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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용사의 자격 (1) (7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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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용사의 자격 (1)

검과 정의의 신, 소렌의 기적. 입증된 용사만이 가지는 능력이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싸우도록 손끝에 새로운 검을 하나 만들어 쥐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렇기에 세네타는 무기 하나 들고 가지 않아도, 모든 것을 사냥하고 돌아왔다.

반사광이 하나도 없는 블랙홀처럼 검은 검이 세네타의 손에 쥐였다.

‘뭐야, 저 검?’

‘처음 보는 검인데······.’

헌터들은 그 검을 보면서 저마다 머리에 물음표를 띄웠다. 자신들이 쓰는 날이 번쩍한 검들과 다른데도, 그 검은 자신들의 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물어볼 수 없다는 게 한이구먼.’

그들은 눈여겨보는 행동도 할 수 없이, 그저 묵묵하게 일만 해야 한다는 게 안타까웠다.

지크벨트는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을 보고는 말없이 렛놈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

세네타와 지크벨트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아, 이 느낌! 이 증오로 가득 차던 인간의 느낌! 마수와 인간의 줄타기를 하던 용사의 느낌이로구나! 렛놈 님의 뱃속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용사여!

-뭐야? 악마가 아니라 완전히 광대였구먼!

렛놈이 환희에 찬 목소리로 동굴 내를 울렸고, 렛놈에 대한 인상을 모르는 오르넵토스는 확 깬다는 듯이 말했다. 지크벨트는 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지크벨트는 묵묵히 앞을 걸었고, 세네타는 그를 따라 움직였다. 렛놈은 세네타의 존재도 느끼며 말했다.

-불청객이 왔구나. 웬 잔챙이들인가 했는데, 그리 잔챙이들도 아니로군. 단둘의 무대만 꾸밀 수 있었는데······. 그래도 훌륭한 조연이 있는 연극은 금상첨화나 다름없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최후의 무대에서 기다리겠다, 용사.

그것을 마지막으로 하여 렛놈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 앞에는 갈림길이 생겼다.

-갈림길이 나왔군.

“예상대로입니다. 렛놈은 두 개 구슬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갈림길에 꽝은 없었다. 그 안에는 두 개 심장, 흔히들 코어라고 부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코어는 두 개. 그리고 그 코어를 그 방에서 가지고 나갈 수 없고, 그 장소에서 파괴해야만 했다. 그리고 동시에 파괴하지 않으면, 코어는 재생했다.

그렇기에 본래 용사 한 명이었다면 아주 힘든 사냥일 것이다. 렛놈을 두 번이나 상대해야 하기 때문인 데다, 코어가 다시 복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계획대로라면, 양 갈림길에서 찢어져야 합니다만······. 그것도 지금 이야기할 건 아니겠군요.”

-무슨 말인가?

“세네타, 뒤.”

가만히 서 있던 세네타의 뒤. 그곳에는 칼날처럼 날카로운 발톱이 날아들었다. 정확히 머리를 노려 들었다. 머리를 그대로 내리찍어 일격에 죽일 심산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녀의 머리카락에 닿았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세네타는 그 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몸을 날렸다. 긴 백금색 머리카락의 일부가 잘려 나갔다. 손을 뻗었던 마수들의 몸은 그저 깔끔하게 썰린 고깃덩어리로 바닥을 뒹굴었다.

-캬아아아악!

그것이 신호탄을 쏜 것처럼 세네타가 바라보는 동굴 쪽에서 날카로운 마수들의 소리가 메아리쳤다.

-키에에에엑!

그쪽뿐만이 아니었다. 지크벨트와 가까운 갈림길에서도 마수가 울부짖었다. 수많은 마수가 동굴 벽에서 나와 세네타와 지크벨트를 반기려 다가왔다.

“세네타, 왼쪽을 맡아라.”

“네.”

세네타는 왼쪽 동굴을 향해 보며 검을 고쳐 잡아 자세를 취했다. 자신의 아버지, 지크벨트에게서 배운 저돌적인 자세였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앞. 그 속에서 울리는 것은 그저 절규의 메아리뿐이었다. 세네타는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저 소리를 따라, 그녀의 검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곧바로 뻗어 나갔다.

