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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교감 Vs. 지배 (1) (4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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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교감 Vs. 지배 (1)

“주문하신 라면 6그릇, 나왔습니다~. 늘 많이 넣었어요, 헌터님.”

“감사합니다. 하하, 배 터져 죽겠네요.”

유선은 식당 아주머니의 농담을 받아치며, 두 개 받침대에 올려진 라면을 들고 자리로 이동했다. 성인들만 바글바글한 사이에, 한 테이블만 유일하게 꼬맹이 둘로만 이루어진 테이블이 있었다.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다. 엘레노어는 오늘도 오르넵토스를 위해서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곰!”

“이걸 곰이라고 읽는구나. 과연······ 다음!”

“자동차!”

“자동차라, 흐음······. 이것도 괜찮네! 이세계 글자는 쉬워서 좋네. 뭔가 착착 감겨!”

오르넵토스는 그 글자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쯤이면 모두 이해했을 것이다. 이런 반복 학습이 이루어진 지 벌써 3주나 되어 갔기 때문에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이해 못 했을 리 없었다.

‘엘레노어의 친구라더니, 괜히 친구가 아니구나.’

몇 달을 그녀의 장단에 맞춰 준 유선도 지칠 타이밍이 다가올 무렵인데, 정말로 즐거운지 오르넵토스는 그녀의 장단에 맞춰 주는 게 전혀 힘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렇게 단순하면 참 좋을 텐데······.’

오르넵토스가 현신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정령왕, 오르넵토스. 공식적인 발표는 안 했지만, 안에서 이야기하던 정령사들 때문에,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 버렸다. 발록을 길들였을 때도 그러려니 했지만, 얼마 안 가서 정령왕을 소환해서 계약을 맺으니, 회사 측에는 무척이나 탐나는 인재였다. 상위 정령이 있다면 그 계열 하위 정령을 꼬드기는 데 난이도가 확 내려가기 때문이었다. 혼자 치트키 쓰고 하는 게임이라 생각하면 되었다.

분명히 막아 놨다고 생각한 번호들이 계속 뚫리면서 끈질긴 러브콜에 그의 스마트폰이 쉴 틈이 없었다. 그래서 아예 아는 사람 번호를 제외하고 모든 번호에서 오는 전화와 메시지는 차단해 버렸다.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다행이지.’

유선은 기율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카데미에만 출근하는 유선보다는 지금 아무것도 모른 채로 폭격을 받는 기율이 가장 불쌍했다. 유선은 기율이 처음 전화했을 당시에,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주 주옥같은 호외요. 이 회사 들어오고 싶다는 헌터들이 산처럼 쌓였소.

‘오, 좋은 일 아니냐? 사람 없다고 노래를 불러 댔잖아.’

-근데 죄다 정령술사 클래스요.

‘······.’

-그중에는 외국인도 있고.

지원서 자체가 오는 건 너무나도 좋았지만, 한 분야에 폭주했다. 지원서만 오면 좋겠지만, 유선이 전화번호를 막아 놓은 탓에 각 신문사의 취재 요청도 끈질기게 기율을 통해서 들어왔다. 그래서 제 할 일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막으려고 인맥을 동원하면, 그 인맥이 그 빌미로 독점 취재를 요구해 와서 그는 낙동강 오리 알 신세처럼 느끼는 중이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유선은 지금 폭풍의 눈 속에서 고요함을 즐기는 것이었다.

엘레노어는 오르넵토스에게 글자를 알려 주다 유선이 오는 냄새를 맡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테이블을 치며 외쳤다.

“나면, 나면!”

“얼른 나면을 대령해라, 계약자!”

그 흥겨운 장단에는 오르넵토스도 섞여 있었다.

“라면 먹기 전에 책 덮고 먹자.”

그녀도 라면에 대해 열광했다. 오르넵토스가 맥주를 마실 때 관심을 가진 것처럼 엘레노어가 라면을 먹을 때, 오르넵토스가 관심을 보였다. 루데릭처럼 혐오하면 어쩌나 했지만, 오르넵토스는 매우 좋아했다. 라면 국물이 내는 매콤한 맛이 그녀의 취향인 것 같았다.

“빨리 면 먹어, 나도 먹어야 하니까.”

“머꼬 이써.”

