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32. 정령과 마법의 성지 (3)
스태프가 전해 준 기억들을 모두 루데릭이 정리한 결과, 마법 클래스의 성장률이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높게 상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덕에 지원자들도 현저히 늘어났다. 정령술사, 그리고 마법사가 압도적인 비율로 왔지만, 다른 클래스들도 틈새시장을 노려서 취업하려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외부의 도움 없이 그 모든 것을 루데릭과 기율이 자체적으로 처리해서 어떤 지옥이 펼쳐지는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할 일이 많지?”
“많다. 이제 이렇게 좁은 사무실도 더 늘려야 하고, 던전 공급처도 더 알아봐야 하고, 협력 업체들도 대강 알아봐야 하니, 이만저만이 아니지. 그 멍청이가 일만 안 늘려 줬으면 하는데 말이야······.”
멍청이는 분명히 차기율을 의미할 것이다. 원래도 뭔가 하려고 했지만, 자유방임적인 성격 때문에 불안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루데릭이 옆에 서 있으면서 그런 기질도 이제는 어느 정도 자제하는 편이었다.
“걔는 요새 어떤데?”
“뭐 큐앤에서 배워 온 꼼수들로 자꾸 일을 만회하려고 들더군.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그것만 좀 더 바로잡고, 제대로 가르치면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할 수는 있을 거다.”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좋은 소식이었다.
‘루데릭이 있으니 확실히 안정적인 여가네.’
방에 틀어박혀서 지식이나 습득한다고 했을 때, 뭔가 할 일들은 있을까 생각했을 때가 멍청하다고 느낄 정도로 제 역할을 잘해 주었다. 그런 루데릭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던 찰나.
똑똑-.
“실례합니다.”
누군가가 찾아왔다. 머리 위에 손을 얹으려던 유선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네, 누구세요?”
“저기, 여기가 혹시 큐앤 헌터 컴퍼니가······ 어, 정유선 헌터님이십니까?”
유선보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사내였다. 유선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아, 그러면 여기가 큐앤이 맞겠구나.”
“무슨 일로 오셨죠?”
“사장님이 이 회사로 직접 오라 하셔서 왔어요.”
기율은 직원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간 상황이었다. 그리고 출장이 잡혀서 아마 돌아오지 않을 계획으로 알았다. 수련하겠다고 회사 안에 있던 것은 유선 혼자뿐이었다.
“아마 사장님은 안 계실 텐데······.”
“아, 그런가요?”
사내는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오늘 면접이 있는데, 사장님께서 직접 면접을 보시겠다고 하셔서 찾아왔는데, 사장님이 없으시니······.”
-루데릭의 스트레스가 올라갔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루데릭이 한숨을 내쉬었다. 스케줄 관리를 엉망으로 해 한소리 하려고 입 안에 장전해 놓았다. 유선은 그에게 길을 터 주며 말했다.
“그럼 저랑 얘기하죠.”
“그래도 되나요?”
“제가 뭐 따지고 보면 사장 대리나 다름없으니까요. 창립 멤버이니까요.”
어차피 큐앤의 실질적인 권력가인 루데릭도 옆에 있고, 마음에 안 든다면, 루데릭이 알아서 해결할 것이 분명했다.
“네, 그렇다면.”
사내는 안으로 들어왔다. 사역수의 놀이터인 휴게실 쪽에 앉히며, 유선이 먼저 그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저는 알다시피, 정유선이라는 사람입니다. 공격대 중 하나인 오리진 팀의 팀장을 맡고 있죠.”
“차민혁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민혁은 당당하게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때 동안, 루데릭은 기율의 책상에 있는 지원서를 들고 와 유선에게 건네주었다. 유선은 천천히 그의 스펙을 살펴보았다. 첫 장을 넘기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마법 Lv. 3>에 <원소 Lv. 4>······ 특성 스펙이 장난 아니네······.’
평소의 중소 규모의 큐앤이라면 감히 엄두도 못 낼 스펙이었다. 능력치 자체는 낮지만, 그 정도는 시간문제로 둘 정도로 특성이 뛰어났다. 유선은 이런 인재가 제 발로 굴러 들어왔다면 인지도가 얼마나 올라갔는지 실감이 갔다.
정령왕으로 정령술사의 성지에 이어서 마법계의 수학의 정석을 만들어 낸 결과였다. 단순히 마법 특성 레벨을 올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클래스에 적절한 마법을 배우도록 다른 회사들보다 다양한 양의 스펠을 익히게 도와주었다. 쓸 마법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두 흐름이 압도적이지만 그래도 틈새를 노리고 들어오는 지원서도 있기에 물이 들어오는 만큼 노를 힘차게 젓기 시작했다. 현재 재정에서 아슬아슬할 정도로 인원을 불리기 시작했다. 차기율이 했다면 불안하겠지만, 루데릭이 주선하는 일이었기에 어느 정도 안심한 상태였다.