푸욱!

수많은 마수 중 하나, 한 마리의 머리를 그대로 꿰뚫었다. 세네타는 검을 뽑지 않고 그대로 크게 휘둘러 골수와 피를 마수들에게 흩뿌렸다.

“캬아악!”

“캬악!”

골수와 뼈 파편을 눈에 맞은 몇 마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세네타는 그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하고 다시 한 번 더 저돌적으로 돌격했다. 눈치채고 손으로 흩뿌린 골수를 막은 마수의 머리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서걱-.

두 마리. 그녀의 눈이 재빠르게 다시 목표를 추적했다.

정신이 막 깬 마수.

콰직!

아직 허덕이는 마수들.

서걱!

정신없이 쫓고, 피에 취하며 흥분에 온몸이 고조하여 갔다. 세네타는 그 흥분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머리는 차갑고, 몸은 열을 띠었다. 박차를 가하듯 그녀 몸의 불규칙적이던 리듬이 하나의 조화가 되어서 모든 것을 거침없이 베어 갔다.

그것이 몰려오는 마수들을 처리하는 세네타의 방식이었다.

-한눈팔지 마, 용사.

지크벨트는 세네타의 싸움을 말없이 지켜보다 오르넵토스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네.”

-준비는 되었나?

왼쪽에서 몰려오는 마수들이 무섭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지옥의 메아리가 동굴 벽을 타고 자신을 찾아옴을 알렸다. 지크벨트는 그 마수 떼가 다가오는 것을 겸허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렸다.

오르넵토스가 들어 있는 수정구에서 빛이 환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맡길 준비가 되었습니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수정구에서 백색 섬광이 터져 나왔다. 붉은 안광을 뿜으며 동굴 안을 채우는 기괴한 마수들의 모습이 순간, 끝까지 환하게 비추었다.

-<레쉬크>!

“키야아악!”

오르넵토스가 쓴 마법에 어둠에 적응해 붉은빛을 뿜던 마수가 흔들렸다.

지크벨트의 대검이 바람에 휘감겼다. 묵중한 대검이 순간, 모든 중량을 초월했다. 지크벨트는 무릎을 굽히며, 바닥에 손을 짚어, 짐승이 도약하는 자세를 취했다.

피슝!

화살이었다. 장궁에서 쏘아져 나간 화살처럼 거침없이 돌격해 마수들의 몸을 꿰뚫었다. 주름지던 두 눈이 빛을 내며, 지크벨트의 몸은 젊은 시절을 되찾은 것처럼 나아갔다.

세네타의 검과는 달리, 지크벨트는 강(强) 그 자체였다. 날카로운 특대 검이 그저 묵중한 둔기로 여겨질 만큼 파괴적인 소리가 울렸다.

파앙! 파앙!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기가 터져 나갔다. 세월에 몸이 녹슬기 시작하더라도 정신은 용사였던 그 시절, 그 자체를 기억하였고, 날뛰기 시작했다. 재빠르던 마수들마저 그저 한낱 구더기로만 보였다. 발톱 공격을 재빠르게 피해 내며, 그것을 반격하고 베어 넘겼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피의 군무, 말 그대로 살육하는 기계였다. 전장을 누비는 적토마처럼 거침없는 움직임이었다. 심장이 뛰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릴 각오로 동굴을 꿰뚫듯이 달려갔다.

쿵!

지크벨트는 수백 마리가 몰려든 마수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고 뻥 뚫린 앞길을 보며 자신의 대검을 내려놓았다.

“후우······.”

지크벨트는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려 손을 뻗었지만, 자신의 손이 흠뻑 젖은 것을 보고 그만두었다. 다시 그의 대검을 뽑아, 허공을 베어 넘기며 검신에 묻은 피를 일격에 모두 털어 내었다. 다시 깔끔하게 드러난 도신을 어깨에 메고 세네타와 찢어졌던 곳으로 발을 옮겼다.

예상대로 세네타도 모든 싸움을 마친 상태였다.

“다 처리했느냐?”

“네.”

지크벨트는 그녀의 어깨너머를 보았다. 정확히 급소만을 노려서 단숨에 절명시켜 버려 자신이 그려 낸 학살의 현장보다 덜 역겨운 편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었군.”

