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21. 정령왕 오르넵토스 (1)
정령술. 매직 클래스에 속하는 곳으로 가장 많은 마나량을 요구하는 클래스이다. 마력이 낮아 마법 데미지 자체에 크게 데미지를 주는 방법이 없더라도, <정령> 특성 레벨과 그에 따른 소모하는 마나량만큼 제대로 된 정령들이 나와서 도와주기 때문에 무난하게 환영받는 클래스였다.
어찌 보면 테이머와 비슷한 존재였다. 유선은 그들이 정령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궁금했다. 보조 강사의 제안에 고민하다 엘레노어에게 물어보았다.
“엘레노어, 안에 들어가 볼까?”
“펑펑보다 재밌어?”
“글쎄?”
고개를 돌려 질문 대상을 그 사내에게 돌렸다. 사내는 갑자기 타깃이 돌려진 데 당황하며 설명했다.
“재미는······ 있을 겁니다! 마침 시범식을 보이는 참이니, 잘 볼 수 없는 정령술이나 한 번 보고 가시죠!”
“재밌을 것 같아.”
“볼래, 볼래!”
엘레노어는 들뜬 얼굴로 대답했다. 보조 강사가 그들이 들어가도록 문을 열어 주었고, 유선과 엘레노어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유선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눈에 띄는 규모에 바로 경악했다.
테이머과의 강의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테이머과는 단순한 중소 규모로 운영되는 학원 교실 같다면, 정령술과는 유명 교수의 대학교 강의실처럼 무대 수준이었다.
실기 중심의 그 가운데에는 수강생들이 모여 있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벌린 채, 한 사람을 둘러싸며 뭔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중앙에 서 있는 남자는 유선도 아는 사내였다.
‘유명한 사람이네.’
정령술사, 최서진. A 등급을 유지하는 헌터이며, 일인 공격대로 유명했다. 주로 다루는 속성은 불이며, 상급 정령과 계약에 성공해 위험하지 않은 던전에서는 불의 정령을 소환해 언제나 홀로 휩쓸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사실상 S급이 아니냐는 말이 있지만, 아직 A급에 머무는 사내였다. 이번 코드 헌터에서도 활약했지만, 그 활약을 벌일 당시에 유선은 저 밑바닥에 있었기에 알 수가 없었다.
유선과 엘레노어는 방해되지 않게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았고, 서진은 수강생들에게 하던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튼······ 이렇게 선배의 말을 경청해 주니 고맙고. 앞으로 너희가 볼 미래들, 미리 본다고 생각하고 선배로서 보여 줄게.”
서진이 고급 라이터를 꺼내 들어 능숙하게 부싯돌 휠을 돌려 불을 피웠다.
“이프리트, 나와.”
자신보다 상급 존재를 부를 때는 주문을 길게 읊지만, 자신보다 약한 자를 부를 때는 짧게 주문을 읊는다. 주문이 맞나 하는 의구심도 들기 전에 라이터의 불이 거세게 올라왔다. 서진은 당황하지 않고, 지포 라이터 뚜껑을 덮었다. 불꽃은 그 자리에서 계속 타오르며,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불덩어리가 가운데에 일렁이자, 곧 형상을 하나 띄우기 시작했다. 중급 정령, 이프리트가 모습을 보였다.
“세상에······.”
“내 눈으로 이프리트를 볼 줄이야······.”
정령술 수강생들은 모두 이프리트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소환된 이프리트가 완전히 모습을 보이자 서진에게 예를 갖추며 물었다.
-저를 소환하셨나요, 계약자여.
“그래. 내가 너를 여기에 소환했다.”
-누구를 불태우면 되겠습니까?
“불태울 적은 없다. 저기 있는 물건에 대고, 너의 힘을 한번 보여 주어라.”
서진은 반대편에 놓인 더미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기꺼이.
이프리트의 몸이 완전한 화염에 감싸졌다. 덩치 큰 중급 정령이 양손을 크게 펼쳤다. 몸이 점점 부풀어 오르는가 싶더니 그 팔의 길이에 맞는 구체로 변하기 시작했다. 몸이 곧 하나의 구체가 되면서 커다란 염옥을 만들어 냈다. 몸이 다시 생겨난 이프리트가 그 염옥을 더미 로봇을 향해 던졌다.
펑!
“펑!”
엘레노어가 더미 로봇에 휘감긴 화염을 보며 따라 외쳤다. 폭발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뻗어져 나왔다. 수강생들은 그 불꽃이 위험하다는 생각보다는 경이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서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분명히 부서졌을 거라는 유선의 생각과 다르게 더미 로봇은 부서지지 않았다. 일부러 약하게 조정했는지, 아니면 더미 로봇 자체가 강한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라는 듯, 수강생들은 모두 서진을 보며 손뼉을 쳤다.
“이만한 정령과 계약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선배님!”
