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30. 유적지
큐앤 헌터 컴퍼니엔 세 개 공격대가 존재했다.
은퇴한 헌터인 쾌속의 이나현을 섭외해서 루키들을 교육하려고 만든 프레티스 팀.
정령왕을 중심으로 편성되어 정령술사들의 역량 발전과 기본적인 팀워크를 위해서 만들어진 엘리멘탈 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선과 엘레노어, 두 명이 함께 던전 공략을 하는 소수 정예 오리진 팀.
그중 으뜸은 당연히 오리진 팀이었다.
공략 주기는 평균 공격대들의 출격 횟수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그런데도 큐앤의 수입을 대부분 담당하는 효자 팀이었다. 효율 면에서도 뛰어나기 때문에 순이익 자체가 매우 커,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유선에게 몰려도 그 어떤 공격대들보다 많은 이익을 창출해 냈다.
그렇기에 유선이 꾸린 공격대는 그야말로 모든 기업이 바라는 우상이었다. 만약 주기까지 공격대의 출격 횟수가 비슷했다면, 순식간에 재벌로 등극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유선은 이제 돈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노는 것도 계속 놀기만 하면 지겨운 것처럼 엘레노어가 싫어하는데 굳이 이끌고 나가고 싶지 않은 데다 루데릭이 유선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돈이 계속해서 불어나기 때문이었다. 평소 검약하게 살아 사치 부릴 생각이 없어 돈은 계속해서 쌓여만 갔다.
그래서 생존형으로 시작했던 헌터 생활도 이젠 취미 생활과 다름없었다. 엘레노어는 그것을 공략이라 부르지 않고, 소풍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유선도 이젠 나들이로 생각하고 던전을 들어가는 수준이었다. A급 던전이든, S급 던전이든 이건 어디까지나 엘레노어의 스트레스 관리 차원에서 놀아 주는 격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짓도 서슴없이 했다.
유선은 자리를 깔고 가져온 장비를 이용해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엘레노어는 양념 냄새에 침을 꿀꺽 삼키며 기다렸다. 유선은 가만히 기다리는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소풍 오니까 좋아?”
“소풍 좋아! 나면도 좋아!”
라면을 먹는다는 게 좋은 것 같았다. 유선은 면이 모두 익은 것을 확인하고, 버너를 껐다.
“자, 먹자.”
“나면~!”
엘레노어는 포크를 들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유선도 젓가락을 집어넣어 면을 건져 먹기 시작했다.
코어가 빠져나간 골렘 더미 위에서 끓여 먹는 라면. 야외에서 먹는 것과 사뭇 달랐다. 매끈하게 다져진 돌덩이 위에 돗자리를 까니, 엉덩이가 아플 일이 없었다. 최고의 피크닉 자리였다.
‘보통 헌터들이라면 꿈도 못 꾸겠지.’
라면처럼 냄새가 나는 음식을 함부로 먹는 건 미친 행동이었다. 냄새를 최소화해서 적어도 식사만큼은 편하게 하도록, 물과 건식으로 최대한 해결을 보는 게 헌터들의 식사였다. 하지만 엘레노어는 달랐다. 그건 오히려 몬스터를 몰아오는 미끼나 다름없었다. 오라면 오는 대로 보내 버리면 되는 노릇이었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게키 역할을 해 주는 현태가 무전기를 통해 물었다. 아직은 마땅히 게키를 봐줄 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일단은 현태에게 맡긴 상황이었다.
“일단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입니다. 골렘 세 구만 정리했는데도, 코어 주머니가 빵빵하네요.”
-원래 골렘들이 공략 대상 중에 가장 어렵고 수익이 좋은 녀석이죠. 매직 클래스가 없으면, 정말 난공불락인 놈들이니까요. 물론 유선 씨에겐 해당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현태의 말에 유선은 골렘의 왼팔이 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오른팔과 다르게 흔적만 조금 남긴 채로 사라졌다. 라면을 다 먹을 무렵, 새로운 몬스터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구르르릉.
무겁고 또 다른 골렘이 등장했다. 냄새에 이끌릴 만한 몬스터는 아니었지만, 골렘 하나가 쓰러진 것을 느끼고 일대를 수색하러 온 모양이었다. 엘레노어가 부른 배를 만지다가, 골렘의 발소리에 유선에게 말했다.
“유선 님, 또 나왔어.”
“그러게. 엘레노어의 실력을 한번 보여 줄까?”
“응!”
엘레노어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일어나 커다란 골렘의 몸체에서 내려와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자잘한 나무들, 너머로 골렘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구르릉······.
골렘이 천천히 걸어오는 엘레노어를 보고는 고개를 내렸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눈이 엘레노어를 포착했다. 그리고 위험 분자임을 확인하고 커다란 바위 주먹을 위로 올려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엘레노어는 주먹을 꽉 말아 쥐면서 자신의 얼굴로 날아오는 커다란 주먹을 향해 외쳤다.
“빤-치!”
