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22. 교감 Vs. 지배 (4)
점심시간에는 유나가 귀띔해 주었던 것처럼 리저드에게 줄 먹이가 탁자 위에 놓였다.
“이제 여러분이 식사하신 것처럼 직접 사역수에게 먹이를 줄 겁니다. 이때만큼은 여러분이 이론으로 배운 것처럼 행동해 보고, 사역수와 친해질 계기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5개 봉투를 모두 한 명씩 나눠 주었다. 종이봉투에 싸 놓은 사료들을 꺼내 보았다. 유선은 동그란 알갱이를 보고 대충 뭔지 짐작했다.
“이거 개밥이죠?”
“네, 맞습니다.”
“개밥을 파충류에게 먹이나요?”
“단순히 파충류라 생각하시면 크게 일이 생기겠지만, 크리스털 리저드에게 가장 맞는 사료가 개밥입니다.”
이름은 파충류인데, 어째 먹이는 건 개밥이라······.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선배님, 얘네한테 밥은 어떻게 줄까요?”
효승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떻게 주긴? 그냥 대충 줘. 어차피 쟤네들도 밥 먹고 쉬어야 할 테니까, 그때까지는 얼굴 비추지 말자고.”
“그렇게 주셨나요?”
“뭐, 그렇게 줬겠지.”
효승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의 사역수는 여태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서 길러지고, 관리받았으니 말이다. 믿음직한 선배의 말을 듣고 그들은 사료 봉투를 뜯어서 그대로 먹게 주었다.
반면, 진연은 거리를 벌린 채로 천천히 사료를 하나씩 떨어트려 주었다. 유선은 그녀의 행동을 보며 물었다.
“이렇게 주려고?”
“네, 애완동물 다루듯이 하라고 하셔서······. 예전에 고슴도치를 키워 본 적 있어서 한번 그것처럼 해 보려고요.”
유선도 언뜻 한 번 정도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작은 동물들이 주인을 경계하지 않고 다가가도록, 적응시키는 핸들링이었다. 유선도 적절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리저드는 경계심을 세우면서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인 개밥을 넓적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바드득하며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리저드가 만족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맛있어.
첫 먹이를 먹는 것을 보고 진연은 다음 먹이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두었다. 리저드가 그곳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천천히 진연에게 다가오게 만들려는 것 같았다. 리저드는 천천히 진연 쪽으로 다가왔고, 마침내 마지막으로 이어진 것을 보았다. 뽀얀 살 위에 올린 개밥이었다. 리저드는 그 손의 주인을 올려다보고 경계했다.
-괴물! 무서워!
그러면서 리저드는 뒷걸음질 치며 빼려고 했다. 물론 빼려고만 했다. 조금 주저한다 싶더니, 녀석은 천천히 진연의 손 쪽으로 다가갔다.
-그래도······ 밥만 먹으면 괜찮겠지.
그리고 그녀의 손에 들린 사료를 입에 가져다 댔다. 사료를 건져 먹었다. 바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리저드와 그렇게 경계심을 천천히 허물었다. 진연이 크리스털 리저드의 머리에 손을 얹어도 괜찮을 만큼 말이다.
“착하다, 착해.”
그녀의 발전이 오늘 내로 성공하리라 여겼지만, 그래도 계약의 인장까지 찍어 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경계심을 허무는 것만 가능했을 뿐, 하지만 진연은 그 발전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조금씩 나아가는 것은 충분히 인상적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계약만 하다가 끝날 것 같은데······.’
유선은 그래도 가만히 있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 훈련을 어떻게 할지 궁리 중이었고 효승에게 전수를 받는 중이었다. 오후 중에 분명히 트레이닝 로봇으로 훈련할 것이다. 이런 속도로 간다면 빨라야 수요일에 계약할 거고, 그러면 목요일 날 최종 확인에는 성적이 확연한 격차를 보일 것이 분명했다.
‘조금 도와주자.’
유선은 조금 꼼수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
아침 8시, 유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실습실에서 쓸 물건들을 손수 점검했다. 수업 준비를 하던 중, 실습실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유선이었다. 누군가 하고 고개를 돌린 유나는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인사했다.
“어머, 헌터님. 일찍 오셨네요.”
“수고가 많으십니다. 뭐, 도와드릴까요?”
“아니에요. 지금 막 다 점검 끝난 참이라서······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아, 그게······.”
유선은 슬쩍 유나에게 다가가서 직설적으로 물어보았다.
“죄송하지만, 약간 꼼수를 부려도 되겠습니까?”
“꼼수······ 말인가요?”
