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20. 헌터 아카데미 (5)
가시가 돋쳐 확실하게 누군가를 노리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효승의 몸이 전체적으로 멈췄다. 그는 주변을 잠깐 둘러보더니 웃음기를 싹 거두었다.
“진종오 과장이 그리 얘기하든?”
“개소리 그만 지껄이라는데, 계속 지껄이더라고. 그러다 보니깐 알게 됐어.”
말 놓는 효승을 따라 유선도 같이 말을 놓았다. 불편한 표정을 짓던 효승이 그의 눈을 마주하면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새파란 루키 새끼가 선배한테 말을 놓는 꼬락서니 봐라. 너희 회사에는 그런 근본도 없는 걸 가르치나 보지?”
“어이구, 그토록 짬 처먹고 A급에 처노시니까, 제가 무시하기 싫어도 무시할 수밖에 없어서요. 그리고 애초에 근본도 없는 새끼들이 뭉쳐서 만든 회사야. 쓸데없이 기수 잡고 놀고 싶으면 너희끼리 해. 역겨우니까.”
유선은 그에게 질 생각이 없었다. 눈을 마주하던 효승은 슬쩍 엘레노어로 눈길을 돌렸다. 엘레노어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했다. 효승은 비웃음을 흘리면서 엘레노어에게 손을 데려고 했다.
“호랑이 권력을 여우가, 아니 쥐가 뒤집어쓴 꼴이구먼, 진짜. 만약 이 귀여운 꼬맹이가 없었으면, 바닥에 기느라고 정신없어서 이렇게 눈 마주치기도 불가능할 텐데 말이지?”
착!
유선은 엘레노어를 만지려던 그 손을 쳐 냈다. 엘레노어를 효승에게서 멀찍이 떼어 놓으며 그에게 말했다.
“쪽팔리게 인생을 가정으로 살진 맙시다. 어차피 인생은 실전인데, 그러면 질투하는 것 같아서 추해 보이잖아.”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것도 모자라서 손을 쳐 내는 과감한 행동까지 했다. S급이고 뭐고 간에 한 방 붙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효승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다. 실랑이 동안 점심시간이 끝나 갔고, 강사들과 수강생들이 복도를 채우기 시작했다.
표면상이라도 좋은 사람 시늉을 해야만 했다. 효승은 다시 미소 지었다. 비린내를 애써 숨기려는 상쾌한 가면을 뒤집어쓰며 그에게 마지막으로 말했다.
“한 달간 즐겁겠군요. 함께 잘 지내봅시다, 정유선 헌터님.”
제 분을 못 이겨서 먼저 등을 돌려 걸어갔다. 유선은 그가 한 말에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제대로 지랄을 하는구먼.”
유선은 꺼림칙한 인간. 효승이 한 달간 얼마나 지랄 맞은 짓거리를 할지 기대되었다.
***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유선은 초청자 자리에 앉아서 강의를 들으며 몰래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비스테, 루데릭.’
유선이 루데릭과 계약하면서 얻은 텔레파시 마법. 정확한 명칭은 으로 표시되었기 때문에 알지 못하지만, 대충 시동어로 비스테라고 지었다. 유선은 루데릭에게 배웠던 대로 말하고 기다렸다. 곧 뭔가가 그의 머리를 잇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그의 골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의 주인, 연락은 왜 했느냐?
어린아이 특유의 중성적인 미성이 또렷하게 들려왔다. 루데릭의 목소리였다.
‘잘 지냈지?’
-비꼬는 게냐? 여태 모습을 안 보이고, 말도 안 걸었는데 잘 지내는 꼴을 보고 싶어 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정말 잘 지내느냐고 물어보는 거야.’
한 번 더 묻자, 루데릭이 쿡쿡 웃으면서 대답했다.
-덕분에 지식 습득에 용이한 편이다. 다만,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올려놓은 몇 사이트가 있어서 문제지만······.
