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35. 렛놈 (1)
어둡고 기다란 통로를 걷는데, 출구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하나? 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때, 대장은 무슨 소리를 듣고 뒤돌아보았다. 주변을 경계하며 가던 대원이 그가 화들짝 놀란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왜 그러세요?”
“내 등에 대고 냄새 맡았냐?”
“네? 아뇨? 제가 왜 그런 짓을 해요?”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풀렸다고 해도 미치지 않고서야 공격대 대장의 등 뒤에서 킁킁거리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잘못 들은 거로 생각하고 그대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곧 뒤에서 바로 화들짝 놀라며 반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내 등 냄새를 맡아?”
“뭐라는 거야?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네 등딱지 냄새를 맡을 이유가 뭐가 있어?”
“엥?”
“뭐야, 내 뒤도 그러네? 따라 하지 마라.”
“무슨 소리입니까? 제가 왜······.”
서로 의심하는 상황이었다. 분명히 들었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런 장난을 한단 말인가!
킁킁-.
등에서 난다는 그 소리는 짐꾼인 막내도 들었다. 짐꾼 사내는 그 자리에서 굳고 말았다.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전투태세로!”
스릉-.
대장의 지시에 따라 검을 뽑았다. 그들이 탐지한 것 중에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생명도 미약하게 숨 쉬는 것만 감지했지, 그들의 범위 내에는 어떤 움직임도, 숨소리도 감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전부 똑같은 것을 경험했다. 코앞까지 와서 등 뒤를 냄새 맡는 소리를 들었다.
-크흐흐흐······.
어딘지 방향이 잡히지 않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흥미로워. 흥미로워! 네놈들 전부에 용사의 냄새가 날 줄은 상상도 못 했구나······.
“뭐, 뭐야?”
“무슨 소리예요, 이거?”
그 목소리는 동굴 전체를 울렸다. 공격대는 그 방향을 찾아보려고 하지만, 소리가 너무나도 퍼져 어디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중에도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용사라기엔 너무나도 약하다. 결단력이 없어. 우왕좌왕, 머리가 방향을 잃으면 휘청거리며 뒤집어지는 조각배들처럼 말이야.
기분 나쁜 목소리가 비웃었다. 선두에 선 대장은 그 목소리를 듣고는 꺼림칙한 도중 뭔가가 떠올랐다. 그리고 경계를 풀었다.
‘만우절이 되어 간다고 아주 제대로 준비해 놨구먼!’
던전 안을 미리 공략해 두고, 그 안에서 몬스터인 척하며 루키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었다. 굳이 만우절이 아니더라도, 가끔 마음에 안 드는 이들이 있으면 엿 먹일 때 쓰기도 했다. 대장은 지금이 그 상황이라고 여겼다. 대충 어울려 주겠다는 생각으로 그 목소리에 응답했다.
“이 망할 악마 놈들 같으니, 그래 어디 한번 덤벼 봐라. 아주 조각을 내줄게, 이것들아! 당장 나와 봐!”
-나를 조각내? 아주 좋은 기세로구나! 그래, 그 정도 각오는 보여야지, 내 뱃속에 들어오지 않겠나? 하하하하하!
기분 나쁜 목소리로 터트린 웃음이 동굴을 울렸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 목소리는 유쾌하다기보다는 기분이 나빠지게 했다. 장난임을 알아도 이상하게 더는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장은 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으려고 감각을 넓혔다. 그러자, 파티 원을 제외하고 사람의 형체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걸어갈 때는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뚜렷한 감각에 라이트를 그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자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등을 보이는 것이 보였다. 인간의 형상에 대장은 그를 향해 걸어갔다.
“인마, 이제 장난 그만 쳐. 목소리가 기분 나쁘니까 제대로······.”
라이트에 비친 그 얼굴. 대장은 어깨를 돌려서 본 모습에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라 할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의 얼굴로 보여야 할 곳에는 복면을 뒤집어쓴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복면이 아닐 수가 있었다. 메기처럼 붙여진 수염, 섬뜩하게 미소 지으며 삐죽한 이빨을 드러내 보이는 정교하게 짜인 물개의 얼굴을 본뜬 복면이라면······.
대장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메두사의 눈을 본 것처럼 굳은 채로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을 비추던 라이트가 그의 손바닥으로 내려졌다. 날카로운 발톱이 플라스틱을 긁으며 그그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얼굴이 가려진 그것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듯한 말을 꺼냈다.
