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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정령과 마법의 성지 (1) (6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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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정령과 마법의 성지 (1)

회사로 돌아온 유선은 루데릭에게 스태프를 보여 주었다. 이세계에 있을 때, 많은 것을 아는 만큼, 그 스태프를 보고는 단번에 감탄사를 터트렸다.

“엄청나군.”

루데릭이 그 스태프를 만지고는 놀랍다는 듯이 유선에게 말했다.

“이런 재목으로 스태프를 만들 자격을 갖춘 사람은 많지 않다. 거기다가 이런 능력을 주입하려면 아주 고위급 마법사들이 수십 명 붙어서 수많은 시간과 고통을 견뎌 내면서 만들어 내는 스태프일 텐데······.”

“대단한 거라는 의미네?”

“이세계로 따지면, 억만금을 줘도 못 사 드릴 만한 능력이 있다는 거지. 일단 어느 정도 자격만 갖춘다면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니 말이다.”

“대마법사라······.”

유선은 단순히 마법사가 되었다고 느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는 말이었다는 게 살짝 놀라고 말았다.

“이런 스태프를 어디서 구했냐?”

“그게 말이지······.”

유선은 여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용사······ 그래, 용사가 있었다는 말은 들었다. 풋내기 용사와 마법사가 세상을 구원하리라고 믿었지. 용사까진 알겠지만, 그 마법사가 성녀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군.”

“유명한 이야기야?”

“상당히 유명하다. 인간이 그 땅을 밟던 마지막 날까지 증오를 땔감으로 늘 분노에 살았으며, 성검을 들고 마왕을 죽이려고 마굴을 찾기에 혈안인 사내였으니까. 그건 마치 우리에겐 광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살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름은 알아야 했지.”

“흐음······.”

악마들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걸 모두 막진 못했네?”

“그렇다. 겨우 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로 인간들은 경계를 늦춘 것이 컸다. 모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고 말았지.”

타락과 배신. 인간의 몸에서 코어가 나오던 것과 악의 씨앗이라고 말했던 아르젤의 말이 떠올랐다. 힘을 갈망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받아들였으리라. 암울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계단에서 큰 소리로 아부해 오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정령왕 선생님은 아름다우십니다!”

“늘 강하시고 말입니다!”

“하하하!”

엘리멘탈 팀이 복귀했다. 오르넵토스가 의기양양해진 얼굴로 그 아부를 들으며 회사 안으로 들어왔다. 루데릭은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심기가 제대로 거슬린 듯한 눈치였다. 유선은 홀로 휴게실로 다가오는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오늘도 한 건 했어?”

“당연하지! 이 몸이 없으면 저 팀도 없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야!”

오르넵토스는 콧대를 높인 채로 유선을 보며 말했다.

“정말이지, 내가 없으면 나중에 이곳은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모르겠는데 과연······.”

슬쩍 눈을 옮기던 오르넵토스가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이 스태프를 고정했다. 눈이 휘둥그레지며 스태프를 향해 달려들더니 그걸 집어 들었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인가 생각했지만,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게게게게게 계약자! 이거 어디서 구해 왔어!?!?”

오르넵토스가 혀를 깨물어 가며 물었다. 보통 당황한 모습이 아니라 유선도 놀라고 말았다.

“그거 던전 안에서 돌다가 얻었는데······. 왜 그렇게 놀라?”

“당연하지! 멀쩡한 세계수의 가지인데, 내가 지금 이렇게 안 놀라고 배기겠어?”

세계수의 가지란 이름을 들었을 때 어디까지나 대단한 건 알았지만, 유선은 정령왕인 오르넵토스를 호들갑 떨게 하는 물건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루데릭이 담담하게 그것에 대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악마들이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처음으로 했던 것이 세계수를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세계수를 무너트리고, 인간이 질서를 무너트리고 혼돈으로 빠트리는 것이 작전 중에 가장 핵심이었지.”

세계수가 무너졌다. 유선은 그 의미가 상당히 크게 여겨졌다.

“세상은 잘만 돌아가는 것 같은데······.”

“당연하지. 겨우 기둥 하나가 무너졌다고 하늘이랑 땅이 붙어 버릴 만큼 세상은 엉성하지 않다고. 세계를 유지하는 세계수는 아주 많아.”

“우리가 무너트린 것은 질서의 세계수. 그것이 무너졌다는 건 질서의 균형이 사라지고, 무법의 균형만이 남았다는 뜻이다.”

오르넵토스가 까칠하게 대답했다. 세상을 지탱하는 기둥은 많고 세계수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뜻이었다. 오르넵토스가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물건을 얻은 것처럼 부들부들 떨며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계약자, 이 스태프 나 주면 안 돼?”

