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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용사의 자격 (3) (7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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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용사의 자격 (3)

헤어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각, 세네타는 조심스럽게 왼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지크벨트와 달리, 순탄하게 가지 못했다. 사방에서 숨은 마수들이 튀어나와 세네타를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세네타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그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키에엑!”

마수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그 많던 마수들을 죽였는데도, 뒤와 옆 가릴 것 없이 계속해서 나왔다. 벽에서 계속해서 마수가 흘러나왔다.

잔챙이들을 이용해서 공격에 대한 패턴이나 움직임을 파악하려는 용도일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최대한 단번에 죽이는 똑같은 방법만 사용했다. 세네타는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갔다.

렛놈은 마음의 틈을 파고드는 악마. 그렇기에 농락당해선 안 된다고 확실히 숙지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언제나 늘 똑같은 표정과 자세를 유지했다. 그 어떤 흔들림도 느낄 수 없도록…….

유선 님, 칭찬해 줘!

익숙한 목소리가 동굴에 울렸다. 전혀 상관없는 엘레노어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째서 그때의 목소리가 자신에게 울리는지, 세네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 들리는 목소리에 세네타는 자신이 농락당했음을 알았다.

“가엽고 불쌍하게 버림받은 아이야. 누구를 찾느냐?”

렛놈의 비릿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세네타는 재빠르게 몸을 꺾으며, 커다란 원 궤적을 그렸다. 하지만 그 범위에는 렛놈이 이미 떨어진 직후였다.

“예리하군. 예리해. 아비보다 작아서 그런지 파괴적이기보다는 섬세하게 나오는구나, 그래.”

“······.”

세네타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렛놈을 쓰러트리려고 검을 쥐고 달려들 뿐이었다. 세네타는 늘 그렇게 싸워 왔다.

세네타는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흐름을 주도하고, 공격하며 렛놈과의 몸싸움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렛놈은 그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용사는 자신의 길이 얼마나 험한지 알지. 그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고통과 고난뿐인 길을 말이다.”

“······.”

“용사 이외에는 그 누구도 기계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데, 왜 네가 기계처럼 살기를 바라는 것 같으냐?”

지크벨트와 같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검을 휘둘렀다. 세네타가 쥔 검에 힘이 더욱 실렸다. 그녀의 공격 속도도 점점 더 빨라졌다. 마수와 싸울 때와는 차원이 다르게 가속도가 붙었다.

“그리고 왜 그런 기계를 만드는 데, 굳이 혈육을 써야만 했을까? 생각이 들지 않나?”

렛놈은 과감하게 공격을 튕겨 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 반동으로 세네타는 재빠르게 렛놈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세네타가 다시 돌격해 렛놈을 찌르려 들었을 때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렛놈이 사라졌다. 그리고 환영의 벽이 세워졌다. 주변 인물이라는 벽이 그녀의 앞길을 막았다.

처음은 엘레노어였다. 그녀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넌 그 무엇도 아냐.”

엘레노어를 베어 넘겼다.

“그 인간을 아버지라 여기며 동경하기만 하지.”

비웃음을 터트리는 오르넵토스를 베어 넘겼다.

“제 어미는 보이지도 않고, 아비뿐인 그 남자를 너는 맹목적으로 따랐어.”

유선을 베어 넘겼다. 그러자 그 너머에 지크벨트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가 근엄한 얼굴로 입을 떼며 말했다.

“왜 네 어미에 대해서 알려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그리고 세네타는 마지막으로 서 있는 지크벨트까지 베어 냈다.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다리를 붙잡는 감각이 들었다. 검을 들어 얼른 그것을 향해 내리찍었다.

아니 찍지 못했다. 세네타는 그 얼굴을 보고는 도저히 내리찍을 수가 없었다.

세네타와 닮은 여인의 얼굴. 미묘하게 다르지만, 세네타와 같이 백금색 머리를 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다리를 붙잡은 채로 미소 지었다. 그녀가 가엾다는 듯이 세네타를 보며 말했다.

