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31. 어느 마법사의 여정 (1)
전에 했던 행동이 모두 오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왔다. 흐릿하던 형상이 점점 제 모습을 찾았고, 기괴하던 유령의 모습이 완전히 사람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전체적으로 순수한 이미지가 강한 외모에 로브를 입고 고깔모자를 썼다. 다만, 그녀의 몸이 전체적으로 반투명하고 푸른색으로만 이루어져, 굴곡이 명암으로만 이루어져 확실히 인간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성은 자신의 몸이 완전히 생성된 것을 보고 유선을 향해 허리 숙여 사과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제가 들떠서 그만 모험가님을 덮쳐드는 것처럼 보이고 말았네요.”
정말 그렇게 느낀 유선은 만약 생각을 읽는 능력이 없었으면, 정말로 적으로 간주했을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악의 없는 기쁨에 젖었기에, 적어도 이야기는 들어 보자는 생각에 그녀에게 물었다.
“기뻐하는 감정은 알겠는데······ 기뻐해서 왜 제게 달려들었습니까?”
“그게······ 옛날부터 기뻐하면 사람 한 명을 얼싸안고 방방 뛰는 버릇이 있었거든요. 그것 때문에 조심성이 없다고 꾸중을 좀 들은 적이 있는데 잘 고쳐지지 않네요, 헤헤······.”
여성은 바보처럼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뛰어든 것이 사실은 너무 기쁜 나머지 덮쳐들려 했다는 것이 상당히 믿음직스럽지 않았지만, 유선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귀신처럼 흐릿하고 말이 느리기에 저는 이성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왔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힘이 빠져 버려서 그만, 헤헤······.”
한 번 더 머리를 긁적거리며 민망하다는 듯이 사람 좋게 헤실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말하다가 여인이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제 소개를 먼저 해야겠네요. 제 이름은 ‘아르젤 디 페르아 로스첼’이라고 합니다. 보시다시피······ 음, 보이려나? 네, 로브를 입고 다니니까 마법사예요.”
망령이 된 상태로도 로브를 입었으니, 대충 마법사 계열이겠거니 하고 생각은 했다. 유선은 그녀의 소개에 엘레노어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이 애는 엘레노어이고요.”
“정유선······? 엘레노어라는 이름은 뭔가 익숙하긴 한데, 정유선이란 이름은 낯선 이름이네요.”
아르젤은 유선의 이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에서 왔거든요.”
“아, 그러시군요! 이세계에 오셨다! 어쩐지 머리카락 색이 검으시고, 외향이 조금 틀리다 생각했어요. 언젠가 한 번 예언으로 들은 적이 있긴 했는데 이렇게 제가 직접 만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아르젤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기뻐했다. 그렇게 기뻐하던 중, 아르젤은 ‘아차!’ 싶은지, 잡초가 무성한 안쪽을 둘러보다가 유선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정유선 모험가님, 혹시 한 남자애 못 보셨나요?”
“남자애 말입니까?”
그녀의 말에 감지 범위를 넓혀 한 번 더 찾아보았다. 하지만 뭔가 걸리는 건 아르젤뿐이었다.
“키가 아마 정유선 님이랑 조금 비슷하고, 머리는 금색에, 검을 차고 다니는 애인데······. 혹시 못 보셨나요?”
대충 그녀가 묘사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애초에 유선과 엘레노어가 만난 것은 골렘뿐이었고, 그나마 인간처럼 이야기할 건 아르젤뿐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남자애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애였다.
“네, 못 봤습니다. 설령 봤더라도······ 지금까지 아르젤 씨가 기억하는 그 모습일까요?”
“네? 아······ 그렇군요. 세월이 꽤 지났으니, 그분도 이젠 아이가 아닐 수도 있겠네요.”
아르젤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잡초가 무성한 주변에 시선을 던지면서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도 그녀는 미련이 남는 모양인지, 밖으로 아이를 혼자 보낸 엄마처럼 근심에 찬 표정으로 고민했다.
“그렇다면······ 어쩔 수가 없겠네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유선을 보며 그에게 부탁했다.
“그러면 모험가님, 저를 잠시나마 도와주시겠어요?”
“도와드리다니, 뭘······? 혹시 그 아이를 찾는 걸 도와달라는 말입니까?”
“아니에요! 그 아이가 죽었으면 찾기는 불가능하고, 만약 살아 있다 해도 이곳엔 없겠죠.”
