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 은밀한 거래 (84/148)

 # 84

39. 은밀한 거래

번영기를 맞이하는 큐앤 헌터 컴퍼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모습이 진화되듯이 변하기 시작했다. 유선은 그런 큐앤의 모습이 아직은 낯설기만 했다. 고작 1년도 안 돼서 이룩해 낸 번영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선배, 저 떨어졌어요.

“하하······.”

바깥에서 잠시 업무를 보고 돌아올 때쯤, 받은 전화 너머에서 슬픈 소식이 전해 왔다. 자신을 따랐던 후배인 남주혁이었다. 이번 연도에 시험 친다는 말은 들었지만, 유선은 바쁘게 살아오다 보니 그들의 일을 깜빡 잊고 말았다. 심심찮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다음에 잘 보면 되지. 도연이는? 걔도 시험 봤어?”

-걔는 지금 집에서 오열할걸요? 전화 걸지 마세요. 떨어지자마자 전화 걸었다가 얻어맞을 뻔했어요.

“그렇구나.”

경쟁심이 강한 후배였기에,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시험 자체 기준이 너무나도 높다 보니 원래 첫 도전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유선은 그들이 안타까워 기운을 돋워 주려고 제안했다.

“그럼 오늘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할까? 너희 시간 되니?”

-아뇨. 시간은 되지만······ 도연이도 지금 안 될 것 같고, 술 마셨다가 선배한테 제대로 추태 보여 줄 것 같아서 지금은 혼자 있으면서 마음 가라앉혀 볼게요. 도연이도 좀 진정되면 그때 사 주세요.

“어쩔 수 없구나. 그래, 알았어. 얻어먹고 싶을 때 전화해라.”

-네, 선배. 들어가세요.

유선은 아쉽다는 듯이 전화를 끊고 엘리베이터로 갔다. 한참 업무를 볼 시간에 한적한 로비에 처음 보는 사람이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움직이질 않으니 초조한 모양이었다.

업무를 보러 온 사람이겠거니, 유선은 그냥 자신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려고 사내의 옆에 섰다.

“언제 와, 이놈의 엘리베이터······. 빨리 전달하고 가야 하는 허, 헉!”

사내는 초조하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 유선을 보고는 호들갑을 떨었다. 유선은 기겁하는 그의 행동에 의아하다는 듯이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정유선 헌터님이시군요. 패, 팬이라서 그렇습니다.”

사내는 유선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선은 얼떨결에 그 악수를 받아 주었다.

“아, 그렇군요······. 그쪽은 혹시 누군지 여쭤도 될까요?”

“아, 저는 홍익 헌터 컴퍼니의 헌······터 매니저를 맡은 유대식 대리라고 합니다.”

그가 말을 더듬으면서 자신을 소개했다.

“홍익 컴퍼니······. 신생 회사로군요.”

유선은 최근 들어서 신생 헌터 회사들이 많이 늘어나서 회사 몇 개는 외워 두었다. 유대식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에 유니콘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팀 하나와 회사원들을 모아서 만든 회사입니다. 아, 그리고 여기 명······.”

그렇게 자신을 소개하고 명함을 내밀려는 순간, 명함이 그의 주머니에 없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명함이 없네요······.”

“아닙니다. 하하.”

유선도 명함 교환은 오히려 귀찮아질 것 같아서 사양한 부분이었다.

“혹시 누구한테 볼일 있어서 오셨나요?”

“아, 사장님께 전해 드릴 물건이 있어서 왔습니다. 무려 1급 비밀 서류인지라, 직접 전해 드려야 해서요.”

유선은 유대식 대리의 말을 듣고, 엘리베이터 상태들을 보았다. 오늘은 분주하다 보니, 1층까지 내려올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유선은 가운데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단말기에 출입증을 찍고 가운데 엘리베이터 문을 열며 말했다.

“그렇다면 저와 함께 가죠. 사장님 전용 엘리베이터니 바로 도착할 겁니다.”

“그렇게 마음 쓰실 것은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빨리 업무 보시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요.”

“얼른 타십시오.”

“감사합니다.”

유선의 권유에 거절할 만한 이유가 없기에, 유대식 대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유선이 14층을 눌렀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사장실은 15층에 있습니다만!”

“아, 14층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갈 생각입니다. 하하, 요새 계단 타는 게 건강에 좋다지 않습니까?”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유선은 더는 그에게 눈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반응을 한 번 더 보면서 촉이 확실하게 섰다.