“애초에 넌 가족이 아닌 단순히 이용당하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세네타는 놓지 않은 평정심이 흔들리고 말았다. 미약하게 떨려 오는 의심을 렛놈은 놓치지 않았다. 렛놈은 집요하게 주시하며 그 순간을 기다렸다.

렛놈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보는 시야 속에는 칠흑만이 감쌌다.

“의심하게 되는 것.”

렛놈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세네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것 한 번만으로도 모든 것을 무너트리기 충분하다.”

그녀는 검을 들어 앞을 겨누었다. 아니, 검이 없었다. 그녀의 손에는 원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기적을 사용해 보지만, 그것도 무용지물이었다. 렛놈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의심했구나, 꼬마야.”

그녀의 오감이 송두리째 렛놈에게 놀아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어떤 것이 진실이며, 거짓이고, 어떤 것이 허상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그것은 용사조차 말려들면 나올 수 없는 하나의 심연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살려 줘!”

모든 것이 타들어 가며 부서졌다. 바깥으로 나온 마수들이 인간을 사냥하며, 자신의 동족을 늘렸다. 하나의 지옥도가 되어서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세네타는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가짜가 분명하다, 가짜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세네타에게는 분명한 진실이었다. 머리는 진실로만 받아들였다. 눈앞에 보이는 분명한 진실이었기에 부정할 수가 없었다.

구해야만 했다. 저 사람 중 한 명이라도 살도록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발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발을 묶어 놓는 듯했다. 무엇이? 대체 무엇이 다리를 묶었을까?

공포였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이 공포의 감각이었다.

죽어 가는 사람 중 하나가 세네타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피눈물을 흘리며 세네타를 원망하는 소리를 내었다.

“왜 구해 주지 않아? 나는 죽어 가는데! 왜 혼자서!”

“나, 나는······.”

세네타는 그 원망 소리에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장면은 멈추지 않고 세네타의 눈을 괴롭혔다. 세네타는 그렇게 뒷걸음질 치다 등 뒤에 누가 서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사람은 세네타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버지······.”

세네타 앞에 지크벨트가 섰다. 그가 세네타를 경멸의 눈으로 보았다.

“나를 의심하고 말았구나, 세네타.”

세네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야······ 나는······.”

“실망이 크다.”

“아버지······!”

지크벨트가 자신의 검으로 스스로 목을 베는 모습을 말이다. 동경해 오던 아버지가 눈앞에서 죽었다. 그것도 자신의 무능함에 탄식하며 자살을 택했다. 피가 분수를 이루며 세네타의 얼굴을 덮었다. 그 피의 분수는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경멸하듯 내려다보는 두 눈이었다.

“아, 아아······.”

세네타는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놓은 공포가 드러나자, 그녀는 주체할 수 없었다.

세네타는 소중한 것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기 싫어 눈을 감으려 했다. 비명이 듣기 싫어 양 귀를 막으려 했다. 타들어 가는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숨을 참았다. 모든 오감을 막으며, 그대로 홀로 있기를 간청했다.

그때, 거짓말처럼 모든 것이 멈추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그녀 앞에서 들려왔다.

“언제까지 허덕일 거냐?”

세네타는 고개를 들어 보았다. 오르넵토스였다. 성년의 모습을 한 그녀가 세네타의 손을 붙잡았다.

“나가자.”

***

스르릉, 털컥! 지크벨트가 자신의 검을 양손으로 꾹 쥔 채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간사한 상을 가진 렛놈이 능글거리는 얼굴로 지크벨트를 보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지크벨트는 돌아보지 않으며 뒤를 향해 물었다.

“성공하셨습니까, 오르넵토스 님?”

오르넵토스는 진즉 지크벨트의 검에서 나온 상태였다. 그녀는 악몽에 허덕이는 세네타를 풀어내려고 마법을 사용하는 중이었다.

“속수무책이 되기 전에 왔군. 정신이 오염되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금방 풀어내.”