붕 뜬 것과 다르게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유선은 도움을 요청하는 아르젤의 말에 힐끔 그녀의 머리 위에 뜬 문구를 보았다. 그녀의 의도는 정말로 순수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의도였다. 아르젤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이런 부탁을 드리는 건, 이곳은 페르아 여신님을 모시는 신전이기 때문이에요. 자비를 주시는 페르아 여신님의 신전인 만큼, 우리에게 자비가 닿았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어요. 세계를 멸망으로 인도할 거라는 필멸자로의 운명이 정말로 있는지, 한 번 더 묻고 싶어서 그렇답니다.”
짐작은 했지만, 정말로 신전이었다. 유선은 그녀가 말한 여신의 이름이 뭔가 걸리는 것 같았다. 어째 어비스에서 루데릭이 엘레노어에게 사용하라는 마법과 비슷한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엘레노어가 쓴 마법은 페르아라는 여신과 관련된 것일까?
“페르아······라······.”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아닙니다.”
유선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것을 얼버무렸다. 괜히 자기 생각을 말해서 엘레노어의 정체가 유출되는 건 막아야 했기에. 아르젤도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마음에 걸리는 것 하나를 중얼거렸다.
“어찌 됐든······ 도와주시겠어요?”
그녀의 부탁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유선은 어차피 엘레노어와 다니고, 어차피 탐사하려면 이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어디로 데려가 달라는 말은 이곳 구조를 잘 아시겠군요?”
“당연하죠! 혹시 정유선 모험가님······, 여기에 있는 유물들을 노리시나요?”
아르젤의 눈초리가 따갑게 느껴졌다. 탐욕스러운 면을 감춰야 하나 싶었지만, 유선은 그것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보상 심리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런 곳에 들어오면 그런 유물이 없을까 저도 궁금해요.”
“흐음, 되게 솔직하시네요······. 보통은 변명하느라 바쁠 텐데······. 그래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어차피 이곳은 폐허가 되었고, 하나의 유적지가 되었으니······ 그런 것은 기꺼이 제가 알려 드릴게요.”
아르젤은 협조적으로 나와 주었다. 그녀의 조건에 만족한 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부탁에 승낙해 주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러면 스태프를 집어 주세요!”
“······네?”
“아, 그, 그러니까! 염치없는 부탁이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지금 몸으로는 제 스태프를 잡을 수가 없어서······. 그렇지 않고선 움직일 수가 없어서요······.”
아르젤이 증명하려고 자신의 스태프를 만지려 해 보지만, 그녀의 손에는 닿지 않았다. 스태프에서 일정 범위 내에서 떨어질 수 없는 몸이었다.
“흐음······.”
단순히 도와주는 거면 해 주겠지만, 스태프를 직접 잡아야만 한다면 유선은 한 번 정도 의심을 해 볼 만한 제안이라 여겼다. 유선은 그녀에게 물었다.
“악의 같은 건 없죠?”
“네, 당연하죠!”
“막 제가 집는 순간 귀속된다거나 그런 저주도 없고요?”
“제가 왜 그런 마법을 부리겠어요! 정말 아무런 마법도 쓰지 않았으니까 믿어 주세요. 저는 그저 이동하고 싶어요, 모험가님!”
그녀는 버려진 강아지처럼 불쌍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정말로 어떤 악의가 없음을 확인하고 유선은 스태프를 집어 들었다. 그때, 한 가지 이변이 생기는 걸 느꼈다.
저주 따위가 아니었다. 말대로 스태프에는 저주 같은 게 걸리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주입되는 것이 느껴졌다.
“어라?”
룬 문자와 복잡한 수식, 그리고 익숙한 듯이 떠오르는 시동어. 유선은 마치 익숙하게 저장되었다는 듯이 떠오르는 문자들에 익숙함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것을 확인하려 유선은 능숙하게 스태프를 들며 말했다.
“<파이어볼>.”
화르륵!
유선이 시험 삼아 시동어 중 하나를 사용하자, 스태프의 끄트머리에서 마나가 모여 파이어볼 하나가 생겨났다. 유선은 그것을 이파리가 없는 바닥으로 쏘아 보내었다.
쾅!
나름대로 위력적인 파이어볼이 화르륵 타올라 터졌다. 유선은 자신이 생성해 낸 파이어볼인데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평소의 자신의 마나라면 꿈도 꾸지 못할 마법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펑펑!”
