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22. 교감 Vs. 지배 (5)
단단한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실습실을 울렸다. 이목이 모두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했고, 고요함이 맴돌았다. 그리고 푸른색을 이루던 등껍질이 색깔을 잃었다. 크리스털 리저드가 그대로 죽어 버렸다.
“어, 어라?”
막 대하던 여인도 크리스털 리저드가 축 늘어지자, 그제야 싸한 느낌을 받았는지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기······. 야, 장난치지 마. 일어나라고. 얼른······.”
하지만 이미 죽은 리저드는 그녀가 아무리 만져도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죽어서 빳빳해진 리저드의 몸일 뿐이었다. 여자는 죽은 리저드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지금은 그게 죽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 생명을 죽였다는 것보다는 지금 실습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컸다.
여인은 유나에게 다가가며 떨떠름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저기, 선생님. 죄송한데 남은 교재가 없을까요? 제 사역수가 죽었는데······.”
그녀는 뻔뻔하게 ‘교재’를 요구해 왔다. 유나는 인면수심 하는 그녀를 싸늘하게 보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 요청은 들어 드릴 수 없습니다.”
“네?”
“사역수의 체력 확인과 스트레스 관리. 그것은 테이머로서 기본적인 요건이라고 이론 시간에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몇 번이고 강조해서 분명히 제 수업을 귀 기울이셨다면, 잘 아셨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
알 리가 없었다. 그 시간에 딴생각하고, 유니콘 대기업의 A급 헌터한테 잘 보여서 낙하산이나 탈 생각이었으니까. 그녀에겐 오로지 효승의 말대로 몰아붙이는 것밖에 하지 않았다.
“자신의 사역수가 목숨을 잃은 시점에서 이미 점수 계산은 끝났습니다. 류다연 수강생은 유감이지만, 실기 점수는 0점입니다.”
낙제점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정말 큰 사건을 터트리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없는 점수로 최악의 상황을 의미했다. 그리고 여태까지 가라앉지 않을 거로 장담했던 타이타닉처럼 암초에 걸려 침몰하는 꼴이었다. 그녀는 효승과의 약속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효승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 선배님······.”
“낙제점 받았어?”
다연은 울상을 지으며 효승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네, 그런 거 같아요. 저 강사님한테 좀 따져 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그러자 효승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위화감이 없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렇구나.”
“네.”
“문제는 네가 일으키고 나보고 처리해 달라고······.”
“그런 의미는 아니고······.”
“네가 미쳤구나.”
“네······?”
“내가 네 봉이냐?”
효승이 정색하며 물었다. 그전까지 따뜻하게 굴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쥐새끼를 보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연은 공포에 질림과 동시에 어이없는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렇지만 선배 저랑······.”
“너랑 뭐? 한번 지껄여 봐.”
드레이크 등에 누웠던 효승은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수강생들을 향해 등지며 그녀에게 말했다.
“우리 다연이 여기서 수틀리니까 그냥 까발리고 싶어?”
“아, 아니에요······.”
효승은 겁먹은 다연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면서 말했다. 그리고 지옥에서 들리는 듯이 섬뜩한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뭐, 나는 상관없는데······ 유니콘에 못 들어와도 뭐 다른 회사 들어가야지 먹고살지 않겠어?”
“······.”
“그런데 이런 식으로 선배한테 행동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
“말이 없네, 우리 다연이. 미쳐서 말이야.”
“죄, 죄송······.”
“크게 말해.”
“죄송합니다, 선배님. 제가 주제를 넘었······습니다.”
울 것처럼 목이 멘 채로 그에게 사과했다. 사과를 들은 효승은 그녀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고. 허튼 소리해서 뭔 짓을 할 생각이면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헌터로서 앞길 잘 트고 나가야지? 늘 그랬듯이 몸만 잘 내주면 돼. 이제 눈앞에서 꺼져.”
효승은 다연의 어깨를 살짝 밀치면서 그녀를 놓아주었다. 완전히 절망해 버린 다연은 실습실에서 나왔다. 자신이 해 왔던 모든 것이 헛짓거리가 되었기에, 다연은 자신이 4주 동안 했던 모든 일을 버리고 그대로 나왔다.
효승은 낙오되어 나가는 다연을 보고는 남은 세 명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너희는 아직 기억하지?”
“네, 넵!”
“알아서 잘하자. 알겠지? 이것도 못 하면 너희는 존재 자체를 증명 못 하는 거니까.”