-네 안에 잠자는 마수는 무엇이냐?
그의 날카로운 발톱이 조심스럽게 대장의 가슴을 노크하듯이 건드렸다. 그렇게 간단한 행동에 대장은 자신에게 이변이 일어남을 눈치챘다.
“어, 어라······?”
대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팔이 녹았다. 살만이 녹는 것이 아니었다. 뼈도, 혈관도 모든 것이 고온에 가열된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뭐, 뭐야? 왜 내 몸이 왜 이래? 아아아악!”
뼈가 흐물흐물해지며 두 다리로 지탱하던 다리도 서지 못하게 했다. 그대로 가라앉았다. 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대장뿐만이 아니었다.
“커어어어어! 살려 줘.”
“으아아아아아!”
모든 대원의 형체가 녹아내렸다. 인간의 유연한 가죽이 고온에 가열된 치즈처럼 녹아내렸다. 그중에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이 있었다. 맨 끝에 서 있는 짐꾼, 막내였다.
마, 막내야······.”
“으아······, 으아아······.”
라이트 하나로 밝히는 어두운 공간 속에서 그 비정상적인 광경을 지켜보았다. 1년 동안 지켜보던 가족들이 그대로 녹아내리는 모습에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우, 우웨에에에엑!”
비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위 속에 있는 내용물들을 게워 냈다. 위장을 뒤집어 꺼낼 기세로 격하게 내용물을 토해 냈다. 치즈 덩이들처럼 가라앉아 덩어리진 인간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리고 그것이 기분 나쁜 목소리로 비웃듯이 그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가엽고 불쌍한 영혼이로구나. 그래, 이 렛놈의 뱃속에서 그렇게 절망하고 공포에 사로잡혀라! 미쳐 버려라! 이 광기에 견디지 못하고 잡아먹혀라! 영원한 광기의 밤에 잠들어라! 하하하하하!
흥분하며 소리쳤다. 그러다가 곧 흥미를 잃은 듯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얼굴이 되어서 사내의 머리를 잡아서 들어 올렸다. 짐승의 발톱이 그의 머리를 잡았다.
-뭐,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다면 초대장을 보낼 사람이 없어져서 아쉬워지겠지.
악마는 공포에 질린 사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보게 했다. 세게 쥐지 않았지만, 제대로 날이 선 발톱이었기에 막내의 머리를 그대로 파고들어 버려 피가 흘러내렸다.
끔찍한 물개의 얼굴이 히죽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내 뱃속에서 꺼내 주마. 그러니 전해라.
불쾌하고 찝찝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전언으로는 충분했다. 귀 깊숙이 박힌 귀지처럼 달라붙었다.
-이 세상을 벗어난 겁쟁이만 이 렛놈 님의 뱃속으로 들어오라고 말이다.
***
“붕붕붕, 아주 자근 자동차.”
“꼬마, 자동차가 나간다!”
“우리 꼬마 자동차, 아주 강한 유선 님의 자동차!”
“엘레노어, 그건 가사에 없어.”
“없어?”
“다시, 다시!”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가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에 빠져서 주제곡을 불렀다. 마침 자동차도 탔겠다, 흥겹게 주거니 받거니 한 구절씩 불렀다. 음정 이탈에 제멋대로인 노래였지만 원판이 좋았기 때문에 개성 있는 노래가 되었다.
루데릭이 평소라면 시끄럽다고 눈살을 찌푸리며 언질을 날릴 텐데 의외로 얌전했다. 그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채로 눈살을 찌푸렸다. 평소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쯧.”
“왜 그래?”
“큰일이 벌어졌군.”
루데릭이 신호등이 멈춘 사이에 휴대폰을 보여 주었다. 신문 기사에 이렇게 적혔다.
-D 등급 던전 공략대 궤멸. 유일한 생존자인, 김 모 씨는 정신 착란 증세를 보여······.
“흔하지는 않지만, 꽤 있는 일이잖아!”
헌터 생활이 위험을 무릅쓰는 일인 만큼 사건 사고가 많은 편이었다. 유선은 루데릭이 그렇게 반응하는 걸 이해했다.
“이 기사를 읽어 보아라.”
루데릭이 가리키는 것을 한 번 소리 내어 읽어 보았다.
“사람이 녹아내렸다.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것은 다시 재조립되어 갔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사람이 아닌 마수를······.”
