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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1) (3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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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헌터 아카데미 (1)

“형님, 아카데미나 한번 갔다 오시겠소?”

사장 자리에서 기율이 머그잔을 기울이며 유선에게 물었다. 유선은 던전 공략을 마치고 와 코어로 가득한 주머니를 뒤에 짊어진 채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뜬금없이 웬 아카데미야?”

“KOHA 헌터 아카데미에서 연락이 왔소. 일주일 뒤에 아카데미가 개강한다는데, 급하게라도 정유선 헌터님을 모시고 강의하고 싶다고 혹시 한 달이란 길지만 동시에 짧은 시간 동안······ 으엑, 모시는 영광을 누려도 되겠느냐고 묻던데?”

“그래?”

기율이 머그잔 내용물을 홀짝거리다 인상을 썼다. 유선은 난생처음 받아 본 제의에 어안이 벙벙해 그에 대해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싫소?”

“아냐, 좀 미묘해서 그래. 아카데미에 한 번쯤은 가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그게 초청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헌터 각성자를 적절한 자격시험으로 선별하고 나서는 선택적인 후반기 수업이 있다. 각 클래스별로 집중적으로 강의하며 헌터들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수료시킨다. 각성자들은 무조건 무료로 받는 수업이니, 회사에서 소속된 풋내기 헌터들도 거의 놓치지 않고 수료하고 재수강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물론 소속된 풋내기 헌터 중에서 유망주들은 예외이다. 아카데미 수료를 하지 않고 고수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한 실전 경험을 통해, 수료한 학생들보다 더욱 뛰어나게 제 역할을 하는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하겠는가!

유선은 가망 없는 테이머로 전직하면서 회사를 알아보면서 동시에 아카데미에 들어갈까 했던 생각을 적잖게 했다. 돈도 안 들고,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기만 하면 회사가 콘택트해 올 거로 장담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생각도 엘레노어가 오면서 사라졌다. 그녀가 온 이후로 거의 모든 일이 잘 풀렸기에 그런 번거로운 일들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페이는 심심치 않게 주겠다는 것 같은데?”

“얼마 준다냐?”

“한 달 수료 동안 별문제 없이 해 준다면, 40억. 선금으로 20억을 드리고 시작한다고 하오.”

“음······.”

유선은 그 준다는 금액을 듣고는 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페이 자체로 따지면 엘레노어를 데리고 A급 던전에 들어갈 때보다 적었다. 장비 값이나 유지비에서 많이 깨진다고들 하지만, 엘레노어와 함께 들어가면 유선이 자신을 방어하는 데 쓰는 돈만 들었다. 효율성이 너무나도 좋았기에 순수익은 어마어마한 편이었다.

‘그리고 내가 강의를 이끌 만큼 경험이 있지도 않고.’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각보다 아는 게 많이 없었다. 풋내기나 2, 3년 차들보다 경험은 더 있겠지만, 그 이상 되는 노련한 헌터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유선도 1년 차를 넘지 않은 풋내기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 기율에게 물었다.

“내가 단상 위에 나서서 뭔가 1달 동안 떠들 만큼 그런 사람은 아닌데 어쩌지?”

“그런 건 바라는 것 같지 않소. 내가 그럴 줄 알고 물어봤지, 우리 형님이 무대에 서면 분명히 말을 잘 못 하다가 끝날 게 분명한데, 그걸 1달 동안 지속하면 분명히 대한파가 일어날 거라고 말이오.”

“그래서 뭐라고 하든?”

“보니까 그냥 자랑스러운 선배, 그리고 위인으로서 몇 마디만 처음에 해 주고······ 아우으, 초보 헌터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게 다랍니다.”

강사 같은 것보단 연예인을 섭외해 오는 것에 가까웠다. 아니 그것보다 더 거저먹는 수준이었다. 거의 아무것도 안 하고 40억을 받는 거니까. 유선은 그의 말을 듣고 한 번 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유선은 큐앤 헌터 컴퍼니 대표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회사 사정을 제일 잘 아니까 이 초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하고 싶은지 궁금했다.

“회사 이익 생각이라면, 개의치 않는 편이오. 오히려 이번 기회로 아마 제가 바라는 것도 어느 정도 건지지 않을까 싶어서 기대하거든.”