군기가 바짝 든 얼굴로 대답했다. 효승은 다시 미소 지으며 자신의 드레이크 등에 누웠다. 효승은 그들에게 <지배> 특성과 스킬을 전수해 줄 때, 자신이 유니콘에 데려다주겠다며 조건을 내걸었다.
교감으로 얻은 사역수보다 성적이 좋을 것.
그것이 조건이었다. 지배가 가치 있다고 떠든 만큼, 효승은 자신을 따르는 수강생들이 그 가치를 보여 주길 원했다.
처음에는 분명히 순조로우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를 잃어버린 배처럼 이도 저도 못 했다. 우선, 자신들의 크리스털 리저드의 체력을 확인했다. 리저드의 생명력이 간당간당했다.
‘이제 이걸 때릴 수도 없고.’
‘미치겠네.’
그들의 입장에선 이젠 곤란해졌다. 지배의 역효과를 제대로 맞았다. 체력의 한계에 죽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였고, 리저드를 거의 빈사 상태에 빠트려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그들도 훈련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끝났구나.’
유선은 그것만 보고도 알았다. 그들에게 펼쳐질 앞길은 뻔했다. 효승이 직접 서포트해 주지 않는 이상, 계속 갈팡질팡할 것이고, 사역수와 친해져야 할지, 아니면 엄하게 대해야 할지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이틀을 모두 잡아먹을 것이고 제대로 된 훈련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유선의 생각처럼 이루어졌다.
***
목요일 오후, 유나는 수강생들과 사역수에 대한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모든 과정을 순조롭게 치른 진연은 생각처럼 우수하게 끝냈다.
-오늘 밥 맛있었어. 주인도 잘 놀아 줘서 좋았어.
유나의 크리스털 리저드, ‘리저’의 컨디션도 좋아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피곤해······.
-숨고 싶어······.
반면 효승의 편에 서던 수강생들의 리저드는 너무나도 암울해 했다.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점수를 매긴 유나가 점수를 발표했다.
“이번 아카데미 테이머과의 수석부터 말씀드리자면, 사역수와 친밀도 7점, 능력치 상승도 4점, 그리고 팀워크 8점으로 진연 학생입니다.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듣고 축하해 주는 것은 유선뿐이었다. 성적을 들은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다. 효승이 제시한 조건에 모두 충족하지 못했으니, 유니콘 입사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사내들은 그 점수에 이의를 제기했다.
“죄송합니다만, 강사님.”
“네, 말씀하십시오.”
“친밀도와 팀워크 점수가 우리가 현저히 낮은데······ 우리가 사역수를 학대했다고 일부러 점수를 낮게 주신 거 아닙니까?”
그들도 유나가 교감으로 이루어 낸 테이머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과정 자체에서 진연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고, 편애해서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남은 세 명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유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최선을 다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들의 행동을 보았다.
“어디까지나 점수는 공명정대하게 채점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드립니다. 채점 기준은 명확히 제시된 데다, 여러분을 헌터의 길로 인도하는 만큼 사심은 없습니다.”
“객관적인 지표만으로 해결이 안 되지 않습니까? 인생은 실전인데, 능력 상승치가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다른 것으로 꼬투리를 잡아서 어떻게든 점수를 낮추려 들었다.
“인생은 실전이라······.”
이 소리는 이번 한 번만 들어온 것이 아니었다. 매번 들어오는 클레임이었기에 유나는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 유나가 뒤에 서 있던 잉잉이에게 손짓하자 잉잉이가 앞으로 나서더니 리저드를 향해 괴음을 질렀다.
-끼에에에엑!
4마리 리저드가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며 반응했다. 그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고, 도망치는 쪽과 버티는 쪽이었다. 놀랍게도 진연의 리저드가 버텼고, 지배를 건 리저드 3마리는 낙인의 효과도 무시한 채로 도망쳤다.
“주인을 향한 위협을 느꼈을 때, 친밀도나 팀워크 두 부분 중 하나만이라도 우수했다면, 이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
“사역수가 전장에서 이탈하는 순간, 테이머와 아군은 위험에 노출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헤쳐 나간다면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여러분 모두 탈출하지 못하겠군요.”
그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목숨을 잃을 각오로 달려든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지배가 레벨 3일 때나 해당했다. 아무리 하급 몬스터라도 지배 1로는 위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무섭지만, 그래도 주인이 있어······.
리저드는 진연을 생각하면서 본능을 숨겼다.
“이제 이해가 가십니까?”
“······네.”
인정해야만 했다. 그들은 유니콘이 물 건너갔다는 것만을 상기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배 쪽은 결국 제대로 성과를 못 냈네.’