그리고 앙증맞은 주먹을 함께 내질렀다. 양쪽의 파괴적인 주먹이 닿자, 순간 일대의 공기가 터져 나가 매서운 돌풍을 만들어 냈다. 호각처럼 보이는 수였지만, 유선은 엘레노어의 승리임을 알았다.
지금 올라온 골렘의 오른팔도 그 작은 ‘빤치’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투쿵!
엘레노어의 파괴력이 돌덩이를 타고 진동하더니, 순식간에 골렘의 몸에 있던 모든 먼지가 날아갔다. 골렘을 제작할 당시처럼 매끈하게 다져 놓은 면이 드러났다.
쩌저적-.
그리고 갈라져 부서졌다. 마력으로 경도가 다이아 수준인 골렘이 메말라 가는 대지처럼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부서져 내렸다.
팔 한쪽을 잃은 골렘이 한순간 주춤거리며 균형을 회복하려 틈을 보였다. 그때, 엘레노어는 능숙하게 골렘의 몸으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가슴 부위의 바위 덮개를 부숴 버리고, 안에 담긴 골렘의 코어를 뽑아냈다. 골렘은 자신의 주 동력원을 잃고 그대로 멈춰 섰다.
엘레노어는 유선이 알려 준 공략 방법도 이제는 손쉽게 써먹었다.
“해치워써!”
상대를 KO 다운시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선수처럼 코어를 들어 보이며 유선에게 외쳤다. 유선은 해맑게 웃으며 기뻐하는 엘레노어를 보며 손뼉을 쳐 주었다.
“장하다! 역시 엘레노어야.”
“헤헤.”
엘레노어는 헤실 웃으면서 코어를 들고 유선에게 달려왔다. 그가 코어를 주머니에 넣는 동안, 코어가 빠졌던 골렘의 몸이 힘을 잃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쓰러졌다.
쿠궁!
육중한 소리가 울리면서 쓰러졌다. 그것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쩌저저적-.
“쩌적!”
하지만 그 후에도 뭔가가 부서져 가는 소리에 당황하고 말았다. 한 번이 아니라 연쇄적으로 울려왔다. 그것도 골렘이 쓰러진 곳을 중심으로 시작해 이곳으로 다가왔다.
어느 정도가 균열 소리가 퍼졌는가 싶었을 때,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그건 단순히 골렘이 있는 곳만이 아니라, 유선이 앉은 곳도 포함이었다.
“으아아악!”
유선은 갑작스러운 중력의 이끌림에 비명을 지르다가, 엘레노어를 보며 급하게 소리쳤다.
“엘! 날개, 날개!”
“응!”
펄럭!
유선의 말에 엘레노어의 작은 체구에 날개가 돋아났다. 몸 일부를 드래곤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하는 그녀의 능력이었다. 그녀가 유선의 양손을 붙잡고는 천천히 날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었고, 곧 중력에 이끌리는 감각이 사라졌다.
“괜찮아?”
“응, 덕분에 괜찮아.”
다리에 닿지 않는 게 상당히 거슬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았지만, 헌터의 몸으로도 골절은 피할 수 없었으리라.
-유선 씨, 괜찮으십니까? 잡음이 심합니다.
현태가 비명을 듣고는 얼른 연락을 주었다. 유선은 그것에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비명을 질렀네요.”
-무슨 일입니까?
“골렘이 쓰러지면서 바닥이 갑자기 꺼져 버렸습니다.”
장비는 어떻게 새로 사면 되는 노릇이지만, 수집해 놓은 코어들은 가치가 수억 이상이었다. 그 말은 도중에 통신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현태는 그의 말에 뭔가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밑바닥이 꺼졌습니까? 그것참 이상한 일이군요.
“네, 아무래도 밑이 흙더미가 아니라 동굴 같은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뭔가 누군가가 살았다는 흔적이 좀 보이네요.”
대충 보이는 것을 그대로 설명해 주자, 현태는 그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말대로라면 정말 좋은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입니까?”
-유선 씨가 있는 장소가 아마, 유적지인 것 같습니다.
유적지.
헌터들의 일 중에는 단순히 코어 수집뿐만 아니라, 난생처음 본 마법이 적힌 서적이나 인챈트가 걸린 무기 등을 얻어서 오는 예도 있었다. 마법서는 습득을 완료하면 거의 다 옥션으로 판매하는 식으로 이리저리 나돌아 다니고, 무기들은 돈이 아주 많은 A급 헌터 이상들이 경매를 통해서 얻곤 했다.
