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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견학 (2) (6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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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견학 (2)

정령술사의 낙원으로 불리는 이유는 구조 때문이었다.

보통 정령술사들은 다른 마법사들처럼 전승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욱 연줄이 크게 요구되었다.

마법의 전승 같은 경우에는 선배 마법사의 도움을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마법서를 통해서 얻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돈만 있다면, 마법서를 사서 직접 익히는 경우가 있어서 돈이 가장 큰 요소였다.

하지만 정령술사의 경우엔 달랐다. 서적이나 전승을 통해서 마법을 얻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마법을 얻었지만, 기본 요건만 갖춰지면 쓰는 마법과 달리, 정령술사는 마법을 사용해 정령을 소환하고 그 이후에 큰 고비를 느끼기 때문이었다.

정령은 야생에 길든 거친 면모와 폐쇄적인 집단에 소속되어 자존심이 강했다. 그래서 정령이 호감을 느낄 만큼 마나가 많지 않다면, 소환 후에도 신경 써 줘야 하는데, 그 비위를 맞추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단순한 인간의 심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심기를 거슬리면 그간 했던 재롱들도 한순간에 날려 버렸다.

그래서 보통 마법사와 다르게 연줄이 가장 중요시되었다. 선배 정령사의 도움이 아주 중요했다. 선배 정령사가 상급 정령을 다룰 경우에는 중급 이하의 정령을 복종시켰다. 중급의 경우에는 하급 정령을 복종시켰다. 물론 이건 선배 정령술사가 얼마나 상급 정령과 친한가에 따라서 또 달랐다. 한마디로 누구에게 붙는가에 따라서 계약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가가 다르다는 의미였다.

그런 상하 관계 속에서 정령왕의 존재는 신성과도 같았다. 모든 정령과 소통했으며, 소환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정유선 헌터와 관계도 좋았고, 정유선 헌터는 성격 자체가 좋았다. 그렇기에 이렇게 함께 헌터들을 돕는 일도 했다. 최상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외국인을 포함해 1천 명이 넘는 정령술사들이 큐앤 헌터 컴퍼니를 지원하는 일이 벌어졌다. 오르넵토스가 소환된 이후에는 얼마나 난감했는지, 기율은 뼈저리게 느꼈다. 개중에는 상급 능력자들도 있었지만, 가능성 위주로 보아서 루데릭과 함께 심사숙고해 거르고 걸러서 싹수가 보이는 세 명까지 걸러 내는 데 성공했다.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긴 했지만, 추가 모집은 규모가 좀 더 확장된 이후에 할 생각이었다.

같이 뽑았던 루데릭은 당연히 못마땅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열심히 뽑아 놨더니, 하는 것이라고는 오르넵토스의 옆에서 꿀 발라 놓은 소리나 해댔으니 말이다.

로브를 입은 사내 한 명이 슬쩍 오르넵토스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저기, 정령왕이시여. 제가 어제 아주 좋은 술에 대한 정보를 구해 왔는데······.”

“술?”

술이라는 말에 눈이 돌아가는 오르넵토스. 눈을 반짝거리는 오르넵토스에게 사진을 하나 보여 주었다.

“일본 명주 장인이 1년에 20병만 제작하는데······ 이게 맛이 그렇게 끝내준답니다.”

“어떤 맛? 어떤 맛이라는데?”

“말로 표현하자면······, 구름 위를 날아 하늘 속으로 녹아들어, 몸이 완전히 사라지고 자연으로 빠지는 황홀경을 볼 거랍니다. 제가 아무래도 그 술을 구할 것 같은데······.”

그 묘사에 빠진 오르넵토스가 눈이 뒤집히며 가슴을 쳤다.

“그래, 좋아! 말만 해! 그만한 술이라면 당연히 성의를 보인 만큼 대가를 주어야지! 누구랑 계약하고 싶어? 속성에 맞도록 내가 아주 잘해 줄 자신 있으니까! 아주 제대로 꽂아 줄게!”

“크읏! 감사합니다, 정령왕이시여!”

“이 비겁한 녀석! 정령왕님, 우리 집에는 묵혀 놓은 포도주가 있습니다, 술이 무슨 맛인지 제대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정령왕님, 저도 술을 좀 가지고 있는데······.”

너도나도 오르넵토스가 술을 좋아하는 것을 이용해서, 계약을 따내려고 생각했다. 루데릭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쯧 하고 찼다.

“뒷구멍을 핥는 꼬락서니가 가관이군 그래. 제힘으로는 정령 계약도 못 따내나?”

물론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좋은 분위기가 한순간에 깨지자, 오르넵토스가 루데릭을 보며 인상을 썼다.