대충 유선도 어떤 사이트인지 감은 잡았다. 하지만 그 근황보다는 아무래도 지금 자신의 요구가 먼저였다.
‘다른 건 없고, 미안한데 이효승에 대해서 알아봐 줄 수 있을까?’
-이효승? 사람 이름이구나. 검색해 보마.
잠깐 흐르는 정적. 그리고 곧 루데릭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사람들이 많군. 분명히 주인이 찾는 건, 하찮은 사람인 것 같진 않고······. 이 사내는 주인처럼 테이머인가?
‘맞아.’
-찾았군. 이효승 유니콘 헌터 컴퍼니 소속, 32세, 독신에, 대학교 중퇴······ 그리고 이것 참 가관이로군.
루데릭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아주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 어떤 건데?’
-죄악의 꽃다발. 시들었다 싶으면 족족 다시 채워 넣어서 그 화려함을 유지하는 꽃다발이다. 민간인 폭행에 교통사고, 음주 운전, 그리고 아주 조그마한 신문사에 걸린 걸 보니, 강간이란 죄목도 있는 것 같군. 뭐 죄다 흐지부지해서 넘어간 게 누군가가 개입한 것 같고. 이런 마음에 드는 인간이 어디에 있나?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이야.’
유선은 힐끔 효승을 향해 눈길질 했다. 루데릭이 읊은 죄목들이 모조리 거짓말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뻔뻔하게 미소 지으며 강의를 듣는 중이었다. 유선은 다시 루데릭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사역수 매매 쪽으로 확인해 볼래?’
-사역수 매매······ 그런 건 없다. 매매랑 관련된 건 음식점에서 갑질 행태가 끝이로군.
그 많은 죄목 중에 가장 필요한 죄목이 눈에 띄지 않는다니. 유선은 뒷수습해 주는 유니콘은 도대체 이 인간에게 무엇을 건 것일까 궁금했다.
아무튼 그 건에 대해서는 지금 꼬투리를 잡을 수단이 없었다. 그것만큼은 제대로 피해 간 것이 분명히 진종오 과장의 철저함 때문일 것이다.
‘뭐 그것도 이젠 아니지.’
진종오 과장과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한 파일이 그의 수중에 들려 있었다. 혹시나 해서 회사에 복사본 파일도 만들어 놓았으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 루데릭. 도와줘서 고마워.’
-상관없다. 이게 주인에게 해 줄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그래, 계속 일 봐.’
텔레파시를 끊으려던 찰나에 루데릭의 목소리가 유선을 불렀다.
-주인.
‘왜?’
-정말 미안하지만······ 이 컴퓨터 한 대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다. 모니터도, 키보드도, 마우스도 모두 부족하다.
‘마우스랑 키보드도······?’
유선은 모니터가 부족하다는 말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키보드와 마우스가 부족하다는 말이 상당히 신기했다. 아무튼, 그의 요구는 뭔지 알겠다.
‘컴퓨터 더 사 달란 말이지?’
-그렇다. 안 되겠는가?
유선은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현재 통장 잔고를 생각해 보면 똑같은 스펙의 컴퓨터를 몇 대 사도 상관없을 것이다. 안 될 게 뭐 있나 하는 생각에 루데릭에게 대답했다.
‘알겠어. 사 줄게. 내 방에 가면 카드 하나 올려져 있을 테니까, 합리적인 가격 내에서 알아서 사. 그렇게 할 수 있겠지?’
-할 수 있다. 고맙다, 주인. 이해해 줘서 말이다.
-루데릭의 호감도가 올라갔습니다.
유선은 자신의 상태 창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확히 컴퓨터를 사 주겠다고 하니까 호감도가 오르다니. 유선은 자신이 독한 여자의 어장 속에 물주가 됐나 싶어서 살짝 마음이 착잡했다.
-아, 그리고 주인.
‘왜?’
