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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독한 늑대(1) (6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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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고독한 늑대(1)

어느덧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찾아왔다. 언 땅에 새순이 돋아나며, 대지를 녹였다. 두꺼운 코트를 입었던 유선도 이제는 옷차림이 얇아지기 시작했다.

그가 있는 곳은 본래 사무실보다 한참 좁은 임시 사무소였다. 건물 증축 계획에 사무실은 못 쓰는 중이었다. 팀별로 지금 찢어져, 지금은 오리진 팀인 유선과 엘레노어, 그리고 사무직 직원들 몇 명과 사장인 차기율이 있는 자그마한 사무실로 임시로 이사 왔다. 헌터들은 계획이 없으면, 집에서 쉬거나 아니면 카페 같은 곳에서 친목을 도모하게 두었고, 일이 있을 때만 사무실에 들러서 일 처리를 했다.

유니콘도 지금 완전히 공중분해 되었겠다, 그 자리를 꿰차기도 했지만, 기율은 그 자리에 대해서 확고했다. 제2의 강남이 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 신빙성 없는 믿음이 루데릭이 반쯤 동의하면서 어느 정도 믿었다.

엘레노어는 늘 그렇듯이 같이 있고, 오르넵토스는 엘리멘탈 팀 쪽에 있으며, 루데릭은 지금 증축 계획과 관련해서 외출 중이었다.

그리고 유선은 좁은 사무실 안에서 자신의 책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느꼈다. 그리고 지난 1년을 한 번 돌이켜 보았다.

‘근 1년간, 얼마나 많은 사건이 터졌는지 모르겠네.’

기억들이 달콤하고 씁쓸했다. 27년 동안, 가장 많은 일이 터졌다. 죽을 뻔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그에 따른 보상으로 아군이 늘어났다.

엘레노어, 차기율, 루데릭, 오르넵토스······. 그리고 많은 헌터 가족과 멍멍이까지.

테이머로서 정산해 보면 1년 만에 얻은 사역수는 지금까지 3명과 1마리. 다른 테이머들과 비교하면 1년 동안 테이밍한 숫자는 평균 이상이었고, 사역수의 총 스펙으로 따지면 그래프를 뚫고 나갈 정도로 넘을 수 없는 새로운 벽이 세워졌다.

“유선 님, 유선 님.”

엘레노어가 유선의 옷깃을 잡아당겼고, 유선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나 이뻐?”

빨간 마스크 괴담을 연상케 하는 구식적인 멘트를 던지며, 엘레노어가 자신의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귀여운 포즈를 취했다. 머리를 보니 항상 풀리던 그녀의 머리가 귀엽게 말렸다. 엘레노어, 혼자서 말아 낸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슬쩍 주변으로 눈을 돌려 보자, 구석에서 몰래 지켜보는 여성 헌터들이 있었다. 그들도 유선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만. 그대로 가만히 있어 봐.”

유선은 긴말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고 재빠르게 사진기 앱을 켰다.

찰칵-.

사진이 괜찮게 나온 것을 확인하고,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네.”

“진짜로?”

“당연하지. 이렇게 귀엽게 머리를 해 놨는데, 어찌 우리 엘레노어가 안 귀엽겠어?”

엘레노어는 환하게 미소 지으면서 유선을 한 번 꼭 안고는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녀가 달려간 곳은 제 딴에는, 몰래 지켜보는 여자 헌터들이었다. 그리고 아주 기쁘다는 듯이 소리쳤다.

“유선 님이 이뿌대!”

“성공이네!”

“우리, 엘이 평소에도 귀여우니까 그냥 바로 해내 버리네~.”

머리를 말아 준 여성 헌터들은 엘레노어의 반응에 기뻐하며 저마다 하이 파이브를 했다.

‘많이 낯가리던 것 같던데, 이제는 잘 어울리네.’

방실방실 웃으면서 남하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어느 정도 여자아이가 된 것 같았다. 본래 그녀는 유선 이외에는 말하려 들지 않았던 소녀였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엘레노어가 쌓아 놓은 듯한 마음의 벽을 무너트리고 먼저 여자들에게 다가갔다. 그 발단이 ‘유선 님에게 잘 보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부터였다. 매번 친해지고 싶었던 여인들은 엘레노어와 당연히 친해졌다. 그 목적이야 어찌 됐든 유선이 바라는 모습이 나왔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형님, 형님.”

