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29. 견학 (1)
“여기가 맞아?”
“선배가 보낸 문자는 이쪽이 맞는데?”
두 남녀가 휴대폰에 저장해 둔 지도 사진을 펼쳐 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도연과 남주혁! 헌터 지망생으로 유선의 후배로, 현재 시험 준비를 했다. 몇 달 뒤면 시험이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지만, 그들이 그런 것을 감수하고도 나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자신들이 존경하는 선배, 정유선의 부름이었다. 시험공부에 어려움을 겪어, 가장 가까운 선배이자, 헌터인 정유선에게 가끔 조언 차 연락하곤 했다. 유선은 그들에게 조언하는 것을 아끼지 않았고, 그렇게 말하다가 유선이 그들에게 제안했다.
-우리 회사 한번 견학해 볼래? 지망생이니까 헌터들이 어떤 건지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데······.
미리 한 번 정도 견학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초대였다.
국가 재앙급 던전을 완전히 없애 버리고, 악마에 이어서 정령왕과의 계약도 손쉽게 마친 희대의 인물! 헌터에 관심이 없던 같은 과 학생들도 술자리에서 정유선을 언급할 때, 같은 학과에 다닌 선배라며 소속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던 사람들마저 이야기 속에 MSG를 뿌리며 언급하곤 했다.
그런 인물이 자신들을 소속 회사로 초대했는데, 공부가 지금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들은 얼른 답장으로 가겠다는 문자를 던졌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외곽으로 나와서 길을 찾는다고 헤매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이런 외곽 지역에 과연 회사가 있나 싶었다.
“선배 정도면 서울 중심부에서 일할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큐앤, 유명한 데잖아. 왜 이런 곳에다가 자리 잡았어?”
주혁과 도연은 없잖아 실망감이 들었다. 그렇게 걷다가, 그들은 큐앤 헌터 컴퍼니의 간판을 찾았다. 그들은 생각보다 더 허름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 S급 헌터 회사가 고작 이런 곳이라고? 큐앤 헌터 컴퍼니가 신생 회사라고 들었지만, 이만한 규모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건물을 살짝 올려보다가 그들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검은 벤 두 대와 회사 앞에는 헌터들의 무기로 무장한 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여성 한 명이 서 있었다. 느껴지는 기로 그 공격대의 대장임을 알았다. 던전 공략을 하기 전, 모아 놓고 주의 사항을 한 번 더 상기해 줄 생각이었다. 그 여인은 특유의 활발한 목소리로 자신의 팀원들에게 말했다.
“너희 등급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걸 항상 인지하기 바랄게. 중요한 건 언제나 흔들림 없는 팀워크! 그걸 기반으로 우리는 던전을 공략해 나갈 거고, 역량에 닿는다면 더욱 어려운 것도 도전할 생각이니까. 너희는 항상 그런 모험가 정신을 가져야 해! 알겠지?”
“넵!”
헌터들은 패기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마음에 들었는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도연은 슬쩍 그녀의 가슴에 끼워진 명찰을 보았다. 그녀의 이름은 ‘이나현’이었다.
“이나현? 어디서 들어 봤는데, 유명한 사람이었던가?”
“몰라.”
쾌속의 이나현으로 예전에는 유명세가 조금 있었지만, 그들에겐 아리송한 이름이었다. 세대가 교체되면서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에 지금은 유명한 헌터는 아니었다. 그저 큐앤 소속인 헌터라고만 생각하며, 그들은 회사에 들어가려고 발을 옮겼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헌터 컴퍼니는 일반인이 함부로 들어가시면 안 돼요.”
나현이 아무 말도 없이 위층 계단으로 오르려는 두 명을 보고 말했다. 한순간 자신들이 무단 침입을 시도한 사람처럼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는 정유선 선······ 아니, 헌터님이 초대하셔서 왔는데요.”
도연이 정유선에 대한 호칭을 정정하며 나현에게 방문 목적을 말해 주었다.
“유선 씨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일반인 2명이 온다고는 했구나. 그러면 그냥 올라가시면 돼요. 갑자기 붙잡아서 미안해요.”
유선의 지인이라는 말에 그들이 올라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유선의 지인이라는 말에 나현이 이끄는 공격대원들의 시선이 갑자기 달라졌다. 부러운 눈길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시선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여겼는데, 현직 헌터들에게도 그런 시선을 받으니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었다. 그런 기분을 안은 채로 그들은 큐앤의 문 앞에 섰다.
