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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정령과 마법의 성지 (2) (6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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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정령과 마법의 성지 (2)

헌터 고석현의 클래스는 프레임 위저드였다. 그에게는 평생 운을 다 쓴 것처럼 기분이 좋은 일이 생겼다. 6개월 동안 지긋한 마법 수련을 하면서 마법 특성의 레벨을 3까지 끌어올렸다. 골렘 컴퍼니에서 내일부터 던전 공략을 시작하자는 말을 들었다.

석현은 지금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았다. 회사 내에서 지급한 장비들을 온종일 정비하고 왔고, 지금은 던전에 쓰일 스펠들을 모두 다시 체크했다. 내일이 너무 기대되어서 죽을 것만 같았다. 이 기분을 어디에다가 풀어야 할까?

“오랜만에 글이나 한번 써야겠다.”

그런 기분을 풀려고 석현은 스마트폰으로 한 어플을 들어갔다. 헌터넷 자체 어플이었다. 헌터의 자격만 있다면 모두가 들어갈 어플! 거기서 석현은 마법사 클래스들의 커뮤니티, 좀 더 세부화되어 수련 마법사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그의 닉네임은 ‘6년 수련 마법사’ 실질적으로 6달하고 조금 더 됐지만, 대부분은 장시간 동안 수련한 것처럼 닉네임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6년 수련 마법사: 이제 저도 어엿한 마법사가 되었습니다. ㅎㅎ <마법 Lv. 3> 마법사로서 내일부터 던전에 첫 트라이네요!

헌터넷에 글을 올리자, 곧바로 반응이 나왔다.

-10년 수련 마법사: 오오옷, 부럽습니다. ㅠㅠ 저는 언제 던전에 갈지 모르겠네요.

-100억 년 수련 마법사: 축하드립니다. 저는 이번 생에 가능할까 모르겠습니다.

-난죽택 마법사: 재능충은 죽어라! 저는 이번 생을 포기하고, 온종일 수련만 합니다······.

반응이 좋았다. 커뮤니티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하는 게 기분 좋았다. 그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6년 수련 마법사: 여러분도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다들 파이팅!

‘온종일 수련만 해라.’

석현은 부러워하는 그들을 비웃었다. 재능이 없는 마법사들이 꿈에 발버둥 칠 동안 자신은 유유히 꽃길만 걷는 상상을 하며 헌터넷을 그만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3년 수련 마법사: 큐앤 헌터 컴퍼니 소속 마법사입니다. 두 달 동안 타 회사에서 수련하다가 큐앤에 입사하고 한 달 만에 마법 특성 레벨을 2로 올렸습니다. 좀 더 수련하면 저도 이제 어엿한 마법사가 되겠네요. ㅎㅎ.

석현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려던 손을 멈췄다. 그에 이은 반응들이 올라왔다.

-10년 수련 마법사: 네? 1년이 아니라 한 달 만이라고 하셨어요?

-난죽택 마법사: 그게 가능해요?

-100억 년 수련 마법사: 여기서 어그로 끄시면 안 됩니다. 규정이 있어요!

-8년 수련 마법사: 자작 소설 안 받아요.

당연하지만 그 말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단순한 어그로이겠거니 생각해 무시하려던 순간, 곧바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3년 수련 마법사: 지난달에 찍어 놓은 스펙이랑, 지금 스펙입니다. 한번 확인해 보세요! 조작 같은 거 아닙니다.

홀로그램 카드를 그대로 사진으로 찍어서 올렸다. 화질이 또렷하게 찍힌 데다, 포토샵으로 조작했다고 하기엔, 너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했다. 정말로 1에서 2로 올라갔다.

-8년 수련 마법사: 미친, 대박;;;

-12년 수련 마법사: 이거 정말로 본인 거 맞아요? 이름까지 다 노출해 가면서 조작하려고 하겠나만······; 수련 마법사를 단 사람들은 거의 다 1에서 2로 올릴 때도 피를 토한 이들이 꽤 있었다. 최단 시간으로 수련해 낸 사람도 100일이 넘어갔는데, 고작 한 달 만에?

믿을 수가 없었다. 석현은 믿어지지 않아서 그에게 물어보았다.

-6년 수련 마법사: 혹시 그 방법이 어떤 건지 알려 주시겠어요?

-8년 수련 마법사: 네, 비법이 있으면 공유 좀 해 주세요.

-난죽택 마법사: 애들 분유 값 벌어야 합니다. 부디 자비 좀 크흑. ㅠㅠㅠㅠㅠㅠ

그러자 3년 수련 마법사의 대답은 이렇게 돌아왔다.

-3년 수련 마법사: 그건 우리 회사 규정이라 말씀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여기는 이제 마법사들의 성지예요! 정령술사뿐만이 아니란 말입니다!

역시나! 증명할 만한 거리가 없으니, 대답을 회피했다. 석현은 짜증이 나 그 게시판에 신고 버튼을 조용히 누르고 나왔다.

“어그로 관리를 안 하네. 관리자가 진짜······.”