천천히 읽어 가며 뒷장을 넘기자, 유선은 한순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유니콘에 소속되었다가 왔다고 적혀 있었다.
‘유니콘 사람이라니까 갑자기 껄끄러워지는데, 흐음······.’
망하면서 다른 회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건 여기뿐만이 아니라, 다른 메이저 헌터 컴퍼니도 그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래도 유선은 최대한 주관을 넣지 않으려 애썼다. 함께할 좋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 그는 단순하게 판단하려 들지 않았다. 유선은 그의 스펙을 칭찬해 주었다.
“좋군요. 차민혁 씨, 이 정도면 우리 전력 자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경험만 확실히 쌓으신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왜 안 하나 싶었는지 불안했던 민혁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리고 민혁이 유선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연봉 협상부터 하죠.”
“······네?”
좋게 진행하려다가 차민혁 쪽이 밥상을 엎어 버렸다. 아직 제대로 된 이야기도 안 나눴는데, 벌써 연봉 협상을 하자는 말에 유선은 말머리에 물음표를 달았다. 그러자 민혁은 유선에게 세게 나왔다.
“제 특성 보시지 않았나요? <마법 Lv. 3>에 <원소 Lv. 4>인 원소술사입니다. 이런 기회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긴 하죠.”
“채용하실 수밖에 없으실 겁니다. 제가 이 회사를 이끌어 갈 주역이 될 테니 말입니다.”
넘치는 자신감이 보였다. 포부까지 모두가 좋았지만, 유선은 그의 말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한소리 해야 하나 싶다가, 그는 문득 헌터넷에서 본 글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특성이 좋은 헌터들이 생각보다 이런 식으로 면접을 많이 한댔지?’
소위 말하는 얕보이는 것 없이 세게 나오는 타입이었다. 자신이 넘치는 것이 인상적인 면접 방법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대우를 확실히 받는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잘 잡아야지 가능했다. 일단 유선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으며 그에게 말했다.
“확실히······ 잠재력도 있으시고, 마법 특성 레벨도 확실히 좋으십니다. 차민혁 씨가 가져다주실 성과가 매우 기대되는군요.”
유선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읽던 서류를 그대로 덮으며 민혁에게 말했다.
“그러니 다른 회사에서 좋은 인연을 꾸리기 바랍니다.”
“네, 당연히······ 뭐라고요?”
민혁이 자신의 의도에 따라 주지 않아, 어이없다는 듯이 보았다.
“저기, 정유선 헌터님? 저는 원래 유니콘에서 빵빵한 대우를 받기로 하다가 이곳에 온 사람이에요.”
그러자 유선은 무표정한 얼굴로 민혁에게 말했다.
“그건 유니콘에 가서 따지셔야 할 문제고요. 여긴 어디까지나 큐앤입니다. 우리는 회사에 써먹을 기계를 뽑는 게 아니라 사람을 뽑는 곳입니다.”
수치심에 얼굴이 새빨개졌다.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이 유선의 눈에도 보였지만 애써 입안으로 집어삼켜 넣으며 유선에게 경고했다.
“정말 큰 실수 하는 겁니다! 저는 이 회사에 이익을 가져올 만큼 충분히 자격이 있는 사람이에요.”
“너 이······.”
계속되는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난 루데릭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가 뭔 짓을 하려고 했지만, 유선은 루데릭의 손을 잡으며 잠깐 그의 행동을 말렸다. 유선은 어이없었지만, 그래도 화내지 않았다. 여유롭게 그에게 말했다.
“그러겠지요. 분명히. 스펙을 보시면 분명히 이론으로는 많은 돈을 안겨 줄 겁니다.”
유선도 잘 알았다. 민혁은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이익을 낼 사람을 포기하겠다는 게 어이없다는 듯이 유선을 째려보았다.
“지금으로서 유망주인 차민혁 씨를 놓치는 건 분명히 사장의 입장에선 큰일이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저 사소한 순간일 뿐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뽑을 사람은 민혁 씨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원서만 수천 장, 그리고 그중에는 절충한 사람이 차민혁이란 사람 말고도 많았다. 스펙이 떨어진다고 해도 조금만 가능성을 보인다면 그 나름대로 일할 것이다. 어쩌면 차민혁의 현재 스펙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민혁 씨처럼 다짜고짜 연봉 협상부터 들어가자는 사람들을 보면 저는 정나미가 뚝 떨어져요. 적어도 사람은 강하든, 약하든,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는 겸손하게 대해야 하는 법입니다. 민혁 씨가 저를 대하는 태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팀 분위기에 끼칠 만한 일들도 충분히 느낍니다.”