주혁은 유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휴대폰이 꺼졌다는 소리만 들릴 뿐, 그들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 받아?”
“응, 이상하네······ 전화기를 꺼 놓으셨어.”
그냥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나 생각했다. 안에서 기다리던 한 남자가 소리를 들었는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혹시 유선 형님······ 아니, 헌터님의 후배입니까?”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유선이 아닌 하얀 정장을 입은 남자였다. 주혁은 그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아, 그렇군요. 환영합니다. 큐앤 헌터 컴퍼니의 대표 이사, 차기율입니다.”
그들을 손수 맞이해 준 사람이 바로 사장이었다. 도연과 주혁은 설마 사장, 큐앤 기업의 아들이 직접 일어나서 자신들을 맞이해 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해 당황하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십늬콰!”
주혁은 그만 자신의 혀를 깨물고 말았다. 기율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소파로 안내했다.
“하하,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여기 앉으시지요.”
사장의 안내를 받으며 최고급 소파에 앉았다. 진중한 회사 전체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유아답게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누가 읽는지 모르겠지만 동화책이 꽂힌 책장도 있었다.
“오신다고 들었습니다만······ 지금 정유선 헌터님은 급하게 일어난 중요한 일 때문에 아무래도 자리를 비우셔서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기율은 손수 커피를 타서 그들에게 건넸다.
“아, 괜찮습니다! 이렇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평소 동경하는 회사 자체와는 달랐지만, 분주한 직장인들의 상황이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멋져 보였다. 빽빽하게 채워진 자리와 자리에서 열심히 문서를 작성하는 직원, 헌터들의 무기와 코어 품질을 체크하는 직원······. 헌터로서의 일을 직접 보지는 않지만, 이런 분위기 자체가 그들을 흥분시켰다. 기율은 사회 초년생에 접어드는 새내기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아직 우리 회사 규모가 작아서 헌터 팀은 세 팀만 운영 중입니다. 지금은 전부 던전 공략하러 나간 탓에, 황량한데······. 아, 하나는 밖에서 아마 마주쳤을지도 모르겠군요. 이나현 씨의 공격대가 그중 하나이지요.”
“아, 네, 봤습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여성 공격대장과 대원들. 그들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우리 회사가 신생인 데다, 대부분이 던전 경험이 적은 루키들로 이루어져서 던전 공략 자체 난이도도 현저히 낮게 잡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번 헌터 시험 결과가 나오고, 우리 회사로 오시면 공격대에 바로 합류해 헌터로서 바로 활동하실 겁니다. 그러니 우리 회사로 오실 의향이 있으십니까?”
“네, 무조건 오겠습니다!”
주혁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조건은 필요 없었다. 어차피 정유선이라는 연줄이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었다. 기율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 지었다.
“하하, 여러분의 혈기 왕성한 모습이 좋군요, 하하.”
사장답게 근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차기율이 그렇게 사장의 여유를 풍기려던 순간.
“차기율 사장.”
“넵!”
반전이 일어났다. 어린 목소리가 기율의 이름을 부르자, 빠릿빠릿한 신병처럼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린 곳은 사장 자리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흑발의 소년이 앉아 있었다. 소년은 차기율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이리 와 보게.”
“넵!”
기율은 빠른 걸음으로 거슬리지 않게 그 소년의 옆으로 갔다. 도연과 주혁은 태도가 확 달라진 모습에 당황하고 말았다. 소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키보드로 타자하면서 기율에게 물었다.
“내가 분명히 이것에 대해서 한 번 설명해 주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네? 이거 말입니까?”
기율은 소년이 말한 부분을 보았다. 그걸 보자, 어떤 생각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 것 같아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 부분은 제가 융통성을 발휘해서 조금 수치를······.”
“아직 기본도 제대로 안 된 놈이 무슨 융통성인가? 아직 기업 기반도 제대로 안 다져졌는데, 벌써 허튼수작을 부리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을 텐데?”
소년은 기율을 노려보았다. 말 안 듣는 학생을 보는 듯한 얼굴이었다. 루데릭은 한숨지으며 기율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자네의 일 처리를 보면 내가 속이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만약 내 주인이 없었더라면 진즉 포기했을 거야. 아는가?”
“죄, 죄송합니다!”