‘본무는 14층에 있다는 거로구먼······.’

말을 더듬은 것과 수상하게 두꺼운 가방. 알게 모르게 긴장해서 흘리는 땀. 유선 자신을 보고 향한 격한 감정의 변화가 느껴졌다.

청부 암살자? 그런 것이었다면 애초에 연기를 잘해야 하고, 허술한 모습들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어설픈 티를 내서 일부러 자신을 감추는 것치고는 나 연기하오, 라고 말하는 게 확실했다. 청부 암살자가 나오는 영화 같은 상황은 확실히 아니었다.

본무를 누구에게 보려는 속셈인지 궁금했다. 우선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는 기색이 유선 자신은 아니었다. 목표는 14층에 있는 사람 중 하나. 그렇다면 목표가 될 만한 이가 누구란 말인가.

‘설마······.’

증축 전에도 빈번히 발생했던 트러블이 떠올랐다. 유선은 그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이루는 모든 것이.

“죄송하지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군요.”

“아, 말씀하시지요.”

유대식 대리가 애써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알코올 소독한 냄새가 좀 심하지 않습니까? 막 취하는 것 같네요.”

“심, 심합니까? 저는 잘 모르겠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그의 손이 슬쩍 자신의 가방 아랫부분을 더듬었다. 뭔가가 새어 나왔나 확인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아주 바짝 마른 것을 보고 사내는 깨달았다. 유선이 지금 자신이 무슨 용무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꿰뚫어 본다는 사실을!

띵-.

“역시나.”

유선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함과 동시에 그를 보며 말했다.

“유대식 대리님은 정령술사셨군요.”

유대식 대리라는 사람은 헌터 매니저가 아니라 헌터였다. 그의 가방에 든 것은 술, 그 술을 전달하려고 14층에 들를 생각인 사람이었다. 그 술을 전달할 만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술꾼이라면 딱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술을 주면서 받을 만하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정령 계약 정도리라. 호의를 베푼다면 그 호의에 응답해 주는 게 오르넵토스니 충분히 가능했다.

“용서해 주십시오!”

유대식 헌터가 무릎을 꿇고 그에게 사과했다. 유선은 곤란하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정령술사시면 잘 알 텐데요. 제가 이런 거에 되게 민감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크흑, 알지만······ 제발 저도 정령과 계약해야 하는데, 부디 계약을 도와주십시오. 마나통이 아무리 크게 만들어도 매력이 없다면서 퇴짜 놓는 꼴이 이젠 너무 보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커흐으윽······.”

마나가 많아도 퇴짜를 맞는 상황이라는 사연을 들어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일 뿐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런 술은 받지 않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유대식 헌터에게 가방에 든 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우리도 기본적으로 실력이 입증되는 정령술사들에게만 정령과 계약을 맺도록 진행 중입니다. 오르넵토스는 지금 엘리멘탈 팀에서 정령이 폭주하는 상황을 막으려고 들어간 보호자일 뿐이지, 멋대로 상위 정령들을 계약시켜 주고 그런 매개체가 아닙니다. 이렇게 뇌물을 주셔서 계약을 맺으려 드신다면, 우리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유대식 헌터가 반성하는 기색을 보이는 것 같았기에, 더 긴말하지 않았다. 가방에 든 술을 보이며 사내에게 경고했다.

“이런 술은 앞으로 사지 마십시오. 사신다고 해도 오르넵토스에게 줄 생각은 일절 하지 마십시오.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일어나시고 얼른 용무 보시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내는 자신의 가방을 들고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힘이 쭉 빠진 걸음으로 계단으로 걸어가 15층으로 올라갔다. 업무는 진짜로 있었던 거였기에 일은 해야만 했다. 유선은 한숨지었다.

정령술사들이 업무를 대신해 주면서 오르넵토스에게 접근해 정령 계약을 따내려는 수작. 자주 있는 일이었다. 증축하면서 신경 쓰지 않아 설마 또 이런 일이 생겼을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유선은 슬쩍 복도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르넵토스, 거기 숨어서 보지 말고 당장 나와!”

“윽.”

그의 말대로 오르넵토스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오르넵토스는 사내가 오기까지 기다린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유선이 나타나서 재빨리 숨어 모르는 척했다.

