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34. 기계는 동정을 바라지 않는다 (1)
세네타를 대접하겠다고 데려간 곳은 분식점이었다. 어느 집이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기에, 유선은 고급스러운 곳에 데려가고 싶은 생각에 라면집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엘레노어는 늘 먹던 그것이 먹고 싶은 모양인지 유선에게 졸라 댄 탓에 어쩔 수 없이 분식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네타는 엘레노어의 말에 관심을 뒀던 만큼, 분식집에 있는 라면이 궁금한 것 같았다.
“이런 곳에서 먹어도 괜찮겠어?”
유선은 세네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동네 분식점이었기에 외관과 내관이 허름했다. 세네타는 무표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신경 쓰지 않는다기에 유선은 더는 묻지 않았다. 분식점 이모가 라면을 끓여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게 라면······.”
세네타는 그릇에 나온 라면을 들여다보면서 중얼거렸다. 세네타의 행동으로 미뤄 보았을 때 처음 보는 음식인 것 같았다. 유선은 그녀에게 물었다.
“처음 봐?”
하지만 세네타는 고개를 저었다.
“편의점 같은 데서 보기는 했어. 단지 먹어 보는 건 처음이야.”
국적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많이 접해 보긴 했지만, 세네타가 이렇게 눈앞에서 먹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유선 님, 유선 님.”
엘레노어는 세네타에게 신경 쓰던 유선의 이목을 이끌었다.
“먹어도 돼?”
“응, 먼저 먹어.”
“잘 먹겠슴니다!”
엘레노어는 참지 못하고 포크질을 시작했다. 입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세네타는 젓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후루루루룹.
면발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유선은 조용히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세네타가 입안에서 면발을 몇 번 씹어 넘겼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평을 유선에게 말했다.
“다른 음식들과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그래?”
그녀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원래 그러는 게 당연했다. 라면에 대해서 격했던 것은 여태 엘레노어뿐이었다. 세네타는 다시 엘레노어를 보았다. 그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 없다는 듯이 라면에 몰두해 입안에 흡입했다.
“이 애는 이런 걸 좋아해?”
“좋아하는 수준이 아니지. 1년 동안 꾸준히 놓치지 않고 먹는 음식이야.”
“1년 동안이라. 그만큼 못 먹을 것 같은 맛인데.”
엘레노어를 가만히 보던 세네타는 다시 먹기 시작했다. 뭔가 모방이라도 하듯 엘레노어를 의식하며 먹었다. 그녀의 행동이 무슨 의미를 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유선은 그녀의 행동을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삼각김밥이나, 그런 것들보단 확실히 나은 것 같네.”
“삼각김밥?”
그녀의 발언에 유선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물어보았다. 세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삼각김밥.”
“그런 걸 먹고 다녀?”
세네타는 신출귀몰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공항에서 누가 왔다, 갔다 하는 정도밖에 정보가 없었다. 가끔 각 나라 헌터 협회 쪽에서 식사를 제안해서 먹는 장면이 보이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불필요한 접촉은 하지 않고, 눈에 띄지도 않았다.
세네타는 그 사실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식사는 주로 편의점 같은 곳에 가서 음식을 사서 해결했으니까. 빵이나 삼각김밥 같은 것들.”
“거의 끼니마다?”
“응.”
유선은 순간 자신에게 보였던 통장 잔액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편의점 음식으로 때울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만한 돈을 가졌는데 왜 그렇게 해결해?”
한 끼 정도는 고급스럽게 먹을 것이다. 유선이 물어보자, 세네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불필요한 접촉은 하면 안 되거든.”
“접촉한다면 사람과 부딪치거나 만나거나······ 그런 것들을 말해?”
세네타는 라면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는 아버지의 허락 혹은 명령으로만 가능해. 아마 요청해서 허락해준 것은 이게 처음이야. 보통은 아버지 쪽에서 명령하거든.”
유선은 그녀가 평소 행동할 때 어떻게 하는지 듣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면 숙소는? 거기는 어떻게 해결했어?”
호텔에서 잔다면 분명히 사람과 접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숙소에 관련해서도 예외는 없었다.
“최근에는 무인 시스템이 늘어났으니까, 무인 호텔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잠을 잤어. 정 안 된다 싶으면 산에서 자거나 아니면 하수도 같은 곳에서도 잤고.”
“······.”
그만한 돈을 가졌지만, 한 푼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유선은 안쓰러운 동시에, 뭔가가 답답함을 느꼈다. 그 느낌에 새삼 루데릭의 기분이 뭔지 알았다.
‘루데릭이 나를 볼 때, 이런 심정인가?’
돈이 있지만, 제대로 쓰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많았다. 썩어서 넘쳐야지 아까울 일이 있겠느냐는 말을 해 가면서, 유선의 자산을 관리했다.