오르넵토스가 엘레노어에게 재촉했다. 라면은 좋아했지만, 면은 그녀의 취향이 아닌 것 같았다. 어디까지나 관심사는 국물이었다. 고형 음식은 선호하지 않는다면서 면발은 모조리 엘레노어에게 넘기고 그녀는 국물로 끼니를 해결했다. 입이 두 개가 늘었지만.

‘역재생하면 공장처럼 보이겠다.’

엘레노어가 재빠르게 면발을 먹고, 옆으로 넘겨서 국물을 모조리 들이켰다. 처리 과정이 아기자기한 애들이니 몇 번을 봐도 재밌었다.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상태 창을 열어 보았다.

이름: 오르넵토스.

계약 날짜: 2042년 10월 6일.

호감도: 0%.

스트레스: 20%.

적응도: 6%.

호감도에는 역시나 미동도 없었다. 엘레노어에 관한 적응도를 올리기보다, 그녀의 호감도를 올리는 게 더욱 빡빡한 편이었다. 오르넵토스에게 관심을 주지만,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3주간 그녀의 장단에 맞춰 갖가지 방법을 써 봤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것은 술뿐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술로도 호감을 사나? 그것도 아니었다. 명주를 주면 주는 대로, 싸구려 맥주를 주면 그것도 주는 대로 받아먹는 편이었다. 그리고 호감도는 오르지 않았다. 차이라면 스트레스만 좀 떨어질 뿐이었다.

유선의 마지막 호감도에 대한 가설은 이것밖에 남지 않았다. 계약자의 마나량에 따라 계약의 난이도가 정해졌다. 그것만큼 자격을 갖추는 자에게 호감을 사는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루데릭이 지식을 더욱 빠르게 얻으려고 유선이 과감하게 돈을 부었을 때 일어났던 반응처럼 말이다.

‘루데릭······.’

루데릭에 대한 생각을 하니 루데릭의 문제로 넘어갔다. 그에게 컴퓨터를 사 주면서 뒤늦게 알았지만, 설마 5천만 원이나 들 줄은 몰랐다. 루데릭은 합리적인 가격이라 해도 그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샀다고 변명했다.

-반드시 이른 시일 내에 주인 돈을 상환해 주겠다.

루데릭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5천만 원 드는 건 상관없었다. 마음 같아선 1억도 퍼 줄 수는 있었다. 다만 유선은 오르넵토스와 우호적이지 않은 관계였기에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는 게 마음에 걸렸다.

“유선 님.”

라면을 먹던 엘레노어가 턱을 괸 채로 상념에 잠긴 유선에게 말했다.

“응?”

“유선 님은 안 먹어?”

“괜찮아. 아침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하하, 배가 부르네.”

“뭐 먹지도 않았잖아. 계약자, 어디 아픈 거 아냐?”

“아파? 아프면 안 대.”

“아픈 거 아냐. 그냥 괜찮아서 그래.”

유선은 부쩍 입맛이 떨어졌다. 치고 치이는 문제로 받는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었다. 엘레노어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유선을 올려다보며 포크에 면 가닥을 걸친 채 들어 올렸다.

“먹을래?”

“아냐. 우리 엘레노어, 많이 먹어.”

“응.”

곧바로 거둬들이면서 자신의 입에 흡입했다.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것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유선은 그동안, 강의에서 물어볼 질문들을 다시 체크했다.

3주간, 강의하면서 유나가 준비해 달라는 질문들은 전부 무난한 편이었다. 테이머로서 현실이라든가, 아니면 스트레스 관리 등, 기초적이면서 경험을 통해서 좀 더 다르게 접근할 것들에 관해서 물었다. 그리고 유선과 효승 두 명의 대답은 언제나 무난하게 대답했다. 그 무난함은 누가 옳다고 하기가 힘든 자기 경험들이었고, 그것을 그대로 말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더 노련한 헌터인 효승이 아무래도 더 이끌리는 것 같았다. 수강생 4명은 이미 열혈한 효승의 팬이었다. 그런 쓰레기를 왜 좋아하나 싶었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유선은 그게 맞는다고 여겼다.

120마리를 거닐며, 빵빵한 대기업, 유니콘 소속인 A급 헌터.

그리고 최소 S급 이상인 사역수 3명을 이끄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헌터 컴퍼니 소속인 S급 헌터.