“계약자 왔어? 오늘 날씨가 참 좋은데, 햇살 제대로 맞고 왔나 몰라.”

딴청 피우는 오르넵토스. 유선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르넵토스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간 틈을 이용해서 술을 받으려 했지?”

“나, 나는 아무것도 몰라.”

오르넵토스가 계속해서 딴청을 피우지만, 그녀의 머리 위에는 걸려서 재수가 없다느니 하는 소리가 적혀 있었다. 유선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오르넵토스.”

“으, 응? 왜 그래, 계약자?”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뺨을 잡았다. 그리고 똑바로 눈을 마주하면서 그녀의 뺨을 꼬집었다.

“으아으아으아······.”

“술이라면 내가 사 줄 테니까 그거로 해결하자고 했니, 안 했니?”

“그렇지만 계약자는 일주일에 한 번······.”

“어허.”

오르넵토스는 주어진 질문에만 대답하라는 의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아으······, 해써.”

“그런데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한테 뜯어내려 하면 곤란해. 알아?”

“그렇지만 옛날에는 잘만 이랬는데······.”

오르넵토스가 구식 시대에서 살다가 현대로 넘어와 아직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 남았다. 그래서 이해 못 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힘이 못 미치는 곳까지 가면, 정령들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수가 있다면서. 저 사람한테도 그러고 싶어?”

다른 사람이 쓸데없이 위험해지는 경우가 있어서 문제였다. 그래서 유선은 실력에 맞지 않으면 그에 맞지 않는 정령은 절대로 소개해 주지 말라고 했다. 오르넵토스는 거기에서도 할 말이 있는지 중얼거렸다.

“아니······. 그래도 충분히 경고는 하는데······. 그 경고를 무시하면 당연히 화를 입어야 하는 것도 당연하고······.”

경고는 한다지만, 힘이라면 영혼마저 팔아 버릴 각오로 오는 인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오르넵토스는 실질적으로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할 것이다. 그녀가 이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보아서, 유선은 살짝 겁이라도 줘 놔야 할까 하는 생각에 그녀에게 가장 잔혹한 벌을 언급했다.

“너한테 금주령을 선포할까?”

“안 돼, 그것만큼은 제발! 그것도 없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 그러지 마, 계약자!”

흡사 나라를 잃는 듯한 표정으로 유선을 보았다. 엘레노어에게 오늘 라면이 없다고 말할 때처럼 가장 절망적인 얼굴이었다. 채찍이 아주 제대로 먹힌 듯했다.

“한다고는 말 안 했잖아. 그러니깐 울려고 하지 마.”

“아, 안 할 거지? 그치?”

오르넵토스는 못 믿겠다는 듯이 매달리며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유선은 그녀가 딴짓하지 않도록 할 만한 수단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역시 나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앞으로 추가 수당도 줄게.”

“추가 수당?”

유선은 손가락을 하나 펼치며 말했다.

“일주일마다 팀에 성장 성과가 있으면 맛있는 와인 한 병.”

“한 병?”

“아주 좋으면 와인 두 병.”

“두두두 두 병?”

기겁하며 넘어가는 듯한 표정을 짓는 오르넵토스.

“그렇게 기율이한테 추가로 더 구해 달라고 할 테니까 딴짓할 생각하지 말고 열심히 해, 알았지?”

“하, 한 병······ 두 병······.”

오르넵토스는 못 믿겠다는 듯이 손가락으로 셈했다. 늘 성장세이기에 일주일에 두 병인 셈이었다. 아주 좋다면 세 병씩으로 바뀌고! 매일매일 아까워서 한 번 마시고 다시 봉하는 짓거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었다.

오르넵토스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침을 꿀꺽 삼키면서 의욕이 제대로 살아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응! 알겠어, 계약자! 그런 조건이라면 나는 아주 좋다고!”

“그래.”

젊음을 되찾은 듯한 의욕이 가득한 얼굴과 혈기. 그 기세를 몰아붙여 계단으로 달려갔다. 자신의 팀을 얼른 성장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당장 시작하려는 게 분명했다.

“진작 이럴 걸 그랬네.”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의욕적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 일주일은 엘리멘탈 팀이 기적적인 상승 곡선을 보여 주는 기적과 동시에 본 적 없는 ‘살려 줘!’라는 다잉 메시지와 비슷한 것이 훈련장 구석에 남겨졌다고 전해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