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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느 마법사의 여정 (2) (6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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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어느 마법사의 여정 (2)

유선이 있는 곳은 자비의 여신인 페르아의 신전이라고 했다. 빛이 들어오면 어느 정도 밝게 건축된 구조였지만, 관리하지 않아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면서 빛이 들지 않아 복도가 어두컴컴했다.

“<라이트 토치>.”

유선은 능숙한 마법사처럼 스태프에서 작은 빛을 하나 띄웠다. 자신을 따라다니며 주변을 밝히는 하급 마법이었다.

“유선 님, 반짝거려.”

엘레노어는 허공에 반딧불이처럼 뜬 빛을 보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빛을 잡으려 바동바동했다. 라이트 토치에 정신이 팔린 사이, 아르젤이 조심스럽게 유선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저 아이는 대체 뭔가요? 힘이 얼마나 강하면, 이렇게 영체화한 제 몸도 날아가던데······ 궁금하네요.”

“······하하, 그냥 애입니다. 평범하게 힘센 애예요.”

드래곤이라고는 알려 주고 싶지가 않았다. 유선에게 악감정이 없다고 해도 이세계에 거주했던 사람에게 괜한 정보를 누설해서 엘레노어에게 약점을 만들기는 원치 않았다. 아르젤도 더는 묻지 않고, 신기하다는 듯이 라이트 토치를 잡으려 바동거리는 소녀를 가만히 관찰했다.

숨겨 둔 타일이나, 와이어 트랩 같은 함정들이 걱정됐지만, 신전인 만큼 불필요한 요소들은 복도에서 보이지 않았다. 안전하게 걷던 중, 그들은 양 갈림길을 맞이했다.

그러자 아르젤은 묻지도 않았는데, 재빠르게 그에게 알려 주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보고가 있어요. 아마 모험가님이 챙겨 갈 게 있을 수도 있죠!”

“흐음······.”

양 갈림길에 바로 보고가 있으니, 오른쪽으로 가는 게 정석이겠지만, 유선은 왼쪽 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왼쪽은 뭐가 있습니까?”

“왼쪽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다? 아르젤을 올려다보자, 그녀가 뭔가를 숨기려고 한 말임을 알았다.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그······ 네, 정말로! 아무것도 없어요! 없답니······드아······.”

뭔가 양심에 가책이 생겼는지, 말끝을 흐리면서 눈을 피했다. 유선은 추궁하려 들지 않고 대신 엘레노어를 돌아보며 말했다.

“엘레노어.”

“응!”

“어디로 가고 싶어?”

양 갈림길에 대한 선택권을 엘레노어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엘레노어가 고민하기 시작하더니 곧 한 곳을 가리켰다.

“오른쪽!”

······이라고 말을 했지만, 손은 왼쪽을 가리켰다.

“손이 가리키는 곳은 왼쪽인데?”

“응? 그러면 왼쪽!”

엘레노어의 선택에 따르자, 아르젤의 표정이 부끄러움에 가득 찬 듯한 표정이었다.

“으그으으······, 안 되는데······.”

“뭔가가 숨겨진 모양이군요.”

아르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네······, 그러니까 두 분이 들어가시고, 저는 여기서 남으면 안 될까요?”

“그건 좀 무리겠네요.”

라이트 토치가 유선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지팡이로 유지하는 마법이기 때문에 그녀의 요구에 승낙해 줄 수가 없었다. 아르젤은 어쩔 수 없이 유선을 따라 왼쪽 복도로 이동했다.

그 끝에 닿은 곳은 썩어 가는 나무 문짝이 자리 잡았다. 한때는 화려하게 조각된 나무문이었다는 듯이 곳곳에 깎인 흔적들이 보였다.

‘뭔가가 있다.’

문 너머에서 유선의 감지 범위에 들어오는 생명체가 있었다.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은 것이 딱 인간과 비슷한 사이즈였다. 인간의 형태라면 적어도 뭔가 이야기가 통하는 애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그 문에 손을 얹었다. 썩어 가는 나무문에 손을 얹자.

바스스슥.

쿠그극.

그 썩은 문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리며 안이 보였다. 적막한 공기가 감도는 것은 유적지를 들어올 때부터 느꼈지만, 유선은 문이 무너져 내리면서 이 적막함 속에서 음산한 기운이 있음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 너머에는 적이 있었다.

안에서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반겼다. 그들은 모두 자리에 앉은 채로 뭔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문이 부서지고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사실에 고개를 들었다.

붉은색 눈동자, 그리고 그 안광에 섬뜩하게 보이는 검은 오라. 그 누구도 이 기사들이 제정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숨기고 싶었던 것이 저것입니까?”

“아뇨. 저 사람들이 여기에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그녀는 유선보다 더 놀란 눈으로 그 기사들을 보았다. 그리고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페르아의 수호검이여······.”