그 관심을 받는 서진은 우쭐해졌지만, 애써 쿨한 모습을 유지하며 그들에게 말했다.
“이 정도는 아직 제대로 보여 주지 않은 거지. 상급 정령을 꺼내서 보여 주고 싶지만, 아무래도 위험하니 미안하다.”
“아뇨! 우리는 중급 정령 정도만 봐도 충분한걸요!”
“평생 못 볼 거로 생각했던 걸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서진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치켜세워 주는 말들로 서진의 어깨에 힘이 단단히 실렸다. 가만히 서 있던 중급 정령에게 손을 튕기며 말했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이제 돌아가.”
서진의 명령에 이프리트의 몸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등장에 퇴장까지 완벽한 쇼였다. 유선은 그걸 보며 나름대로 감탄했다.
‘주목받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그 쇼 자체에서 서진의 의도를 대충 보았다. 초청 헌터로 온 이유도 분명히 아직 제대로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루키들에게 존경받는 선배로 있고 싶어 왔다. 상급 정령을 소환하지 않고 중급 정령을 소환한 것도 상급 정령과 비교해 자존심이 강하지 않으니 쓸데없는 요구에도 기꺼이 응할 것이기에 바로 소환해 냈으리라. 망신당하면 안 되니 말이다.
“유선 님, 유선 님.”
“응?”
엘레노어가 옆자리에 앉아서 구경하다 말했다.
“나도 저거 할래.”
“저거?”
지금 했던 것이 정령 소환과 정령이 사용한 화염 스킬이었다. 엘레노어는 정령술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폭발 마법을 말하는 걸까?
“뭐 하고 싶어?”
“칭구.”
“······친구?”
더 알 수가 없었다. 엘레노어는 더 설명할 필요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칭구, 칭구~.”
“엘레노어, 내려가면 안 돼. 실례잖아!”
유선은 뒤늦게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엘레노어가 내려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다.
“나중에 너희도 알겠지만, 정령들을 부리기 전에, 부르려면 매개체가 필요해. 내가 라이터에 불을 붙인 것도 불의 정령을 부르는 매개체가 있듯이, 이렇게 흙의 정령, 물의 정령 같은 걸 부르려면 질 좋은 매개체가 필요하지.”
정령을 부르는 매개체. 그걸 소환하는 조건이 필요했다. 가져온 흙 한 줌이 대지의 정령을 부르는 매개체이다. 서진은 그걸 통해서 흙의 정령도 소환하는 것을 보여 주려는 찰나였다.
“내 주 정령은 아니지만, 한 번 매개체를 이용해서 흙의 정령을······. 뭐야?”
“칭구, 칭구~.”
엘레노어가 그 사이를 난입해 매개체로 쓰려고 가져온 흙을 만졌다.
“어머, 귀여워라!”
“어디서 왔대?”
강의실의 이목이 순식간에 엘레노어를 향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우러러보던 후배들의 관심이 사라지니, 서진은 마음에 안 드는지 얼굴을 구겼다.
“조교! 여기에 왜 외부인이 들어왔어? 내가 감시 잘하랬지?”
괜히 죄 없는 보조 강사에게 화풀이했다. 보조 강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그리고 뒤이어서 유선이 나타나며 서진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그냥 참관만 하는 건데, 애가 멋대로 뛰쳐나와 버렸네요.”
“정유선 헌터다.”
“대박······. 매직 클래스에 있다던데 정말이었네.”
이젠 엘레노어를 쫓아 뒤늦게 온 유선까지 관심 지분을 먹어 들었다. 서진에게는 그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졌다.
‘아, 씨. 면전에 대고 나가라고 할 수도 없고.’
수업에 지장이 갈 정도로 민폐를 끼치지도 않았기에 국가 유공자 S급 헌터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었다. 서진은 몰려오는 짜증을 애써 억누르고 미소 지으며 유선을 대했다.
“아닙니다, 뭐. 정령술이 신기하니까 해 보고 싶었겠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진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엘레노어를 내려다보며 친절하게 물었다.
“꼬마 아가씨, 정령 부릴 줄 알아?”
“정령 부를 수 있어?”
다른 사람이 물으면 대답 안 해서, 그가 대신 물어보았다.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녕은 모르겠어. 근데, 근데! 칭구는 부를 수 있어!”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서진은 놀랐다는 과장된 제스처를 취하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오, 그러면 한번 보여 줄까?”
“보여 줄래?”
“응!”
유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노어는 손에 한 줌 흙을 쥔 채로 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루그로테아>!”
드그그그극······.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가 강의실을 울리자, 그녀가 들고 있던 흙이 움직이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움직이는 게 그 흙뿐만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예요?”
“꺄악!”
박스가 날아왔다. 교보재로 쓰일, 정령을 불러들일 매개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반응해 그녀의 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예사롭지 않은 광경을 본 사람들은 느꼈다.
