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 정령왕 오르넵토스 (2) (4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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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정령왕 오르넵토스 (2)

“오르넵토스?”

“지금 오르넵토스라고 했어?”

“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오르넵토스를 소환했다고 들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는데······.”

“쟤는 EX 등급이잖아. 진짜 아냐?”

주변이 술렁거렸다. A급 정령술사인 최서진도 그 존재에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오, 오르넵토스라니······ 말도 안 돼.”

그는 물론이거니와 역대 모든 정령술사도 감히 정령왕을 소환해 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들은 범접할 수 없는 뭔가를 만난 것처럼 놀랍다는 듯이 저마다 한마디를 꺼냈지만.

“네?”

유선만 잘못 들은 것처럼 반응했다. 정령술에 대해서 조금만 접해 봤다면, 절대로 들을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제 소개를 마친 오르넵토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말귀를 못 알아먹는 남자네! 다른 인간들은 다 아는데, 너만 다시 한 번 더 설명해 줘야 해?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유선은 잠시 어이없어서 말을 내뱉었던 것뿐이었다. 유선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엘레노어가 ‘친구’라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한 감은 왔다.

정령왕. 그 존재 자체를 소환 것이 이상했지만, 엘레노어의 스펙으로 따지면, 소환이 불가능한 정령은 아니었다. 소환할 정령은 언제나 계약자의 마나에 비례해 응하기 때문이니까.

-아무튼, 죽이려고 해서 미안해. 오랜만에 보는 인간이기도 하고, 어떤 악의를 품는지 잘 몰라서 말이지. 인간들에겐 어느 정도의 악의는 있으니까 말이야.

“······.”

이유라고 내뱉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다. ‘네가 누군지 모르고 오늘 처음 만났는데, 그래도 분명히 나쁜 생각을 품으려 하니까 죽이려 했어.’라는 말로 위로할 생각이었다면, 그건 오만한 행동이었다.

-뭐 에브······ 아차, 이 꼬마가 너를 좋게 생각한다면, 나도 너를 좋게 생각해야만 하겠지.

오르넵토스의 머리 위에 ‘믿음’이라는 글자가 떴다. 그 글자를 본 유선이 그녀에게 물었다.

“엘레노어가 제 편이라면 당신도 제 편입니까?”

유선의 물음에 오르넵토스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연하지! 나는 꼬마의 동고동락을 함께하기로 약속한 정령왕 오르넵토스니까! 꼬마의 편은 언제나 내 편이지!

사실인 것 같았다. 유선은 확정 짓는 그녀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면 오르넵토스와 계약할까?’

유선은 정체를 알 수 없는 EX 등급 소녀에 SS 등급 악마까지 테이밍했으니, 정령왕은 안 될 게 뭔가 싶었다. 그는 과감하게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그럼 저와 계약해 주시겠습니까?”

-뭐? 인간이 주제넘게 나와 계약하고 싶다고? 마력 농도가 희박한 곳에서 살다 보니 미쳐 버렸나?

오르넵토스가 차가운 얼굴로 비웃었다. 유선의 심기를 자극하는 도발이었지만, 유선은 애써 진정했다. 큰 그림을 그리며, 그녀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제 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네 편이라기보다는 꼬마의 편이지! 꼬마가 배신한다면, 나도 널 배신하니까!

명백히 남남이라는 듯이 얘기했다. 하지만 유선은 지지 않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그전까지는 어찌 됐든 제 편이란 소리지 않습니까?”

-으, 음······ 그렇지?

오르넵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와 계약해 주십시오. 엘레노어도 저와 믿음으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뭐어? 그럴 리가 없잖아. 꼬마가 어떻게 너 같은 인간이랑 계약해? 자꾸 그런 헛소리 하면 가만 안 둔다?

여전히 못 믿는군. 이럴 때는 유선이 백번 말하기보다 장본인이 직접 말하는 게 제일 낫다.

“그렇다면 엘레노어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저랑 계약했느냐고.”

유선의 말이 맞는지, 오르넵토스는 고개를 돌려 엘레노어에게 질문을 던졌다.

-꼬마, 너 저 남자랑 계약했어?

엘레노어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유선 님이랑 했어.”

-네가? 어떻게 너를 만났어? 계약보다 그것부터 신기하네······.

경악한 오르넵토스는 슬쩍 눈길을 유선으로 옮겼다. 계약한 자신은 계약 당시를 몰랐기 때문에, 유선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것마저 물을 생각은 없었는지, 유선에게 말을 걸진 않았다. 오르넵토스는 잠깐 생각했다.

-우리 꼬마가 계약했다······. 음, 그렇다면 나는······.

