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23. 불안 (1)
“어차피 네 전력은 충분하잖아. 120마리야, 자그마치 120마리!”
120마리를 전부 유니콘에서 키워 주었다. 먹이 관리에서 케어까지 모든 것을 낮은 등급의 테이머들이 그들을 보살피는 중이었다. 그래서 효승은 120마리를 전부 기억하지 못했다. 그에게 직접 손이 닿는 것은 S등급의 드레이크 하나뿐이었다.
“그거 전부 던전 보내면서 굴리잖아요. 제 지배 특성을 이용해서 말이에요. 고분고분하게 말 따라 주는 훌륭한 탱커지 않습니까?”
효승이 회사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이유였다. 바로 사역수를 이용한 위험 난이도를 감수하는 것.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효승의 사역수를 투입해, 고기 방패로 세우기 일쑤였다.
조련 레벨이 4나 되니, 영향력이 넓어져 그의 손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고분고분하며, 지배는 레벨 3이니 웬만한 몬스터들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준비를 했다. 위험 부담을 할 일이 없으니, 남들보다 과감해졌고, 그가 없었더라면, 유니콘이 대기업, 희망과 성공의 땅이라고 여기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뭐가 가지고 싶은데? 어?”
자신의 위치를 알기 때문에, 효승은 그 누구도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저는 그 꼬맹이가 가지고 싶어요.”
설령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을 해도 말이다. 진종오 과장은 그의 말을 듣고 못 들을 걸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그 꼬맹이? 설마 그 EX를 말해?”
“네, 그 꼬맹이요.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게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구는 아주 작은 소녀요.”
진종오 과장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이제 정신을 좀 차리는 게 어떻겠냐? 네가 아무리 잘나간다고 해도 이런 망나니짓은 더는 묵인해 줄 수 없어.”
그가 그만두길 바랐다. 하지만 효승은 진종오 과장의 수동적인 모습에 피식 웃었다.
“진종오 과장님은 그래서 정유선 헌터한테 돈으로 매수하려다가 깨지신 겁니다. 쓸데없는 것에 대범하고, 쓸데없는 것에 졸아서 말이에요.”
진종오 과장의 표정이 굳었다. 그것은 자기만 알 줄 알던 사실이었는데.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이미 회사에 소문 다 퍼졌습니다. 정유선, 그 남자한테 두들겨 맞은 것 말입니다. 배경을 조사했으면, 적어도 아버지와 돈에 관계된 내용은 아셨을 텐데요? 돈으로 사람을 두고 장난치면 그만큼 화내리라 생각을 못 하셨나 봐요?”
유선의 아버지, 정주석의 죽음.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건수를 무조건 놓치지 않겠다고 과로하다가 돌아가신 사건. ‘감당할 수 없는 건수’가 굴러 들어왔기에 가장인 아버지는 매달려 들었고, 고등학생인 유선과 그의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지만, 차마 말을 못 했던 것이 바로 돈으로 매수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화가 났다. 사람의 죽음을 돈으로 덮다니. 그런 영화 같은 상황이 지금 일어났으니까.
하지만 남은 어머니마저 고생시키고 싶은 생각이 없어 유선은 그 일의 모든 정황을 잊기로 했다. 유선이 성격을 죽여 간 것도 그때부터였다. 복수를 다짐했지만, 결국 그들끼리 자멸했기에 복수마저 무산해져 그의 분노도 이젠 갈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돈 가지고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한 적이 없었다.
자신의 치부를 들킨 진종오 과장은 이빨을 바득바득 갈면서 그에게 말했다.
“고얀 놈······. 여태 네놈 뒷바라지해 주었으면 아버지 대접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
“애초에 제가 바라서 하지도 않았잖습니까? 다 과장님이 저를 생각한다고 하셨죠. 안 그래요?”
진종오 과장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슨 소리를 하건 진종오 과장의 뜻은 견고했다.
“그놈은 포기해. 이미 뒤 봐주는 사람도 있고, 이젠 위험해. A급 놈들을 등록하러 오는 사람들 소식을 들으면 다른 걸 잡아 줄 테니까, 어때?”
그러자 효승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에게 대답했다.
“120마리 중 하나가 더 있으면 뭐 합니까? 그 것들을 전부 합해도 그 꼬맹이 하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못하는 못난 놈들뿐입니다.”
테이머에게 사역수는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효승은 여태 그런 생각을 고수해 왔다.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아도 되고, 제 머리를 굴려서 얻는 결과로 최대한 이득을 보았다. 사역수가 얼마나 피해를 입는지는 상관없었다.
고장이 나면 다시 구하면 되었으니까.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효승에겐 가능했다. 그는 <지배>를 가졌으니까.
“네가 계승할 문제면 모르겠지만, 그 녀석을 네가 데리고 있는 게 가능하지가 않잖아? 그 사역수는 이미 정유선을 따라.”
