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34. 기계는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4)
아이들이 둘러싸서 즉석 콜로세움을 만든 그 안에는 개 두 마리가 있었다. 소형견과 중형견, 그 두 마리가 서로 보며 으르렁거렸다.
아니, 그래도 소형견은 겁먹은 기색이 컸다. 중형견의 날렵한 외모와 으르렁거림이 절대로 좋지 않았다.
컹컹!
거기다가 견종 자체도 사냥용이었던 개라 집에서 키우기 쉽도록 작게 개량된 강아지를 이기는 것은 당연히 누워서 떡 먹는 수준이었다.
깨갱!
“복실아!”
목덜미를 물고 넘어지자, 소형견은 꼬리를 내리며 꽁지 빠지게 주인을 향해 도망쳤다. 중형견의 주인인 꼬마가 키득키득 웃으면서 자신의 개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킥! 내 포치가 얼마나 강한지 알겠지?”
“별로 안 궁금하다고 했잖아! 왜 남의 개랑 싸움을 붙이고 그래!”
소형견의 주인인 꼬마가 울먹거렸다. 아이들은 그 사소한 것들을 잡아 놀리기 시작했다.
“야, 쟤 울려고 그래!”
“사내새끼가 돼서 울려고 하냐?”
“고추 떼!”
킥킥 웃으면서 소형견 주인을 비웃었다. 꼬마는 자신을 놀리는 거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겁에 질려서 낑낑거리는 자신의 강아지를 보면 그들이 밉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무튼 우리 포치가 제일 강하다고! 알겠지, 인마!”
“알았어. 네 포치가 제일 강해! 강하다고! 이잉······.”
소형견 주인은 울먹거리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꼬마들은 그가 가든 말든 신경 쓰지 않으며, 포치 주변을 둘러쌌다.
“정말 멋있다. 나도 이런 개 키우면 좋을 텐데······.”
“놀라지 마. 우리 포치는 유명한 사냥개 핏줄을 타고난 족보 있는 개라고.”
“우아······, 대단해?”
“족보가 있는데 대단하겠지!”
족보의 개념이 뭔지 몰랐지만, 어찌 됐든 강하다고 하니 꼬마들은 그렇게 믿었다. 포치의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그 어떤 개가 와도 우리 포치를 이길 놈은 절대로 없어!”
중형견의 주인인 꼬마가 제대로 우쭐해진 사이에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아냐!”
엘레노어였다.
“우리 멍멍이가 제일 강해!”
그리고 자신의 멍멍이를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넌 뭐······ 헉!”
“무, 뭐야!”
엘레노어가 내민 멍멍이를 보고는 아이들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름만 들어서는 소형견이겠지만, 그들에게 보인 것은 ‘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복슬복슬한 털 대신에 거친 피부와 등딱지처럼 푸른색 크리스털 같은 것을 달고 다녔다. 아무리 봐도 강아지가 아니었다.
“뭐야? 이건 멍멍이가 아니라 멍청하게 커다란 도마뱀이잖아.”
“멍멍이야! 그리고 우리 멍멍이가 젤루 강해! 이것 봐!”
엘레노어는 멍멍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명령하기 시작했다.
“앉아!”
엘레노어의 지시에 맞춰 엉덩이를 낮춰 앉는 시늉을 하고.
“굴러!”
넓적한 몸으로 낑낑거리며 애써 몸을 굴렸다.
“펑!”
그리고 큐 사인에 맞춘 마무리로 죽은 척!
완벽하게 조련된 모습을 보여 주자, 저마다 감탄사를 터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엘레노어의 능력에 감탄했다.
“우아, 대단하다!”
“어떻게 한 거야? 나도 알려 주라!”
완벽하게 조련되기도 했지만, 꼬마들에게 알려진 몬스터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 크리스털 리저드는 거의 처음 본 녀석이었다. 엘레노어의 멍멍이는 특이한 것까지 합쳐져서 관심을 안 받으려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얘는 뭘 먹어?”
“머리 쓰다듬어 봐도 돼?”
“이야, 꼬리도 흔든다!”
그 분위기에 낄 수 없는 것은 단 한 명이었다. 포치의 주인이었다! 포치라는 개의 주인인 꼬마는 자신에게 향하던 관심이 밀림을 느끼곤, 엘레노어의 멍멍이에게 질투심을 느꼈다.
‘별로 안 강해 보이는데.’
등딱지가 단단해 보였지만, 전체적인 온순한 얼굴 형태가 전혀 강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멍멍이 자체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다른 강아지들과 다르게 얌전하게 굴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 포치보다 체구가 작았다. 그렇기에 꼬마는 그 싸움이 자신에게 유리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야, 백발 꼬맹이!”
“백발 꼬맹이?”