요즘 큐앤에 관한 정보가 하나둘씩 올라오면서 찬양하는 분위기가 석현의 눈에는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익명이 보장된 헌터넷에서 대부분 타 회사인 것처럼 굴면서 자기 회사를 욕한다고 정신이 없는 곳이기에, 칭찬 글은 드문 편이었다.

-큐앤에는 사장이랑 S급 헌터님 마인드가 너무 좋아요.

-포션 값이랑 무기 관리비 같은 거 따로 청구 안 하시고, 생각해 주시는 게 너무 좋아요!

뭔가 짜고 치는 것처럼 큐앤은 악담이 적었다. 정령왕이 소환되기 전까지는 분명히 비난하는 여론이 많은 회사였다.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게시판 관리자에 의해서 금방 삭제되었지만, 그런 글이 많았던 회사였다.

‘대세는 골렘이다.’

유니콘이 없어진 지금은 골렘의 시대였다. 석현은 자신의 회사에 자부심을 느끼며 큐앤에 대한 생각을 저 멀리 떨쳐 두었다. 내일부터 던전에 들어가는데 벌써 힘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큐앤 쪽에서 압도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있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석현은 무심코 자신의 메시지 어플을 틀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이름 하나를 찾았다.

자신의 친구이자 헌터 아카데미 마법학과 동기인 녀석의 프로필을 눌러 보았다.

-소속: 큐앤 헌터 컴퍼니.

그 글자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박혀 있었다.

‘S급 헌터 한 명 있는 거로 겨우, 실속이 있다고 여기는 쓰레기 같은 회사.’

꼬맹이 정령왕이 등장하면서 물이 제대로 올랐다지만, 결국 그건 정령술사를 위한 길밖에 되지 않았다. 검을 쓰는 사람들이나, 앞에 나서는 탱커들을 다루는 건 다른 회사들보다 뒤처졌을 것이다.

“······.”

그거야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지금은 헌터넷에 올라온 3년 수련 마법사의 글이 거슬렸다.

-요새 뭐 하냐?

거슬린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석현은 무심코 그 녀석에게 문자를 보내었다. 답장은 금방 날아왔다.

-오랜만에 문자 보낸다? 요새 수련하다가 다시 던전에 들어가려고. ㅋㅋ

-수련?

마침 거슬렸던 3년 수련 마법사의 글이 생각났다.

-수련은 어떻게? 포기했냐? ㅋㅋ

-아니, 수련이 끝났어. 이제 나도 <마법 Lv. 3> 마법사다. ㅋㅋㅋㅋㅋ

“······뭐?”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석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타자했다.

-뭐? 너 특성 레벨이 2였나 그랬지 않았냐? 두 달 전만 해도?

-어. 꽤 오래 머물렀지. ㅋㅋㅋㅋㅋ

-그런데 3으로 단번에 올랐다고?

아무리 봐도 거짓말하는 것만 같았다. 마법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는 듯하다는 소리를 들은 자신도 여섯 달 만에 겨우 마법 특성을 3으로 올렸는데, 그가 두 달 만에 그걸 해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두 달 만에? 두 달 만이라니!

-무슨 의미야?

-다른 팀 쪽에는 마법 특성 한 달 만에 2에서 3으로 올린 애도 있는데?

-뭐?

-내가 좀 느린 편이야. 그것 때문에 꽤 혼도 났고······.

“······.”

허언을 달고 다니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그 말은 믿기가 너무 어려웠다. 무슨 수능 단기간 속성 과정도 아니고 한 달, 두 달 만에 특성 레벨을 올린단 말인가! 이대로 읽고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적당히 말을 얼버무려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구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얻었네. 나는 이제 던전 들어간다.

-오, ㅋㅋㅋ 좋겠다.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얻길 바랄게!

그렇게 대충 대화를 끝마쳤다. 석현은 뭔가가 허탈한 것 같았다. 자신이 빠르게 쌓아 올린 탑을 자랑하고 싶은데, 더 늦게 시작하고, 더 빨리 지었던 놈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큐앤······.”

석현은 큐앤 헌터 컴퍼니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문의란으로 만들어 놓았던 게시판이 폭주했다. 늦은 밤인데도 분 단위로 비밀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들이 대부분 정령술사라는 사실과 거의 다 회사로 들어가고 싶다는 소리를 내는 글들이라는 걸 알았다. 석현은 기분이 착잡해졌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래도 대세는 골렘이다.’

그 믿음을 가지며, 내일 있을 던전 공략에 잠을 자려 했다.

하지만 한 번 믿음이 흔들린 그의 머릿속에는 큐앤에 관한 생각이 떠나지 않고 괴롭혔다. 그날 밤잠에 제대로 들지 못한 석현은 첫 던전 공략을 엉망진창으로 끝내 버리고 말았다.

***

“자, 호흡해라. 천천히 들이쉬고······.”

“후으으읍······.”

“천천히 다시 내쉬면서 숫자를 헤아려라, 하나······ 둘······.”

유선은 눈을 감은 채로 루데릭의 차분한 목소리에 집중했다. 명상하는 자세를 취하며 천천히 그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들어갔다. 그는 뭔가가 자신의 심장을 향해 들어옴을 느꼈다. 그 기운에 집중하면서 고요함에 젖어 들었다.