‘거대한 뭔가가 온다!’
불, 물, 흙, 바람······. 모든 것이 한 군데로 어우러져 새로운 빛깔을 띠며, 그것은 곧 하나의 형상으로 빚어졌다. 중급 정령인 이프리트보다 전체적인 틀은 작았지만, 감히 그 정령이 하급 정령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덩굴이 얽혀서 만들어 낸 초록색 피부, 인간의 굴곡에 나무껍질처럼 가려진 몸의 일부, 차가운 여인의 얼굴, 붉은 단풍잎을 이어서 만든 듯한 머리카락, 머리에 피어난 꽃, 여인의 몸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아름답고 우아했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것을 소환했다는 걸 알았고, 그 누구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여인의 형상이 완전해지자 닫혔던 눈꺼풀이 열리며 엘레노어를 내려다보았다. 다물었던 입을 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email protected]%!#@$!%^······.
이 세상의 언어가 아닌 것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다시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다.
-%#$#*%&;^?
말꼬리를 올렸다. 유선은 <교감> 특성을 통해 대충 그것의 생각을 읽고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의문.
네가 왜 여기 있나, 아니면 왜 여기에 인간이 있나, 그런 수준일 것이다.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지금 불러낸 것이 뭔지 물어보았다.
“엘레노어, 혹시 이······.”
-^#%$!#^%!!!
여인의 머리 위에 뜨던 의문이라는 단어가 단숨에 혐오로 바뀌면서 유선을 향해 소리쳤다.
우드드득!
바닥에서 본 적 없는 뿌리가 돋아나 유선의 발을 잡았다. 재빠르게 돋아나는 속도에 유선은 피할 새도 없이 그대로 감기고 말았다. 두 다리가 잡히자, 그녀의 수중에는 들려진 물로 된 구체를 유선의 얼굴로 던졌다.
“우르르륵······!”
말할 수가 없었고, 동시에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물감옥 속에서 흐릿한 시야로 여인의 손에서 화염구 하나가 뜬 걸 보았다. 그걸 그대로 유선의 몸통을 향해 쏘아붙일 생각이었다.
-$%!$#@^*.
죽어라 같은 말인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파이어볼이 유선을 향해 덮쳐 왔다.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싶었을 때, 엘레노어가 끼어들었다.
“안 대!”
단호한 목소리로 그 여인에게 말하자, 유선의 몸으로 날아가던 파이어볼이 그대로 멈췄다. 여인의 표정은 차가웠지만, 유선은 그녀의 머리에 ‘경악’이란 글자를 보고 놀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
발을 묶던 풀뿌리와 얼굴을 휘감은 물덩이, 그리고 얼굴을 덮치던 파이어볼이 동시에 사라졌다. 짧은 시간에 모든 게 이루어진 만큼, 짧은 시간에 모두 사라졌다. 그녀는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설마 인간들의 말을 쓸 줄은 몰랐어. 에브······.
이번에는 유창한 사람의 언어를 했다. 그녀는 뭔가를 이야기하려다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쉬잇!”
엘레노어가 폴짝 뛰어올라 그 정령의 입을 막아 버렸다. 뭔가 비밀이라는 듯이 한 행동이 분명했다. 그 여인은 한 번 더 ‘경악’이란 상태에 빠지며 말했다.
-음······,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입 다물고 있어 줄게. 하지만 네가 나를 이런 곳에서 부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원래 있던 세계에서 벗어났어?
“응!”
-그렇지만······ 하필이면, 이렇게 인간이 많은 곳이라니. 터를 잘못 잡았어. 좋지 못한 선택이야.
“여기, 좋아.”
엘레노어는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여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두 사람만 있는 공간 같은 곳에서 계속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유선은 다시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뭐야?
“누구세요?”
좋아지는 분위기가 유선의 물음에 다시 얼어붙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유선에게 물었다.
-감히 내 이름도 모르는 녀석들이 여태까지 고개를 들고 서 있었단 말이야? 참 기가 막힌 일이네!
모르니까 고개를 빳빳하게 들지, 알면 그러겠냐?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유선은 애써 입안으로 삼켰다. 섣불리 자극하기보다는 순탄하게 대화를 이루도록 입을 다물었다.
-뭐, 이세계의 인간들에겐 생소할 수도 있겠구나. 이 위대한 이름을 들어 보기만 하고, 절대로 보지는 못했으니까 말이야.
여인은 이해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말투가 재수 없기 짝이 없었다.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에, 자신의 이름을 ‘위대한 이름’으로 칭하는지 궁금했다.
-하늘과 땅을 가르고, 메마른 대지에 물과 바다를 덮어, 하늘 아래의 모든 생명에게 축복을 안겨 준 모든 정령의 귀감, 정령의 왕, ‘오르넵토스.’라 한다, 인간! 똑똑히 기억해 둬!
그럴 만한 이유가 충분했던 자기소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