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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2) (3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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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2)

뭔가 감시 카메라도 달아 놨나 싶을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온 메시지였다. 유선은 이유나 강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 지금 정문 앞에서 기다립니다.

그러자 빠르게 답신이 날아왔다.

-그러시군요! 정문 앞에서 기다리시면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이쪽으로 오겠다는 말에 유선은 먼저 갈 필요가 없음을 알았다. 근처에 놓인 벤치에 엘레노어와 함께 앉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려던 도중.

“저기······ 혹시 정유선 헌터님 아니세요?”

여인 두 명이 조심스럽게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은 그들을 전혀 몰랐다.

‘뭐지? 나를 아는 사람인가?’

이유나 강사가 온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오는 건 말이 안 된다. 유선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일단 대답해 줘야 했기에 유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정유선입니다.”

“대박, 대박. 정유선 헌터래!”

“실제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여성 헌터들이 자기들끼리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상황인가 싶었지만, 그 여인들은 유선에게 질문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았다.

“죄송한데, 셀카 좀 찍어도 되죠?”

“네? 아, 뭐 상관은······.”

“야, 야 얼른 찍어 줘!”

여인은 당황할 새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와 단숨에 유선 옆에 섰다. 유선은 어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써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섰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맥락이 없는 뜬금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비슷한 상황으론 TV 속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들이 대부분일 텐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 전국 유명 인사였지?’

그제야 자각했다. 공중파 뉴스에 뜨고 핫이슈였으니, 그 인기가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급일 것이다. 그전까지 딱히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전혀 몰랐다.

사진 찍는 게 끝났는지, 여인은 친구의 휴대폰을 확인해 보며 유선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잘 나왔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이년아, 너 혼자만 찍니? 나도 찍어 줘! 헌터님, 저랑 같이 찍어 주세요.”

“아, 네······.”

유선은 얼떨결에 한 번 더 요구를 들어줘 사진을 찍었다. 유명 인사들에게나 할 법한 여인의 행각에 자연스럽게 주변의 이목이 이끌렸다.

“저 사람 누구야?”

“아, 그 사람이잖아! 이번에 국가 재난을 완전히 끝낸 사람!”

“정유선 헌터 말이야?”

“세상에, 여기에 올 줄이야······.”

“나도 사진 같이 찍어 달라 해야겠다!”

두 여인을 시작으로 유선을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고, 급기야 똑같은 요구를 해 오는 사람들이 생기기까지 했다. 유선은 톱스타가 된 기분으로 일일이 그들의 요구를 받아 주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한참 찍어 줄 때, 유선의 팔을 잡아당기는 작고 묵중한 힘이 느껴졌다. 엘레노어가 유선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면 안 돼.”

뭐를? 의문을 던짐과 동시에, 엘레노어의 행동이 군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애가 그 유명한 원 펀 걸이지?”

“정말 사역수야? 안 믿어지는데······.”

“귀엽다. 영상이랑 볼 때랑 아주 다르네.”

백발 머리에 푸른 눈을 가진 것이 처음부터 눈에 띄는 특징을 지닌 소녀였기에, 이젠 완전히 엘레노어에게 관심이 향했다. 아무래도 헌터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된 사역수이니, 돈 챙기는 왕 서방보다는 재주 부리는 곰이 더 신기할 것이다.

“애랑 같이 찍어도 돼요?”

한 여인이 물었다. 자신은 상관없지만 엘레노어는 같이 찍어도 될는지 몰랐기에 그녀의 상태를 보았다. 올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할 때부터 상당히 언짢은 기색이었다.

-짜증 나.

-내 건데.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올라갔습니다.

뭐가 자기 것이라는 걸까? 그녀의 생각에 유선은 의문이 증폭했다. 아무튼, 표정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자신에게 접근을 금지하는 것 같았다. 유선은 그들을 말렸다.

“되긴 되는데, 지금 좀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서 안 되겠네요······.”

“그럼 어쩔 수가 없네요. 사진 같이 찍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같이 사진 찍은 여인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자신들의 주목적은 언제나 강의지, 유선을 보러 온 게 아니기에 한순간에 뜬 열기도 가라앉았다.

관심이 사그라지자, 그녀의 손에 힘이 풀렸다. 하지만 심통 난 표정은 여전했다. 유선은 걱정스레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심통이 났을까?”