“그놈의 인간 사랑은 왜 그리 좋아하는지 모르겠군. 이런 회사 말고 좀 더 번듯한 곳도 많거늘. 우리 주인은 이래서 문제라니까.”
“노답이라 죄송합니다, 커흑!”
기율은 울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깍듯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에 소년은 자리에서 나오며 그의 등을 툭툭 쳤다.
“다시 하게. 또 수지가 안 맞는다고 네 아비나 형제들처럼 꼼수 부리면 그때는 알아서 하고.”
기율은 쩔쩔매는 표정을 지으며 소년이 나온 자리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근엄한 사장은 온데간데없고 말단 직원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도연과 주혁은 난생처음 보는 상황에 놀라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다.
‘뭐야, 저 애?’
‘사장을 저렇게 쩔쩔매게 해?’
어린 모습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은 그 아이의 성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소년이라기엔 너무 예쁘고, 소녀라기엔 너무 날렵해 보였다. 그 어느 성별도 아닌 듯한 중성적인 미성까지 더해지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그 아이는 도연과 주혁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멀리서 볼 때는 몰랐지만, 점점 가까워지자 그의 몸에서 풍겨 오는 카리스마가 그들을 억누름을 느꼈다. 단순한 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자네들이 주인의 후배들인가?”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주인이라는 말에 그 소년의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했다. 그가 바로 유선이 테이밍해 낸 사역수 발록이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SS급이었구나!’
‘기가 진짜 남다르네.’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존경스럽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루데릭의 진지했던 눈이 호기심에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구먼.”
루데릭은 두 사람에게서 뭔가 흥미를 느꼈는지, 반대쪽 소파에 앉으며 그들을 보았다. 루데릭은 여유로운 듯 보였지만, 그 모습으로 감출 수 없는 성급함이 엿보였다.
“자네들이 후배라면, 우리 주인의 학교생활에 대해서 말해 주겠나?”
“네······?”
그의 요구가 상당히 예상치 못한 쪽이어서 당황하고 말았다. 루데릭은 곤란하다는 듯이 그들에게 이유를 말해 주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주인의 학교생활만큼은 제대로 보이지 않더군. 그래서 자네들처럼 가까운 지인이 아니면 소식을 접할 수가 없다고 여겨서 말이지. 그러니 알려 주게.”
유선의 소식이 인터넷에 떠돌지 않는 이유는 당연했다. 유선이 SNS를 하나, 눈에 띄기를 좋아하나······ 학교 수업을 마치면, 틈틈이 아르바이트하고 열심히 헌터 시험을 준비하는 게 일상이었다. 최근 들어서 유명세를 치러, 이야기가 몇 개 나오긴 했지만, 모두 자기 과시를 하고 싶은 이들의 허풍에 지나지 않았다. 유선은 정말로 충실한 대학교 생활을 마쳤던 남자라 정보가 적었다.
주혁은 별것도 아닌 이야기뿐이기에 그 기대감을 충족시킬지 몰랐다.
“정말 별거 없는 생활을 보내셨는데, 그렇게 사소한 게 중요하십니까?”
“별로 안 중요해 보이지만, 내게는 무엇보다 정보이니, 내게는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네. 그러니 알려 주겠나?”
그저 아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듯이 말했다. 주혁이 유선에 대한 별거 없는 이야기를 하려던 찰나, 시끄럽게 떠들며 올라오는 것이 들렸다. 루데릭이 다 된 밥에 코 빠진 걸 보고 혀를 쯧 하고 차며 중얼거렸다.
“그 망할 년은 돌아오는 길에도 시끄럽게 구는군.”
그 망할 년? 도연과 주혁은 거친 호칭에 놀라 문 쪽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왁자지껄한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좋았습니다, 오르넵토스 님!”
“오르넵토스 님의 능력을 보고 저는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로브를 입은 사내들이 꼬맹이를 둘러싸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린 황제와 그 주변을 감싸는 간신배의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소녀의 형상을 취하는 정령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당연하지! 이 몸이 함께 갔는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 뭐가 있겠어?”
“크으······. 과연! 정령들의 왕이십니다!”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 충성!”
“아하하하!”
오르넵토스는 의기 충만해진 얼굴로 콧대를 세웠다. 도연과 주혁은 또 다른 거물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큐앤 헌터 컴퍼니의 또 다른 별명, ‘정령술사의 낙원.’
그 별명을 만든 존재가 눈앞에 등장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