-그······ 매번 잘 먹는다······.
‘······.’
-······고마워.
‘크흠······!’
그것도 잠깐이었다. 유선은 상체를 숙이고 손을 올려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있었다. 갑자기 웃으면 미친 사람이나 다름없으니 웃는 걸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유선은 애써 숨을 고르고 텔레파시를 보냈다.
‘그래, 몸 사려 가면서 해.’
-알겠다.
루데릭을 향했던 신호가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유선은 다시 효승을 힐끔 보면서 생각했다.
‘제대로 된 인간쓰레기라······.’
유선은 같잖아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A급 헌터에 실력이 있지만, 만약 엘레노어가 이런 놈에게 넘어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엘레노어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의는 해야겠군.’
자신에게 접근해 오는 것도 분명히 숨겨 둔 의도가 있을 터, 그리고 그 의도는 분명히 엘레노어를 향할 게 뻔하기에, 괜한 허점을 보이지 말고 최대한 조심하자고 생각했다.
***
오후 2시 30분. 시간이 되자, 유나는 교재를 덮고 프로젝트를 정리했다.
“이상으로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모두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후 2시 반까지는 각 과에 맞는 수업을 강제적으로 행하고, 그 이후에는 자유 청강인 모양인지 수강생들은 일어나서 교실을 나왔다. 그들이 일일이 유선과 효승에게 인사하며 나왔고, 유선도 그 인사를 정성스레 받아 주었다.
수강생들이 모두 나가자, 이어서 효승도 자리를 떴다. 유선에게는 그렇다 쳐도, 유나에게도 한마디 인사조차 없이 사라졌다. 유나는 개의치 않고 유선에게 다가가 살갑게 말했다.
“정유선 헌터님!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이게 끝입니까?”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3주 정도는 이렇게 앉아서 청강하시고, 제가 가끔 묻는 건 아마 하루 전날에 알려 드릴 거고, 그거에 맞는 대답만 준비해 주시면 돼요. 그리고 학생들이 궁금한 게 있다거나 힘든 게 있다면 같이 만나서 이야기해 주는 것뿐이에요. 생각보다 별거 없죠?”
없어도 너무 없었다. 오늘처럼만 흘러가면 이렇게 되면 거의 한 달은 공짜로 노는 게 아닌가? 날로 먹는 것인가 생각했을 때, 유나가 검지를 펼치며 말했다.
“다만, 남은 1주 동안은 수업엔 무조건 도움을 주셔야 해요! 기초적인 이론 수업이 끝나고, 실습으로 넘어갈 시기이니까요! 그때는 아마 자유 청강도 못 하고, 늦은 저녁까지 남아서 할 수도 있어서요.”
“테이머들 수업인데 많이 힘듭니까?”
5명뿐인 데다, 실습에 대해서는 하급 몬스터 자유 테이밍으로만 알아 그렇게 어렵나 궁금했다.
“5명뿐이어서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테이밍 스타일이 제각각이니까, 전 테이머 헌터님은 상당히 고생하셨더라고요. 성격이 상당히 안 좋으······ 아니, 아니, 거치셔서! 5시가 넘으면 입에서 욕을 내뱉으면서 멋대로 가 버리셨어요. 그때, 저는 정말이지······.”
힘들었는지 그 생각을 하자 오들오들 떠는 이유나 강사. 얼마나 당황했는지 유선의 눈에 알아서 그려졌다. 자유 청강 때, 유나는 똑같이 테이머 수업을 하는지 궁금해 유선은 그녀에게 물었다.
“테이머과에 자유 청강하는 사람이 있나요?”
“설마요. 그럴 시간에 차라리 다른 걸 공부하죠~.”
