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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주인의 복수는 악마가 (5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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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주인의 복수는 악마가

정도는 그 말에 잠시 망설였다. 정유선은 보잘것없는 인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옆에 붙어 다니는 꼬마는 아니었다. 그녀는 드래곤. 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는 드래곤이었다.

그는 아무리 적대심이 강해도 그들을 이길 방법은 없었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불가능할 것이다.

-방법은 있어.

방법. 정유선에게 복수하는 방법! 그 소리에 절망에 빠지려는 정도를 다시 한 번 더 깨워 주었다.

“그게 뭔데?”

-알잖아, 너도?

나도 알아? 미지의 목소리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가장 빠르게 강해지는 방법. 그런데 아무도 안 쓰는 방법.

그리고 위험 부담이 큰 방법. 그녀의 속삭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조금은 짐작했다.

-강화 인간 프로젝트.

코어를 이용해서 강화 인간을 만들려던 프로젝트. 단순한 각성자가 아닌, 각성 그 이상의 인간을 만드는 일을 말이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헌터 협회에서는 그 비정상적인 프로젝트를 금지하였고, 강화 인간 프로젝트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니, 유니콘은 아니었다.

단순히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을 정도로 준법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은 없었다. 강해지고 돈이 되는 일이라면 절대로 서슴지 않을 이들뿐이었다. 윤정도는 그 사실을 잘 알았다. 정도는 일어나 그 목소리에 이끌려 바리케이드를 친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걸 이용해 보자.

***

늦은 밤, 유니콘 본사. 헌터들이 다니는 회사인 만큼 경비도 헌터들이 섰다. 던전을 돌지 않는, 돈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하급 각성자들이 주야 교대로 경비를 서는 구조였다.

그들이 당연히 경비 일을 감수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2, 3년 차가 되면 그때부터 헌터로 인정받아 던전에 투입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한 관습으로 여기며 그런 일도 감수했다.

“어우 씨······, 졸려.”

“지긋지긋한 경비 생활······. 우리는 언제 던전을 돌아보냐?”

“지금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 지금 유니콘 완전히 하락세야.”

“단순한 언플이니까 동요하지 말라던데······. 어떻게 하지?”

“조만간 다른 회사로 옮겨야지. 중소기업으로······.”

“유니콘이 이미지가 안 좋아졌는데, 경력에 지장 없겠지?”

“그래도 출근 일수는 채우고 나와야지. 그리고 부정부패에 찌든 이미지가 너무나도 싫어서 나왔습니다! 라고 딱 해 주면 면접관들이 넘어올 거야.”

“그러면 뭐 해. 어차피 유망주도 아닌데, 그러려니 하겠지.”

사내들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며 말했다. 유니콘이 한창 망조가 드는 중이었기에, 이직을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건수를 잡히지 않으려 해외로 도주하는 헌터나 간부들을 보면, 아직 새내기들도 동조해서 다른 회사를 알아보았다.

“응?”

늘 서던 경비 시간의 지루함 속에 누군가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후드티를 눌러쓴 채 오는 폼이 낯설어 경비가 경고하러 발을 옮겼다.

“죄송하지만, 이 시간 이후로 외부인이 들어오시면······ 어라? 윤정도 헌터님 아닙니까?”

최근에 연락이 두절되고, 집에서 나오지 않아 행방이 묘연해진 인물이었다. 평소에 정장을 입고 다니는 사내가 늦은 밤, 후드를 눌러쓴 채로 다가왔다. 윤정도는 앞길을 가로막는 경비에게 말했다.

“비켜.”

“네? 아, 안 됩니다, 선배님! 우리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여기에 출입하는 이들을 모두······.”

푸욱-.

정도는 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내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그의 목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단검을 뽑아내자, 사내의 목에서는 피 분수가 뿜어졌다.

“커, 커어어······.”

“으, 으아아······.”

칼에 맞은 것을 보고 당황한 경비 한 명이 재빠르게 경보를 울리러 가 보았지만, 정도의 속도를 따돌릴 만큼 민첩하지 않았다. 빠르게 접근한 정도는 그의 다리를 걸고 넘어트려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찍었다. 단순히 기절시키려는 행동이 아니었다.

퍽-퍽- 퍽-.

피가 흥건하게 쏟아 내릴 때까지, 미친 듯이 내리찍었다.

-그 정도면 됐어.

“······.”

머리뼈가 박살 나 얼굴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지속했다가 목소리에 멈췄다. 정도는 그 경비의 머리를 내려놓고 다시 일어나 걸어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위와 아래, 두 개 중 어느 것을 눌러야 하지?

-지하 1층이야.