유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유나는 매 수업 잠잠하던 사람이 갑자기 와서 꼼수 타령을 하며 물어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유선은 빙긋 웃으며 그 꼼수에 대해서 말했다.
“이효승 헌터가 리저드에게 영향을 준 것처럼 저도 좀 줘야지 맞지 않겠습니까?”
“뭘 하시려고 그러세요?”
그의 말에 유나가 조심스레 유선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만큼 꺼림칙한 일은 아니었다.
“그냥 진연이가 데리고 다니는 리저드와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 정도도 안 되겠습니까?”
“리저드와 이야기요? 그게 가능하신가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유선에게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한다는 게 신기했지만, 차마 묻지 못하고, 그의 부탁을 생각만 해 보았다.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고, 같은 교감 헌터인 유선에게 슬쩍 손을 들어주었다.
“좋아요, 단! 너무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면······ 안 돼요.”
“좀 그렇게 보이긴 하겠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유나는 그렇게 말하며 진연이 데리고 다니던 크리스털 리저드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쇠창살 우리에서 나오자, 유선의 얼굴을 보고는 뒷걸음질 쳤다.
-괴물이야, 어제 그 괴물.
하지만 생각처럼 겁을 많이 먹지 않았다. 진연이 경계심을 허물려고 했던 행동들 덕이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녕?”
-괴물이 내게 말을 걸었어. 어떻게 나랑 말하지?
“난 괴물이 아니야.”
-내 목소리도 들리나 봐!
크리스털 리저드는 신기한지, 유선을 두려워하는 얼굴로 보지 않았다. 유선은 신기해하는 리저드를 보며 침착하게 말을 걸었다.
“미안하지만 나를 좀 도와줄래?”
-도와줘? 뭐를?
“너한테 먹이를 주던 여자 괴물 알지?”
-알아. 그 괴물 친절해.
리저드가 잠깐 생각하더니 떠올렸는지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우호적인 반응에 유선은 리저드에게 부탁 내용을 말해 주었다.
“그 여자와 계약해 줄래?”
크리스털 리저드가 유선의 요구에 놀라면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럽게 유선에게 물었다.
-시, 싫다고 하면 때릴 거지?
싫을 것이다. 다른 동족 리저드 4구는 이미 학대를 당했다. 그랬기에 계약을 맺는 것은 싫었지만, 그렇다고 유선에게 거절 의사를 내놓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한 바였다. 그의 본 목적은 직설적으로 계약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안 때려. 만약 네가 싫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게. 강요하진 않아.”
-정말로 그래 줘?
“응, 당장에 계약하라고 강요하진 않을게. 하지만 조금만이라도 경계심을 풀고 그 여자와 함께해 봐. 이 정도는 들어줄 수 없을까?”
유선의 본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고, 바로 그보다 덜 강압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심리적인 효과를 이용한 것이었다.
-흐으으으······.
리저드는 고민하는 듯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보면 완전히 싫어하지 않았기에 유선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떠보았다.
“너도 그 여자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은 안 하잖아? 안 그래?”
-맞아. 다른 괴물들처럼 아프게 하지 않아.
리저드는 유선의 말에 수긍하며 꼬리를 흔들었다. 그녀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안심하며 한 번 더 부탁했다.
“분명히 그 아이를 따르면 너는 후회할 일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경계심을 풀고 한 번만 그 아이를 따라 줄래?”
-알았어. 조금 다가가 보는 것 정도야······.
좋다. 꼼수가 성공했다. 유나의 말대로 계약에 직접적인 관여는 하지 않고, 그저 등을 떠밀어 주는 거로 그쳤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고마워.”
리저드가 말을 들어주어 유선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리저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리저드는 온순하게 그 손길을 받았다.
***
진연이 결국 <계약의 인장>으로 관계를 맺은 것은 수업을 시작한 지 두 시간 정도 지나서였다.
유선이 대화한 그대로 리저드가 먼저 다가섰고, 서로 마음을 확인할 시간을 가지면서, 리저드는 완전히 경계심을 풀어 버렸다. 진연은 계약의 인장에 빛을 보았고 크리스털 리저드와 계약을 맺었다. 계약 시간은 역대 기록들과 비교하면 평균에서 조금 빠른 편이었다. 방향을 빨리 잡아 테이밍해 낸 것이 컸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리저’야. 알겠지, 리저야!”
-리저? 리저?
이름이란 것에 생소하겠지만, 계속 부르다 보면 분명히 자신을 부르는 이름임을 알 것이다. 유선은 리저드와 같이 이야기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진연의 첫걸음에 박수를 보냈다.
“축하해. 드디어 첫 사역수가 생겼구나.”
