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 형님의 복수는 아우가 (1) (5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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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형님의 복수는 아우가 (1)

현장 실습은 결국 좋지 않게 마무리되었다. 뜬금없이 난입해 온 A급 몬스터로 인해, 강사 한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강생도 2명이 실종되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A급 헌터 1명도 죽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것은 누가 책임지는가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기율은 자신의 담당의와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담당의는 다행이라는 듯이 안도하며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다만 쇼크가 심해서 의식이 불안정하다는 것만 빼면······.”

유선의 몸 안을 파고들어 간 돌멩이들을 빼내고 손상된 장기들을 꿰매고 지금은 기절한 것처럼 잤다. 의식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소견이었다. 억지로 깨우면 쇼크가 심할 수 있다니 내버려 둬야만 했다.

오르넵토스는 유선이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것을 도우려고 마법을 사용했다. 그 결과, 유선을 중심으로 하나의 대자연이 완성되었다. 정령왕이 펼친 마법인 만큼 마법으로 억지 치유를 마치기보다 더 압도적인 치유 효과와 안정성을 가졌다. 남은 회복은 오르넵토스에게 맡기며 그가 깨어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안심되는 상황이었지만 기율은 평소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표정을 의식한 의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도 환자분이 대단하더군요. 내장에 손상이 가서 고통이 상당하고, 그렇게 피를 흘리면서 구급차를 탈 때까지 눈도 하나 깜짝 안 했는지······. 각성자라고 해도 쇼크로 죽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니 분명히 회복할 겁니다. 지금 정령왕이 펼친 마법 자체에도 엄청난 회복력을 보여 주니 말입니다.”

유선이 얼마나 대단한 짓을 했는지, 방향이 어떤지 그런 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지금 눈앞의 남자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시한부 인생인 것처럼 바이털 사인 소리를 내는데, 그딴 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기율은 병실 밖으로 나왔다. 진지해진 표정이 도저히 풀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꾸 어떤 경위로 일어났는지 생각하게 했다. 그는 진지한 것은 항상 생각하기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일으킨 놈들이 대체 누군지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분노로 가득 찼구나.”

누군가가 옆에서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이 들렸다. 기율은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너는······ 형님이 데려온 아이구나.”

루데릭이었다. 유선의 병실에 없어 어디 갔나 했는데, 설마 여기 밖에 있는 줄은 생각 못 했다.

“초면은 아니지, 그래. 하지만 이렇게 직접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겠구나.”

루데릭이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루데릭이 그의 표정과 풍겨 오는 냄새에 반응해 의자에서 일어나 기율에게 다가갔다.

“평소의 그 능글거리는 미소는 어디에다 두고, 그렇게 화를 내느냐?”

“화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나? 내 가족이 다쳤는데 말이야.”

“가족이라······.”

루데릭은 흥미롭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기율은 루데릭의 미소가 비웃는 것처럼 꺼림칙하게 여겨졌다.

“뭐 할 말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자네는 진정 정유선이라는 사내, 내 주인을 가족이라 생각하나?”

기율은 망설임 없이 루데릭에게 대답했다.

“형님은 내 가족이다. 그건 고등학생 때부터 결심했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맹세. 그 목소리에 루데릭이 경외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는 그 형님을 위해서 기꺼이 복수를 행할 만큼 자신 있단 소리이겠군.”

“상대를 안다면 당연하지.”

기율은 똑같이 망설임이 없었다. 루데릭은 그런 우직한 면모가 마음에 들었다. 루데릭은 속삭이듯 그에게 말했다.

“나는 내 주인을 저렇게 만든 것을 안다.”

“!”

기율의 두 눈이 커졌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에 힘이 실렸다. 루데릭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했다.

“이효승, 윤정도, 진종오, 던전을 판 익스플로러, 유니콘, 헌터 아카데미······ 이 일이 단순히 한 사람이 벌인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이효승뿐만 아니라, 개입된 기업과 인간들에 대한 정보까지. 루데릭은 모든 것을 알았다. 기율은 그가 언급한 이름들에 손이 부들부들하고 떨려 왔다. 이효승의 존재에 유니콘이리라는 짐작은 어디까지나 했지만, 설마 헌터 아카데미 쪽에서도 개입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울컥하는 감정이 커졌다. 루데릭은 그의 반응을 보며 물었다.

“모든 것을 알려 준다면 자네는 이 모든 인간에게 복수를 행하겠나?”

“마음은 그렇지만······ 내게는 힘이 없어.”

기율은 의욕만 앞섰지만 지금 상황에 냉정하게 생각해,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개인을 향한 복수는 어디까지나 가능하지만, 유니콘이나 헌터 아카데미 같은 큰 규모를 상대할 만한 힘은 없었다.