“부으······.”

엘레노어는 대답하지 않고 소맷자락을 잡던 작은 손으로 새끼손가락을 잡았다. 유선은 그 행동으로 대번 감을 잡았다.

‘내 거라는 게 설마······.’

유선을 자신의 것이라고 여긴다는 말이었다. 유선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다른 사람 앞에선 인형같이 미동도 안 하는 여자애가 여자들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접근해 오면 그렇게 반응하다니······. 독점욕을 부리는 모습에 유선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난 엘레노어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응.”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쥔 새끼손가락은 여전히 놓아주지 않았다.

유선은 고개를 들어 이유나 강사가 오는지 확인했다. 주변을 살피니, 한 여인이 유독 두리번두리번하는 걸 보았다. 그러다가 뭔가를 못 찾았는지, 휴대폰을 꺼내서 급하게 문자를 찍었다. 유선은 그걸 보고 알아차렸다.

‘저 사람이 이유나 강사구나.’

그리고 동시에 메시지 알림음이 휴대폰에서 울렸다.

-정유선 헌터님, 어디에 계시나요?

유선은 곧바로 답신을 보냈다.

-전경도 앞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유선의 메시지를 받은 이유나 강사가 확인하더니, 바로 전경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벤치에 앉은 유선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얼른 달려왔다.

“만나서 반가워요, 헌터님! 이번 KOHA 헌터 아카데미에서 테이머 클래스들을 교육 맡은 이유나 강사라고 합니다.”

그를 마중 나온 것은 헌터들의 강사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여인이었다. 검은색 장발 머리를 묶어 동그랗게 말아 올리고, 옅게 화장해서 화사한 느낌을 주었다. 얼굴상이 전체적으로 강아지상인 것을 숨기려 애쓴 것이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큐앤 헌터 컴퍼니의 테이머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초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해요. 바쁘신 몸일 텐데, 우리가 폐를 끼친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저도 한 번 정도는 와 보고 싶었거든요.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죠.”

“그러셨구나. 아무튼 감사해요.”

유나는 가져온 플라스틱 카드를 유선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우리 아카데미 출입증이에요. 승용차로 출입하시려면 이 키 카드를 좌측 하단 유리전면부에 부착하시면 바로바로 통과 가능하시니까 받아 두세요.”

“승용차요?”

유선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대학교 캠퍼스마냥 도로가 나긴 했지만, 유선은 승용차를 끌고 오면 안 된다는 지침 때문에 집에 놓고 왔다. 그러자 유나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 끌고 나오실 줄 알았는데, 안 끌고 오셨나요?”

“네, 혼잡하니까 될 수 있으면 버스 이용하라고 되어 있어서요.”

그리고 애초에 차가 있었다면 벤치에 앉을 일이 없었다.

“네? 그럴 리가요······.”

유나는 자신의 휴대폰을 뒤적거려 유선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읽었다. 자신이 써 내려간 문장을 다시 확인하더니 공포스러운 걸 본 사람처럼 동공이 확장되고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아아아아! 죄송해요, 헌터님! 제가 그만 학생 지침을 보내 버렸네요!”

“네?”

“죄송해요! 컨트롤 C, V만 계속하다 보니까 이런 결례를 저질러 버리다니······! 초청한 헌터님들은 다른 공지를 드려야 하는데 이거 실수해 버렸네요. 기분 나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유나가 허리를 숙여 가며 사과했다. 기분 나쁜 일이 뭐가 있나, 한번 생각해 보지만, 전혀 기분 나쁠 만한 일이 없었다.

“아, 아니에요. 뭐 지금 실수한 거는 어쩔 수 없죠. 내일부터는 차 끌고 와도 되죠?”

“네, 물론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해 드려야 하는 대우인걸요!”

북적거리는 버스를 탈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유나는 유선과 엘레노어를 데리고 마법 클래스 건물로 발을 옮겼다.

걷는 도중, 유선은 유나의 말에 신경 쓰여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 말고 다른 헌터들이 몇 명 있습니까?”

유나가 사과할 때 초청한 헌터들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초청된 헌터는 자신,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나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A 등급 헌터님 아홉 분이랑 합쳐서 총 열 분을 모셨어요. 마법 클래스는 5명, 딜러 클래스 3명, 그리고 탱커 클래스 2명이랍니다.”