“이제부터 계약자는 호흡을 의식한다.”

“푸흡!”

천천히 명상에 빠지던 유선은 그 목소리에 그만 고요함이 깨지고 말았다. 귀엽고 동시에 까탈스러운 목소리는 오르넵토스였다.

“오르넵토스, 너, 이 녀석!”

“깔깔!”

“꺄하하하하!”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가 유선의 명상에 훼방을 놓으면서 깔깔 웃었다. 유선은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것이 아쉬워 얼굴을 감싼 채로 좌절했다. 오르넵토스는 뻔뻔하게 말했다.

“그래도 이건 계약자 잘못이야. 혼자서 계속 숨만 쉬는 연습을 하는데, 우리가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알아?”

“맞아, 맞아.”

“계약자가 우리한테 소홀히 대한 대가야!”

“대가야!”

오르넵토스의 행동과 끝말을 반복하며 엘레노어도 가세했다.

“그리고 계약자는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말을 몇 번이나 했잖아.”

“맞아. 맞아. 재능이 없어.”

“켁······.”

오르넵토스가 한 번 더 유선의 가슴에 못을 박아 버렸다. 묵직한 팩트였기 때문에 루데릭도 인정했다.

마법사의 길은 선천적으로 재능에 의해 결정되고 그 재능은 죽을 때까지 따라갔다. 티끌만큼이라도 재능이 있다면 끄집어내겠지만, 이건 단순히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문제였다. 유선은 심기를 건드리는 오르넵토스의 말에 인내하며 물었다.

“그래, 요, 작고 사악한 꼬마들. 뭣 때문에 나를 기다렸는지 들어 볼까?”

그러자 엘레노어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유선에게 물었다.

“밖에서 멍멍이랑 놀고 와도 돼?”

엘레노어가 ‘멍멍이’를 안고 다가왔다. 멍멍이, 그것은 크리스털 리저드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름을 손수 지어 주려고 하기도 전에, 엘레노어가 가로채서 멍멍이라고 부르는 바람에, 그 이름은 이제 멍멍이로 정해졌다.

멍멍이가 아니지만, 멍멍이다.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었다.

-집에 가고 싶어······.

멍멍이는 거의 탈진한 얼굴로 축 늘어지면서 중얼거렸다. 엘레노어의 품에 들린 멍멍이는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 수천 배는 더 강한 엘레노어에게 저항하려 했다간 어떤 꼴을 당하는지 뻔할 뻔 자이기 때문이다.

멍멍이가 자포자기한 눈으로 주변에 시선을 두다가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한순간 생기와 희망의 빛줄기를 잡은 것처럼 동정을 바라는 눈이 유선을 찔러 왔다.

-행복하게 해 준다면서······. 주인님, 나 행복하게 살게 해 준다면서······. 행복하게 해 줘요.

집과 먹이까지는 멍멍이의 기준에서 가장 좋은 것들을 항상 주는 편이었다. 물질적인 보상에는 유선은 정말 최선을 다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멍멍이를 향한 엘레노어의 손길을 제어하는 것만큼은 힘들었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작은 반려동물들에게 관심이 많고, 그걸 과도하게 선을 넘지 않는 이상 저지할 이유가 없었다.

‘미안하다.’

유선은 그저 징병에 끌려가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처럼 애처롭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도 할 일이 있기에, 엘레노어가 멍멍이와 함께 놀 때만큼은 그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재밌게 놀다가 와.”

“응!”

-어, 어! 주, 주인니이이이임!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달려 나가는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 그리고 애처로운 멍멍이의 절규가 멀어졌다.

‘그래도 저러면서 놀다 보면, 자기도 즐기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지옥을 경험한다면 유선도 당연히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놀다가 자기가 즐기기 때문에 유선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언젠가는 저렇게 놀다 보면 자신도 분명히 익숙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루데릭은 그들을 슬쩍 보다가 유선에게 물었다.

“다시 하겠는가?”

하고 싶지만, 다시 오르넵토스가 한 소리를 떠올렸다. 호흡이 의식되었다.

“아냐······. 호흡을 의식한 순간부터 난 글렀어.”

“그르진 않았지만······ 좋은 생각이다.”

루데릭은 그 포기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다. 단순히 한두 시간을 했다면 그도 어느 정도 이해해 주었지만, 몇 시간을 그렇게 붙잡았기 때문에 참을성이 있는 루데릭도 포기하라고 할 찰나였다. 유선은 한숨을 내쉬며 루데릭에게 물었다.

“이거 나만 그렇지?”

“아쉽게도······ 주인만 그렇다. 다른 인간들은 순조롭게 따라오는 중이다.”

루데릭의 말에 유선은 한 번 더 절망했지만, 그래도 뭔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행으로 여겼다.

“방향은 어떤데?”

“일단 스태프의 기억대로 해서 훌륭한 훈련 방법을 거친다면 머지않아 C등급 몬스터들도 처리할 만큼 밥값을 할 것이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를 뽑아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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