붉은 안광을 번뜩이는 기사가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이 한 명씩 검을 뽑았다.

스르릉.

그들은 하나씩 다가오며 기도하듯 음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섬겨야 할 것들을 위하여······.

-절대자를 위하여······.

-우리 기사들을 위하여······.

그리고 그들이 재빠르게 달려왔다. 느릿했던 행동들이 한순간에 방심하게 하려는 전략이었다는 듯이 돌발적인 행동이었다.

“빤치!”

엘레노어는 세 명 기사 중 하나를 향해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투쾅!

상당히 강한 힘으로 갑옷이 터져 버리고 기사의 몸이 그대로 날아갔다. 기세는 좋았지만, 그녀에게는 한낱 미물밖에 되지 않는다는 듯이 밀려 나갔다. 그들이 달려들었던 것은 애초에 엘레노어를 노리고 덤벼든 것이 아니었다. 가장 약해 보이는 유선과 아르젤을 노리려 들었다.

“모험가님, 홀리 실드를 사용해 주세요!”

“<홀리 실드>!”

유선은 아르젤의 지시에 얼른 그 상황에 맞는 마법을 전개했다. 검게 물든 오라를 뿜으며 유선의 몸을 노리던 기사의 검이 유선이 펼친 장막에 막혔다.

끼기기긱!

가까스로 펼쳐진 검은 오라가 하얀 장막을 뚫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빠졌다. 기사들은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인지, 부들부들 떨면서 점점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버티는 것도 고작 해 봐야 몇 초뿐. 아르젤은 그 틈에 자신이 마법을 사용했다.

“<매직 미사일>!”

망령 상태의 아르젤이 마법을 사용했다. 파란색 마나 볼이 두 명을 덮쳤다. 파괴적이진 않았지만, 그 두 명을 떨어트리는 데는 성공적이었다.

“빤치!”

어차피 파괴는 엘레노어가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비틀거리는 기사의 몸을 치자, 같이 비틀거리던 기사마저 그 공격에 휩쓸려 벽으로 날아갔다.

상황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유선은 한순간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사들에게 깜짝 놀랐지만, 지팡이가 주는 지식과 아르젤의 지시에 다행히 안전하게 넘어갔다.

덜그럭덜그럭-.

엘레노어의 펀치에 직접 닿지 않는 몬스터가 아직 살아 있는지 붉은 안광을 내뿜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이미 모두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꿈틀거리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유선은 그 기사를 끝장내려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러자 그 기사의 머리에 뜨는 이미지를 보았다.

-속죄.

속죄라는 단어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유선은 무엇을 위한 속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르젤은 그 문구가 떠오르지 않았는데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그들을 가엾게 보았다.

“당신들은······ 그래도 여신의 자비로움을 져 버린 것에 고통스러워했군요.”

아르젤은 망령의 몸으로 그 기사에게 다가가 몸을 어루만지며 안아 주었다. 그러자 삐거덕거리면서 움직이려던 기사가 한순간 편안해졌는지, 움직임이 멎었다.

“내생에는 더 좋은 인연이 닿기를······.”

그녀의 속삭임과 동시에 검게 물든 오라가 정화되어 사라져 갔다. 부풀어 올라 위협적이던 근육이 긴장이 풀린 것처럼 줄어들기 시작했고, 줄어들다 못해, 형상을 유지하던 것이 삽시간에 부패하고 썩기 시작했다. 빠르게 부패한 시체는 갑옷과 뼈만 남긴 채로 재가 되어 모두 바람에 흩날아 갔다.

“······.”

유선은 은색 갑옷 안에 든 재 무더기 사이에 보이는 것을 집어 들었다. 코어였다. 다른 몬스터들과 다를 것 없는 코어였다.

“이것이 모두에게 파멸을 안겨 준 악의 씨앗이랍니다.”

아르젤이 그 코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 생명을 타락으로 이끌고, 인간들과 지성이 있는 신들의 세력들이 스스로 자멸하도록 만들어 냈지요.”

“자멸이라······.”

그런 비슷한 얘기를 오르넵토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모든 인간이 죽고, 엘프들은 자살했으며, 드워프들은 그대로 생매장되었다. 그 모든 것이 악마의 짓이라면서 루데릭을 비롯한 악마들을 증오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 코어라는 게 모두 악마가 뿌린 것이란 말이었다.

“저와 그 아이가 함께 이 악의 씨앗을 없애려고 움직였지만······. 결국 좋은 성적은 내지 못했죠.”

아르젤은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아이라는 것은 분명히 아르젤이 찾으려 했던 남자가 분명했다. 유선은 문득 그 아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 아이는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제가 말하는 그 아이는······ 올곧고, 불의에 참지 못하며, 누구보다 강직한 마음을 가진 아이입니다. 흔히들 ‘용사’라고 지칭하지만, 저는 그 아이가 용사로 보이지 않아요. 그저 선택받아 희생을 강요받은 불쌍한 아이로만 보였죠. 실제로도 한두 번 그 광경을 보았고요.”