목소리에 이끌려 아래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정도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고요함에 젖다가 다시 문이 열렸다. 하얀색 방. ‘코어 에너지 연구소’라는 간판이 적혔다. 늦은 밤이었기에, 조명은 최소화되었고, 사람이 있는 방에만 환한 빛이 새어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지하에 온 소리를 듣고, 연구하던 연구원 중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엘리베이터에서 걸어오는 사내를 보고는 연구원이 그에게 물었다.

“윤정도 헌터님, 여기는 어떻게······.”

정도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정도는 피 묻은 단검으로 다시 한 번 더 연구원의 목을 찔렀다.

“커억······ 컥······.”

연구원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숨통이 끊어졌다. 정도는 확실히 죽은 것을 확인하고 부나방처럼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윤정도 헌······.”

“피······?”

윤정도를 본 연구원들은 모두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를 이루는 모든 것이 신변을 위협했다.

비정상적으로 옷에 묻은 피, 얼굴, 그리고 단검······. 악마처럼 광기에 젖은 미소. 정도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듯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무감각해진 살인, 마치 몬스터를 죽이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고, 어설픔도 없었다. 정도는 광기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살아 있다면 피를 보고, 피를 보면, 새로운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이 없으면 그거로라도 주체할 수 없는 광기를 해결했다.

-이제 됐어.

만약 미지의 목소리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시체를 해체하던 광기가 한순간에 차분해지며 그 자리에 섰다. 정도는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인지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그것을 찾았다.

그리고 찾아냈다. 그들이 관찰하고 활용 방안을 찾는 소형 코어. 작은 소형 코어는 고작 해 봐야 수백인 쓰레기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돈으로 이야기할 때뿐이었다.

이것은 야생에서 발견해 온 코어와 다른 개발 중인 코어였다. 인간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에너지를 모두 빼내어 각성자의 몸에 맞게 만든 코어였다. 모르모트로 삼을 각성자가 없어서 지금도 그 안전성을 시험하진 못했다. A급인 윤정도도 그걸 이길지는 몰랐다. 미지의 목소리가 그 코어를 보는 정도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 그걸 먹어.

“이걸······.”

-왜인지는 알잖아?

새로운 힘, 더 강한 힘, 드래곤마저 뛰어넘어 방해되는 그 녀석을 죽일 힘!

-그걸 너의 새로운 모습으로 인도할 거야. 인간으로서 한계를 극복하는 거야.

새로운 모습. 그 속삭임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정도는 코어를 그대로 삼켰다. 반응은 바로 일어났다. 위액에 닿는 순간 위장부터 시작해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용암처럼 뜨거운 감각이 전신을 이루는 신경이 되어 갔다.

“으으······!”

뜨거웠지만 그것은 고통이 아니었다. 몸을 새로 구축하는 느낌이었다. 모든 부정적인 호르몬이 증발하는 대신 쾌락의 호르몬만 남아 온몸을 돌았다.

“으하하하핫! 으하하하!”

쾌락을 주체하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압도적으로 상승하는 힘! 민첩! 그리고 체력! 모든 것이 느껴졌다.

“크하하하······ 크하······. 크르르······.”

그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점점 짐승의 목소리로 변했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느꼈다. 기분이 미치도록 좋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그 좋은 기분을 거스르고 싶었다.

“어떤가? 지금 자네의 모습은? 힘을 얻은 것 같나?”

아무도 남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 연구소에서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왔다. 정도가 고개를 돌려 보자, 검은 형체의 소년이 미소 지었다.

“크르르, 너는······.”

이성이 아직 남은 정도는 그 소년이 누군지 알았다. 정유선을 죽이고, 엘레노어를 지배하려 들다가 실패하여 도망쳤을 때, 보았던 소년이었다. 게이트 앞에 서서 스쳐 지나가면서 본 적이 있었다. 정유선의 사역수 중 하나인 루데릭이었다.

이성이 붕괴해 가는 느낌에 괴로워하며 그를 보며 물었다.

“어, 어떻게······.”

이곳에 있는가? 루데릭은 물음이 끝나지 않았지만 대답해 주었다.

“어떻게는.”

-이렇게.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그제야 알았다. 이 소년이 여태 자신을 유혹하고, 이런 사단이 일어나게끔 유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처음부터 따라다닌다고 여긴 것은 드래곤이 아니었다. 이 소년이었다.

엘레노어가 폭주할 당시, 급하게 이계의 틈에서 나온 윤정도를 볼 때부터 냄새를 맡아 조금이라도 사람의 형태로 남으려고 남겨 놓은 마나를 써서 미리 머리에 수작을 부려 놓았다.