한 번 무너진 마음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꺼내는 것마저 똑같았다. 용사는 그 과정을 잘 알았다. 절망에 허덕였던 당시, 아르젤이 그를 구원해 주었기 때문이다.

렛놈이 입맛을 다시며 용사를 저주했다.

“아주 맛있게 녹여 먹으려던 찰나에, 난입하다니. 식사 정도는 하게 두는 게 예의가 아닌가?”

“말했지만, 너희 같은 족속들에게 남겨 둔 예의는 없다.”

지크벨트는 렛놈을 똑바로 응시했다. 렛놈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렛놈은 세네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았기에 세네타의 두려움이 뭔지 알고 그를 향해 도발했다.

“제 어미를 몰라. 정체성에 대해서도 몰라. 갈팡질팡하는 애새끼가 용사더냐, 지크벨트? 기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구나.”

“닥쳐라.”

지크벨트가 검을 휘둘렀다. 오른쪽 방에서 상대했을 때와 다르게 어려운 감이 있었다. 오르넵토스가 없으면서 느끼는 육신의 한계였다. 그래서 공격하기보다는 이제는 막는 것이 더 급할 정도였다.

“윽.”

“왜 그러나, 용사? 오른쪽에서 나와 싸울 때, 힘을 너무 많이 써 버렸나? 아니면······.”

렛놈이 네 팔로 공격해 오다 비릿하게 웃었다.

“정령왕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서 그런가?”

지크벨트는 렛놈의 도발에 말려들지 않으려 했다. 그는 자신의 약함을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무서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조금 더 무거운 검을 휘두를 뿐이었다. 렛놈을 쓰러트릴 수 없다 해도, 지금은 시간만 번다면 충분했다.

멍하니 허공을 향해 보던 세네타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벌어진 격하게 밀려오는 역한 감각에 헛구역질했다.

“콜록, 콜록!”

“됐어! 세네타에게 걸어 놓은 마법을 완전히 풀어냈어.”

지크벨트는 오르넵토스의 말에 렛놈을 강하게 밀어붙여 다시 거리를 벌렸다. 오르넵토스가 다시 자신의 검으로 들어와 육신을 보조했다.

세네타는 지긋한 악몽에서 깨어나 식은땀을 흘렸다.

“일어서겠느냐?”

지크벨트는 돌아보지 않으며 세네타에게 말했다.

“콜록······ 네.”

“그렇다면 얼른 일어나라. 그 검을 들고 말이다.”

세네타는 공포로 자신을 좀먹는 와중에도 절대로 검은 놓지 않았다. 자신의 검을 지팡이 삼아 애써 몸을 일으켰다. 렛놈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공포에 잡아먹혀 서지도 못할 텐데······. 과연 용사의 딸인가?”

렛놈은 그녀가 쥔 검이 가장 거슬렀다. 그 검은 공포와 상관없이 양손으로 잘 잡힌 채였다.

“기분 나쁘게 신념 하나는 철저하군.”

렛놈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보더니,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키에에에엑!”

마수가 나왔다. 벽이 울렁거리더니, 물렁물렁해진 벽 틈으로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난관이네.

“도움을 더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네 마나로는 지금도 한계야. 지금 몸을 보조하기도 빠듯해.

순수히 용사로서 힘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쏟아져 나온 마수는 무작정 지크벨트와 세네타를 향해 돌격해 왔다. 미친 듯이 몰려왔던 물량을 막아 내기보다 힘들지 않았지만, 렛놈이 있기에 싸움은 더욱 힘들어졌다.

“마수들을 막아 내라. 악마를 빠르게 막아 낼 테니.”

“네.”

지크벨트와 세네타는 서로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뛰어들었다.

“설마 계속해서 그런 공격이 통하리라 믿느냐?”

렛놈을 내리찍으려던 검은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옆에서 달려드는 마수들이 그대로 폭발해 지크벨트를 덮쳐 오기 때문이었다.

“이런······.”