아르젤은 씁쓸하게 그 존재에 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 희생을 강요받는 아이라면······. 아르젤 씨가 말하는 그 아이는 지금도 살아 있다고 생각하나요?”

아르젤은 그 대답에 미소 지으며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절망한다면 죽었을 것이고 희망을 찾는다면 살아 있을 거예요. 그 아이는 분명히 희망을 찾겠지요. 늘 그랬듯이 말이에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확신한다는 어투에 유선은 그가 살아 있길 바랄 뿐이었다. 아르젤은 망령의 몸으로 코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힘을 원하며 찌든 가여운 영혼들. 그 영혼들이 모두 무사히 이 땅을 떠나면 좋을 텐데······.”

아르젤은 슬퍼하며 중얼거렸지만, 그렇다고 마냥 슬픔에 잠기지 않았다. 그녀는 미소 지으며 그 슬픔을 털어 내었다. 익숙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 그러면 모험가님이 찾고 싶어 하는 보물을 찾아볼까요?”

아르젤은 다시 바깥으로 나가려는 것 같았다. 유선은 그 안에 뭔가 얻을 것이 없는지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에는 뭐 얻을 게 없습니까?”

“보시다시피 다 파괴되고, 흔적도 없어져서요. 원래도 얻을 게 없는 데 더 없어졌죠.”

부서진 파편과 녹슬어 문드러진 것들이 눈에 잡히니 그녀의 말이 사실인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갈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엘레노어가 안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다 유선에게 말했다.

“유선 님, 여기 그림 있어.”

“그림?”

“히끅!”

아르젤이 심하게 딸꾹질했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말에 라이트 토치를 그녀가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옮겼다. 그 초상화는 벽화들보다 관리가 잘 되었지만, 그래도 세월의 흔적에 여러 군데가 훼손되었다. 그래서인지 유선은 그 매력에 더욱 끌렸다.

‘미인이네.’

아름다운 여성. 고결하고, 순수하며, 화려했다. 하얀 예복에 장신구를 치렁치렁 달며 눈을 감은 채로 미소 지었다. 뭔가 성스러운 느낌이 강한 초상화였다. 아마 어떤 사람도 이 여자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고 여기는 그림이었다.

‘혹시······.’

유선은 아르젤이 부끄러워하는 이유가 이 초상화와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수수하고, 순수하기만 한 여인이었다. 그림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선은 그 큼지막한 초상화를 벽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천천히 그 그림을 액자에서 분리했다. 그 과정을 거치는 중, 아르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거 챙겨 가실 생각이세요?”

“네, 일단 이것도 전리품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네, 그렇죠. 그런 것도 분명······. 우으······.”

유선은 그 부끄러움의 의미가 정말로 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선은 그림을 조심스럽게 말아 구겨지지 않도록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챙기고 나서 아르젤은 얼른 이 자리를 뜨고 싶다는 듯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보고로 한 번 가 보죠!”

더는 볼일 없음을 확인하고, 유선은 오른쪽 길로 천천히 걸어갔다.

***

보고는 말 그대로 보물을 보관해 두는 창고였다. 그만큼 두꺼워 보이는 석문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유선이 그 문을 열려고 가까이 가자, 아르젤이 유선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멈추세요! 그 이상 다가가시면 안 돼요! 침입자들에게 반응해 잿더미로 만들어 버릴 전격 마법이 유선 님을 공격하려 들 거예요.”

그녀의 말에 유선은 손대려다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죠?”

“다 방법이 있답니다. 저만 믿으세요!”

아르젤은 자신만만하게 몸을 돌려 목청을 가다듬고는 문을 향해 외쳤다.

“리노스 페르아!”

하지만 그에 대해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아르젤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가는 것에 의아해하며 다시 한 번 더 외쳤다.

“어라? 리노스 페르아!”

하지만 그 외침으로 돌아오는 건 메아리뿐이었다.

“리노스 페르아! 리.노.스 페.르.아!”

“리노스 페르앙!”

엘레노어도 따라서 외쳐 보았다. 혹여나 자신의 발음이 형편없어서 그렇진 않은지, 음절을 끊어 가며 열심히 외쳐 보지만, 문은 반응하지 않았다. 유선은 아르젤이 정신없이 외치는 동안, 직접 걸어가 그 문에 손을 대었다.

끼익-.

예상대로 전격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굳게 닫혔으리라 믿었던 석문이 유선의 힘에 가볍게 돌아갔다.

“열리는데요?”

“네? 그럴 리가!”

아르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선은 힘을 실어 문을 완전히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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