오르넵토스는 잠깐 고민했다. 그리고 답이 나왔는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꼬마를 데리고 있는 만큼, 절대로 의미 없는 인간은 아닐 테니까. 오랜만에 인간이랑 계약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꼬마가 네 편인 이상, 나도 네 편으로 지내 줄게. 그 조건으로 계약하자고.

그러자 유선의 오른쪽 손목에 형태가 생겨나며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계약의 인장이 발동되었다. 유선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번 더 오르넵토스에게 물었다.

“계약 정말로 해 주시죠?”

-의심하나? 정령왕은 한 입으로 두말하지 않아! 나처럼 고귀한 정령이 감히 그런 짓을 하겠어? 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주면 돼!

쓸데없는 소리를 해 가며 거만하게 말했다. 유선은 아무튼 계약을 받아 주겠다는 의미이니 다시 한 번 더 계약을 성사시키는 말을 했다.

“좋습니다. 계약하죠.”

그리고 정상적으로 계약이 완료되었다. 손목 부근에 또 다른 인장이 생겼고, 동시에 오르넵토스에 관한 상태 창이 떴다.

이름: 오르넵토스.

계약 날짜: 2042년 10월 6일.

호감도: 0%.

스트레스: 0%.

적응도: 5%.

-엘레노어의 친구입니다.

테이밍이 정상적으로 완료되었다.

어르고 달래도 계약하기 어렵다는 정령, 그중에서 왕과의 계약이 손쉽게 끝났다. 숨죽여서 구경하던 수강생들은 그의 행동을 모두 지켜보았다.

‘대박 사건!’

‘영상 찍었으면, 돈 좀 벌었을 텐데.’

상급 정령과 계약을 맺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었다. 어중간한 마나로 소환하면 어르고 달래고, 호감을 사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기에 마나가 많지 않다면 계약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급 정령을 부르는 것 자체도 어려운 수강생들에게, 정령왕과 계약하는 일은 결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좋아, 계약은 성공했군.’

이로써 3명이 되었다. 정령 자체를 다룰 만큼 마나가 많지 않아, 숫자를 늘리는 행동일 뿐이었다. 하지만 유선은 정령왕이랑 계약해서 괜히 손해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해, 과감하게 계약했다.

유선의 상태를 볼 만큼, 오르넵토스도 계약하면서 유선의 일부를 느꼈다.

-음······. 뭐야, 계약자? 마나가 있나 없나 한 수준인데. 이런 마나로 나랑 계약한 건 별로 환영하지 않는데······.

시작부터 팩트 폭격이었다. 유선은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문제가 있습니까?”

-나를 소환하려 들었다면, 문제가 있었겠지. 지금은 큰 문제는 없어. 어차피 나는 여기에 현신한 몸이고, 지금은 꼬마가 있으니까 크게 일이 벌어진다 해도, 문제는 없으니까.

또 다른 계약자인 엘레노어의 마나가 터무니없이 많으니 유선의 마나량은 거들떠볼 이유가 없는 듯했다.

-그래도 우리 꼬마에게 계속해서 마나를 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네가 가진 마나가 딱 현신을 유지할 만한 마나량이니, 계약자, 네 마나를 사용할 생각인데, 그래도 되겠지?

오르넵토스가 물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의 동의를 얻은 오르넵토스가 엘레노어와 이어 놓은 마나를 끊었다. 엘레노어의 마나로 유지하던 오르넵토스의 몸이 풍화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몸을 이루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자연의 매개체로 돌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잠시만 이거 뭔가 불안한데······.’

완전히 풍화되진 않았다. 하지만 풍화된 만큼 사이즈가 줄어들어 버렸다. 외견의 특징을 그대로 가진 채로 어린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오르넵토스가 유선에게 말했다. 사이즈만큼이나 아기자기해진 목소리로 말이다.

“네 마나로 유지할 모습이 딱 이 정도야!”

“······.”

졸지에 새로운 꼬맹이가 늘어나 버렸다. 모든 것이 엘레노어와 맞춰진 사이즈였다.

“그 정령왕이 작아졌어.”

“무슨 의미지?”

수강생들은 저마다 추측을 던지기 시작했다. 유선은 상념에 잠겨 혼자만의 세상에 있다 그제야 수강생들이 있다는 문제를 인지하고 말았다.

‘큰 실례를 저질렀구먼······.’

그 미안함은 서진을 향한 것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본 망연자실한 최서진의 얼굴을 보니 말이 아니었다. 남의 쇼에 난입해서 찬물 끼얹은 격이니 넋을 놓은 표정이었다.

“남 수업하는 데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하하, 저는 이만······.”

유선은 오르넵토스와 엘레노어를 이끌고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강의실 문이 닫히면서 넋을 놓던 수강생들은 그제야 숨을 쉬겠다는 듯했다.

“역시 S급은 뭔가 다른 거 같아, 정령왕이랑 계약하다니.”