“너한테?”

유선은 기분이 오묘해졌다. 명절 때 찾아오는 사촌 동생이 자신의 물건을 탐하는 것 같은 모습이 한순간 오버랩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오르넵토스가 상당히 관심 있는 것 같았다.

“세계수가 무너진 지금에는 새로운 세계수를 세워야 해. 그러면 새로운 세계수를 만들 씨앗이 필요하거든. 원래는 세계수에서 일부를 가져가서 하는 일이었지만, 세계수가 말라죽기 전에 뭔 수를 꾸몄는지 모르겠지만, 그 종자들마저 못 써먹게 했거든. 그래서 이게 가장 절실해.”

“흐음······.”

유선은 자신의 스태프를 보았다. 아무래도 마법을 쓸 메리트를 주는 스태프인데, 남 주기 아까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르넵토스는 그 세계수가 절실해 보였다.

“그리고 계약자가 이 스태프를 사용하려고 생각한다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거든.”

“무슨 의미야?”

“이건 마나가 한참 부족한 계약자의 생명력을 양분을 이용해 마나를 이용하거든. 위력이 센 마법을 사용하면, 할수록 계약자의 수명은 줄어들 거야.”

“······.”

유선은 자신이 들고 있는 스태프를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보았다. 그리고 유선은 루데릭을 슬쩍 옮겨 보며 물었다.

“맞는 말이다. 세상에는 대가 없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스태프도 마찬가지지.”

“허······.”

아르젤이 말한 마지막 주인이라는 의미가 어쩌면 이거일지도 몰랐다.

‘그래서였나?’

유선이 사용한 것도 하급 마법에 속하는 <라이트 토치>와 <홀리 실드> 그리고 아르젤이 영체 상태에서 사용한 마법 <매직 미사일>은 전부 마나 부담이 크지 않은 마법들이었다. 유선의 생명력에 조금만 지장이 있도록 하려는 배려였다.

결국 이건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는 말이었다. 짧고 굵게 살고 싶다면, 맞춤형이겠지만 유선은 지금 당장 짧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말이나 좀 해 줬으면 기대도 안 했을 것을······.”

조금 아르젤을 원망하는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다가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지금 당장 필요해?”

“씨앗을 만들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가지가 훼손되면 그거로 과연 씨앗을 만들지도 의문이고 해서······. 될 수 있으면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거든.”

오르넵토스는 절실해 보였다. 유선은 잠깐 자신의 스태프를 보다가 그녀에게 말했다.

“좋아.”

오르넵토스의 표정이 환하게 변하면서 동시에 메시지 창이 떴다.

-오르넵토스의 호감도가 올라갔습니다.

“고마······.”

“근데 먼저 해야 할 게 있어.”

유선은 오르넵토스가 잡으려던 순간 정확하게 도로 빼앗아 들었다. 주었다가 빼앗긴 오르넵토스가 심통이 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뭔데?”

“루데릭. 여기에 있는 기억들 있지?”

“그렇다.”

“전부 기록으로 옮겨 줄래?”

주어도 일단 빼낼 것들이 있으면 모두 빼내는 것이 중요했다. 유선도 분명히 가능하겠지만, 직접 쓰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예전에 루데릭이 문서 처리하는 것을 몇 번 봤기 때문에,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체감했다. 루데릭이라면 이 내용을 모조리 베끼고 이해시키는 데 충분할 것이다.

“흐음······, 이런 내용을 베낀다고 해서 주인이 이걸 알아본다는 보장은 없을 텐데, 그래도 원하는가?”

“괜히 놔두기는 아깝잖아. 그러니까 부탁할게. 네가 잘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그가 잘하는 일이라는 말에 귀가 한순간 팔랑거렸다. 팔짱을 끼고 시큰둥한 눈으로 보던 루데릭이 그의 손에 쥐어진 스태프를 들었다.

“알겠다. 특별히 주인이 읽도록 정리를 최대한 하도록 해 보지.”

루데릭은 당연히 유선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루데릭은 스태프를 쥐고 내용을 기록하려고 준비했다. 그의 등에서 네 개의 손이 뻗어져 나와 펜을 들었다. 그리고 스태프 안에 있는 내용을 빠르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사삭!

흘림체도 아니고 정자로 프린터처럼 써 내려갔다. 타자하는 것보다 더욱 빨라 보였다. 오르넵토스는 루데릭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히 자신에게는 소중한 세계수이기 때문에 루데릭을 감시하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

“야, 악마. 빨리빨리 써. 그리고 남은 세계수에다가 허튼수작 부리면 용서 안 한다.”

