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22. 교감 Vs. 지배 (2)
테이머의 본격적인 수업인 1주. 단순히 이론만 가르치던 강의실이 아닌, 다른 마법학과와 다를 것 없이 큰 실습장이었다. 그 가운데는 수강생과 이유나 강사, 그리고 이효승과 유선이 서 있었다.
수강생들은 평소보다 바짝 긴장했다. 실습해서 상당히 긴장하기도 했지만, 유나와 효승이 거니는 몬스터가 가장 큰 이유였다.
유나의 사역수는 그리핀. 사자의 몸에 독수리의 머리를 단 위협적인 모습이 유나의 뒤에 서 있었다. 그리핀도 대단한 생명체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효승의 사역수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초창기의 헌터들을 독하게 괴롭혔던 몬스터, 드레이크였으니까 말이다.
‘멋지다.’
‘말이 안 나오네, 정말······.’
S급 몬스터, 드레이크! 드래곤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으며, 입에 화염을 뿜고 하늘을 나는 특징이 흔히들 묘사하는 드래곤과 비슷하지만, 몸은 발가벗겨진 것처럼 비늘이 없는 맨몸에 흉측하게 생긴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강하긴 하겠다.’
하지만 그래 봐야 부질없는 이야기였다. 손바닥 위에서 노는 손오공을 보는 부처님처럼 압도적인 스펙을 가진 두 생명체가 유선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카리스마가 없고 매번 보는 탓에 그렇게 크게 위협적이지 않게 여겨서 감각이 무뎌졌을 것이다.
이윤아 강사가 언제나 그렇듯 시간에 맞춰서 입을 열어 강의를 시작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3주간 이론을 들으시느라, 지겹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상당히 많을 겁니다.”
지겨웠다. 같이 열심히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청강했던 입장인 유선도 상당히 지겨워 죽는 줄 알았던 이론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걸 왜 하나 싶기도 했다. 그 이유는 이유나 선생이 바로 다음으로 얘기했다.
“테이머 과정은 아무래도 비주류이다 보니, 다른 매직 클래스들과 비교해서 실습 기간이 짧습니다. 하지만 이 일주일이 여러분에게는 절대로 의미 없지 않은 시간이 되도록 제가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할 선배 헌터분들께서 전력을 다해 서포트해 주실 겁니다.”
유나가 힘들 수 있다는 1주. 유선은 그게 얼마나 어려울지, 걱정되면서 동시에 기대되었다.
“여러분이 테이밍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셨으니, 저와 선배 헌터분들도 이제 사역수를 데리고 와서 함께할 겁니다. 우선 제 사역수인 잉잉이입니다.”
“푸흡!”
“잉잉······ 크흡······.”
비장한 표정과 갭이 큰 이름에 수강생 중 일부가 웃음을 터트렸다. 효승도 기습을 당해, 풉! 하고 웃어 버리고 말았다. 유선은 이미 들었던 이름이었기에, 그 이름을 듣고 참았다.
유나는 자신의 사역수 이름이 카리스마가 없다는 걸 알아 잉잉이를 돌아보았다. 그 눈짓에 알아들은 잉잉이는 자신의 위엄을 떨쳐 보이겠다는 듯 날개를 펴며 실습실을 울렸다.
-끼에에에엑!
귀여운 이름과 달리 분위기를 압도시키는 카리스마가 수강생들의 얼굴을 덮쳤다. 웃었던 학생들은 모두 그 포효에 순식간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만약 이 적이 사역수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진즉 도망쳤어야 했으니까.
“잉잉이!”
“뭔가 되게 어감이 좋은 이름이네. 야, 고양이 몸에 새대가리! 너도 이 이름 좋아?”
그리핀의 포효성을 들은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가 다가갔다. 엘레노어는 잉잉이를 만지며, 늘 그렇듯이 재밌다는 듯 웃었고, 오르넵토스는 장난스레 그리핀에게 협박하는 조로 말을 걸었다.
-끼에에에······.
그 위엄은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의 무법자답지 않게 조신하게 머리를 조아렸다. 꼬마들의 존재를 알아보고 바로 서열 정리를 해 버렸다. 유나는 그 모습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소개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효승 헌터님께서는 특별히 유니콘 헌터 컴퍼니 내에서 관리하는 S급 몬스터인 드레이크를 직접 데리고 오셨습니다.”
효승이 드레이크를 향해 눈짓했다.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보였다. 명령을 알아들은 드레이크가 눈치껏 그리핀과 아이들을 향해서 포효성을 내질렀다.
-키야아아아아!