지배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유선도 그 점은 인지했다. 하지만 효승의 방식을 그대로 들이고, 막 대한 탓에 몬스터들이 끝없는 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지배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리저드를 다루는 방법에선 너무나도 미흡했다. 초보들에게 무작정 밀어붙이기만을 강요했기에, 곧이곧대로 들어 버린 쪽이 컸다.
결국 그들은 어떻게 다룰지 확고하게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이 컸다. 효승이 계속해서 그들을 서포트해 주리라 믿었고,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방식대로 알려 줘서 똑같이 될 거로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반면 진연은 자신을 믿었고, 인내할 줄 알았으며, 나아가야 할 길이 확실했기에 성과를 보였다. 유나는 문서철을 덮으며 말했다.
“실습 주는 이거로 끝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직접 전장에 나서서 이계의 위협을 막아 내는 헌터로서 자질이 있는지 시험하는 마지막 날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랜덤으로 조가 편성될 것입니다. 강사들이 같이 입장해서 부족한 점을 서포트해서 던전에서 실전할 겁니다.”
유나는 강의를 마무리 지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남은 하루, 마무리까지 잘해 주시길 바랍니다.”
***
그날 밤, 유니콘 회사 3층 진종오 과장의 방에는 싸늘한 공기가 돌았다. 진종오 과장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한 번 더 확인했다.
-유니콘 사의 모 헌터, 차량으로 기물 파손 후 도주.
이게 누구를 저격하는지, 진종오 과장은 충분히 알았다. 그렇기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그 장본인이 자신의 방으로 찾아왔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잠깐 뭐 좀 확인하러 왔더니.”
이효승이었다. 언제나 유지하던 상쾌한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귀찮음과 거만함에 절인 표정으로 진종오 과장을 보았다.
“무슨 일이긴. 네놈이 저지른 일 때문이지 않냐!”
진종오 과장이 버럭 화를 내며, 프린트해 온 기사 전문을 효승에게 보였다. 효승은 그 기사를 대충 위아래로 스윽 보는 시늉을 했다. 진종오 과장이 화가 나 그에게 소리쳤다.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테이머 놈 때문에, 기껏 한 놈 잡은 스케줄을 캔슬하고 널 넣어 주었건만. 그 기간만큼은 사고 안 치려고 해야지, 또 한탕 벌여 놨구나!”
진종오 과장이 흥분을 감추려 해도 멈춰지지 않았다.
“헌터들을 전문으로 파파라치 하는 새끼가 있다더니, 진짜였구나.”
효승의 말에 진종오 과장의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절대로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번 달만 해도 벌써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많은 기사 협박을 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어!”
효승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진종오 과장의 책상 위에 살포시 올려놓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렇게 보여 준 꼴만 보니까, 또 돈 달라는 거겠죠. 늘 그랬듯이 처리하세요, 진종오 과장님. 귀찮게 남 부르지 말고요.”
효승은 무감각하다는 듯이 말했다. 여태 진종오 과장이 계속 효승의 뒤를 봐줬고, 지금도 분명히 그럴 거기에 이제는 그가 뭐라 지껄이든 신경 쓰지 않았다. 진종오 과장은 자신이 길을 잘못 밟았다는 사실을 알고 뒤늦게 후회했다.
효승이 각성을 마친 당시, 공개되었던 스탯, <조련>과 함께 있는 <지배> 특성 레벨 3. 그 냄새를 맡아 압도적인 우대 조건을 내걸어 영입해 왔다. 그리고 그의 생각처럼 흘러갔다. 효승은 거물이 되었다.
아니, 흘러가는 듯했다는 게 옳을 것이다. 효승은 거물이 아닌 괴물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괴물을 만들도록 일조한 것은 진종오 자신이었고, 효승을 다루기엔 너무나도 거대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는 회사를 이루어 가는 초석이었으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졌다.
거만하게 앉아 있던 효승은 다 필요 없다는 듯 오늘 있었던 일만 떠올렸다.
‘버러지들.’
자신의 특성과 스킬을 전수해 주었는데도 그들은 결국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저 자신이 했던 것처럼 하면 되리라 여겼다. 그 당시에 효승은 그렇게 해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 주었으니까.
<교감>은 그저 물러 터진 자들이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도구라고 여겼고, 당연히 이길 줄만 알았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교감>이 더욱더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게 얼마나 잘났는지 시험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아, 과장님.”
효승은 미소 지으며 진종오 과장에게 말했다.
“저 새로운 사역수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