“뭐 어때! 우리 때는 이런 거 다 했어! 좋은 물건을 제물로 바치면 당연히 그 좋은 대가를 주지 않겠어?”

“맞습니다, 정령왕 님!”

“우리 맞는 말만 하시는 정령왕 님!”

“오맞말의 대가이시여!”

가관이 아니었다. 루데릭은 심기가 거슬린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째려보았다. SS급 살기에 짓눌린 사내들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다물었다.

“거기 정령왕 똘마니들은 술을 미끼로 개수작 부릴 생각 말고, 결산이나 하러 빠져라. 기껏 회사에 들어왔는데,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고 싶으냐?”

“······.”

큐앤 헌터 컴퍼니의 실질적인 권력가인 루데릭의 지시에 정령술사들은 어쩔 수 없이 정령왕의 곁에서 떨어졌다. 오르넵토스는 상당히 불만이라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에이씨······, 하늘을 나는 듯한 술 좀 마시고 싶은데······.”

“직접 날면서 소주나 마셔서 해결해라. 이건 내가 알기로 주인이 제재한 거로 안다만. 그런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들었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선의 지시였다. 오르넵토스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강한 정령술사들이 좋은 술을 사다 바치는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수백짜리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제 분수에 맞지도 않는 수억이 넘는 명주로 승부를 보려는 과열 경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유선은 정령술사들에게 오르넵토스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고, 오르넵토스도 넙죽 받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다. 유선은 오르넵토스가 정령술사들이 어디까지나 능력에 맞는 정령들을 다루도록 서포트하게 지원해 주길 원했다.

최강의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오르넵토스였기 때문에 유선이 준 지침 사항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더 좋은 술을 마시고, 권력을 이용해서 인간들이 자신을 떠받들길 원하는 욕구가 없지 않았다. 오르넵토스는 불만을 품어 투덜거렸다.

“우리 계약자도 꽉 막혔다니까. 인간들이 어느 정도 융통성과 성의를 보이려 노력하면 그것에 걸맞은 대가를 주는 게 당연한데 말이야.”

“그럼 직접 따져라. 뭣 하면 내가 주인한테 말해 주랴?”

“크으! 치사하다, 치사해, 정말! 내 편은 없다니까!”

오르넵토스는 씩씩거리며, 냉장고에 든 작은 병 하나를 들고 휴게실 한 자리에 잡아 놓은 빈 화분 속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땅속에 발이 닿자, 뿌리를 내리며 그 안에 들어갔다. 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르넵토스는 병뚜껑을 따며 내용물을 들이켰다.

“크아! 라면 국물이라는 것도 괜찮지만, 이게 확실히 별미네, 별미. 인간들이 맛있는 건 잘 만들어서 좋아.”

그녀가 마시는 것은 액상 식물 영양제. 보통 나무들 몸에 주사하듯이 주입해 주는 물건으로 인간들이 마시면서 좋아할 만한 음료수는 아니었다. 다만 오르넵토스의 모습이 식물과 유사한 만큼 아주 좋아했다. 매일 마시면 스스로 질릴 걸 알기에, 던전 공략 후에만 마시는 음료수로 지정해 둬 자신에게 주는 상으로 썼다. 그렇게 화분 속에 뿌리를 내린 채로 한 병을 비우던 중, 손님이 왔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런데 뭐야, 이 인간들은? 새로 들어온 애들이야?”

긴장해서 어떤 말도 꺼내지 않던 두 명이 자신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자기소개를 했다.

“우, 우리는 정유선 헌터님의 후배인, 오도연이랑 남주혁이라고 합니다!”

오르넵토스는 그들의 소개에 조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엥? 계약자의 후배? 그럼 너희도 헌터라는 거 하네?”

“아, 아뇨. 우리는 아직 헌터 시험을 안 봐서 각성자는 아닙니다.”

“각성자가 아냐? 흐응, 그렇구먼. 어쩐지 마나가 안 느껴진다 했더니, 희대의 둔재들인 줄 알았는데, 그냥 싹도 안 난 씨앗이었단 말이지?”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직설적인 대답이었다. 만약 각성자였다면 정말로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오르넵토스는 자신의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각성자가 돼서 혹여나 마법이나 정령을 다루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라고. 조금의 재능이랑 성의를 보인다면 바로 도와줄 테니까. 계약자의 후배들이라면 더욱 잘해 줄게!”

자존심이 높다는 정령들. 그중의 왕인 오르넵토스가 베푸는 호의에 주혁은 못 믿겠다는 듯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래 주실 겁니까?”

“물론! 엘레노어와 계약자에게 호의를 품는다면 너희의 아군이야.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대답해 주지!”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오르넵토스의 말에 그들은 순간 흥분하고 말았다. 예정에 없던 정령술사의 꿈을 키우려던 중, 루데릭이 그 분위기를 초 쳤다.