“너는 사람을 좀 끌어모아 와 줬으면 좋겠다, 이거구나?”

“정확하오.”

기율은 헌터 회사답게 사람이 채워졌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다. 아무리 돈 자체는 잘 버는 회사라고 해도 사람이 없으니, 활기가 없었다. 사람이 채워지면 그때그때 바로 대응해서 물건을 넣을 생각이었기에, 지금은 유선과 기율 자리 두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빈 곳이었다. 유령 회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산했다.

유선의 존재는 이번 어비스 던전 건에 이미지가 확고했지만, 회사 자체는 아직도 인지도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기에, 유선은 금방 그 바람을 알아차렸다.

“네 일을 내가 함께해 달라는 파렴치한 제안이로군, 그래.”

“그러게, 대통령하고 악수할 때, ‘큐앤 만세, 내 목숨을 큐앤에.’라고 외쳤으면 되지 않았소.”

“큐앤한테 뒷돈 받아 처먹었다고 논란될 일 있냐?”

쓸데없는 거로 잘 물고 넘어지는 게 기자들이다. 유선은 그런 귀찮은 상황이 싫었다.

“이번에는 테이머 클래스 선생도 있다니까 한 번 공부하는 차원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소. 지원생이 대충 5명이니깐 외로울 것도 없고 말이오.”

“흠······.”

유선은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한 번 정도는 가 보는 것도 내 인생에 도움이 되겠지.”

“오케이,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율이 검지를 하나 펼치며 말했다.

“쓸 만한 애들 있으면 꼭 끌어오시오. 페이는 잘해 준다고 하고.”

“그건 말 안 해도 할 생각이었어.”

“후후, 좋아, 좋아······.”

기율은 모든 게 생각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만족하는 악의 간부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한 번 더 머그컵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홀짝 들이키며 다시 인상을 쓰고 컵을 내려놓았다.

“아우씨, 이딴 걸 왜 마셔!”

“아까 전부터 뭘 찔끔찔끔 마시냐? 사약이라도 들이키냐?”

대화할 때 중간중간 머그잔을 들이켜고, 그럴 때마다 반응이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기율은 엄지로 입가를 닦아 내며 말했다.

“아버지가 창업하고 잘되라고 선물로 루왁 커피라는 걸 보내 주셨는데, 커피인지 아메리카노로만 마시라더군. 그래서 물만 넣고 마셨더니, 완전히 똥 맛이구려.”

루왁 커피라는 말에 유선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너 몰라서 그러냐?”

“뭘?”

“그거 고양이 똥으로 만든 거야.”

“뭣이오?”

기율이 유선의 말을 듣고 질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핸드폰을 두들겼다. 정보를 확인했는지 기율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퍼렇게 질렸다.

“이런 씨부럴, 내가 여태까지 고양이 똥을 물에 타서 먹었다고요? 여기 이렇게 딱 있는 괭이 새끼 한 마리가 싸 놓은 똥을?”

박스에 프린트된 요염한 페르시아고양이를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는 게 뚫고 들어갈 기세였다. 유선은 그게 그렇게 화날 일인가 싶어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뭐, 고양이 똥이긴 해도 고급······.”

“고급 똥이지! 아우! 으에엑!”

기율은 루왁 커피 정보를 알고는 헛구역질하며 곧장 싱크대로 향했다. 그리고 머그잔에 담긴 커피를 쏟아 내면서 중얼거렸다.

“효자 노릇 좀 하겠다고 회사 하나 차려서 운영하는 아들내미한테 주는 게 고작 똥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군. 아버지가 주신 똥 잘 먹었습니다. 아버지 생각하고 회사를 키워서 인수 합병의 꿈을 이루겠습니다.”

기율은 아버지가 악의를 품었다는 생각에 분노를 태웠다.

“······.”

유선은 자신이 마시던 커피콩이 얼마나 비싼지 모르는 기율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

“다녀왔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단둘이 살았더라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유선은 신발을 벗고 루데릭의 방으로 발을 옮겼다.

-집중 중.-

-건드리지 마시오.-

이런 건방진 것. 언제 이런 걸 만들었는지, 유선은 피식하고 웃어 버렸다. 아직도 컴퓨터로 지식을 수집 중인 것 같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루데릭이 인터넷이라는 게 얼마나 놀라운지 알았을 때, 그 반응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했다.