검신을 세워 방패로 삼아 충격을 완화했다. 하지만 그 탓에 다시 렛놈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최선의 수······ 최선의 수를······.”

이대로 가면, 자신이 먼저 지쳤다. 그렇게 되면 렛놈을 쓰러트리는 것은 무산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두려움이 오로지 저 악마에게 죽음을 안겨 주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네 두려움이 그것뿐이라 생각하느냐?”

렛놈이 지크벨트의 속마음을 읽은 듯이 물었다. 지크벨트는 그 의문을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상황에 무슨 말인지 알았다.

“끄으윽······.”

세네타가 벽에 몰리고 말았다. 상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제대로 피해 내지 못해서 이리저리 베인 자국이 많았다.

“이런······.”

막 공포에서 벗어난 그녀에게 허점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렇기에 조력자의 역할도 할 수 없는 채로 렛놈의 공격을 받아 내야 했다.

“크윽!”

마수가 지크벨트의 어깨를 물었다. 그것에 그치지 않고 마수의 몸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올랐다.

쾅!

그대로 터져 나갔다. 오르넵토스가 재빠르게 마법을 사용해 큰 부상은 없었지만, 지크벨트는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벌렸다.

폭발 연기가 걷혀 갔다. 지크벨트는 재빠르게 렛놈을 탐색했다. 경험대로라면 그가 무슨 수작을 부리려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를 발견했다. 렛놈은 웃었다. 계속 보던 기분 나쁜 미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 역겨움과 오싹함은 배로 만드는 미소였다.

그것은 아마 승리를 앞둔 미소이리라.

“자, 선택의 시간이다.”

렛놈은 지크벨트에게 관심 없다는 듯이 세네타를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톱을 세네타의 가슴을 향해 뻗어 갔다. 그녀의 갑옷을 꿰뚫고, 연약한 살을 그대로 찢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 동작 자체는 아주 큰 동작이었다. 그렇기에 그건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렛놈을 죽일 절호의 기회. 세네타의 가슴을 파고 들어가는 손톱을 견뎌 내면, 렛놈은 그 자리에서 바로 소멸하고 말 것이다.

온몸의 움직임을 서포트해 주는 오르넵토스가 할 것은 기껏 해 봐야 줄기를 뻗어 두 팔을 묶는 것뿐. 그 이상의 타협점은 없었다. 그래서 렛놈은 그것을 선택의 시간이라 칭했다.

용사는 알았고, 몸을 날린 렛놈과 당하는 세네타도 그 사실을 알았다. 렛놈을 베어 낸다면 분명히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퍼석!

혼란스럽던 세네타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 앞에 거대한 벽이 서 있음을 느꼈다. 함께 들리는 검의 소리. 세네타 앞에는 지크벨트가 섰다. 세네타가 의심 속에서 머리를 헤집으려는 마법을 겨우 견뎌 내고 지크벨트를 올려다보았다.

“세네타······ 그 이름은 네 어미가 생각해 낸 이름이었다. 딸이 태어나면 세네타로 꼭 이름 짓고 싶다고 했지.”

그는 세네타에게 한 번도 이야기해 준 적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너를 세네타로 지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이름을 찾아야 할지 말이다. 죽었던 네 어미와 닮았는데, 이름을 부르다 그녀가 생각나면 나는 어떻게 할지 걱정이더구나. 이런 걱정조차 하기 싫어 네게는 얘기하지도 않았다.”

지크벨트는 세네타를 향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세네타는 그 미소를 받아 줄 수가 없었다. 부정했다. 필사적으로 이 상황을 부정했다. 하필이면 왜······ 하필이면 왜 이 상황에서 그 미소를 봐야만 하는가!

악몽보다 더 악몽 같은 상황이었다.

“세네타, 그러니 평정심을 유지해라. 그리고 늘 말하지만 용사는 최우선을 생각해야만 한다.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돼.”

노인의 입가에서 피가 차올라 흘러내렸다. 그것은 입뿐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용사 실격이었다.”

용사, 지크벨트는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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