“10명밖에 안 되는군요.”

“원래 20명 정도를 정원으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콘택트가 잘 잡히지가 않네요. 돈도 A급 헌터님들의 기준에 맞춰서 잡은 건데 말이죠. 전화 돌릴 때마다 얼마나 살벌한지······.”

기억을 떠올린 유나는 소름이 돋는다는 듯이 떨었다. 헌터들의 사정을 간접적으로 느껴 본 유선은 그들이 거절한 이유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기도 했다. 공격대로 편성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보니, 정교하게 짜인 단체 행동을 해야 하는데 빈자리를 만들면 큰일이 나기 때문이다. 공격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앞에서 공격을 대신 맞아 주는 탱커들이니 초청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정유선 헌터님이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A급 헌터 열 명보단 아무래도 S급 한 명이 있는 게 더 중요하니까 말이죠! 재능만큼 해 줄 조언도 분명히 폭이 넓을 거고요!”

“아뇨, 조언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게 없는걸요.”

“테이머의 능력으로 어비스 던전을 완전히 없애 버리셨는데, 그 정도면 엄청 재능 있죠! 그건 10년 차의 기술이나 감보다 좋은 거예요!”

“과찬입니다.”

유선은 유나의 속사포 같은 칭찬 공세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유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정유선 헌터님은 각성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죠?”

“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연도 시험 보셨으니까, 이번 시험은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시험 말인가요?”

“이번 기수는 상당히 빡셌다고 알거든요. 정유선 헌터님도 그렇게 느꼈나요?”

전년도 시험과 비교했을 때, 난이도는 확실히 높아졌다. 필기만큼은 꼼꼼하게 준비했던 유선이었기 때문에 아주 어렵지 않게 통과했다.

“필기는 뭐 그렇게 어려운 게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실기에서 좀 힘들었죠.”

“필기는 사실 심리 빼고는 의미 없으니까요. 실기는 아지랑이 고개 넘기셨나요?”

“하하, 넘겼습니다.”

“대단해요. 저는 그거 못 넘겼는데 흐으······.”

여섯 가지 실기, 그건 전부 다 체력 측정에 쓰이는 운동들이었다. 그 여섯 가지 실기를 한 운동장 안에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하니, 운동으로 일으킨 열 때문에 봄날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열기가 가열되어 점점 위험해져 가지만, 시험은 계속되고 그러다가 하나둘씩 쓰러지는데, 그것을 아지랑이 고개라고 불렀다. 아지랑이 고개를 넘기지 못하면 실격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의외로 자격이 충분한 이들이 있어서 고개를 넘기지 못한 사람이 뽑히기도 했다.

유나는 그들 중 하나였다.

유선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았다. 세 시간 동안 지속하는 시험 속에서 유선도 그 순간은 정말로 죽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던 때였다. 유나도 자신의 옛날 생각이 떠올랐는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헌터 자격시험이라는 게 참 이상해요. 각성제는 한정되고, 지원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시험으로 걸러 낸다지만······ 솔직히 시험 종목들이 좀 이해가 안 가지 않나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렇긴 하죠.”

목숨을 거는 직업에서 시험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KOHA는 꾸준하게 자기 뜻을 밀어 갔다. 일정한 조건에 충족하지 않으면 각성제로 일어나는 부작용을 견디지 못해, 일상생활도 못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라며, 그걸 알기 위한 조건이 지금 시험 그대로라고 해명했다.

그래서 자격시험은 그대로 두고, KOHA 시험 통과자를 한 해 후반기 교육을 시행하는데, 그게 헌터 아카데미이다. 1년 중 한 번 하며 한 달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여태 수강한 헌터들의 말을 들어 보면 시간이 아깝지 않은 스파르타 교육이라 좋다고 평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군요······. 그, 그래도 정유선 헌터님처럼 위대한 헌터들이 나온 걸 보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아요!”

“하하, 감사합니다.”

유나는 얼굴을 붉히며 그에게 조심스레 부탁했다

“그러니······ 제가 한 말은 부디 잊어 주세요.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교사가 어쩌느니 하면 제가 밥줄이······.”

“······알겠습니다.”

여러모로 붕 뜬 강사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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