“무시해도 된다. 각성자가 됐는데, 마법에 가망이 없으면 어쩌려는 생각인가? 자네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살게.”

공격적으로 나오는 루데릭을 보고는 오르넵토스가 질 수 없다는 듯이 둘에게 말했다.

“그래도 이런 간사하고 음흉한 악마 따위보다는 낫지. 정령들은 언제나 순수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저딴 년이랑 같이 있으면 잘 돌아가던 머리도 안 돌아간다고 느낄 거다. 차라리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편이 더욱 희망찬 미래가 달렸다고 판단한다.”

서로 디스전에 열이 점점 가해진다 싶더니 결국 불이 붙고 말았다.

“뭐? 이 망할 악마가. 어디 한번 해 보자고?”

오르넵토스의 주변이 살기로 가득해졌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이루던 붉은 나뭇잎들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어디 한번 해 보자면, 못 할 줄 아느냐, 정령 계집?”

그러자 루데릭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따라서 살기를 뿜어냈다. 오르넵토스가 먼저 시작한 공격에 대해 화해해도 그들의 성격과 종족의 대립이 일어나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 가운데 도연과 주혁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을 볼까 봐 마음만 졸였다.

그때였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와씀미다.”

도연과 주혁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어눌한 아이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자 놀라운 이변이 일어났다. 거짓말처럼 서로 죽이려 들었던 살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오르넵토스는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고, 루데릭도 아무 관계도 없다는 듯이 어딘가로 시선을 던졌다.

일촉즉발이었던 상황이 한순간에 무슨 일이냐는 듯이 행동하는 그들을 보며 어안이 벙벙했다. 그 상황을 모르는 유선은 급하게 오며, 도연과 주혁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다, 얘들아.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잠깐 자리를 비웠네.”

“네? 아, 아니에요, 선배. 우리도 뭐······.”

유선이 오자마자 이런 상황이 끝나 감사할 뿐이었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딴청 피우는 루데릭을 보며 물었다.

“루데릭이 같이 있어 주어?”

“주인이 간 동안 잠깐 말 좀 붙였다.”

“그래? 번거로웠을 텐데, 고맙다.”

유선이 미소 지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루데릭이 그 표정을 보고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주인도 왔으니, 나는 가 봐야겠군. 저놈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으니.”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기율의 자리로 발을 옮겼다. 유선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해 크게 아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유선은 숨을 돌리고는 들고 온 코어 주머니를 어깨에서 풀어내며 엘레노어에게 건네주었다.

“엘레노어, 이거 가져다주고 와 줄래? 누구한테 주는지는 알지?”

“응!”

엘레노어는 코어 주머니를 들고 감정하는 직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유선은 외투를 벗고 옷걸이에 걸면서, 오르넵토스가 돌아온 것을 보고 그녀에게도 관심을 주었다.

“오르넵토스도 돌아왔구나? 공략은 괜찮았어?”

“당연하지, 계약자. 내가 있는데 식은 죽 먹기 아니겠어?”

평소의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때? 애들 보니까 잘할 것 같아?”

“아직은 시원치 않지만, 그래도 인품이 다 반듯한 애들이니까. 괜찮아질 것 같아! 맡겨만 줘.”

인품이 반듯한 애들이라는 말에, 주혁과 도연은 정령술사들이 오르넵토스를 술로 유혹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오르넵토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술 같은 거 받으면 안 된다!”

“우, 알았어! 안 받는다니까!”

오르넵토스가 툴툴거리며 고개를 휙 돌렸다. 제멋대로 굴 것처럼 행동하던 오르넵토스가 유선 앞에서는 힘을 못 쓰는 게 놀라웠다. 유선이 반대편 소파에 앉아 주혁과 도연을 보며 물었다.

“회사 보니까 어때? 좀 난잡하지?”

그의 물음에 도연과 주혁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이 느낀 것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선배.”

“응?”

그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선을 우러러보면서 말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저도요.”

유선에 대한 안 좋은 소문도 물론 있었다. S급 헌터지만, 실제 능력치는 F 등급밖에 되지 않는 헌터. 그렇기에 너무 과하게 평가되지 않나 가끔 의문을 제시해 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도연과 주혁은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 소문이었는가를 깨달았다. 정령왕과 SS급 악마가 싸우려는 것을 등장한 것만으로도 무산시켜 버리는 존재감에 세 명을 아주 잘 다루는 걸 보면 유선의 능력은 절대로 과대평가되지 않았다.

“응? 갑자기 웬 존경이야?”

유선은 그들의 갑작스러운 칭찬에 당황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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