처음에 도전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아, 친밀도가 높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겼고 진종오 과장은 과감하게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선 무리였다. 무엇보다 그 사역수는 <강인> 특성 레벨이 5였기에 그의 지배에 걸릴 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효승은 자신만만했다. 그의 손에서 여태까지 거쳐 간 몬스터들은 그의 손에 꼼짝없이 당했기 때문이다.
“과장님, 지배 특성이 좋은 게 뭔지 알아요?”
“뭔데······?”
“나, 이거 쓸 때마다 공으로 몬스터 잡는 게임 하는 것 같거든.”
효승이 게임을 접한 어린아이처럼 재밌다는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피가 너덜너덜해지고, 반쯤 죽어 갈 때, 야성을 뿜어내는 녀석이 한순간에 새끼 고양이가 된 것처럼 끼잉거릴 때, 나는 그게 좋더라고요. 마치 ‘아, 목숨만은 살려 주세요.’ 같은 눈 있잖아요. 그걸 보면 쾌감이 온몸을 휘감더라고요. 막 이렇게! 그때, 딱! 하고 찍어 주면 제 것이 되거든요.”
스스로 몸을 휘감으며 표현했다. 그의 미소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 건 성공만 하면, 분명히 우리 회사에 큰 보탬이 될 거예요. 국가, 그 이상의 기업이 될 수도 있단 말이죠.”
국가 그 이상의 기업. 진종오 과장이 항상 만들고 싶었으며, 그 계기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문제였다. 진종오 과장은 불안해 이리저리 움직였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이야기에 흥미를 조금 느끼고 말았다.
“계획은 있냐?”
효승은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만큼 가져올 상심이 엄청나게 크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
깊은 밤. 유선과 엘레노어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 다만 늘 그렇듯이 자던 것과 다르게, 유선은 날벼락을 맞고 말았다.
“쿠억······.”
작지만 강한 뭔가가 유선의 얼굴을 강타했다. 엘레노어가 주먹으로 얼굴을 미는 바람에 유선은 억지로 깨고 말았다.
“아야야······, 이 녀석 잠버릇이 왜 이렇게 고약한······ 응?”
유선은 일어나서 엘레노어의 상태를 보았다. 표정이 좋지 않은 데다 식은땀을 흘렸다. 내지른 주먹은 하늘을 향해서 뭔가를 허우적거렸다.
“으으······ 끄으으으······.”
“엘레노어!”
유선은 안 좋은 조짐을 느껴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흔들어 깨웠다. 악몽에 빠졌던 엘레노어가 눈을 번뜩하고 떴다. 습기가 가득 찬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유선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와락 안겼다.
“히끅! 유선 님, 유선 님······!”
유선은 당황한 채로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래, 그래. 우리 엘레노어, 왜 그래?”
“유선 님, 유선 님이이······ 히끅······ 유선 님이이······ 막 하고 나서 나한테 그래써······. 떠나간다거 그래써······. 유선 니미 나 더는 보기 실타면서······.”
어눌한 말투로 말을 빠르게 해서 더 못 알아들었다. 하지만 대충 그녀가 악몽을 꿨음을 짐작했다.
“그래, 그래······ 괜찮아. 나 여기 있으니까. 엘레노어 옆에 있으니까. 더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유선 니미 사라졌어······ 사라져딴 마리야······. 말도 없이 사라졌단 말이야.”
“그랬구나, 그랬구나······ 미안해.”
그녀의 흐느낌에 반응한 오르넵토스와 루데릭이 조심스레 유선의 침실로 들어왔다.
“계약자, 엘레노어한테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냐, 주인?”
유선은 그들에게 검지를 펼치며 조용히 하라고 제스처를 보냈다. 유선은 천천히 고요함을 느끼게끔 유도했다. 다시 그녀가 잠자도록, 악몽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꿈을 꾸게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훌쩍이던 엘레노어는 다시 잠에 빠졌다.
***
엘레노어가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하고, 유선은 몰래 침대에서 나와 오르넵토스와 루데릭을 데리고 거실에 앉았다. 유선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엘레노어가 악몽을 꾼 것 같아.”
큰일을 우려했던 오르넵토스는 조금 안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네, 그 정도면 뭐. 악몽이라······. 그래도 저 애가 악몽을 꿨다니 믿기지 않네.”
“최근에 뭔가 자극적인 일이 있었나?”
루데릭이 침착하게 접근했다. 유선은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최근에 테이머가 리저드를 다루는 게 좀 험하긴 했지. 죽기까지 했으니까.”
“그런 내용이라면, 충분히 악몽을 꿀 만하다.”
평소에는 사냥을 재밌어하는 그저 순수한 소녀였기에, 몬스터가 죽는 것은 문제가 안 됐다. 하지만 테이머가 사역수에게 했던 행동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거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했을지도 몰랐다. 같이 놀았던 오르넵토스는 조심스럽게 그 가정을 부정했다.