조금 여유를 부리던 차기율이 뭔가를 보다가 메시지를 하나 휴대폰으로 보내었다. 유선은 그 메시지를 확인해 보았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자 메이저 신문 전면 기사가 떴다.

-헌터, 세네타 유, 한국에 도착!

“세네타 유? 내가 생각하는 그 세네타 유냐?”

유선은 그 메시지를 읽고 못 믿겠다는 듯 기율을 보며 물었다. 기율은 그 물음에 간접적으로 대답했다.

“밑에 보면 사진도 있소. 한 번 사진도 보시오.”

유선은 폰을 내려 기사 헤드라인 밑에 깔린 사진을 보았다. 공항에서 나오는 그녀를 찍은 사진이 떴다. 화이트 골드 빛 머리카락, 뽀얀 피부, 검은 선글라스, 순수 자신의 기준에만 맞춘 캐주얼한 복장, 그리고 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 보였다.

무엇보다 감출 수 없는 그 아름다움이 눈에 띄었다. 잘나가는 배우나 연예인을 불러와서 비빈다고 하면 그 비비는 사람이 서러워질 정도로 그녀는 매력적이었다. 유선은 그 사진을 보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하게 세네타 유의 특징을 보여 주었다.

‘세네타 유라······.’

유선은 월드 스타가 내한했다는 말을 들은 팬처럼 가슴이 뛰었다. 고독한 헌터의 표상인 그녀가 이 좁은 대한민국에 오다니! 기사를 대충 읽던 유선은 밑에 주르륵 뜬 기사들을 슬쩍 보았다.

-재앙 잡는 헌터!

-세네타 유, 수많은 메이저 회사의 러브콜을 거절, 고독한 늑대 선언.

-어떤 나라도 그녀를 귀속시킬 수 없다.

-당당한 여성의 상, 세네타 유.

그녀는 3년 전부터 핫하게 뜬 초신성이었다. 20 초반 정도 되는 각 나라 헌터 협회를 거치지 않고 각성하여 의문점이 많은 여성이었다.

물론 이 각성 단계에서도 의문점이 많았지만, 그녀의 행각은 그 의문도 묻어 버릴 정도로 뛰어났다. S급 던전, 국가 재앙급 던전을 홀로 종식해 버린 기행을 저질렀다.

SS급은 단순히 난이도로 봐서는 S급 몇 명이 충분히 해결하리라 여기겠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을 후벼 파고 함정을 빠트리는 던전이었다. 본래 코드 네임 어비스도 유선과 엘레노어가 없었으면, 최악의 상황으로 맞이했을 던전임이 분명했다. 엘레노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헌터계에는 S급 헌터가 거의 한계라고들 하곤 했다. 하지만 세네타 유는 S급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헌터들을 쩔쩔매게 하는 코드 헌터 상황을 홀로 마무리하기도 했으며, 이계의 틈이 닫혀 조난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모험하다가, 다른 게이트를 통해서 나오는 희귀한 경험을 하는 헌터라고 전해졌다.

그녀에 대해서 파헤치려고 하지만 그녀의 존재는 비밀 그 자체였고, 쓰는 무기나 장비들도 불문이었다. 지원해 준 장비들이 오히려 거슬린다고 해서,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MS조차 끼지 않고 맨몸으로 들어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게임으로 따지면 그 누구도 보여 줄 수 없는 변태적인 플레이를 하는 속된 말로, 고인 물 플레이를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

많은 회사와 나라가 파격적인 대우와 조건을 보냈지만, 헌터 협회 자체에도 등록을 거부하고, 오로지 마이 웨이를 고집했다. 각성자가 신고하지 않으면 범법자가 되기 마련이지만, 세네타에게는 와 닿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국제적인 범죄자지만, 동시에 모든 면죄권을 가진 실력자. 어디까지나 능력이 절충하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이 사람이 한국은 왜 왔대?”

유선은 그것이 궁금했다. 세네타 유가 번쩍 나타났다는 말은 어딘가에 큰일이 생겼다거나, 재앙급 던전이 발현되었다는 말인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발현된 재앙급 던전은 없는 상황이었다. 왔다면 코드 네임 어비스 때 왔으리라. 세네타 유의 등장은 뭔가 뜬금없고 예상하지 못한 일처럼 다가왔다.

“방문 목적이 뭔가를 가지러 왔다는데? 호텔에 검이라도 놓고 오지 않았겠소?”