그런 것의 출처인 곳이 바로 유적지 던전이었다. 출현 확률도 높지 않고, 설령 출현했다고 해도 던전을 알아차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가끔 그 안에서 고대 서적이나, 무기를 발견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실제로 던전 속에 뭔가 유적의 냄새가 나면 그것을 파헤치려는 자들도 한둘이 아니죠. 일단 발굴만 해도 대박이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면 나가서 지원 요청해야 하나요? 대부분 유적지 같은 거 발견하면 자신들 불러서 함께 탐사하는 게 낫다고 그러던데······.”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유적지에 아주 큰 보물이 있다면, 그걸 얻는 여정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를 것이다.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 함정이 있을지 모르기에 걱정인 마음이었다. 현태는 그의 우려에 전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건 거의 다 익스플로러들이 꾸며 내는 말입니다. 위험한 함정들이 있을 수 있으니, 전문가에게 맡기라면서 거액의 돈을 뜯곤 하거든요. 뭐, 유선 씨가 원한다면 제가 불러 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어차피 유선 씨 안전을 보장해 주지도 않고, 차라리 엘레노어 양과 함께 가는 편이 나을 겁니다. 대부분은 함정들이 낡거나 해서 작동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전문가인 현태의 말이었다. 유선은 잠깐 생각하다가, 그에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보고는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걸 무전의 마지막으로 치고,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천천히 내려가자.”
“응.”
유선의 말에 엘레노어가 날갯짓을 하며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빛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뿐이지, 높이는 50m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골렘의 파편과 함께 올려놓은 가방을 발견했다. 당연하지만, 코어들은 무사했다. 유선은 플래시 라이트를 켜 무너진 바닥부터 살펴보았다.
‘여태 밟았던 게 설마 바닥이 아니라 천장이었을 줄이야.’
이끼와 잡초로 덮여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위에서 올려다보면 두꺼운 바위로 이어서 만들어 낸 아치가 보였다. 건물 내부도 이끼로 덮인 게 방치되어 문명의 흔적을 일부 지웠다. 그나마 남은 것이 천장을 받치는 기둥과 계단으로 삼는 돌이 남은 것 정도였다. 유선은 그 풍경을 보고 게임 속의 모험가가 된 것 같아 흥분했다.
‘뭔가 대박의 예감이 든다.’
전체적인 건축 양식과 구조가 이세계의 성당이나 교회 따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유선은 희귀한 마법서나 무기가 있으리란 생각에 흥분했다. 발견하면 그건 틀림없이 횡재를 얻은 것이었으니까.
그러던 중, 엘레노어가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유선 님, 뭔가 있어.”
“그렇지?”
유선도 느껴졌다. 희미하지만, 미약하게 생명의 존재감을 뿜는 것이 보였다. 벌레 같은 미물 같진 않았다. 유선은 플래시로 이리저리 비춰 보면서 그 생명을 찾아보려 했다.
자신의 <감지>로 흔적을 쫓아서 도착한 결과, 그들이 본 것은 스태프가 있는 곳이었다. 푸른 수정구가 박힌 나무 스태프였다.
“웬 스태프가 여기에 있······.”
그때였다. 유선의 몸에서 영혼이 통과한 것처럼 몸에 일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그 한기가 느껴짐과 무섭게 동굴을 울리는 목소리가 울렸다.
-모······.
스태프에서 소리가 났다. 그게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듯이 스태프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끝 부분에 달린 수정구 속에서 마나가 흘러나오더니.
-모······ 험······가다.
푸른색으로 흐릿한 형체가 만들어졌다. 유선은 그것이 망령임을 알았다. 손, 발, 얼굴 모든 것이 스크래치가 일어나는 브라운관 티브이처럼 일그러진 채로 다가왔다.
-모험가야!
그 망령이 몹시 들뜬 목소리로 이곳을 향해 날아왔다. 유선은 기괴한 형체가 순식간에 날린 몸에 당황해, 그 위협적인 소리에 몸을 숙이며 소리쳤다.
“엘!”
엘레노어가 앞장서서 덮쳐 오는 망령에게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형체가 없는 망령의 특성상, 단순한 물리 공격으로는 망령을 해치울 수는 없었지만.
“빤치!”
파-앙!
엘레노어에겐 그런 게 없었다. 마법을 덧씌우지도 않고 그저 물리적인 공격이지만, 형체가 없는 것도 닿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다.
-끼엑!
형체가 날아가더니 벽에 처박혔다. 엘레노어는 고개를 돌려 유선을 보며 말했다.
“해치워써!”
조금 겁먹었던 유선과 달리, 엘레노어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이 돌아보며 유선에게 말했다. 한순간 가슴을 졸이던 유선은 망령이 날아왔을 때, 보이는 감정을 순간 보고는 이상하다고 느꼈다.
-기쁨.
살의 같은 것도 아니고 기쁨? 그 망령은 왜 기뻐할까 생각했다.
-아으으윽······.
형체가 날아가 벽에 부딪혔지만, 그 위력적인 펀치에도 살아남았다. 얼굴과 팔 정도가 남은 채로 다시 일어나려 들었다. 엘레노어가 그것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빤······!”
아직 안 사라진 망령을 보고 다시 주먹을 쥐고, 망령에게 다시 달려들려 했다. 그런 엘레노어를 보고는 망령이 그에게 소리쳤다.
“히이익! 자자자자, 잠깐만요! 그거로 또 때리면 저 정말로 죽어요!”
몸 일부가 날아간 유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흐릿하게 잡혔던 형상도 완전히 여인의 모습으로 잡히면서 유선은 그녀가 악의가 없는 망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