의 신, 루데릭이 말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위장이라고 한다면 정말 완벽한 위장이었을 것이다. 그 악마는 바로 흑인이었다. 흑인에다가 레게 머리를 하고 비니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었다. 장인이라기보다는 뒷골목에서 볼 법한 래퍼에 가까웠다.
“What a nice day!”
유선은 흑인의 감탄사를 듣고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십중팔구는 반드시 가지는 현상이었다. 미리 생각해 놨던 단어도 갑자기 백지가 되면서 본래 발음이 꼬이고, 억양을 상실하며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 되어 버렸다.
그 사내는 들뜬 얼굴로 거대한 공항 내부를 살펴보다가 손을 들고 보라는 듯이 흔드는 루데릭을 보았다.
“It’s so fanta%^!#$$. Right?”
유선은 그 사내가 무어라 열심히 얘기하는 게 들려왔지만,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어가 목구멍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그 흑인은 유선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따라서 얼굴이 굳어 갔다. 유선은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루데릭을 보며 물었다.
“나 좀 살려 줄래?”
그의 대화를 지켜보던 루데릭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는 사내를 보면서 경고했다.
“한국말을 할 줄 알면서, 한국말이나 하지, 왜 내 주인을 놀리려고 영어를 쓰고 앉았나?”
“한국말?”
루데릭의 말을 듣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시큰둥한 얼굴을 하던 흑인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유쾌한 그 표정을 지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와하하하! 미안하다, 미안해. 한국 사람들은 영어로 이야기하면 그대로 굳어 버린다고 해서 진짠가 해서 잠깐 해 봤어!”
흑인이 아주 유창하게 한국말을 했다. 그리고 유선의 어깨를 그 손으로 팡팡 치며 말했다.
“어이, 졸지 말라고, 형씨!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글로벌 시대에 잉글리시가 이렇게 막혀서야 쓰겠나!”
“하하, 네······.”
흑인의 발음으로도 아주 유창하게 한국식 억양을 구사하는 사내였다. 사내는 곧 루데릭에게도 아는 척하며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책벌레. 잘 지냈나? 용케도 살아 있군.”
“너만 하겠나? 나는 네가 이 세상에 이렇게 몰래 살아갈 줄은 상상도 못 했군.”
루데릭도 그를 알았기에 익숙하게 말을 받아쳤다. 사내는 뭔가가 생각났는지 말을 덧붙였다.
“아, 그리고 아주 늦었지만, 나름대로 유감을 표하지. 네······.”
“쉿.”
루데릭은 사내의 입을 막았다.
“그 이상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흠······, 그렇게 말한다면.”
사내는 그것을 왜 민감하게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함구했다.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내고, 고개를 들어 유선을 보았다. 유선과는 초면이었기에 그에게 손을 내밀며 자기소개를 먼저 했다.
“초면이니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제임······ 아니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가명을 쓸 필요는 없지.”
다시 손을 거두다가, 그가 다시 마음먹은 듯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했다.
“내 소개를 다시 하지. 나는 공방의 악마, 포어셰크라고 한다.”
흑인은 자신의 이름을 포어셰크라고 말했다. 유선은 그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었다.
“대한민국 소속 헌터, 큐앤 헌터 컴퍼니의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자네가 정유선이라······ 흐음······.”
포어셰크는 못 믿겠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슥슥 훑어보았다. 옷차림, 헤어스타일, 생김새, 서 있는 자세, 과장하자면 머리카락 올 개수까지 세듯이 꼼꼼하고 기분 나쁘게 훑었다. 유선은 상관없었지만, 루데릭이 그 행동에 대해서 불만이 많은 얼굴이었다.
“그렇게 기분 나쁘게 보지 마라, 돌대가리. 고작 해 봐야 장인 주제에 불편할 정도로 주인의 몸을 훑는군.”
“어이쿠, 이거 미안하게 됐군! 기사나 사진은 많이 찾아봤지만, 실물로 보니 확실히 달라서 말이야.”
포어셰크는 그렇게 유선을 쓱 보다가 눈을 뗐다.
“아무튼 이렇게 마중 나와 줘서 고맙네. 이제 후딱 일을 끝내 버리자고.”
“네, 그러죠.”
유선은 홀가분한 차림으로 온 포어셰크를 자신의 차로 인솔했다. 주차장에 세워진 유선의 차를 본 포어셰크의 반응은 상당히 실망한 눈치였다.
“음, 정말 아저씨 같은 차로군. 자네의 청춘은 어디에다 버렸나?”
“굳이 청춘을 차로 찾아야 합니까?”
“꼭 그렇진 않지.”
포어셰크가 끌끌 웃으며 보조석에 앉았다. 유선이 운전석에 올라타며 시동을 걸면서 루데릭에게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마땅히 일정을 잡아 놓은 게 없어서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포어셰크가 그 물음을 가로챘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목적지는 저 녀석보다 내가 더 잘 아니 도와주지. 내가 너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겠다, 이 말이야, 형씨.”
“아, 알겠습니다.”
“우선은 이 공항을 나가 보자고.”
포어셰크가 미리 장소를 정해 놓은 모양이었다. 유선은 그의 말을 듣고 먼저 차를 공항 밖으로 뺐다.
“혹시 레게 음악 싫어하나?”
포어셰크는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라디오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쓰면서 자신의 품속에 넣어 둔 MP3를 꺼내면서 유선에게 물었다.
“이것저것 가리진 않는 편입니다.”
“그러면 네 MP3에 든 노래를 좀 틀겠어, 괜찮겠지?”
“그러십시오. 너무 크게 틀지만 마시고······.”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포어셰크는 능숙하게 블루투스 기능을 사용해 자신의 MP3와 자동차를 연결했다. 유선은 그런 기능이 있음을 그제야 알았다. 포어셰크가 레게 음악을 흥얼거리면서, 딴 길로 새지는 않나 하고 걱정됐지만, 길이 보일 때마다 그에게 칼같이 지시했다.
유선은 슬쩍 뒷좌석에 탄 루데릭을 보았다. 그는 평소처럼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딴짓을 했다.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 위협적인 인물이 아님이 확실하다는 뜻이었다.
유선은 가만히 운전하기가 불편해 포어셰크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두 분이 어떻게 아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포어셰크는 유선의 질문에 반응해 주었다.
“뒤에 있는 녀석? 저 책벌레랑 같은 악마니까 서로 잘 알지.”
“같은 악마들이면 다 구면인 겁니까?”
“뭐 그런 건 아니지, 형씨. 같은 동네 사는 인간들도 때로는 자기 이웃 얼굴을 모르는 경우가 있잖아, 안 그래?”
“아, 그렇군요.”
포어셰크와 루데릭은 그러면 평소에도 구면이었다는 말이었다. 포어셰크는 끌끌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거기다가, 루데릭이란 악마는 모르면 안 될 정도로 아주 명성이 높거든.”
“루데릭이 말입니까?”
유선이 놀란 듯이 그에게 묻자, 포어셰크는 의외라는 듯한 그의 반응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씨, 설마 우리 책벌레에 대해서 잘 몰라?”
“네, 모른다면 모르는 편이죠······.”
루데릭은 자신에 관해서 이야기를 잘해 주지도 않고, 유선에게도 그의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래서 관심을 두어도 루데릭의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었다.
포어셰크는 뭔가 재밌어졌다는 듯이 빙긋 웃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이거, 이거, 그러면 안 알려 줄 수 없겠구먼. 우리 책벌레, 루데릭이란 이 녀석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