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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독한 늑대 (3) (7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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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독한 늑대 (3)

-당신이 저를 직접 보자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대담하시군요.

노인은 세네타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보인 반응을 알았다. 보통은 세네타에게 기가 눌려 제대로 말도 못 붙이고 어버버거리며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런 사례들을 보면 유선의 경우는 대단했다.

“아무래도 이유도 없이 남에게 넘겨주기는 찝찝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노인은 이해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르젤이 당신에게 순순히 그 스태프를 넘겨준 것이 이유가 있었군요. 역시 아르젤입니다.

주인을 마치 선택했다는 듯한 말이었다. 유선은 그녀가 그런 의도로 정말 자신을 넘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유선은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아무튼 수정구를 가져가실 거면 직접 오셔야 할 겁니다. 딸을 보내셔서 저를 설득시킬 게 아니라, 직접 모습을 보이시고, 직접 이야기 나누죠.”

-흐음······, 이런 늙은이에게 오라 가라 하니 상당히 고난이군요.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노인의 말투가 거절하겠다는 듯이 보이진 않았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그의 말에 응수했다.

“그렇게 몸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귀인을 이런 누추한 장소까지 오게 할 수는 없지요. 아쉬운 인간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겠······.”

유선이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 하던 중, 노인이 말을 끊고 유선에게 물어왔다.

-그럼 그때까지 제 딸을 보살펴 주시겠습니까?

“따님을······ 말입니까?”

유선은 노인의 요청에 힐끗 세네타를 보았다. 지금 이 이야기도 모두 들었을 것이다. 그게 꺼림칙하다면 반응을 보였겠지만, 세네타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거기다가 세네타가 아버지의 말이라면 뭐든지 듣겠다고 했기에, 분명히 이런 명령에도 복종할 것이기에 부담은 없어 보였다.

유선은 노인의 말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님을 볼모로 삼아 두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지요.

긴장감이 풀린 상황에서 농담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유선은 통화가 끊긴 휴대폰을 세네타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세네타는 심각해진 얼굴로 유선에게 물었다.

“나를 볼모로 삼는다는 건, 아버지를 협박하겠다는 의미야?”

“아냐, 이런 건 일종의 농담 같은 거야. 그렇게 심각한 게 아니야.”

“심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말을 농담으로 한다고? 이해 못 하겠는데?”

“······.”

엘레노어를 가르칠 때보다 더 답답한 여자였다. 유선은 완전히 모르는 사람보다 어중간하게 아는 사람이 제일 답답하다는 말이 뭔지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회사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걸어 들어왔다. 루데릭이었다. 그가 상당히 화난 표정으로 기율에게 말했다.

“차기율 사장, 내가 말하는 하청 업체들은 모조리 자르는 게 좋을 거야. 죄다 썩어 빠져서는 일도 안 하고, 삽질만 처하니 열불이 제대로 터지는군.”

기율은 가만히 세네타와 유선을 지켜보면서 팝콘을 먹다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그에게 대꾸했다.

“그게 우리 회사 내부에 관계된 사람도 있어서 함부로 못 건드릴 텐데. 그게 제가 과연 가능할지······.”

“지금 못 하겠다는고? 내가 이러라고 준 권력들일 텐데? 뭣하면 전부 다시······.”

“단물만 빨아먹으려고 애쓰는 놈들, 당장 다 잘라 버리겠습니다!”

기율은 루데릭의 협박을 듣고는 재빠르게 달려갔다. 분이 안 풀리는지, 아직도 화가 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루데릭은 유선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뒤늦게 손님이 있는 것을 보았다.

“윽.”

루데릭은 세네타를 보자마자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의 오르넵토스와 처음 대면한 것처럼 파격적인 분위기였다.

“이 여자는······.”

루데릭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경계심이 상당했다. 언제든지 마법을 뿜어낼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경계와 다르게 세네타는 루데릭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게 네가 테이밍한 그 발록?”

“어, 루데릭이라고 해.”

“주, 주인······.”

유선이 말해선 안 될 것을 말했다는 듯이 반응이 나왔다.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하지만, 유선은 루데릭의 머릿속이 혼잡함을 알았다.

“루데릭······.”

“······.”

그녀가 루데릭의 이름을 중얼거리자, 루데릭의 긴장감은 한층 더 고조되었다. 세네타는 루데릭을 보다가 다시 유선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좋은 이름이네. 네가 지어 주었어?”

“응, 그렇지 뭐······.”

“······.”

루데릭은 그녀의 정체를 짐작했지만, 세네타가 그를 모른다는 듯이 말하자, 루데릭은 경계를 풀었다. 루데릭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신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돌아가 세네타의 시야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유선의 머리에 커넥트가 들어오는 걸 느꼈다.

-저 여자, 특징으로 봤을 때는 세네타 유 같은데, 본인 맞나?

상당히 당황한 목소리로 유선에게 연락했다. 유선은 그 질문에 대답했다.

‘응, 그런데?’

-역시 텔레비전이나 신문, 사진 같은 건 의미가 없군. 실물로 봐서야 세네타 유가 용사의 피가 흐르는 걸 알 줄이야······.

전화하고 나서야 겨우 알게 된 유선과 달리, 루데릭은 세네타가 용사의 혈육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았다.

‘용사가 맞는 것 같아?’

-용사보단 덜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건 용사뿐이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사는 악마의 천적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니, 루데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유선은 루데릭의 말에 세네타를 보았다. 기가 세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인상에서 나오지, 아우라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네 눈에는 무슨 기운이 보였어?’

