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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Sweet devil (36/148)

 # 36

19. Sweet devil

어느 때나 다름없는 한적한 큐앤 헌터 컴퍼니.

엘레노어를 위해 마련한 휴식 공간에 루데릭이 엘레노어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사이좋게, 라는 말을 넣지 못하는 게 루데릭의 표정이 뭐를 잘못 씹은 것처럼 좋지 않았다.

옆에 있던 엘레노어가 루데릭에게 말했다.

“동생, 동생.”

“······왜 그러느냐?”

“이건 곰!”

“······.”

엘레노어가 루데릭을 위해서 친절하게 글자를 알려 주는 모습이었다. 정말이지 훈훈하기 짝이 없는 교육 현장이군. 유선은 커피를 마시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 흐뭇한 분위기에서 섞여들고 싶지 않은 건 루데릭 혼자였다.

“곰!”

“그래, 안다.”

“곰!”

“엘레노어 마마께서 곰이라 하신다! 명을 받아들여라!”

강 건너 불구경하던 기율이 뜬금없이 외쳤다. 기율까지 가세하는 꼴을 보니, 루데릭은 화딱지가 돋아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으아아! 그래, 곰 곰 곰! 알겠다, 곰! 이제 그만 귀찮게 해라!”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내려갔습니다.

-루데릭의 스트레스가 올라갔습니다.

“히히, 이건 자동차!”

루데릭의 반응과 별개로 엘레노어는 뭔가를 가르쳤다는 것에 뿌듯해했다. 호의를 베푸는 것이 호의가 아닌 그런 상황이었다.

유선은 그 즐거운 상황에 잠깐 눈을 떼고 UST로 자신의 상태를 보았다.

이름: 정유선.

종족: 인간.

생명력 953/953 마나 100/100.

근력 12 마력 3 민첩 52.

보유 특성: 6.

<교감 Lv. 4> <조련 Lv. 2>, <공감 Lv. 2>, <감지 Lv. 3> <강인 Lv. 3> <흑마 Lv. 1>.

보유 스킬: 5.

<계약의 인장> <마인드 워드> <디텍팅> <커뮤니케이션> .

최근에 엘레노어와 놀아 준 덕에 근력이 12로 오르고, 민첩은 52로 대폭 상승했다. 루데릭과 계약 직후에 조련은 레벨이 2로 상승하고 <흑마>라는 특성이 생겼다.

스킬로는 <커뮤니케이션>. 마인드 워드의 강화된 스킬로 지성이 있는 몬스터와 대화할 수 있다. 스킬이 공개되었다면 분명히 쓰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일 텐데, 이거로 유명해진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 외에는 스킬에 이라는 것 하나가 떴다.

계약자인 루데릭에게 물어보니, 사역수인 ‘루데릭’과 텔레파시 하는 능력이라는 것 같았다. 단순한 텔레파시와 다른 게 몇 가지 있다면, 루데릭 한정이라는 것과 위급한 상황에 도움 받는다는 것. 두 가지이다.

유선은 자신의 스테이터스를 넘기고 UST로 판별한 루데릭의 능력치를 보았다.

이름: 루데릭.

종족: 악마.

생명력 2,340/2,340 마나 20K/20K.

근력 740 마력 4,328 민첩 529.

보유 특성: 12.

<마법 Lv. 5> <흑마 Lv. 5> <은신 Lv. 5>······.

보유 스킬: 156.

<헬파이어 볼> <에너지 드레인> <소울 커넥트>······.

상당히 한쪽으로 치우친 능력들이었다. 유선과 비교하면 한참 우위를 점하는 능력들이지만, 엘레노어와 비교하면 그래도 모자란 능력들이었다.

여태 공개된 흑마법사의 스킬이 UST에 표기된 반면, 표기되지 않은 스킬도 3분의 1을 차지했다. 특성도 적었지만, 그 대신 엘레노어보다 많은 스킬을 보유했다. 악마로 있으면서 스킬들을 배운 것이 분명했다.

으로 표시된 것에 관해 물어보자, 루데릭은 당연히 안다고 대답했다. 다만 인간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어디까지나 존재하는 스킬이라고 했다.

‘그 말은 엘레노어의 스킬도 전부 존재는 한다는 거겠지.’

어비스 던전에서 사용했던 <카 투스 페르아>가 그 72개 스킬 중 하나. 앞으로 알아야 할 스킬들이 많지만, 그중에 위협적인 건 결코 한두 개가 아닐 것이라는 건 확신했다.

아무튼 루데릭의 스탯과 특성, 그리고 스킬을 종합해서 판정한 결과는 SS. 발록과 동급으로 판정되었다.

‘사실상 SS에서 좀 아래겠다.’

발록에게 당했으니까 카테고리 중에서 하위에 속할 것이다. 그래도 강한 편이었다. S급으로 친다고 해도 여타 많은 사역수 중에 최고의 스펙으로 손꼽힐 것이다.