지크벨트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때, 세네타는 가만히 지크벨트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정말 숨소리라고 여길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세네타, 자신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크벨트는 그녀가 미약하게 중얼거린 것도 놓치지 않았다. 지크벨트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말이냐?”

“아무것도 아니야.”

세네타는 뒤늦게 침묵해 보지만, 이미 다 들은 상태였기에 의미가 없었다. 지크벨트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 번 더 물었다.

“세네타, 그런 마음으로는 어디든 갈 수가 없다. 방금 한 말을 다시 해 보아라.”

세네타는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떼더니 말했다.

“그것뿐······인가······.”

“······.”

들은 게 맞았다. 지크벨트는 어깨에 올려 둔 대검을 그대로 바닥에 찍으며 그 자리에 섰다. 그 말에 대한 답을 제대로 듣지 않은 이상, 더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말해 보아라.”

그의 물음에 세네타는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아버지는······ 내게 잘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 주신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

“정유선이란 사내와 그 아이를 말하느냐?”

“······.”

대답을 침묵으로 대신해 대답했다. 용사는 곤란하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게 신경 쓰이더냐?”

세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벨트는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감추며, 표정을 세네타에게서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다시 분노에 찬 용사의 모습으로 세네타에게 경고했다.

“세네타, 우리의 존재를 기억하여라. 그런 사소한 감정에 흔들리면 후에 있을 일들을 어떻게 할 생각하느냐?”

“······.”

“우리는 성검을 쥐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 누구보다 올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가져야만 한다.”

“······.”

매번 듣던 말이었다. 그녀가 태어나며, 지금까지 있으며 그녀를 향해 강조하던 말이었다.

“세네타, 그러니 모든 사심을 버려라. 지금은 거침없이 베도록 몰두하여라.”

“네, 아버지.”

감정이 사라진 눈. 세네타는 모든 생각을 떨쳐 내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집중하려고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다시 철저하게 숨겼다.

냉철하게 말했지만, 지크벨트는 그녀의 행동이 걱정이었다.

‘정유선······ 그 남자 때문인가?’

자신의 실수였다. 그리고 그 실수에 후회했다. 그 남자에게서 수정구를 돌려받으려고 허락해 준 약간의 시간, 그게 나비 효과처럼 일어나고 말았다.

세네타는 많은 던전을 홀로 격퇴해 내었지만, 지크벨트에게는 아직 제대로인 용사로 보지 못했다. 절반조차 못 미친다고 여겼다. 그런데 거기에 기계로서의 삶을 의심하기 시작했으니, 다시 올바르게 잡으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골치 아픈 노릇이었다.

아르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새로운 희망. 그리고 희생뿐인 길을 걸으라는 그녀의 말······. 지크벨트는 그녀의 말이 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오르넵토스가 새로운 희망임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았다.

-이제 네 계획이 뭐야?

“예정대로라면 양 갈림길로 나뉘어서 각개 격파로 렛놈을 없애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무리이겠군요. 조금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함께 격파하는 것이······.”

“할 수 있어.”

플랜 B로 가려던 도중, 세네타가 지크벨트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지크벨트는 그녀의 행동에 놀라고 말았다. 생전에 고분고분하게 말만 듣던 그녀가 고집을 부렸다. 지크벨트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했다.

“세네타, 네가 흔들리는 모습이 지금 이 내겐 너무나도 큰 걱정이구나.”

“나는 용사의 딸이야.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용사로서 일을 수행할 수 있어.”

다시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으로 말했다. 흔들렸던 순간은 어차피 이 한 번도 아니었고, 그녀는 성실히 자신의 말을 들으며 모든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그녀는 훌륭한 전사였다. 그렇기에 지크벨트는 한순간 흔들렸던 세네타의 모습을 지금은 잠깐 잊기로 했다.

“그래. 계획은 본래대로 가자꾸나.”

-그렇다면 찢어지는 것, 그대로 가는 거겠네.

계획은 본래대로 돌아갔고, 세네타와 지크벨트는 찢어졌다. 세네타는 왼쪽, 그리고 오르넵토스와 지크벨트는 오른쪽을 선택하여 자신의 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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