엘레노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너 말이야, 너!”
“나? 나는 엘레노어야!”
엘레노어가 버럭 화를 내었다. 귀여운 꼬마 애가 화를 내 봐야 얼마나 무섭겠는가, 꼬마는 엘레노어에게 도발했다.
“네 그 똥개가 그렇게 강해?”
“똥개 아냐! 멍멍이라고!”
“멍멍이든 뭐든 그렇게 싸움을 잘해?”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 멍멍이는 이마아아아안큼 강하다고!”
엘레노어가 짧은 팔로 제 딴에는 엄청나게 큰 원을 그리며 멍멍이의 능력을 과시했다. 꼬마는 미소 지으며 포치를 잡은 목줄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러면 포치랑 싸움해 볼래?”
엘레노어는 자신이 안은 멍멍이를 내려다보았다. 온순하게 생겨서 싸움도 못 할 것처럼 생긴 얼굴이 엘레노어를 올려다보았다.
“좋아!”
엘레노어가 반짝반짝해진 눈으로 그 대결을 수락했다. 당사자인 멍멍이는 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로 두리번두리번했다.
-뭐, 뭐예요? 무슨 일이 벌어져요?
왜인지 모르게 앞세워진 자신의 몸. 뒤에 선 엘레노어, 군중처럼 원형을 이루는 개와 그 꼬마 주인들. 맞은편에는 자신의 기준으로 커다란 개와 사납게 생긴 남자애가 있었다.
멍멍이는 몇 달을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의 가운데에서 치여 살아와 눈치가 빨랐다. 이것은 자신이 내몰린 상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포치! 물어!”
월! 월!
깨닫는다고 해서 좋은 것은 없었다. 포치가 매섭게 멍멍이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고, 멍멍이는 원근감에 점점 가까워지는 포치를 보았다. 그 위협적인 돌격에 엘레노어도 똑같이 손가락으로 포치를 가리키며 멍멍이에게 명령했다.
“멍멍이도 가서 물어!”
-무, 물어야 해요?
멍멍이가 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는 땅 파기와 몸통 박치기뿐이었다. 그런 멍멍이가 넓적한 주둥이로 다가오는 중형견을 물기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점점 가까워졌다. 녀석의 위협적인 주둥이가 멍멍이, 자신을 덮쳐 오는 것이 보였다.
-무, 무섭지 않아!
하지만 멍멍이는 그렇다고 해서 뒤로 빼지 않았다. 제아무리 중형견이 자신보다 크더라도,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익숙해진 공포에 그 위협적인 소리에도 본능에 충실해 땅 파고 들어가는 짓을 하지 않고 굳건하게 서 있었다.
월월월!
폭주하는 야생마처럼 달려오는 녀석을 향해 힘껏 주둥이를 벌렸다. 그리고 멍멍이가 포효성을 외쳤다.
“먀아아아!”
크리스털 리저드의 특성상 위협성을 내지르는 일은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에게 지속해서 다뤄진 결과로 담력이 커졌고, 자신보다 조금 강한 수준인 동물들에게는 충분히 싸움할 수가 있었다.
깨갱!
포치는 코앞까지 다가와서 물려고 달려들려다가 위협성을 듣고는 몸을 반대쪽으로 틀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포치! 어디 가!”
꼬마는 목줄을 놓았던 탓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는 포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 탓에 자연스럽게 꼬마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고, 상대가 도주함으로써 승리를 확신하게 했다.
“이겨따!”
엘레노어가 양팔을 위로 뻗어 들어 올리며, 승리를 자축했다. 가만히 싸움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엘레노어의 승리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 대단하다······.”
“와, 대박. 나도 이런 거 키울래.”
그리고 멍멍이는 그 귀여우면서 동시에 위협적이었던 소리를 내 아이들의 관심 지분을 완전히 잡아먹었다.
유선은 그 승리를 멀리서 관전하다 피식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참 나······.”
저런 승리가 뭐가 좋다고, 기고만장한 얼굴로 대우를 받았다. 지크벨트가 그 광경을 같이 지켜보다 말했다.
“순수하군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며 눈을 엘레노어에게서 떼지 못했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아버지.”
그때, 누군가가 거의 기습적으로 다가와 말을 건넸다. 기척 없이 다가온 목소리에 유선은 깜짝 놀라 뒤를 확인해 보았다.
세네타였다. 평소의 옷과 다르게 그녀는 가죽옷을 입었다. 활동성을 고려한 장비가 분명히 전투복임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어디선가 전투를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왔다.
“돌아왔느냐?”
뒤에 선 세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벨트는 돌아보지 않았다. 세네타는 그런 지크벨트를 보았다.
“어떻더냐?”
