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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4) (4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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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4)

그것도 3씩이나 되지. 유선은 진종오 과장이 흘렸던 정보를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가 가진 이 <지배의 낙인>이라는 스킬을 사용하면, 파트너 몬스터에게 강제적으로 그 일을 시키게 합니다. 레벨 3까지 올리면 죽음을 무릅쓰고 뛰어갈 정도의 명령도 가능하죠.”

죽음을 무릅쓴다. 효율적인 면에서 안 좋을 수가 없었다. 인간에게 위험한 일들을 과감하게 몬스터가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

“그렇게 해서 전 120마리를 사역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를 안 볼 수 없는 상황도 많았지요. 저를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파트너를 합한다면 200이 넘을 겁니다.”

그의 말에 유선은 진종오 과장을 떠올렸다. 뻔뻔하게 자신의 기술로 사역수를 만들었다는 말이 어째서인지 코미디처럼 느껴졌다.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일단은 가만히 있자.’

아주 멋진 마케팅과 돈 지랄로 이루어 낸 업적이라고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했지만 뜬금없는 폭로는 반감만 샀다. 때가 있듯이 터트릴 만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저를 믿고, 따라 주시는 후배들이 있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지배 특성이 없으시다면 물론 지배 특성에 대해서 아낌없이 정보를 나눠 드리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가 한 말에 수강생들의 반응은 상당히 좋았다. 120마리의 사역수를 길들인 비법이 <지배>라는 특성이니 탐나지 않은 정보가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유선도 그 말에 적잖게 공감했다.

‘확실히 효율도 지배가 낫긴 하지.’

효승이 싫고, 좋고를 떠나서 냉정하게 생각하면, 돈벌이용으론 지배가 좋은 편이다. 사역수들의 여건에 맞는 환경을 조성한다거나, 호감을 얻으려고 재롱부리는 짓을 하지 않아도 인간이 할 수 없는 과감한 행동을 한다거나, 특수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많은 학생은 그의 말에 이끌리고 매료되었다.

“이상입니다.”

효승은 그렇게 마무리 지으며 교단에서 내려왔다. 이젠 유선의 차례였다. 내려오는 효승을 스쳐 지나가며 이번엔 그가 교단에 섰다. 5명뿐인 교실. 유선은 그곳에서 입을 열었다.

“저는 큐앤 헌터 컴퍼니의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선은 손바닥에 써 놓았던 한 줄을 보았다. 커닝 페이퍼라고 하기도 뭐한 그냥 한 줄이었다. ‘한 달간 함께해서 영광이고 서로 잘하도록 노력합시다.’라고 적혀 있었다. 유선은 그 글자들을 구기듯이 주먹을 말아 쥐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번 코드 헌터 상황에서 어비스 던전을 완전히 작살내서 매스컴을 탄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감을 통해서 어비스로 우리를 집요하게 괴롭힌 ‘발록’을 테이밍하는 데 성공해 S급 헌터가 되기도 한 사람이죠.”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 자체는 크게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유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제 행적을 아시는 분이라면 아마 무엇으로 저 발록을 테이밍했는가, 하고 의문을 떠올릴 겁니다. 그건 당연하겠죠. F급짜리 나부랭이 헌터가 어떻게 EX에 이어서 SS급까지 테이밍에 성공했는지, 그리고 특성과 능력이 무엇이었나 궁금했을 겁니다.”

밝혀진 정보는 그저, 엘레노어를 이용해 힘으로 눌러 찍은 다음 발록을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다고 나왔다. 관심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할 것이다.

“<지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저는 이효승 헌터님처럼 <지배>가 아닌 특성인 <교감>을 통해서 몬스터의 생각을 읽습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 대처할 만한 방법을 모색하고 그것을 이어 갑니다. 저는 어비스 던전 속에서 끝내 발록과의 교감에 성공했고, 그래서 계약의 인장까지 찍어 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건 언론에서 보도한 적 없는 아무에게도 알려 주지 않은 정보였다. 수강생들은 유선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집중했다.

“지금 제 말로 교감에 대해서 상당히 흥미를 느끼실 거로 생각하는데······ 여러분께 현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가 현실을 알려 준다는 말에 수강생들은 저마다 입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리고 유선은 입을 열었다.

“교감 특성에선 여러분 생각처럼 그렇게 쓸모 있다고 여겨지는 장점이 없습니다.”

자학으로 시작했다. 좋은 이야기로 시작되리라 생각했던 수강생들이나, 이유나 교사나 할 것 없이 그 말에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이 바라는 돈을 안겨 주지 못하고, 교감이 있더라도 친해지려면 분명히 시간도 많이 들 겁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기회비용이 크게 들 겁니다. 아무래도 우리와 싸워야 할 상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는 거니 말입니다.”

자신을 헤치려 드는 몬스터, 그리고 친해져야 하는 <교감> 특성, 둘의 상성은 너무나도 안 맞았다.