루데릭은 컴퓨터와 인터넷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런 물건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 것만으로도 호감도가 단번에 4%나 상승했으니, 그가 지식에 얼마나 미쳐 있는지 알겠다.

‘내가 잘하는지 모르겠네.’

유선은 새삼 걱정되었다. 인터넷을 가르칠 때, 살짝 루데릭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루데릭은 자신이 가야 할 방향을 위해 유선에게 두 가지를 요구했고, 그 요구 사항은 이러했다.

당분간은 자신을 건드리지 말 것.

던전에 들어가서 사냥하는 것은 웬만해선 루데릭이 하지 않을 것.

첫 번째는 집중해서 그러려니 했지만, 유선은 두 번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역수가 던전을 돌기를 거부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가서 이유를 물어보았고, 루데릭은 자신만의 뜻이 확고했다.

-나는 이제 추방당한 악마다, 주인. 다시 이계로 돌아가 내 존재를 노출시켜 버린다면, 주인이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이세계에서 할 수 있는 선에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지금은 지식이 필요하다.

루데릭과의 계약은 ‘자신에 대한 증명’으로 시작되었기에 던전에서 위험을 무릅쓰기 싫어서 하는 구차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도움의 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였지만, 그 나름대로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유선은 일단 루데릭을 믿기로 했다.

“유선 님, 배고파. 오늘 뭐 먹어?”

“볶음밥 해 먹자.”

“나면은 안 먹어?”

“라면은 오늘 점심때 많이 먹었으니까.”

집에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볶음밥을 만들어 엘레노어와 나눠 먹었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이 엘레노어가 먹는 걸 지켜보겠지만, 지금은 루데릭이 신경 쓰였다.

‘같이 나와서 밥이라도 먹으면 좋으련만······.’

유선은 왜 어머니들이 자식새끼의 방문을, 간헐적으로 퍼붓는 짜증을 감수해 가며, 두들기는지 대충 이해했다. 적어도 얼굴을 대면하는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일 것이다. 유선은 그 유혹을 견뎠다.

유선은 저녁밥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마친 뒤에, 자신의 가방에 있던 마카롱 박스를 꺼내 문 앞에 두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알아서 꺼내 먹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자신이 신경 쓰지 않아도 분명히 모르는 사이에 뭔가를 챙기겠지.

그러니 일단은 루데릭이 하는 걸 지켜보면서 믿는 수밖에 없었다.

––-

KOHA 헌터 아카데미는 도심에서 상당히 외진 쪽에 위치했다. 실제 헌터들의 스킬을 사용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혹여나 발생하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외진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교통편이 한산할 거로 생각한 것과 다르게 많은 사람이 헌터 아카데미로 모여들어, 입구가 북적이기 짝이 없었다. 가급적이면 자가용 사용을 삼가라는 말에, 유선은 아카데미 자체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왔다.

“헌터 아카데미라······.”

유선은 대학교를 다시 입학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학생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선 님, 여기 어디야?”

“여기? 학교야.”

“학교? 그러면 선생님 있어?”

“당연히 있지, 엘레노어가 궁금한 것도 알려 줄 거야.”

“정말이야? 많이 물어봐야지!”

엘레노어는 순수하게 기뻐했다. 그녀의 지식 범위에서 던질 만한 질문들을 생각하면 그 누구도 대답을 제대로 할 것이기에 그것 때문에 걱정하진 않았다.

유선은 입구 앞에 있는 KOHA 헌터 아카데미의 전경도를 살펴보았다. 총 세 개 건물로 나뉘고 매직 클래스, 딜러 클래스 그리고 탱커 클래스가 따로 있었다. 헌터들의 대학 캠퍼스라는 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테이머들은 매직 클래스랬나?’

유선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오기 전에 이유나라는 강사가 보내 준 안내 메시지가 있었다. M0123번······. 강의실 번호를 보니 매직 클래스 건물이 확실했다.

‘매직 클래스 건물로 가면 될······.’

띠링!

까, 하기 무섭게. 문자 메시지 음이 들렸다. 위에 뜬 메시지를 밀어내며 하단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보였다.

-정유선 헌터님, 혹시 도착하셨나요?

이유나 강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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