‘이제 얘를 어떻게 부려 먹느냐인데······.’

SS급과 EX급을 가졌으니,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생각하려던 찰나, 루데릭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외쳤다.

“주인! 나는 지식을 원하는 거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이 바보를 스승으로 삼고 싶진 않다!”

“바보 아냐!”

엘레노어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루데릭의 말에 반박했다. 루데릭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유선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이대로 날 바보 취급할 생각은 아니겠지?”

-계약을 파기해 버릴 거다.

-거짓말쟁이.

완전히 뿔났다. 만약 여기서까지 바보 취급을 하겠다면, 쿠데타를 일으켜 갈아엎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생활에 안정을 찾을 무렵이었기에, 유선은 루데릭에게 슬슬 신경 써 주기로 했다.

“좋아, 뭐 필요한 거 있어?”

씩씩거리던 루데릭이 화를 가라앉히며 대답했다.

“말했다시피 자신이 필요한 건 지식이다. 아무래도 이세계의 정보는 머릿속에서 적으니 이 세상에서 생활하려면 필요하다.”

“지식, 지식이라.”

지식의 보고라면 역시 도서관이라 생각했다.

“같이 도서관 갈까? 엘레노어도 좋아하고. 괜찮을 것 같은데.”

거기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루데릭은 고개를 저었다.

“도서관 같은 곳은 가고 싶지가 않다.”

“왜?”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느냐? 괜스레 그런 곳에 가고 싶진 않다.”

-너무 싫어.

사람이 싫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북적거리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사역수 등록하러 갔을 때도 상당히 거부 의사가 심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럼 책이라도 빌려 올까? 너 하루에 몇 권 읽을 수 있어?”

“단위를 잘못 잡았다. 하루에 1, 2권으로 생각하지 마라. 10초에 한 권은 읽을 수 있다. 잠을 안 잔다면 이론적으론 8,640권을 읽을 수 있지.”

“그럼 무리겠다.”

뽑는 속도와 반납하는 속도를 보면 도서관 다독 왕이 아니라 줏대 없는 선택 장애자로 오해받기 좋을 것 같았다.

“도서관 같은 데 말고 네가 지식을 습득할 방법은?”

루데릭은 뭔가를 생각하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 하나를 붙잡고 뇌를 파먹어서 그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있다. 주관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한 방법 중 하나지.”

“······.”

유선이 혐오한다는 표정을 짓자, 루데릭은 피식 웃었다.

“농담이다.”

“농담이겠지, 그래.”

“만약 주인이 없었더라면 진짜 했겠지만.”

“······.”

아무튼 두 번째 방법도 비정상적인 방법이었다. 인간 하나를 붙잡고 뇌 파먹는 걸 시킬 수 없기에, 유선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다면 컴퓨터 하나 사 줄까?”

“콤퓨타?”

루데릭은 생소한 단어에 물음표를 띄웠다.

“내 자리에는 없고, 저어기 제 딴에는 존나 열심히 하는데, 내 눈에는 농땡이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녀석 자리에 있는 거야.”

유선은 기율을 향해 턱짓했다. 기율은 못 들은 척 눈을 부릅뜬 채로 열심히 타자했다.

“저기에 지식이 모두 담겼단 말인가?”

“굳이 말하자면, 선 하나에 모든 걸 받지. 네트워킹 시대니까, 아마 지식을 습득한다면 그게 가장 좋을 것 같네.”

“흐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감은 안 오지만, 방대한 지식이 있다면 괜찮은 생각이구나.”

루데릭은 고개를 끄덕여 그 방법을 받아들였다. 유선은 고개를 기울여 기율의 자리를 보며 말했다.

“기율아, 너 이 방면에 잘 알지?”

“뭐 그럭저럭 아오. 컴퓨터 하나 맞춰 드려?”

“대충 하나 맞춰 주라. 네 컴퓨터 정도로만.”

“그럼 대충 3천만 원 들 거요.”

기율이 부른 가격에 유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컴퓨터 하나 맞추는데?”

“너무 많소?”

“나 기껏해야 여태 컴퓨터 하면 겁나게 비싸 봐야 100만 원 정도 하겠지 생각했는데?”

“너무 많나 보네. 그래도 돈 좀 벌었으니까 100만 원 말고, 500만 원에서 견적 맞춰 보겠소.”

벌어 놓은 돈이 있으니 그 정도면 상관은 없었다. 맞춰 주겠다는 말을 듣고 다시 루데릭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뭐 그렇다니까 좀 기다려야 할 거야.”

“알겠다. 그러면 그전까지 할 만한 게 없느냐?”

“음······.”

마음 같아선 엘레노어랑 같이 놀아 주라고 하고 싶지만, 루데릭은 그 상황을 극히 거부했다. 던전을 돌자니, 아직 마땅한 땅이 없어서 현태가 소식을 던져 주지 않은 탓에 일거리가 없었다. 일하자니, 모조리 차기율이 처리할 일들이기에 유선이 할 만한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한가했다.