“고마워요, 선배.”
늘 무표정하고 침착할 것 같은 진연이 미소를 지었다. 이거로 어느 정도 시간을 절약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뭐 할 거야?”
“일단 오전에는 천천히 알아보고, 오후에 트레이닝을 함께하려고요.”
“좋은 생각이야.”
다른 이들은 어제 오후부터 리저드를 트레이닝 로봇으로 훈련했다. 훈련 방식은 통일된 것처럼 리저드가 짧은 다리로 달려가 머리로 트레이닝 로봇을 들이받는 거로 했다. 공격 훈련이었다.
팡!
충돌음과 함께 트레이닝 로봇이 그 공격으로 인한 충격을 계산했다. 그리고 각 수강생이 알아보게끔, 표기되었다. 리저드의 공격으로 준 데미지를 확인한 수강생들은 리저드에게 화를 냈다.
“왜 이렇게 못 해! 어제 했잖아!”
신경질이 난무했다. 리저드는 그것을 보고 겁먹어 뒷걸음질 쳤다. 목줄도 풀려 도망칠 수 있겠지만, 지배의 낙인과 함께 걸린 계약의 인장에 그 곁에서 탈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배 특성이 1이지만, 등급이 낮은 몬스터이기에 겁먹은 거로 끝났다.
“좀 더 세게 쳐 보라고! 더 세게!”
트레이닝 로봇을 향해 가리키며 소리쳤다. 리저드는 자신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로봇을 공격했다.
-아파······ 피곤해······.
어제에 이어서 2시간가량을 쉬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리저드는 기진맥진한 채로 숨을 골랐다. 순한 인상에 사람들처럼 표정에 드러나지도 않아 속도와 파워가 약해지면 그걸 조금이나마 인지할 것이다. 하지만 <지배> 특성으로 몰아붙이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말을 무조건 듣게 해 로봇에게 온 힘을 쏟아붓게 했다.
‘슬슬 화가 나긴 하네.’
마음 같아선 한소리 하고 싶은 게 마음속에 쌓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효승의 열렬한 팬이기에, 유선이 자신의 사상으로 오지랖을 부릴 만한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방해하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 그저 입 다무는 게 맞았다.
그러다가 한 수강생이 효승의 방법에 의구심을 품으며, 효승에게 조언을 구하러 발을 옮겼다. 효승은 할 일이 없다는 듯, 자신의 드레이크의 등에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선배님, 혹시 다른 트레이닝에 좋은 방법이 없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극까지 몰아붙여라.’라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런데······.”
그러자 효승은 그를 힐끔 내려다보더니, 귀찮다는 듯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한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 줘야 하니?”
“네? 아뇨, 그런 건 아닌데······.”
“테이밍에 성공했으면 그 이후로는 너희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아? 일일이 물으러 와야겠어? 나도 할 일이 있는 사람이고, 너희 보모가 아니야. 알아들어?”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
효승은 더는 귀찮다는 듯이 그들에게 뭔가 더 가르쳐 주길 거부했다. 그들은 모두 효승이 시키는 대로 하는 중이었다. 지배 방식에서부터 의문을 품지 않고, 그저 그의 뜻대로 하는 중이었다. 역대 최고로 빨리 테이밍했다는 것에 심취해 그의 방법을 광신하는 중이었다. 그 탓에 수강생들은 자신과 맞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끝까지 적응을 못 했다.
실력은 실력대로 고만고만하지,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쌓이지, 지칠 대로 지치지······. 악순환이 계속되지만, 방식은 바꾸지 않았다. 악순환의 고리가 계속해서 돌아갔다.
“아이 씨, 이 망할 도마뱀아! 좀 더 제대로 해 보라고!”
여자 수강생이 유독 신경질적이었다. 질펀한 상담을 요구해 왔던 여자였기에, 그 강렬한 카리스마를 유선이 잊었을 리 없다. 그녀는 자신의 리저드가 트레이닝 로봇에 제대로 된 타격 데미지를 주지 못하면, 주저 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아주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다시 해 봐.”
-으으으······.
리저드는 지배의 낙인에 이끌려 자신의 남은 힘을 끌어모아서 그대로 머리를 트레이닝 로봇을 향해 박았다. 그녀는 성적을 확인했다. 당연하게 성적이 갑자기 좋아졌을 리 없었다. 오히려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서 저만큼 끌어모아 냈다.
“쓸모없는 놈이 진짜!”
퍼억!
그대로 발로 차 버렸다. 리저드의 몸이 붕 떠올랐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더니 등 면이 바닥에 닿았다.
파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