자린고비처럼 보이게 하는 말이지만, 소비에 관해선 자신의 사역수에겐 관대한 편이었다. 엘레노어의 옷이나 음식, 그리고 오르넵토스가 바라는 명주, 루데릭이 필요한 장비 등에는 아끼지 않았다. 단지 유선 자신에게는 너무 검소하게 구는 게 문제였다. 루데릭은 그의 습관에 화가 났다.
하지만 세네타의 소비 습관은 단순한 자린고비 따위가 아니었다. 발 뻗고 누울 곳도 없고, 밥도 싸구려 즉석 음식으로 때우는 모습이 돈 없고, 시간에 쫓기면서 하루하루 사는 모습이었다. 소비하는 데 자의가 없었다. 유선은 그녀의 의사가 궁금해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어?”
“하지 않아. 불필요한 행동이니까.”
“그것도 아버지의 명령?”
“응.”
“······여태 네가 해 온 모든 일도 다 아버지의 명령이야?”
“응.”
반쯤 비꼬는 듯한 말에도 세네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이 보였다. 유선은 조금 감정을 담아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아버지의 말이 중요해?”
그녀는 그것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해. 나를 길러 주시고, 가르쳐 주셨으니까.”
그런 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네타가 느끼는 것이 의심 없는 진실한 감정이었기에 유선은 무슨 말을 하지 못했다. 진심이 어린 존경, 아버지를 향한 동경, 그 속에서 묘하게 묻어 나오는 슬픔.
“괜한 질문을 했네. 밥 먹는 데 방해해서 미안해.”
“별로 방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세네타는 별말 하지 않고 라면을 먹었다. 유선은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듯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딸의 취급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딸에게 명령하고 행동하게 했다. 거기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딸이 사람들과 접촉하게 하지 않고, 밥도 눈에 띄지 않게 즉석식품으로만 해결하게 했다. 은둔형 외톨이들이나 할 법한 행동을 딸에게 강요했다.
그래서 소비에 대한 감각도 없고, 감정 표현도 서툴고, 커뮤니케이션에서 장애가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그 많은 것을 지적하기엔 그녀의 위치가 너무나도 높았고, 막강한 힘을 가졌다. 유일한 방법인 혈육조차, 그걸 보충해 주기는커녕 아버지라는 사람은 명령만 하고, 세네타를 사지로 몰고, 끊임없이 많은 재앙과 싸우게 했다.
고독한 늑대, 세네타 유.
유선은 그 기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와 점심을 나누는 사이, 그런 생각은 이제 더는 들지 않았다.
‘고독한 늑대라기보다는······.’
기계. 고독함조차 느끼지 않고 그저 명령만 수행하는 기계일 뿐이었다.
유선은 싸구려 무협지에서나 볼 법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게 단순히 사제(師弟) 관계가 아니라 부녀 관계라는 게 더욱 우스운 일이었다. 이것이 단순히 그녀의 성격이 아님을 알고는, 유선은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
해가 지고, 하늘이 붉어져 어둠을 내리려 했다. 길을 잘못 들거나,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그런 불상사는 없을 것 같았고, 거리에 대한 문제가 큰 모양이었다.
유선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세네타를 보며 물었다.
“세네타, 네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어?”
“대충해서 12시간 걸렸어.”
“흠······.”
유선은 시간을 확인했다. 노인에게 전화했을 때의 시각을 생각해 보면 7시간 정도 지난 상태였다. 만약 같은 곳에서 출발했다면, 5시간이나 남았다. 절차라도 밟는 모양인지, 어떤 식으로 오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퇴근 전에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숙소는?”
“적당한 장소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적당한 장소는 이야기했던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무인 모텔, 산, 아니면 하수구. 어느 쪽이든 유선에게 유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때, 기율이 기다렸다는 듯이 끼어들어 말했다.
“우리 회사에서 제공하는 최고급 호텔, 그중에 VVIP에게만 가능한 특실을 준비해 놨습니다. 부디 이곳에서 묵어 주시겠습니까?”
기율은 서슴지 않고 자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세네타에게 부탁했다. 유명한 호텔에 VVIP 자리니, 보통은 눈이 뒤집힐 제안이었지만, 세네타는 무덤덤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가 허락해 주신다면 상관없겠지만, 사람들 눈에 띄어선 안 되서 안 될 거야.”
“비밀은 보장해 드립니다. 귀인을 모신다는 게 우리 업에선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실 겁니다. 그러니 한번 생각해 봐 주시는 게······.”
기율은 질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끌어들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세네타는 그곳에 묵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유선이 직접 나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기율의 말을 따라서 호텔에서 묵어.”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내게 부탁한다고 하셨으니까, 아버지의 명령에 따르는 거와 같아. 내 호의를 거절해 명령을 어길 생각이라면 그렇게 해도 돼.”
“······.”
이야기가 그렇게 이어지니, 세네타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기율에게 말했다.