유선의 물음에 유나가 조금은 슬퍼할 줄 알았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저는 자유 청강 시간엔 테이머 강사가 아니라 던전 속에서 생존 전략에 보조 강사로 있을 거예요. 우리 강의를 보러 오라고 하고······ 싶지만, 아마 실전 경험이 있는 정유선 헌터님에겐 정말 지루한 이야기겠죠. 차라리 칼퇴근하셔서 쉬는 게 나을 선택이랍니다.”
생존 전략은 이론보다는 실전이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제가 다른 곳을 둘러봐도 다른 사람이 뭐라 안 합니까?”
“네! 초청된 헌터님들은 자유롭게 보셔도 돼요! 대부분 초청된 헌터님들은 이 시간만 되면 바로 칼퇴근하시는데,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저보단······.”
유선도 관심이 있긴 했지만, 엘레노어의 의욕과 비교한다면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도 유선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며 한 글자를 연신 외쳐 댔다.
“펑펑!”
“아, 그렇구나. 그러고 보니 정유선 헌터님이 올 때부터 계속 그러셨죠?”
“네, 아무래도 한 번은 보여 줘야 할 것 같네요.”
유선의 말에 유나는 잠깐 생각하며, 아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직은 전부 이론이라서 과연 마법을 쓸지는 잘······.”
“마법은 안 쓴다는 것 같은데?”
“펑펑······ 안 해?”
들뜬 엘레노어의 표정이 풀렸다. 유나는 충격을 받아 시무룩해지는 엘레노어를 달래려 그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헌터님이 요구하시면 아마, 보여 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무래도 헌터님들이 요구하면 거의 방침에 어긋나지 않는 이상, 무조건 들어 드려야 하니까요.”
“그렇대.”
“펑펑 볼래!”
볼 수 있다는 말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어린아이의 꿈을 지켜 준 유나는 안심하며 그에게 강의실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아마 공마과가······. M···2···4··· M0240. 네, M0240이니까, 그곳으로 가시면 사역수분이 원하는 마법들을 볼 거예요. 이제 자유 청강 준비를 해야 해서, 안내는 못 해 드리겠네요.”
“괜찮습니다. M0240····· 알겠습니다.”
유나는 교재를 넣은 가방을 들고 강의실을 나오며 말했다.
“넵, 오늘 하루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도 부탁하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유나는 다음 수업을 준비하러 급하게 자리를 나왔고, 유선은 그녀가 말한 번호를 한 번 더 상기하며 엘레노어의 손을 잡았다.
“펑펑 보러 가자.”
“펑펑!”
엘레노어는 노래처럼 ‘펑펑’을 부르며 함께 걸어갔다.
***
엘레노어가 원하는 폭발 마법을 보려고 M0240 강의실로 발을 옮겼다. 앞에는 보조 강사로 보이는 사내가 게시물을 정리했다. 유선이 강의실 번호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게시판을 정리하던 사내가 헐레벌떡 다가와 그를 막아섰다.
“죄송하지만 수강자를 제외하고 지금은······ 어라? 정유선 헌터님 아니신가요? 우리 과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펑펑!”
“펑펑?”
들뜬 엘레노어가 사내에게 말했고, 그걸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사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유선은 그가 알아듣도록 말했다.
“폭발 마법이 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폭발 마법······ 말입니까?”
그런데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선은 뭔가 싶어 그에게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죄송하지만 공격 마도학과를 찾으시는 것 같은데, 그곳은 이쪽이 아니라 M0204 강의실로 가셔야 합니다. 여기는 정령술과입니다.”
“M0204 말입니까? 이유나 강사가 말하길 이쪽이라 했는······.”
유선은 머릿속에서 번뜩 떠오르는 생각에 말을 멈췄다. 강사 이유나가 아닌 덤벙이 이유나, 그녀가 유선에게 강의실 번호를 알려 주었다. 유선은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사내에게 말했다.
“에고······ 착오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아하하, 그러시군요.”
사내가 웃더니 유선에게 제안했다.
“그래도 이렇게 뵌 것도 인연인데, 한번 청강해 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