옆에 서 있던 엘레노어는 그 폭발을 보며 까르르 웃었다. 그토록 염원하면서 잊어버렸던 ‘펑펑’이 그제야 보였으니 기분이 좋았다. 아르젤은 유선이 만들어 낸 파이어볼을 보며 물었다.
“어라? 정유선 님, 마법사였나요? 마법사가 아닌 줄 알았는데······?”
“저, 마법사 아닌데······. 그냥 마법이 나왔네요.”
아르젤은 그 유선의 대답을 듣고는 경악했다.
“세상에! 그러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잡으니까 스태프에서 뭔가 기억이 막 흘러들어 오는데요?”
유선이 느낀 바로는 그랬다. 모든 지식을 익힌 것이 아니라, 주입한 것처럼 마구 흘러들어 와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유선은 그 과정에서 거칠 것도 없이 바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그 어떤 초보들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손쉽게 파이어볼을 생성했다.
“기억이 막 흘러들어 와요? 흐음······, 이상하네.”
보통은 그렇지 않다는 듯이 아르젤은 의아한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보통이면 마법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만 주인으로 인정하고 느낄 텐데, 정유선 님에게는 감지되는 마나도, 마법에 대한 재능도 그런 게 없는데도 느끼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네요.”
“······.”
아르젤이 마법에 재능이 없다고 콕 집어서 유선에게 말하자 유선은 표정이 미묘해졌다. 유선도 그 점은 충분히 느꼈기에 데미지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분 나쁜 게 없지 않았다.
‘<교감>에 의한 작용인가?’
마법에 재능이 없는데 이런 일이 있다면 이게 가장 유력했다. 스태프가 자신을 인정해 주었다는 것이니까. 유선은 스태프에 있는 능력이라는 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신기해 아르젤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흘러들어 오는 기억들은 대체 뭔가요? 난생처음 느껴 보고, 들어 본 능력인데.”
보통 마법사의 스태프에는 힘을 증폭시키거나 마나를 담아 교전 도중에 마나가 모자라지 않도록 보조 배터리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분 효과였다. 일부는 마법을 담아내 전투 보조를 돕는 스태프가 있지만, 이렇게 마법에 관한 기억을 전수한다는 스태프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다.
아르젤은 그것에 자랑스럽다는 듯이 줄줄이 말했다.
“제 스태프는 단순히 마나를 담는 것뿐만 아니라, 여태 익힌 마법 일부들을 기억하도록 세계수의 가지를 이용해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의식’이라는 게 조금 있어요. 그 의식을 유지해야 해서 모양은 좀 볼품없지만, 자격만 갖춘다면 아주 훌륭한 마법 지팡이가 되죠. 지금은 그 의식의 자리에 제가 들어가서 지금은 사라졌지만······ 뭐, 상관은 없을 거예요. 제가 그 지팡이의 첫 주인이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 줄 테니까요. 이제, 정유선 님이 두 번째 주인이겠네요. 그것도 잠깐이겠지만 말이에요.”
“그렇군요.”
아르젤이 끝말로 잠깐이라는 의미가 상당히 씁쓸하게 들려왔다. 그러다가 아르젤은 뭔가 깜빡했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들어 유선에게 경고했다.
“혹시나 하는 말인데, 스태프에 손을 놓으면 모든 마법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니까 알아 두세요.”
유선은 아르젤의 말에 시험 삼아 스태프에 손을 놓았다. 정말로 그가 느낀 마법에 관한 기억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쥐면 그 방대한 지식이 다시 주입되었다.
‘이건 거의 보조 배터리에 하드 같은 거구먼.’
그걸 연결할 것이 자격만 된다면, 대마법사로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완전한 지식 주입이 아니라 해도 확실히 좋은 스태프였다.
“그럼 정유선 모험가님! 이 여정을 함께하게 해 주셔서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아, 네······ 우리는 어디로 가면 되죠?”
“음······, 우선은 유물들이 있는 곳으로 가죠.”
아르젤이 먼저 제안했다. 원래는 유선이 먼저 해야 할 일을 아르젤이 제안한 것이 뭔가 당황스러웠다.
“보통은 제가 먼저 해야 할 제안 아닙니까?”
“이게 거래잖아요. 정유선 모험가님이 원하시는 유물들부터 찾고! 제가 찾는 장소로 가죠.”
아르젤은 상당히 정직하게 굴었다. 아르젤은 들뜬 목소리로 유선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모험가님! 이제 이동해 볼까요?”
“네, 가 보죠.”
그녀의 의도가 궁금하긴 했지만, 유선은 그걸 물어볼 새도 없이 모험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