5m의 거구, 드레이크의 포효성. 그것은 그리핀과는 차원이 달랐다. 위엄이 느껴졌다 하면, 드레이크한테는 위협이 느껴졌다. 수강생들은 모두 한 발자국씩 물러났고, 유선은 그 모습을 보고 살짝 겁먹고 말았다. 인간이었다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본능같이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의 반응은 뜨거웠다.
“꺄하하하하!”
“이게 겁대가리도 없이 어디서 위협을 해? 계약자, 나 얘 죽여도 되지?”
그것도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뜨거웠다. 엘레노어는 재롱을 부린 것처럼 웃기 시작했고, 오르넵토스는 심기를 건드린 것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유선에게 묻는 말처럼 오르넵토스의 드레이크를 향한 살기는 상당히 강했다. 그 정도라면 드레이크가 대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두려움.
-복종.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분명히 <지배의 낙인>으로 인한 효과일 것이다. 드레이크는 충분히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에게 공포를 느꼈지만, 낙인이 그 생존 본능을 애써 억눌렀다. 드레이크는 주춤하는가 싶더니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에게 꿋꿋하게 대적했다.
‘효율이 높긴 하겠구나.’
아직 엘레노어의 제대로 된 살기를 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죽음을 무릅쓸 정도로,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게 효승의 말대로였다.
“마지막으로 늘 함께 사역수와 함께 다니시는 정유선 헌터님이 ‘엘레노어’와 그리고 최근에 계약을 맺은 정령왕 ‘오르넵토스’와 함께할 겁니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까닥이는 가벼운 인사를 보냈다. 그거로 끝내려는 찰나에, 엘레노어가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 님, 나 ‘그거’ 해도 돼?”
지금 상황에 그거라고 하는 건 분명히 살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핀과 드레이크 두 명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힘찬 포효성에 매료되어 엘레노어도 따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진한 살기였기에 유선은 선뜻 허락할 수 없었다.
“안 돼.”
“왜?”
“저 사람들은 나처럼 연약해서 그런 거 하면 힘들어할 거야.”
그건 오르넵토스도 동의하는 바인 모양이었다.
“그래, 엘레노어는 너무 강하니까. 다른 방법으로 위협을 줘 보자.”
“우으, 알았어.”
그 당시에 유선이 받았던 고통이 엘레노어의 머리에서 떠올랐는지 수긍했다. 그래서 그 대신 살기를 이용한 위협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다른 사역수처럼 위협을 주려고, 엘레노어는 양손을 위로 뻗어 올리며 외쳤다.
“갸오오!”
“······.”
“······.”
세상에서 가장 위협적인 음을 냈다.
3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수강생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유선은 설마 이런 식으로 자기소개를 하리라곤 상상도 못 해 방심해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르넵토스가 엘레노어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엘레노어!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안 무서워한다고.”
“이렇게 아냐?”
“다들 비웃으니까 실패한 거야. 엘레노어는 정말 바보야.”
“바보 아닌데······.”
나름대로 비장의 한 수였는지, 오르넵토스의 말을 듣고 볼을 부풀렸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볼을 만지며, 미소 지었다.
“세상에서 제일 위협적이었어. 걱정하지 마.”
“유선 님은 그랬어?”
“이만한 맹수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 하고 고민도 했으니까.”
다른 맹수들과 다르게 깨물어 버릴지, 아니면 확 안아 버릴지 고민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앞에 있어서 차마 내색은 하지 못했다. 그 귀여움에 잠깐 매료되어 얼굴을 붉혔던 유나가 다시 고개를 돌려, 평정을 찾은 얼굴로 말했다.
“이렇게 해서 사역수들과 함께 지낼 것이고, 곧 여러분이 일주일 동안 테이밍해야 할 몬스터가 올 겁니다.”
그녀의 말 맺음과 동시에, 교보재로 쓰일 몬스터가 철장 우리에 가둬진 채로 실습실로 들어왔다.
대상은 크리스털 리저드라고 부르는 몬스터였다. 넙적한 모습에 파충류의 날렵함보다는 순한 인상을 남기는 등껍질 대신에 크리스털 같은 광석이 박혀 이름 지어졌다. 땅을 파고 들어가 숨는 것이 주 생존 전략이며, 사람을 보면 공격하기보다는 먼저 도망가는 게 먼저였다.