-흔히들 신성하다는 말을 쓰지 않더냐? 저 여자의 몸에는 성(聖)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악마들에게 큰 독이 될 수준으로 말이야.

루데릭의 입장에선 한 마리의 독사와 마주한 상황이었다. 당황해서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하는 루데릭의 모습을 보고 유선은 키득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많이 무서웠냐?’

-무서웠다고······ 하는 건 좀 그렇군. 그저 긴장했을 뿐이다.

무서웠다는 소리였다.

‘어떻게 할까? 내쫓아 주었으면 좋겠어?’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그걸 주인이 받아 줄 리 없지 않은가?

‘그렇지.’

지금 세네타는 루데릭이 느끼는 것처럼 적이 아니라 손님에다 볼모였다. 그 용사라는 사람이 오는 동안은 세네타의 곁에 있어야만 했다.

-본인은 그냥 숨어 있겠다. 주인이 알아서 해라.

루데릭의 말에 유선은 피식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루데릭과의 통신이 끊어지고 유선은 세네타를 보았다.

‘이제 뭘 해야 하지?’

유선은 고민의 순간이었다.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 표정은 감췄지만, 난감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말은 볼모였지만, 그래도 세네타는 그 누구도 함부로 잡을 수 없는 귀한 손님이기에 제대로 대접해 줘야만 했다.

꼬르르르륵-.

어디선가 무례한 불청객이 들이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엘레노어의 배에서 나는 소리인가 싶었지만, 새근새근하며 유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든 그녀는 아닌 것 같았다. 유선은 시선을 들어 올려 세네타를 올려다보았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표정으로 가만히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소리를 냈다고 하기엔 아닌 것 같았다.

꼬르르륵-.

그것도 잠깐이었다. 귀를 제대로 기울이자, 그녀의 뱃속에서 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뭔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라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앉았을 뿐이었다.

“혹시 지금 배고파?”

말없이 앉았던 세네타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이곳을 찾아왔으니까. 찾는 데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고.”

묻지 않았다면, 허기진 그 상태로 가만히 있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곧 있으면 점심시간이기도 했고, 이르지만 지금 식당을 알아봐서 함께 식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부우으으으응!

식당을 어디로 잡아야 할까 하는 생각에 유선이 고민하던 중,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차기율한테서 메시지가 날아왔다. 기율이 보낸 문자 내용은 이러했다.

-좋은 기회! 캐치 요망! 식사 자리 예약 완료!

큐앤 호텔 사진과 함께 업로드하며 말했다. 유선이 슬쩍 뒤로 시선을 던지자, 멀리서 지켜보던 기율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유선을 멀리서 응원했다. 식사 권유까지 떠맡겨 마음에 안 들었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기에 유선은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 마침 우리 쪽에서 호텔에 예약해 놓은 자리가 있는데, 어때?”

“호텔 음식? 고급스럽다는 것들은 하나같이 전부 다 거추장스럽고 맛도 별로 없던데. 그리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거절 의사를 묵직하게 꽂아 넣었다. 유선이 다시 슬쩍 기율을 돌아보자, 상처받은 표정으로 망연자실한 채, 직원들에게 격려를 받았다.

“그럼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최대한 맞춰서 가 볼게.”

“······나면 먹을래.”

잠들었던 엘레노어가 갑자기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서는 라면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도 슬슬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라면은 저녁에 먹자.”

“지금 먹으면 안 대?”

“손님이 있으니까. 우리 엘레노어가 좋아하는 것 말고, 좀 더 좋은 거 먹으러 가자.”

“부으······.”

엘레노어가 싫다는 듯이 볼을 부풀렸다. 그렇게 이야기할 때, 듣던 세네타가 물었다.

“나면? 그게 뭐지?”

“라면이라는 건데, 엘레노어만 그렇게 불러. 인스턴트 음식이라서 별로 입맛에 안 맞을 것 같은데······.”

무엇보다, 손님을 라면으로 대접한다는 게 상당히 꺼림칙한 일이었다.

잠깐 생각하던 세네타가 대답했다.

“그 라면이라는 거 먹어 볼래.”

“먹어······ 보려고?”

호텔 음식도 입에 안 맞는 사람인데, 싸구려 인스턴트식품이 그녀에게 과연 맞을지 의문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인데, 뭐 안 되는 이유라도 있어?”

그녀의 물음에 유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손님이 먹고 싶은 대로 해야지. 그러면 같이 라면 먹으러 가자.”

“나면!”

세네타를 대접하려고 선정한 음식이지만, 엘레노어가 가장 신났다. 유선은 세네타를 이끌고 라면을 먹을 만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네타에 눌렸던 기가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자 겨우 사라짐을 느꼈다. 숨어서 지켜보던 직원들은 한마음이라도 된 것처럼 서로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들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이 나간 사이에 기율이 먼저 나서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며 직원들에게 물었다.

“자, 그러면 우리도 점심 먹으러 가 볼까요? 어디서 먹고 싶으십니까?”

“저는 오늘 라면이 당기네요. 호호호.”

“오랜만에 저도 라면이 갑자기······.”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전설적인 헌터 세네타 유가 라면을 먹는 장면을 추적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율은 하얀 정장 코트를 걸치고 앞장서서 걸어가며 그들에게 말했다.

“다들 저랑 생각이 같으시군, 그래. 같이 라면이나 먹으러 갑시다!”

“와아~.”

“맛있겠다~.”

그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닌 척하며, 유선과 세네타가 향하는 라면집으로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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