생존자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비정상적인 풍경을 보고 그대로 묘사한 소리인데, 그것에 관해서 정신 착란이 일어나 헛소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루데릭은 그 말을 결코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것을 알고, 그런 풍경을 만들 사람이 누구인지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생존자가 묘사한 그 모습과 행동을 할 만한 녀석은 그의 머릿속에 한 명뿐이었다.
“렛놈이라는 녀석이다.”
“렛놈?”
“마물의 악마다. 이성보다는 본성을 끌어내 타락으로 몰고 가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지. 그리고 인간을 마물로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녀석에겐 아마 조립 인형처럼 느껴지는 게 인간들일 것이다. 아니 점토 인형이 가깝겠군.”
점토 인형······.
유선은 사람이 녹아서 점토처럼 빚어진다는 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악마라면 이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못 해도 코드 네임: 발록만 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던전을 관리하는 입장이라면, 지금 이건 코드 헌터가 울릴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드 헌터는 울리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잠잠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쳤고, 사거리에 걸린 대형 전광판도 잠잠하게 빛을 내었다.
발록 때와는 다르게 뭔가가 비정상적으로 흘러갔다. 유선은 마지막 줄에 있는 인터뷰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그리고 렛놈이 전하는 말이 뭔지를 보았다.
-이 세상을 벗어난 겁쟁이만 이 *******님의 뱃속으로 들어오라.
그 정체의 이름은 기재되지 않았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듯이 취소 선이 그어진 상태, 그대로 올려졌다. 세상을 벗어난 겁쟁이는 유선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겁쟁이가 아니더라도 그럴 만한 유명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 한 명뿐이었다.
“지금 찾는 사람 묘사가······ 내가 아는 그 사람이지?”
“그렇다. 그 녀석은 용사를 찾는 중이다.”
악마, 렛놈은 천적인 용사, 지크벨트를 찾았다. 유선은 파란불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보통 악마들은 용사들을 무서워하지 않아?”
“그 말은 주인이 내가 용사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한다고 받아들여도 되나?”
“그렇게 말하지 말고.”
유선은 속마음을 들키자 미소와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무마했다. 무섭게 인상 쓰던 루데릭도 걸고넘어지지 않고 넘어가 대답했다.
“그야, 용사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이다. 자칭이지만, 그 녀석을 향한 마음만큼은 늘 똑같으니 팬이나 다름없지.”
“자신을 죽이려 드는 놈의 열렬한 팬이라.”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
“용사는 렛놈이 가장 바라는 이상 중 하나였다. 이성을 유지한 채로 끓어오르는 증오가 맹목적으로 많은 악마를 향하니, 렛놈은 그 분노를 마음에 들어 하고 좋아했다. 그래서 용사가 가는 마을에는 거의 다 렛놈이 수를 부려서 마물들의 마을로 만들어 절망에 빠트려 버리기를 원했다.”
“흐음······.”
악마다운 악취미였다.
그래서 성공은 못 했고?”
“번번이 실패했지. 옆에 있는 계집의 힘이 매우 컸다고 분노하더군. 만약 용사 한 명이었다면, 진작 타락했을 거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아르젤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분명히 절망하려는 용사를 어떻게든 다시 끌어올려 주는 것이 가능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 아르젤이 없는 용사는 렛놈을 상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홀로 서야 하는 용사는 대체 어떻게 싸워서 이겨 낼지, 유선은 그게 마음에 걸렸다.
***
유선은 회사로 들어왔다. 예상대로 휴게실에는 지크벨트와 세네타가 서 있었다. 세네타는 지난번에 보았던 가죽옷을 입었고, 이번에는 지크벨트도 평상복과 다르게 좀 더 거추장스러운 복장이었다.
딱 봐도 알았다. 그것은 지크벨트가 싸움에 대비한 복장이었다. 하지만 유선은 곧이곧대로 그에게 묻지 않았다.
“수정구를 받으러 오셨습니까?”
“그랬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더욱 중요한 일이 일어나서 그런 일은 없겠군요.”
역시나. 용사를 향한 초대장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유선은 그의 반대편에 앉았다.
“역시 기사를 보셨군요.”
“당연히 보지 않겠습니까? 저를 향한 초대장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유선은 어째서 싸움하러 가지 않고 이곳으로 왔는지 궁금했다. 그러자 지크벨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오르넵토스 님.”
지크벨트는 정중하게 오르넵토스 앞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부디 제게 힘을 보태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