누구의 편에 붙어야지 가장 이상적일까? 언뜻 보면 S급 헌터인 유선이 더욱 실력 있어 보일 것이다. 적지만 120마리 이상의 가치를 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속으로 따져 보면 그들이 바라는 헌터 생활과는 차원이 멀었다. S급과 접근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자신의 주 적과 마주해서 서로 이야기한다는 건 웃긴 소리였다. 혼자 위험한 것도 아니고, 그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위험해지는 상황에 부닥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유선은 자신들이 거들떠보지 못하는 높은 이상이고, 효승은 눈앞에서 잡을 기회, 현실이었다.

번지르르한 겉멋, 상쾌하게 짓는 미소, 그리고 인맥으로 삼기에 가장 적절한 장기 보험. 그래서 첫날부터 선뜻 몸을 내놓으면서 질펀한 상담을 요청한 여학생이 있었다.

‘세련되긴 했는데, 글러 먹었지.’

유선은 인맥이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해서까지 얻고 싶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전부 다 효승에게 달라붙었다면,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 둘과 함께 지내는 날로 먹는 아카데미 생활을 보냈겠지만, 그런 사람만 있지도 않다는 듯 유선의 편에 선 사람이 있었다.

“선배님, 같이 먹어도 될까요?”

“어, 그래······ 진연아, 앉아서 먹어.”

커다란 안경을 쓰고 수수하게 차려입은 여인. 이름은 진연, 성은 조. 그래서 유선은 절대로 성을 붙여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혹여나 자신이 웃어 버려 이름 때문에 상처 입히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진연은 성실한 학생, 그 자체였다. 3주간 강의도 꾸준히 받으면서 강사에게 모르는 것을 몇 번이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진연이 똑같은 <교감> 특성이 있는 사실을 알고, 유선에게 멘토로 지내 줄 것을 요청했다. 유선은 기꺼이 받아 주었다. 유선은 같은 교감 능력자라면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진연은 가방을 내려놓고 유선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선배라고 안 불러도 된다니까. 어차피 같은 연도에 각성해서 사실 너랑 동기나 다름없어.”

“그래도 회사에 못 들어간 저보다 경험은 많으시니까요. 나이도 두 살 더 많고.”

“그럼 오빠라고 부르지.”

“그건 좀······ 속물처럼 보이지 않나요?”

“켁······.”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진연의 말이 비수처럼 들어왔다. 이렇게 침착하니까 효승보다는 자신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알 것 같았다. 다른 헌터들과 다르게 명예욕도, 물욕도 별로 없어 보였다. 자기 일에 대해서 궁금한 것만 있을 뿐, 얼마 버는가? 같은 사적인 질문은 자제했다. 유선은 욕구가 부족한 게 아쉬웠지만, 그런 순수한 면을 보이는 진연이 마음에 들었다.

진연은 밥을 먹으면서 반대편에 앉은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를 보았다. 유선은 단순히 귀여워서 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그녀에게 물었다.

“엘레노어랑 오르넵토스에게서 생각이 잘 안 보여?”

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

유선에게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던 그대로였다. 그녀도 각성하면서 <조련>과 <교감>을 얻어 테이머 클래스로 들어왔다. <교감>이 생기면서 진연의 경우에는 <마인드 워드>가 아닌 <마인드 이미지>로 유선처럼 단어가 보이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떠올리는데, 엘레노어와 오르넵토스에게서 아직 뭔가 보는 건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아직 레벨 2라서 그럴까요? 수준이 높은 몬스터들이라서 이유나 강사님도 아직 엘레노어 양의 생각은 제대로 못 읽겠다고 했거든요. 선배는 처음부터 보였나요?”

“나는 처음부터 보였어.”

기억한 시점부터 하면 엘레노어의 생각을 단번에 읽었다. 루데릭도 그랬다. 유선의 교감 레벨이 높은 이유도 있지만, 만약 아니라 해도 술에 취할 당시에 엘레노어와 있는 시간과 <계약의 인장>이 있어서 그런 거라 여겼다. 진연은 생각을 읽으려던 걸 그만두고 다시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곧 있으면 실습이네.”

“그렇죠.”

“잘할 자신 있어?”

“음······.”

생각보다 자신 없는지 대답을 주저했다. 먹던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진연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유선에게 물었다.

“선배는 제가 잘해 낼 것 같나요?”

몰랐다. 유선은 그 실습에서 테이머로서 진연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충분히 해낼 거야. 순수하게 노력하는 걸 봐 왔으니까.”

“감사해요, 선배.”

빈말이라도 고맙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유선이 해 줄 것은 그녀가 잘 해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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