F-등급 몬스터에 교보재로 쓸 이유는 온순한 성격과 코어도 없다시피 해서 가치가 높지 않은 생명체이기 때문이었다. 등껍질의 크리스털을 탐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생명력을 잃으면 특유의 빛과 경도를 잃어버려 죽일 수도 없는 생명체였다. 그래서 일반 애완동물 숍에서라도 판매해 보려 했지만, 특유의 낯가림 때문에 의도치 않게 집 바닥이 허물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감히 그 누구도 엄두 내지 못했다. 교보재로 쓰기 적당하며, 상품성이 없는 몬스터였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저와 선배 헌터들은 여러분이 몬스터를 테이밍하는 것을 지켜보고, 스트레스 관리와 다루는 방법 등을 함께할 것입니다. 모든 과정과 방법은 자유롭게 하셔도 됩니다. 목요일이 최종 마감일로 그날까지 사역수와의 친밀도, 능력치 변화도, 그리고 팀워크를 중심으로 확인할 겁니다.”
크리스털 리저드는 5마리, 한 사람당 한 마리씩 돌아갔다. 바닥을 팔 수 없도록 단단한 발싸개를 씌워 놓았고, 도망갈 수 없도록 체인을 걸어 놓았다.
“자, 그러면 자유롭게 테이밍해 보십시오.”
유나가 그렇게 말하고, 본격적인 실습이 시작되었다. 마치 말이라도 한 것처럼 수강생 4명은 크리스털 리저드를 끌고 효승에게 다가갔다. 그 분위기에 진연도 유선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선배.”
“응, 주말 잘 쉬었지?”
“네.”
“잘할 수 있겠어?”
그가 한 번 더 묻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될 것 같아요.”
“그래, 한번 시작해 보자.”
크리스털 리저드는 겁먹은 채로 진연의 손에 이끌려 왔다. 과연 이런 몬스터를 다룰지 걱정했다. 유선의 편에서 진행할 때, 효승도 자신의 방식을 알려 주기 시작했다.
“지배는 너희에게 말했다시피 상대의 공포감 속에서 파고들어 생각을 조종하는 스킬이야. 단순히 상호 동의하는 계약과는 차원이 다르지. 내가 무조건 갑이 될 위치란 말이지.”
들은 바로는 효승이 직접 4명 추종자에게 지배 스킬을 전수해 주었다고 했다. 그게 옳지 않은 행동은 아니었기에 뭐라 할 수는 없었다. 효승은 그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너희에게 전수해 주면서 알려 줬겠지만, 한 번 더 말하자면 지배의 핵심은 공포야. 테이밍 당하는 몬스터가 얼마나 공포에 빠졌는가에 따라서 달라. 그 공포를 심어 주려면 압도적인 스펙으로 공격해 패닉 상태에 빠트리거나······.”
빠악!
효승은 크리스털 리저드를 발로 찼다. 크리스털 리저드가 그 힘이 실린 발길질에 그대로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몸이 데구루 구르더니, 체인에 걸려서야 겨우 멈췄다.
뒤로 뒤집히면서 크리스털 리저드는 바동바동했다. 유선은 그것의 생각을 읽었다.
-고통.
-아파, 아파······. 싫어······.
그리고 처절하게 울부짖는 것이 유선의 귀에 들려왔다. 이것이 루데릭과 계약하면서 얻은 <커뮤니케이션>의 효과였다. 그렇게 울부짖는 것과 다르게, 효승은 무감각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아니면 이렇게 폭력을 휘둘러서 살고 싶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힐 때까지 쳐.”
효승의 과감한 행동에 수강생들은 모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때 이유나 강사가 끼어들어 효승에게 주의하라고 경고하였다.
“죄송하지만, 이효승 헌터님. 지금은 학생들이 실습할 시간입니다. 테이밍에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취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그만 흥분해 버리고 말았네요.”
효승은 늘 그렇듯이 상쾌하게 웃었다. 유나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의 행동에 혐오감을 보였다.
“아무튼 알겠지? 다들 그렇게 하면 돼. 어려운 것 있어?”
그때, 수강생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소심하게 손을 든 것만큼 순박하게 생긴 사내였다.
“저는 잘 못 하겠습니다······.”
“그래? 뭐가 어려워?”
효승이 친절하게 접근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묶인 것을 저항도 하지 않는데, 쳐야 한다는 게 마음에······.”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효승이 그의 주절거리던 얼굴을 잡아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왜 못 해? 생각해 봐. 어차피 이건 몬스터야. 앞으로 만날 것도 너를 위협할 몬스터고. 그 몬스터들에게 어떻게든 흉기를 들이미는 게 일인데, 이런 걸 못 잡는다고 지금 할 소리냐?”
“······.”
효승의 말대로였다. 헌터들은 어디까지나 몬스터를 죽여 코어를 채취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몬스터를 치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그것도 못 할 것 같으면 헌터 때려치우자. 알았지?”
“······넵······.”
사내는 마음을 다잡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효승은 만족한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툭 치며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