기율이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세네타가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없어서 그런 사소한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녀가 온 만큼 분명히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게 분명했다.

그녀의 실물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정지된 화면조차 아름답게 빛나는데, 실물로 보면 얼마나 매력적일지 궁금했다.

“흐음······, 한국에 왔다지만······ 만날 일은 없겠지?”

“제아무리 서울에 있다고 해도, 워낙 넓으니까. 만나는 일은 없지 않겠소?”

어차피 이 내한 자체가 큐앤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분명히 찾던 물건을 들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그 사실을 인지하니 아쉬운 감이 있어 입맛을 다셨다.

“월드 스타가 왔으면, 사인이라도 받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구먼.”

“한 번, 큐앤 쪽에 추적 요청이라도 해 봐?”

“아서라. 그러다가 봉변당하면 어쩌려고. 네가 봉변당하는 거면 상관없는데, 남이 다치잖아.”

“울 형님은 어찌 그리 자상하고도 무심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기율은 슬픈 시늉을 하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던 중 손님이 찾아왔다.

딩동-.

사무실 문 앞에 달아 놓은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직원이 나가려고 했지만, 마침 일어나서 커피를 타려던 기율이 문 쪽에 가까워 바로 열어 주었다.

“네, 큐앤 헌터 컴퍼니입니다. 누구······.”

기율이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다른 기사가 없나 찾아보던 유선은 그가 갑작스레 말을 잃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허미, 아버지······.”

문 열고 손님을 맞이하는데, 갑자기 아버지를 찾는 기율. 못 볼 것을 본다는 듯이 그대로 굳었다. 그가 앉은 곳이 문이 달린 벽 쪽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열린 문과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경악하는 기율만 보였다.

“뭐야?”

유선이 기율에게 물었다. 기율은 당황한 채로 유선에게 대답했다.

“그, 그그그그, 그게······. 사, 사사인을 주, 준비하하하······.”

“사인을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말이야? 갑자기 무슨······.”

“비켜.”

앞에서 멍청하게 어버버거리는 기율이 답답한지,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이 기율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여인이 얼굴을 보이자, 사무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얼굴이 그대로 굳고 말았다. 그건 정유선도 마찬가지였다.

기율이 말한 것은 사인을 준비해야겠다는 게 아니었다. 유선이 말했던 사인 받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백금빛 머리카락으로 보이는 압도적인 존재감.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으며 푸른 눈동자를 드러냈다. 한 치의 의심도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의 완벽한 특징을 보여 주었다.

그녀였다.

세네타 유가 이 작은 사무소에 방문, 아니 강림했다.

“당신이 정유선?”

“······.”

모국어라고 생각이 들 만큼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했다. 예상치 못한 유창한 한국어에 한 번 더 벙 찌고 말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세네타 유가 한 번 더 물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벙어리들인가? 아니면 내가 이 나라 언어를 잘못하나? 다른 사람들은 전부 알아듣던데 말이야.”

“아······, 죄송합니다. 우리가 그만 실례를 저지르고 말았네요.”

그 패닉 속에서 유선이 급하게 일어나 세네타를 반겼다.

“반갑습니다, 제가 정유선이 맞습니다.”

“역시, 네가 정유선이 맞는구나.”

실물로 보면 아름다울 거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아름다움조차 잊히게 했다. 어려 보이는 표정에 반말 때문에 밥맛을 잃지는 않았다. 그녀의 무표정함 속에서 나오는 강렬한 인상이 긴장감을 유발했다. 그건 평소에 옆에 있는 루데릭을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인지, 인상이 주는 긴장감이 좋은 쪽인지, 아니면 나쁜 쪽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이야기하실 게 있으신 것 같은데······ 우선은 앉으시죠.”

유선은 정중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세네타는 유선이 권한 자리에 앉았다. 세네타는 유선의 맞은편에 앉으며 그에게 말했다.

“우선 마실 것 좀 줘. 목말라.”

“아, 잠시만요.”

유선은 가까이 있는 기율에게 눈짓했다. 그녀의 말을 듣던 기율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어 세네타에게 대접했다. 그 음료수를 마셨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 이야기해 주시겠습니까?”

갈증을 해결한 세네타 모습을 본 유선이 그녀에게 물었다. 세네타는 그에게 자신이 온 목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여기에 수정구가 있다고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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