“오르넵토스를 실물로 본 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아.”

“근데 좀 싹수없어 보이지 않았어? 말투가 되게 거슬렸는데······.”

“그래도 정령왕이잖아. 그럴 만하지.”

본래 강하면 대부분은 용서되는 편이다. 그렇게 정령왕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들은 왜인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 뭔가를 잊은 것 같지 않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대체 뭔지······.”

“크흠······.”

“아······.”

기침 소리와 함께 그들은 소외당하던 최서진의 존재를 뒤늦게 떠올렸다. 서진은 쓸쓸히 자신의 바지를 털어 내면서 일어났다. 싸한 느낌을 받으며 그들은 서진을 치켜세워 주려고 저마다 말을 던졌다.

“선배님,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선배님은 선배님 실력으로 중급 정령을 뽑아내셨잖아요.”

“선배님이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서진은 씁쓸한 표정을 거두지 못한 채로 애써 미소 지으며 그들에게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너희가 아무튼······ 좋은 길로 가길 바랄게.”

서진이 이미 개판이 되어 버린 쇼에 설 자리는 없었다.

***

유선은 두 소녀를 이끌고 휴게실로 향했다. 오르넵토스는 이해 못 하겠다는 듯 유선에게 물었다.

“왜 불붙은 집에서 뛰쳐나오는 것처럼 급하게 나와? 뭐 잘못한 거라도 있어?”

“잘못했다기보다는 미안해서죠.”

이제 막 아마추어를 벗어난 마술사가 벌이는 마술쇼에 게스트로 프로 마술사가 등장한 격이었다. 꿈과 희망을 심어 주면서 동시에 관심으로 충족 받으려던 사람이 난데없이 나타난 엘레노어가 그 무대를 빼앗았으니 미안할 뿐이었다. 전말 사정을 모르는 오르넵토스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듯이 반응했다.

“미안한 건 신경 쓰지 않아. 지금 내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계약자가 꼬마를 매료시킨 인간 세상이지. 자, 계약자. 이제부터 인간 생활을 내게 보여 줘.”

“인간 생활!”

엘레노어가 가세해서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정령왕은 완전히 애 같았다. 당장에 소개하라는데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말은 그렇게 해도, 제가 당장에 튀어나온 사람을 서포트할 만큼 준비가 된 사람은 아니라서요.”

“이 몸이 직접 현신해서 나왔는데, 그 정도도 못 해 준다고?”

아카데미에서 차도 끌고 나오지 않았고, 그녀를 데리고 갈 장소가 없었다.

“지금은 오르넵토스 님이 나온 것만으로도 매우 당황스러우니까요. 그러니······.”

오르넵토스가 유선이 말하는 도중에 그의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말했다.

“계약자. 쓸데없는 존칭은 집어치우자. 어차피 꼬마······ 음, 아니지 이젠 꼬마라고 부르기도 뭐 하네. 나도 꼬마가 되었으니. 에브······라고는 부르지 말랬고, 흐음······.”

칭호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유선은 그녀에게 도움을 주었다.

“엘레노어!”

“엘레노어! 그래, 엘레노어가 있었네. 아무튼, 이어서 말하면 어차피 엘레노어에게도 이미 말을 놨을 테니까 그 정도는 이해해 준다고! 이 정령왕의 넓은 아량으로 말이야!”

말투는 계속 듣는 입장에서 이상하게 재수 없어 보였다. 꼬맹이가 되니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재수 없는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내게 인간 생활을 보여 줘! 엘레노어를 사로잡은 인간 생활을 말이야!”

그리고 막무가내인 성격도 보탰을 것이다. 오늘 내로 제대로 보여 달라는 것 같은데, 유선은 오르넵토스의 요구에 잠깐 생각하고 엘레노어를 보며 그녀에게 물었다.

“엘레노어가 오르넵토스에게 인간 세상이 어떤지 알려 줄래?”

아무래도 같은 친구니까, 오르넵토스에 대해서 더 잘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기다가 엘레노어가 매료된 세계를 보고 싶다고 하니, 자신이 직접 알려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가 알려 줄래.”

“엘레노어, 네가? 그럴 수 있겠어?”

오르넵토스는 못 믿겠다는 듯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경험으로는 절대로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어.”

엘레노어는 상당히 많은 일을 알기에 자신만만했다. 물론 그것도 단순히 엘레노어의 생각일 뿐이다. 오르넵토스는 손뼉을 치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그래, 괜찮겠다! 계약자가 설명하기보다 네가 설명하는 게 낫겠지. 네가 이 세상에 어째서 흥미를 느끼는지도 궁금하니, 네가 직접 알려 줘!”

“응!”

엘레노어가 직접 알려 준다고 하니, 이거로 정령왕의 요구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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