엘레노어는 과정 없이 이미 친해진 상태로 시작했고, 그나마 의식 있는 상태에서 테이밍한 루데릭은 엘레노어를 이용해 거의 ‘복종’ 상태로 시작했다. 만약 맨몸이었다면, 루데릭을 테이밍했을 확률은 몇 퍼센트였을까? 생존율과 함께 0%에 수렴했을 것이다.

“사역수들은 지배처럼 사지를 무릅쓰고 달려드는 강행도 분명히 못 할 겁니다. 제가 EX급이 아니라 F 등급을 테이밍했더라면, 자신보다 강한 적에 벌벌 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감으로 시작하는 한계점을 줄줄이 그들에게 알려 주었다. 학생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효승을 밀어주는 행동인가 싶을 정도로 과하게 약점을 드러냈다. 하지만 유선은 어디까지나 제 뜻을 이야기했다.

“왜 그럴 거로 생각합니까? 몬스터들도 모두 공포를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은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교감으로는 그런 생물적인 모습을 감출 수 없습니다.”

교감은 어디까지나 상대하는 몬스터의 생각을 읽는 것이 끝이었다. 유선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제 뜻을 전달했다.

“그렇기에 저는 한 가지는 장담합니다. 테이머로서 몬스터와 교감한다면, 그 누구보다 어려운 길을 걷겠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사역수를 사랑하고, 아끼는 파트너로 인정한다면, 평생을 함께할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에게 안겨 줄 돈과 명예와 비교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여러분은 느낄 겁니다.”

유선의 말을 들은 수강생들은 멍하니, 그리고 누군가는 뭔가를 느꼈는지, 감명받은 얼굴이었다.

“만약 돈만 벌 생각이라면, 그리고 몬스터들을 단순히 자신의 병력, 그리고 체스의 말로 생각한다면 제 말은 어디까지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생각한다면 제게 어떤 조언도 바라지 않는 게 서로에게 얼마 없는 시간 동안 유익하게 지낼 시간일 겁니다, 이상입니다.”

유선은 마지막을 장식하고 교단에서 내려왔다. 두 명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유나가 다시 올라갔다.

“네, 두 분이 좋은 이야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유선과 효승은 참관석에 앉았다. 유선은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것도 표면상으로만 그랬다.

‘내가 생각해도 엄청난 약팔이었어.’

지배에 대응하는 교감의 좋은 점이 이렇다고 말은 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돈벌이하는 헌터들에겐 유선이 한 말이 정말로 헛소리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몬스터들은 코어를 주고, 그 코어로 먹고사니까. 설령 자신이 정말로 몬스터를 가족으로 생각하더라도, 회사에선 뜬구름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루키로 볼 것이 뻔했다.

그래도 완전히 삽질한 것은 아니라는 듯, 수강생 중 그 말에 고무된 표정을 지은 사람도 있었고, 그의 말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시큰둥한 표정이었던 사람은 개인적인 목표가 뚜렷한 사람일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것에 장단점은 있고, 그걸 따라가는 것은 개인의 몫이었다. 유선은 조용히 유나의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

“정말 멋진 말씀이셨어요!”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찾아온 그때, 유나가 유선을 따로 불러서 한 말이었다.

“······네?”

유선은 당황하고 말았다. 침착한 강사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없고, 다시 덤벙이 유나로 돌아가 눈을 반짝였다. 아무리 봐도 정말로 존경한다는 듯이 보았다.

“정유선 헌터님이 했던 말들! 듣는 순간 얼마나 공감했는지! 하마터면 울 뻔했던 거 있죠! 강사가 강의실에서 울면 안 돼서 결국 울진 못했지만!”

“······.”

다시 생각났는지 감정이 벅차 눈물이 고였고, 유나는 그걸 닦아 냈다. 유선은 뭔 말을 해야 하긴 해서 그녀에게 말했다.

“그······ 공감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네, 감사해요! 저처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를 거예요. 아마 잉잉이도 정유선 헌터님을 좋아하실 거예요!”

“잉잉이······요?”

“네, 제 사역수예요. 한번 보실래요?”

“네.”

유나는 신난다는 듯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넘겼다. 그리고 사진이 하나 나왔는지, 화면을 유선에게 돌렸다. 아기자기하고 깜찍한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 대조되는 생명체가 사진첩에 담겨 있었다.

‘그리핀······.’

하늘의 무법자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등급으로 따지자면 B급이며, 단순한 몬스터와 다르게 육지와 하늘을 오가기 때문에 원거리 지원이 확실하지 않으면 못 잡는 몬스터이다.

‘이런 몬스터를 가진 사람이 왜 강사를 하지?’

잘만 하면, 이익을 많이 볼 몬스터이다. 그러자 유나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 궁금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제가 강사로 전향한 계기가 잉잉이 때문이었거든요. 전에 다녔던 회사 사람들은 전부 잉잉이를 그냥 단순한 마물, 몬스터로만 취급해요. 같이 이야기는 못 해도 항상 뜻이 통하는 게 잉잉이인데, 그런 잉잉이를 애완동물로조차 취급 안 해서 너무나 화가 났죠.”