“그래도 못 들었을 거야. 우리는 저 멀리 떨어졌는걸? 나도 감지가 안 될 만큼 같이 빠져서 놀았어.”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유선은 불안한 표정으로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엘레노어가 예언 같은 걸 하고 그래?”
“예언?”
EX 등급이니, 예언자의 능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르넵토스는 고개를 저었다.
“예언 같은 건 없어. 자신의 앞도 못 보는 애야. 계약자는 그 악몽이 예언이라고 생각해?”
“아니겠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그래.”
엘레노어는 유선이 사라지는 꿈을 꾸었다. 어떤 과정인지 몰라도, 유선이 독단적으로 내린 결정에 그녀의 곁을 떠났다. 유선이 생각해도 어이없는 그저 개꿈이겠지만, 그래도 엘레노어가 그렇게 괴로워해 유선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표정을 읽은 루데릭이 유선에게 물었다.
“주인, 불안한가?”
“조금 그러네······.”
“그렇다면 내가 그 꼬마의 기억에 손이라도 봐줘도 되겠나? 불안하다면 차라리······.”
그러자 오르넵토스가 루데릭을 쏘아보며 경고했다.
“엘레노어에게 손대지 마, 악마.”
“오르넵토스, 진정해.”
“계약자, 이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계약자를 향해서 꿍꿍이는 없겠지만, 엘레노어는 아니야. 그 아이의 순수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오르넵토스는 뜻이 확고했다. 루데릭은 그녀의 말을 듣고 잠깐 생각하다가, 한숨을 지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주인을 위해서 그저 손만 댔을 뿐인데, 그 꼬맹이가 어떤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지도 모르니, 어떤 화를 입을지 모르겠군.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손대는 건 미친 짓이지.”
루데릭이 조금 감정적으로 나오며 그 호의를 거두었다. 유선은 친해질지 걱정되었다. 그 문제는 뒤로하고 엘레노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결국 지금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일단 내일 상태를 보고 얘기하자.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그냥 쉬고 잘 타이르면 되니까.”
“그러자.”
“그러거라.”
엘레노어가 괜찮다면 모든 것이 괜찮으니.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유선은 걱정이 컸기에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
기다렸던 다음날이 되었다. 엘레노어의 스트레스 수치를 확인한 결과, 엘레노어의 스트레스 지수는 45%에서 머물렀다. 정말로 애매한 수치였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이 상황에서 유선은 어떻게 할까 생각했다.
오늘은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는 날이라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엘레노어의 상태를 보니 데려가고 싶지가 않았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엘레노어.”
“응?”
의욕이 없어 보이는 눈이었다. 그녀가 쉬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 같아 한번 물어보았다. 힘없이 빵을 뜯어 먹던 엘레노어가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쉴까?”
그토록 기다렸던 소풍날이었다. 유선의 물음에 싫다는 반응이 가득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엘레노어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 때문인가?
-그럼 말을 안 들으면······.
-나 버려져.
엘레노어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혀 급하게 다가와 유선의 몸을 양손으로 감쌌다. 상의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말했다.
“소풍 갈래.”
“안 가도 뭐라고 안 할게. 싫으면······.”
“소풍 갈래······.”
엘레노어의 뜻이 확고했다.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겠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유선은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알았어. 소풍 가자.”
“응.”
엘레노어는 불안하게 미소 지었다. 언제나 짓던 환한 미소와는 다르게 불안감에 젖어 안쓰러웠다. 엘레노어가 소풍을 가고 싶다고 했기에, 그녀와 함께 나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계약자, 소풍이 뭐야?”
“사냥하러 가는 거야. 지난번에 내가 말해 주지 않았나?”
“아, 그거였구나. 너희, 인간들이 잡고 구슬을 빼 가는 것 말이야. 엘레노어랑 같이 해?”
“응.”
오르넵토스는 엘레노어가 한다니 궁금해서 그에게 물었다.
“그 소풍 나도 따라가도 될까? 재밌어 보이는데 한 번 정도는······.”
“안 돼.”
엘레노어가 오르넵토스의 말에 끼어들며 선을 그었다. 오르넵토스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며 물었다.
“뭐어? 왜?”
“안 돼······.”
이유는 말하지 않고 유선을 꼭 끌어안았다. 오늘따라 유독 독점욕이 강했다. 오르넵토스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거절 의사가 꽤 상처인 모양이었다.
“꼭 따라와야겠어?”
“으······ 엘레노어가 저러는데, 따라가면 미움받겠지. 어쩔 수 없다. 계약자가 잘 타일러서 재밌게 보내고 와. 집에서 뿌리나 박고 나도 햇볕이나 먹을래.”
그녀가 자는 곳은 사 준 화분. 흙에 들어가서 허리를 펴고 서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손을 잡아 주며 집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