결과가 이렇게 좋게 이끌 줄은 루데릭도 마법을 걸기 전까진 몰랐다.

“고맙네. 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지. 이런 장대한 계획도 자네 덕분에 모두 세웠으니 말이야.”

루데릭이 생각한 정도는 유니콘 몰락에 주요 말 중 하나가 되었다. 이효승으로 인한 사건에 혼란스러울 때, 한 번 더 터트려 버려 투자자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하고, 가망이 없도록 여기게 한 것. 그 역할을 윤정도가 맡게 하여 일을 확실하게 해 주었다.

“이, 이런 개 같은 악마 새······. 크르르······.”

“그러고 보니 자네는 팔라딘이었지. 악마에게 넘어간 팔라딘이라니. 아이러니하군, 그래.”

팔라딘은 성기사.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앞장서서 모두의 방패가 되는 직업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이성이 죽어 갔다. 루데릭은 황홀한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너무 자책하진 마라. 자네보다 더욱 종교에 충실하고 악마를 증오했던 팔라딘도 타락했으니. 자네는 그저 이름만 팔라딘이니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으그그그그극······.”

몸이 뒤틀려 가는 소리를 냈다. 입에 거품을 물며 루데릭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루데릭은 그 시선이 즐겁게만 느껴졌다. 꾐에 넘어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부정하는 그 모습이!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기 전, 윤정도는 마지막으로 힘겹게 물었다.

“어째서 나를······.”

“그 물음은 너무 뻔하지 않나?”

유선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남자. 그리고 그 괴롭힘을 넘어서 위협을 주고 실제로 죽이려고 했다. 유선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면 그를 제거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자네 같은 버러지가 주인에게 튀는 걸 막으려고.”

“이, 이이이이······!”

-흐어어엉!

이성이 완전히 사그라들고 본성만 남은 괴물이 완성되었다. 정도는 괴물이 되어 야성에 물든 힘찬 포효성과 함께 몸을 날렸다. 강화된 몸인 만큼, 날렵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루데릭 앞에서는 단순한 재롱이었다. 루데릭은 그것을 보며 짧게 말했다.

“<터져라>!”

펑!

루데릭을 덮치던 몸도, 손톱도, 팔도, 날카로운 이빨도. 형체가 없이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 페인트 폭탄을 터트린 것처럼 하얀 방이 순식간에 잘게 찢긴 살점과 함께 붉은빛으로 도배되었다. 광기로 시끄러웠던 방은 다시 고요함을 맞이했다.

그가 삼켰던 코어. 그 구슬 하나만 남은 것을 보고 그는 자신의 계획이 확실해졌음을 알았다.

“이거로 대형 사고도 완성되었군.”

이효승 헌터와 계획을 실행하던 도중, 실패 때문에 충격을 받은 윤정도가 힘을 얻고 싶다는 이유로 연구 중이던 코어를 섭취 후, 폭주. 그리고 부작용에 따른 폭발. 그가 그리는 모든 그림이 맞아떨어져 갔다.

CCTV는 진작 마비시켜 놓았다. 윤정도의 시선에 들어가지 않고 남은 경비들이 아무것도 못 하도록 최면을 걸어 놨으니, 내일 아침이 되기 전에 출근한 누군가의 눈으로 이 상황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면 소란이 일어날 것이고 아침에 메인 뉴스 소식으로 장식되어 걸리겠지. 유니콘에 대해 진실을 요구하는 소리도 커질 것이다. 그리고 불안했던 유니콘의 신뢰도는 더욱 빠른 속도로 떨어질 것이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마음에 조금 걸린다면······.

“주인······.”

유선은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상황을 모두 듣는다면, 유선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악마적인 계획에 자신을 칭찬해 줄까? 아니면 너무나도 잔혹한 계획에 오히려 반감을 품을까?

고민하기 싫었다. 도박을 좋아하는데도 그런 도박은 하고 싶지 않았다.

루데릭은 유선을 잘 알았다. 정이 많고, 가족을 지킬 줄 아는 사람. 그렇기에 가족을 위해서 나설 줄 알지만 어설펐다. 머리와 감정이 싸운다면 감정이 먼저 앞섰다. 그런 사내가 어설픈 동정을 보이면 루데릭, 자신은 분명히 자괴감에 빠지고 말 것이다.

유선은 동족에게 버림받은 그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 준 남자. 루데릭은 유선에게 보답으로 증명해 보이려 했다.

“그래, 홀로 짊어지는 것이면······. 그거면 됐어.”

어설픈 악역은 자신이 맡는 것. 루데릭은 모든 일을 함구하기로 다짐하며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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