“철저하게 아무도 모르게 해 줘.”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기율은 집사가 된 것처럼 꼬리를 살랑살랑하며 예의를 취했다. 기율은 한 건을 해냈다는 듯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둘만 남은 장소에서 기율이 슬쩍 귓가에 대고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소, 형님.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소.”
“아주 머리도 박겠던데, 안 나서겠어?”
“만약 허락 안 해 주었으면 그랬을지도 모르오.”
천하의 차기율이 무릎을 꿇는다는 말에 유선은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하냐?”
기율은 눈에 불을 켠 것처럼 유선의 물음에 대답했다.
“당연하지! 나도 능력이 있다! 아버지, 제가 세계에서 가장 유능한 헌터를 상대로 영업했습니다! 하고 자랑하려는 거 아니겠소?”
“이야, 너처럼 뻔뻔한 새끼는 처음 봤다. 그러니까 사장이나 하겠지마는······.”
거의 양념은 유선이 다 친 상태였는데, 그 공은 기율이 모조리 빼앗아 가려는 심보였다. 하지만 실질 권력자인 기율의 이미지를 강화해 주려면 그의 행동을 어쩔 수 없이 눈감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최대한 요구에 맞춰서 대접해 드려.”
“걱정하지 마시오. 이런 것 하니만큼은 확실히 할 수 있으니깐!”
자신만 맡겨 달라는 듯이 가슴을 치지만 그것은 여전히 불안함을 유발하는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게 세네타는 기율의 손에 인도되어 큐앤 호텔에 맡겨졌다.
***
“뭐야, 용사가 이 세상에 있었어?”
퐁!
이빨로 능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따는 오르넵토스. 엘리멘탈 팀에서 한창 사냥하는 데다, 사무실도 달라서 사정을 몰라 오늘 있었던 일은 처음 들었다. 집에서 그 이야기를 꺼낸 유선은 오르넵토스를 보며 물었다.
“호오, 용사라······. 예전에는 참 어린애 같았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
“실물로 본 적이 있어?”
“당연하지. 용사가 마왕 토벌 출정식을 할 때, 모든 신과 왕들이 반겨서 그 여정에 축복을 내려 주는데, 나도 그 자리에 있었지. 에헴.”
와인을 마시던 오르넵토스가 뭔가 느낌이 온 모양인지, 일어나 각을 잡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용사여, 그대의 길은 가시밭길일 겁니다. 하지만 그 가시밭길을 걷는 당신에겐 헛됨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의심하지 말고 나아가십시오. 쪽.”
“······.”
마지막으로 이마에 키스를 장식했다. 그녀의 행동에 유선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한순간, 오르넵토스가 평소에 아는 그 모습의 오르넵토스가 맞는지 의심케 했다. 철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한순간에 위엄이 넘치는 여왕의 모습을 보이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바보같이 헛됨뿐이었지만.”
오르넵토스는 그 분위기를 깨며 와인을 들이켰다. 등에서 보이는 후광이 사라지고 다시 알코올 중독자가 튀어나왔다. 마카롱을 입 안에 집어넣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루데릭이 옆에서 말했다.
“이런 술주정뱅이가 축복이나 내리니, 세상이 망한 거다.”
“아니거든? 정령들은 아직 살아남았다고. 하여간 멍청한 얼간이들이 문제였어. 인간 탓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망하게 하는 데 일조해 준 게 인간들 때문이었다고.”
“얼간이가 머야?”
“아냐, 아냐. 우리 엘레노어는 신경 쓰지 마.”
“아야!”
유선은 거친 말을 내뱉는 오르넵토스의 이마에 딱밤을 한 대 때렸다. 유선의 딱밤을 맞은 오르넵토스는 투덜거리며 자신의 이마를 감쌌다. 루데릭은 마카롱을 입안에 집어넣고 휴대폰을 잡은 채로 유선에게 물었다.
“그래서 주인은 그 수정구를 용사에게 넘겨줄 생각이냐?”
루데릭은 유선이 가진 수정구를 보며 물었다.
“원래 주인이 사라졌으니까, 이제 내 물건이나 다름없지.”
제아무리 아르젤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도 선뜻 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거로 새로운 능력을 얻을 여지가 많은데, 그걸 포기하라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다.
유선은 어디까지나 용사와 이야기해 보고 싶은 것이 많았다. 어째서 그 세계에 있지 않고, 이 세계에 있는지, 오늘 있었던 일로 딸인 세네타를 어째서 기계를 다루듯이 하는지······.
“어째서 용사는 세네타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랄까?”
용사 자신이 늙어 힘이 없어졌더라도, 세네타의 실력만 믿고 그들이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내면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것은 분명했다. 경영만 확실하게 한다면, 그들은 국경이 필요 없는 제국을 건설하는 것도 일이 아닐 것이다.
“어리석은 질문이다, 주인.”
그의 질문에 루데릭이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그게 바로 용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