“정말 끈질긴 년이군. 세상을 지킬 때나 그리 끈질겨 보지 그랬냐?”

“아악, 시끄러워! 빨리 써!”

“말을 먼저 건 놈은 너다.”

서로 옥신각신하지만, 악마와 정령. 그사이에 빚어진 대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단순한 성격 차이로 인한 갈등일 뿐이었다. 예전처럼 서로가 정말로 죽이겠다는 살기까지는 아니었기에 유선은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친해지는 게 무리는 아니겠다.’

유선은 알았다. 그들의 감정이 어찌 됐든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

루데릭이 기록을 마치고, 오르넵토스가 세계수의 가지를 회수해 갔다. 수정구는 필요가 없었기에 떼어 내 유선에게 넘겨주었다. 세계수의 가지 같은 매개체가 없으면 쥘 때도 그저 단순한 구슬이지만, 스태프를 쥐면서 볼 마법들이 담긴 소중한 물건이었다. 유선은 꺼내 볼 날이 언젠간 있으리라 생각하며 그 수정구를 고이 모셔 두었다.

세계수의 가지를 회수해 간 오르넵토스는 기쁜 표정으로 자신의 몸 일부로 받아들였다. 가지를 이용해 다시 심을 씨앗을 만든다는데, 그 자세한 과정은 알려 주지 않았다.

그 씨앗을 만드는 과정을 위해서 며칠을 쉬어서 엘리멘탈 팀이 기습적인 평가 시험을 오르넵토스가 없을 때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장세는 확실히 보여서 루데릭도 별말을 꺼내지 않았다.

유선은 루데릭이 정리해 놓은 책들을 읽는 중이었다.

“흐음······.”

유선은 루데릭이 정리해 놓은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읽어 보지만,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었다. 루데릭이 가만히 책을 읽는 유선의 반응을 보며 물었다.

“최대한 주인에게 맞춰 봤는데, 그래도 어려운가?”

“하하······, 미안하다, 하나도 못 알아보겠네.”

이차 함수도 제대로 못 끝냈는데 적분으로 들어가는 급으로 난해한 문제였다. 유선은 루데릭에게 사과했다. 루데릭은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노력한 것과 비교해 아쉬운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가 없다. 애초에 주인이 평소에 마나를 느껴 보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마나를 조금 가진 수준이니, 이걸 이해하는 것도 무리지.”

“언젠간 이해할까?”

희망이 있는지 궁금한 유선이 그에게 묻자, 루데릭은 진지한 표정으로 깊게 생각했다. 대답하지 않았지만, 어렵다는 의사를 돌려서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책이 많네······.”

“요약하고 요약해서 최대한 압축시켜 놓은 결과다.”

족히 서른 권은 넘어 보이는 책들. 단순히 기록한 것이 아니라, 루데릭이 마법 계열별로 정리해서 묶어 놓았다. 그 안에는 주문과 수식, 그리고 마방진의 생김새를 모두 기록해 놓았다.

“정성을 많이 들였구나.”

“주인이 읽는 것이니, 당연하지 않겠나?”

증명하고 싶은 욕구로 이루어진 정성. 그래서 유선은 기쁜 한편, 미안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이 많은 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잠깐 생각했다.

“흐음······, 우리 회사에 마법사 클래스가 몇 명이 있지?”

“프레티스 팀에 2명, 그리고 엘리멘탈 팀에 1명, 정령술사까지 친다면 4명이고 총 6명이겠군.”

“우선 기본적으로 마나에 관한 책은 마법 클래스 전체한테 돌리고, 각자에게 맞는 클래스별로 마법 주문서 하나씩 배부해 줘.”

“남에게 베풀 생각이냐?”

루데릭은 못마땅한 듯한 눈이었다. 루데릭의 노력이 엉뚱한 곳으로 기울었다는 게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유선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하는 부탁이었다.

“가만히 두기는 아깝잖아. 거기다가 어차피 우리 회사 사람들인데, 전력을 키우려면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않겠어?”

“흐음······, 그렇군. 그렇게 하다 보면 파생되는 홍보 효과도 상당히 크겠어. 하지만 고위 마법급도 함부로 주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초급 마법들을 추슬러 나눠 주고, 수련을 시키는 쪽으로 해야겠고······.”

루데릭은 뭔가 좋은 생각이 들었는지, 섬뜩하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좋은 결과를 낼 것 같아.”

“덕분에. 주인에게 감사해야겠군.”

그렇게 말하고서는 자세한 내용도 알려 주지 않고, 기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열심히 계획을 실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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