그는 어떤 직책도 없었다. 그저 부탁 몇 가지만 받아 줄 사람을 제외하면, 강력하게 밀어붙일 인맥도 없었다. 후계자 싸움에서도 최하위권이며, 가족에게는 식충이로 취급당할 뿐이다. 그나마 회사를 차리고 사람 구실을 해 보겠다지만, 성장세는 아직 타지도 못하는 중이었다.

루데릭은 그의 말에 미소 지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힘을 만들어 주마.”

“무슨 힘?”

“네 혈연으로 만들 커다란 폭탄.”

루데릭이 양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모든 것을 끌어안은 것처럼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네 형제자매, 그리고 큐앤 자체를 흔들 약점을 조건으로 내걸도록 하마. 그거로 너도 자연스럽게 권력이란 걸 제대로 가지도록 해 주지.”

악마의 꼬임이라는 것이 이런 걸까? 기율은 상당히 탐나기 시작했다. 큐앤 내부의 약점을 알려 주겠다는 건 결국 큐앤을 이끌 힘을 준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덥석 물기엔 기율은 평소에 자기 형제자매들의 행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 탐나는 정보를 한 번 더 의심했다.

“형들과 누나들은 시시껄렁한 약점에 잡힐 인간들이 아니야. 큐앤 이미지 때문이라도 평소에 자신의 행실을 똑바로 하는 편이니까.”

루데릭은 그 어리석은 생각이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건 자네 생각일 뿐이다, 어리석은 탕아여. 네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다면, 더는 알려 주지 않으마. 하지만 너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겐 권력욕이 있다. 두서없이 구는 기율도 마찬가지였다. 큐앤에서 자리 잡으면서 그는 점점 자신이 높은 이상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느 정도 꾐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고 루데릭이 그에게 말했다.

“그래, 자네에게 선금으로 그 일부를 보여 주마. 머리를 이리 가져와라.”

루데릭이 손가락을 까닥였다. 건방진 행동에 반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루데릭이 보여 주겠다는 내용이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해, 그는 자신의 머리를 그에게 내밀었다. 루데릭이 손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뭔가 지식이 그의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꺼림칙한 느낌이 가득한 지식이었다. 자신의 형제가 저질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내용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율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게 전부 사실이란 말이오?”

자신도 모르게 유선에게나 쓰던 높임말로 루데릭에게 말하고 말았다.

“전부 사실이지. 놀랍지 않나? 그만한 내용들 고작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사실이?”

그것도 고작 일부였다. 엄청난 정보를 얻었지만, 기율은 이것들을 감당할지, 그리고 그만한 힘에 원하는 대가가 궁금했다.

“그 힘을 주는 조건······이 뭐요?”

그러자 루데릭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했다.

“지금부터 내 주인을 해치려는 자들을 철저히 짓밟아야 한다. 내 계획을 이용해서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 조건이다.”

철저히 짓밟아라. 기율도 그것을 바라는 바였다. 기율은 유선을 저런 꼴로 만드는 인간을 용서하고 싶은 생각은 단 1도 없는 사내였다.

“알려 주시오, 모든 것을.”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 갔다. 루데릭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사인을 보냈다.

루데릭이 손을 뻗었다. 기율은 자신의 머리를 가져다 댔다. 루데릭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

유니콘 헌터 컴퍼니 본사는 그야말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튼튼한 헌터들의 로망인 대기업 유니콘 컴퍼니는 지금 그야말로 망조가 드는 중이었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은 헌터 하나의 죽음에서 시작되었다.

이효승 헌터의 죽음.

그의 죽음 정도는 유니콘 자체에서 어떻게든 꾸며 내 바꾸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지배권에서 풀려난 몬스터들이 관리하는 하급 테이머들을 공격하는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유니콘 소속 사역수 관리 구역은 말 그대로 초토화되었고, 이효승의 사역수를 돌보던 유니콘 소속 하급 테이머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 몬스터들을 진압하려던 과정에서 허술했던 경비도 모두 죽어 사실상 생존자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알람 장치가 고장이 나 유니콘은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말았다.

목격자가 없이 조용히 이루어진 참사에 유니콘은 재빠르게 헌터를 파견해, 몬스터들을 죽이고 그 사실을 덮으려 들었다. 그들에겐 인맥과 자본이 있었기에, 위로금을 쥐여 주고 덮으면 알아서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 몬스터들이 시내로 돌격하는 상황이 일어나면서 또 한 번 더 상황이 뒤집히고 말았다. 헌터들이 재빠르게 출동해 모두 죽이는 데 성공해, 큰 부상자는 없이 끝났지만, 갑작스레 닥쳐온 괴물들의 존재를 많은 사람이 지켜보았다. 그리고 열기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헌터들이 일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뭘 하면 도대체 B급, C급 몬스터들이 줄줄이 나옴? 미친 거 아님?