“그래서 회사를 나왔습니까?”

뻔한 전개인가 했는데, 유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뭔 짓을 하려고 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외국으로 도망가 버렸어요. 우리 돈으로 사업하다가 날랐다더라고요. 그렇게 잉잉이 데리고 구직할 자리가 없을까 하다가 헌터 아카데미에 일자리를 알아냈죠!”

“······.”

우연의 연속으로 얻어 낸 일자리란 말이었다. 유나는 김빠지는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12시를 향해 가까워지는 분침을 보며 ‘아차!’ 하는 감탄사와 함께 유선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오늘 우리 강사들끼리 모여서 식사하는 날이라 대접을 못 해 드리겠어요. 죄송해요, 헌터님.”

“아닙니다. 어차피 엘레노어도 있고. 외로울 일은 없죠.”

“넵! 그럼 오후 수업 때 뵙겠습니다.”

유나는 바로 급하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유선도 엘레노어를 데리고 구내식당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

점심을 먹고 나서 여유 시간이 있기에 엘레노어와 함께 건물 안을 둘러보았다. 공간도 넓었고, 조형도 잘되어 생각보다 둘러볼 곳이 많았다.

“유선 님, 펑펑하는 거 보고 싶어.”

“펑펑하는 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엘레노어는 돌아다니면서 마법 쓰는 걸 보고 싶어 했다. 유선은 호기심에 눈이 반짝반짝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 투스 페르아 같은 걸 쓸 애가 왜 이런 걸 보고 싶어 하지?’

72가지 마법 중에 그런 위력적인 마법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루데릭도 엘레노어에 관한 마법 같은 것은 모두 함구해서 물어볼 길이 없었다. 언젠가는 알게 될 거라는 말뿐······.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중, 유선은 누군가가 강의실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 테이머과 여성 수강자였다. 수업 중에 본 얼굴이어서 기억했다. 강의실에서 뭔가 다급한 듯이 주변을 살피더니, 자리에서 총총걸음으로 뛰어나와 어디론가 걸어갔다. 걸음걸이가 살짝 어색한 것이 유선의 눈에 걸렸다.

‘설마······.’

쓰레기 같은 상상을 하고 말았다. 사회 초년생을 취업과 앞길로 꼬드겨, 몸을 취하는 변태적인 행각이 말이다. 유선은 그게 누군지도 추측했다. 그런 행각을 할 만한 사람이라면, 강사나 잘나가는 대기업 헌터 수강생, 그리고 초청된 헌터 3가지가 있을 것이다.

강사는 여자고, 잘나가는 대기업 헌터 수강생은 없다. 그러면 한 가지뿐이다. 유선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1분 정도 지났을까, 아무도 없으리라 여기던 강의실 안에서 사람 한 명이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효승 헌터였다. 그가 정장을 다시 한 번 더 정리하며 문밖을 나섰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가만히 서 있는 유선을 발견했다.

“아, 유선 씨. 여기서 뭐 하십니까?”

이효승 헌터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유선은 그에 따라 미소 지어 보이며 그에게 물었다.

“둘러보는 중입니다. 빈 강의실에서 뭐 했습니까?”

“그냥 한 수강생이 인생 상담을 요구하기에, 인생 상담을 해 주었습니다. 한 번씩 그러지 않습니까? 헌터들은 아무래도 폐쇄적이어서 고충이 크니까요.”

효승은 능청스럽게 넘어가려고 했다. 유선은 아래를 손가락질하며 그에게 말했다.

“바지춤이나 제대로 추스르고 얘기하시지요.”

“네?”

효승은 뭔가 이상한가 싶어 얼른 자신의 하반신을 보았다. 바지는 제대로 입은 상태였다.

“뭔가 찔리는 게 있으십니까? 왜 이리 후다닥거리시죠?”

“······.”

한 방 먹은 효승이 고개를 숙인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그의 건방진 행동에 분노를 잠깐 곱씹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 때는 늘 똑같이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이것 참, 유선 씨는 생각보다 사람을 잘 낚으시는 것 같군요. 그러니까 그 스펙으로 EX를 낚으셨겠지만 말입니다.”

가시가 돋친 말이었다. 유선은 황송하다는 듯이 그의 말을 받아쳤다.

“제 능력도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효승 헌터님 정도는 아니죠. 사역수 120마리를 거느리느라 상당히 피곤하셨겠습니다.”

“하하, 말도 마십시오. 장난 아니게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애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서글프던지······.”

“아, 그렇습니까?”

유선은 자신의 죽은 파트너를 떠올리며 여운에 잠긴 표정을 짓는 효승을 보며 빙긋 웃었다.

“하도 사역수가 많기에, 저는 또 누군가한테 시켜서 사 오는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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