그것도 단순히 기분이 나쁘단 이유로 거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 유선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모두 배제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큐앤의 모토는 언제까지나 팀워크였다. 능력 위주로 두지 않고, 마음이 맞고 의지할 사람들이라면 클래스를 차별 두지 않고 함께 팀을 꾸리도록 해 주었다.
한 헌터의 비위를 맞추려고 팀에 분열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는 건 원치 않았다.
차민혁은 그렇게 얘기해 줬는데도 인정을 못 하는 것만 같았다. 유니콘에 있을 때는 유망주 취급을 받아 왔으며, 귀한 자식처럼 대하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서 굴하지 않으며 유선에게 한 번 더 말했다.
“만약 사장님이 저를 뽑으려고 했다면 어쩌실 겁니까?”
유선이 사장인 기율에게 묻지도 않고 자르려 든다는 건 왜곡된 갑질로 보일 것이다. 유선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민혁에게 답답한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좋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루데릭이 그것을 막았다.
“주인, 그냥 뽑자.”
루데릭은 차민혁을 채용하길 바랐다. 유선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루데릭에게 물었다.
“뽑으려고?”
“아무래도 뽑아야 할 것 같다.”
루데릭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민혁은 그 작은 꼬마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준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깐이었다. 루데릭이 싸늘한 눈동자로 민혁을 노려보았다. 진중해진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어이, 풋내기.”
“풋내기? 너는 뭐······.”
“말 놓지 마라. 산 거로 따지면 네놈은 겨우 하루살이인 미물에 불과할 정도로 오래 살았던 몸이다.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말을 놓으려 들어?”
“······.”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지만, 그 어리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무게가 민혁을 짓누르는 듯했다. 그는 말실수했음을 알고 바짝 긴장했다.
“보아하니 우리 회사를 다른 좆만 한 곳처럼 능력만 있으면 대우해 주는 줄 아나 본데, 내 앞에선 그딴 거 없다. 어떻게 마법사들이 한 달 만에 특성 레벨이 하나 올랐다고 생각하느냐?”
루데릭의 물음에 아는 길이 없었다. 단순히 책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하기엔 그의 눈동자에 독기가 서렸다.
“모두 내가 가르쳤기 때문이다.”
책과 지식, 그리고 채찍질하는 전문적인 마부. 그 마부의 역할이 바로 루데릭이었다.
“호흡이 한 번 흐트러지면 처음에는 언질로 넘어가고, 다시 한 번 더 시키는데 그래도 진전이 없다면 강도를 점점 세게 나갔다. 그래서 아마 지옥에서 오락가락하던 녀석들이 상당했을 거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몰아넣었지. 인간을 궁지에 계속 몰아넣었기에, 그러니까 가능하다.”
“······.”
루데릭의 말을 듣는 차민혁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만약 출세를 꿈꾸고 몸뚱이랑 능력, 그리고 희망을 안고 이곳으로 왔다면, 희망은 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놔두고 오는 게 좋을 거다.”
그가 이빨을 제대로 드러내며 경고했다. 두고두고 조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내가 그 희망을 아주 산산조각 낼 각오로 네놈을 지옥 속으로 굴려 버릴 테니까! 알겠냐?”
“히이이익!”
사내는 공포에 질려 지원서고 뭐고 간에 허겁지겁 밖으로 뛰쳐나갔다. 유선은 민혁이 제대로 닫지 않은 문을 밀어 닫으며 루데릭을 보며 말했다.
“되게 무섭다, 너.”
“당연하지 않겠나? 이래 보여도 악마다. 주인보다도 강하고 말이야.”
무표정한 눈동자로 유선을 보며 말했다. 유선은 그가 마법사들을 상대로 가르치는 방식이 정말로 그런지 궁금해 슬쩍 루데릭에게 물었다.
“너 근데 정말로 그렇게 가르쳐?”
“그럴 리가 있겠나? 솔직히 그 인간들이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그저 가르쳐 주고 베푼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내치는 게 맞지 않겠나?”
민혁에게 했던 말은 그저 위협용일 뿐이었다. 그는 자유방임을 빙자한 냉혹한 수련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유선은 그런 루데릭이 자신이 수련할 때는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게 신기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나는 용케도 계속 이끌어 주네?”
“주인은 주인이다. 내가 해 줄 최고의 방법들을 주는 게 당연하지.”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듯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유선은 피식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항상 고맙다.”
“······.”
유선은 루데릭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데릭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 손길을 느끼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