-우리나라 세금으로 대체 뭘 하냐?

-너희 돈만 벌라고 던전에 보내 주는 게 아닌데, 왜 던전을 방치하기만 하지?

그 괴물들이 단순히 던전에서 흘러나온 몬스터로 여겼다. 비난하는 여론이 다수의 헌터와 던전 관리청을 향하는 듯싶었으나······.

-진실을 밝힙니다. 이 상황은 모두 유니콘 헌터 컴퍼니의 이효승 헌터와 관련된 일입니다. 이효승 헌터가 죽으면서 지배했던 몬스터들의 지배 효과가 풀리면서 발생한 일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알 겁니다.

누군가가 던진 웹 사이트 링크에 목표가 단숨에 좁혀졌다. CCTV가 유출되면서 상황은 더욱더 꼬이고 말았다. 대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모든 관리가 허술하게 이루어져 피바람이 일어나는 광경을 모두가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미친.

-어제 제가 봤던 몬스터들이 그대로 나오는 게 보이네요.

-대기업이 지금 몬스터들을 관리도 못 하고 헌터들을 개죽음으로 만들었나요?

-개죽음도 이런 개죽음이 없네요. 어떻게 본인 사역수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관리하고, 죽임을 당합니까?

-유니콘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 어째 한마디 해명도 해 주지 않나요?

여론이 완전히 유니콘에 진실을 요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꺼트리려던 불씨는 점점 커졌고, 유니콘 측은 어떻게든 막으려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효승 헌터의 만행을 고발합니다.

-예전에 이효승 헌터에게 사인받으려다가 한 대 얻어맞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을 정말 개무시하던 인간이더군요. 그래도 뭐 돈이 많으니까 상관없었지만~.

헌터넷을 시작으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 이효승 헌터가 했던 만행들이 하나둘씩 튀어나와 부관참시하기 시작했고.

-이런 쓰레기 같은 헌터들이 똥 싸는 걸 애써 수습해 주는 유니콘

-돈에 환장한 기업다운 뒤처리로군요.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유니콘이 모든 짐을 짊어지게 했다. 단순히 그들의 힘으로 진압하기는 힘들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제 13시 20분경, 서울 시내에 갑작스러운 몬스터들의 습격에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몬스터들이 모두 모 대기업의 테이머가 사역수로 거느리던 몬스터로 밝혀졌는데요······.

결국 공중파 뉴스에 긴급 속보로 등장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이효승의 죽음을 필두로 이틀 만에 모든 과정이 이루어졌다.

회장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채로 전화기를 잡았다.

“이 국장, 분명히 얘기하지 않았나! 그건 우리 쪽에서 흘린 괴물 새끼들이 아니라, 방치된 이계의 틈에서 나온 몬스터들이라고. 왜 사람이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곧이곧대로 방송하나?”

-죄송합니다, 회장님. 하지만······ 이번 건만큼은 우리가 어떻게 해결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뭐라고? 지금 그게 나한테 할 소리인가? 자네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 몰라?”

자기가 키우던 개한테 물린 격으로 노발대발하며 소리쳐 보지만, 국장은 그 소리에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 말밖에 제가 해 드릴 게 없습니다.

“이봐, 이 국장. 이 국장!”

소리쳐 보지만, 상대 쪽에서 전화를 끊고 말았다.

“젠장!”

콰직!

회장은 제 분을 못 이겨 휴대폰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지금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화재는 점점 커졌고, 그 사태는 수습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싸매서 이 난관을 빠져나갈 방법을 찾았다.

하지만 늪지대에서 빠져나오려고 동아줄을 잡으려 들면, 그 동아줄이 끊어져 갔다.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썩어 가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일부러 끊는 중이었다.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이.

띠리리리-.

책상 위 전화기의 벨이 울렸다.

-저, 회장님······.

“뭐야?”

-큐앤 헌터 컴퍼니 대표 이사께서 잠깐 올라가신다는데······.

“······.”

큐앤이라면, 잘 아는 그룹이었다. 그리고 이효승이 큐앤 쪽에서 노리는 게 있어서 일을 벌이다가 죽은 것도 잘 알았다. 그래서 직접 대면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바쁘니까 나중에 약속 잡고 오라고 돌려보내.”

-아, 죄송합니다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회장님.

여비서의 목소리가 아닌 껄렁한 듯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서의 전화를 빼앗았는지, 당황하는 목소리가 저 너머로 들렸다.

-지금 직접 대면해서 얘기하지 않으면, 등에 칼 맞은 것처럼 기분이 더러울 텐데 어쩌시겠습니까?

“······.”

모든 일의 주범이라는 듯한 말투에 어쩔 수 없이 그와 대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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