“아버지 말이 맞아. 사람들이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맞는 것 같았어. 그래서 대신 처리했어.”
방금 무언가를 잡고 왔다.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은 최소 A급인 몬스터라는 뜻이었다. A 등급 중에서도 비행체라든가, 자기방어로 맹독을 품은 몬스터들은 처리하기 까다로워, 단순한 헌터들의 방식으로 못 잡는 것들이었다.
세네타는 그런 것 중에서 위험하다는 것들을 상대하고 온 참이었다.
“피 냄새가 심하다, 가서 씻고 휴식하여라.”
“······.”
세네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옮겼다. 엘레노어가 아이들 사이에서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고 와 유선에게 외쳤다.
“유선 님! 이겨써! 나쁜 멍멍이 혼내 주고 와써!”
“그래, 장하다, 우리 엘레노어.”
-주인님, 주인님! 나도 나도!
“그래, 멍멍이도 잘했어.”
두 명을 그대로 칭찬해 주었다. 승리를 만끽한 엘레노어는 기고만장해진 얼굴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를 끌어가던 중.
“세네타!”
그때, 지크벨트가 뒤돌아보지도 않고 자신의 딸 이름을 불렀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세네타는 발걸음을 멈춘 채로 엘레노어와 유선을 보았다. 그리고 얼른 눈을 돌리며, 지크벨트에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
“돌아가라 했다.”
“······응.”
발을 멈췄던 세네타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이 미묘하게 무거워졌다. 그런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크벨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유선과 엘레노어, 그리고 지크벨트와 세네타. 자신의 처지와는 너무나도 대조되는 풍경. 그녀는 유선과 엘레노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선은 남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되었다.
***
서울 동부, D 등급 던전 앞. 초보 공격대 하나가 최종 점검을 마친 상태로 입장만 기다렸다.
“오늘도 열일이나 하자. 3년째 똑같은 말 했으니까, 더 긴말할 것 없이, 나만 잘 따라와라, 알겠냐?”
“네~.”
대원들은 긴장감이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였다. 그럴 만도 한 것이 D 등급 던전을 돈 것이 벌써 3년 가까이 되었다. 1년 정도는 바짝 했고, 2년은 능숙하게 처리했으며, 3년이 된 지금은 이제 누워서 떡 먹는 수준이었다.
초심자로서 느꼈던 던전의 스릴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몇 명씩 생겨났다.
“언제까지 D 등급만 도는지 원······. 손맛이 영 없는데 어쩌나?”
“뭐라는 거야? 네 등급에 맞춰서 가잖아, 멍청아~.”
“이게 사람을 무시하네. 인마, 내가 없으면 너희는 지금 숨도 못 쉬었어.”
“어련하시겠어요.”
“네 다음 D~.”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내를 놀려 대었다. 매번 등급을 높이지 못해 한이 맺힌 사내는 그분을 엉뚱한 곳으로 돌렸다.
“야, 막내! 짐 제대로 가져와라!”
“넵!”
“우리 막내가 화풀이도 받아 주고 고생이 참 많아.”
막내라고 불린 사내는 빠릿빠릿하게 선배들이 몰아 놓은 짐을 자신의 어깨에 메었다. 입사 1년도 안 된 신입 헌터였기에, 상당히 많은 잡일을 그가 맡았다. 처음에는 견딜 수 없게 힘들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버텼다.
‘빨리 내 밑으로 들어와야 할 텐데······.’
사내는 막내의 설움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지막으로 사내가 안으로 들어갔다. 공격대가 던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본 것은 어둠이었다. 원래 이렇게 어두운 곳인가 싶었지만, 공격대 대장도 난감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위치상으로 우리가 산 던전은 여기가 맞는데······.”
대장을 믿고 따라오는 대원들도 정보에 없는 환경에 난감하다는 듯 저마다 말을 던졌다.
“되게 어두운데요?”
“그러게? 동굴 안이라는 것도 못 들었는데, 거기다가 어둡기까지 하니까······.”
“우리 잘못 온 거 아니죠?”
대장은 정보와 다르게 왜곡된 장소에 온 것을 생각했다. 정보와는 어느 정도 다르지만, 그렇다고 지금 준비한 것들을 돌려보내고 싶진 않았다.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 본다. 모두 라이트 켜.”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자고 대장은 판단을 내렸다. 만약 등급이 높은 몬스터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빼도 되었기 때문에, 너무 조급하게 굴지 않았다.
‘등급이 높으면 뭐 빼면 되고.’
‘싸워서 우리를 증명하는 거면 그것도 좋고.’
다른 대원들도 거의 모두가 그런 생각이었다. 등급 높은 던전에서 더 많은 돈을 벌 생각을 하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은 D 등급만 돌던 이들의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이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