“외출이나 나갈까?”

루데릭이 이 세상으로 오면서 정신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구경도 못 한 것이 많을 것 같았다. 세상을 보여 줄 겸, 한 번 나들이라도 나가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루데릭은 살짝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외출은 자신이······.”

“나갈래! 나갈래!”

루데릭은 껄끄럽다는 듯이 반응하는데, 그 도중에 엘레노어가 끼어들어 외쳤다. 유선은 제대로 듣지 못해, 루데릭에게 다시 물었다.

“그래, 엘레노어도 가자. 그런데 뭐라고 했어?”

“······아니다. 알겠다고 한 거다.”

루데릭은 말을 돌렸다.

***

유선은 루데릭과 엘레노어를 데리고 시내로 나왔다. 주일이어서 사람이 적어 거리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루데릭을 위한 외출이긴 했지만, 가장 들뜬 건 엘레노어였다.

“유선 님, 저게 머야? 살아 있는 거 같애.”

“풍선 인형이야. 살아 있는 건 아냐.”

엘레노어는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을 묻기 바빴다. 그에 반해 루데릭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지식이 되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그래도 혼자 안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뭐가 두려운지 아직 제대로 알진 못했지만, 그래도 북적한 것이 싫다는 걸 확실하게 감 잡았다.

그렇게 걷다가 루데릭이 잠깐 멈춰 섰다. 유선은 그것도 모른 채로 걷다가 뒤늦게 루데릭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루데릭?”

그가 어디에 있나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멀지 않은 가게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유리창 너머로 뭔가 유심히 지켜보았다.

-괜찮아 보이네.

-맛있을까?

맛있을까, 라는 질문에 루데릭이 과연 뭘 보는지 궁금했다. 유선은 슬쩍 다가가서 그 가게에서 파는 것을 보았다.

‘마카롱?’

동그란 형태의 아기자기한 과자였다. 가끔 후배들이 마카롱을 가져올 때 먹어 본 적이 있지만, 너무 달아서 유선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던 걸로 기억했다.

“사 줄까?”

루데릭의 어깨가 한순간 들렸다. 깜짝 놀란 게 분명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별로 맛있어 보이지도 않는군.”

-먹어 보고 싶을지도······.

“저렇게 작게 생긴 돌덩어리를 무슨 맛으로 먹겠느냐?”

-분명히 달콤할 거야.

까다로운 녀석. 교감 특성이 없었더라면 사역수로 못 만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하나 가서 사 먹자.”

루데릭과 엘레노어를 데리고 마카롱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진열대에 놓인 형형색색의 마카롱들이 개당 천 원씩 했다.

“난 바닐라로 먹고, 엘레노어는 뭐 먹고 싶어?”

“나면 먹을래.”

제과점에 들어와도 꾸준한 선택이었다.

“라면 맛은 없어. 여기 안에 있는 거로 선택해 봐.”

“그럼 빨간 거 먹을래.”

딸기 맛이었다. 거침없이 선택한 엘레노어와 다르게 루데릭은 신중했다.

“흐음······.”

-뭐가 맛있을까?

-피스타치오? 딸기? 바닐라? 초코?

-죄다 모르겠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유선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쿨하게 대응했다.

“바닐라랑 딸기 맛 하나, 그리고 종류별로 하나씩 다 주세요.”

“주인?”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유선의 선택에 루데릭은 당황스러운 듯했다. 유선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민하지 말고 하나씩 다 먹어 봐.”

“······.”

루데릭은 입술을 앙다문 채 노려보았다. 신경 써 주는 것이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자존심이 허락 안 되는 모양이었다.

비닐봉지에 담긴 바닐라와 딸기 맛 마카롱과 종류별로 하나씩 담긴 마카롱 박스가 나왔다. 마침 가게에 테이블이 있어 자리 잡아 마카롱을 먹기로 했다.

엘레노어는 비닐봉지를 바로 뜯어 먹기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늘 그랬지만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달콤해.”

“이게 좋아, 라면이 좋아.”

“나면이 더 좋아.”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지만 여전히 라면파였다. 달콤한 것보다 좋다는 모습을 보면 지긋한 나잇대 아저씨 같아 보였다. 루데릭은 마카롱 박스를 보며 숫자를 세 알리는 것처럼 하나씩 건드렸다.

“······.”

“안 먹어?”

“먹을 거다, 재촉하지 마라.”

루데릭은 고민 끝에 유선이 먹은 것과 똑같은 바닐라부터 건드렸다. 조심스럽게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입이 움직였다. 안에 들어 있던 달콤한 크림이 간헐적인 용암처럼 뿜어져 나와 입안을 적셨다.

-맛있다.

그 순간, 유선은 루데릭의 머리에 뜨는 상태와 함께 미소 짓는 게 보였다. 무뚝뚝하고 짜증만 내던 녀석이 짓는 미소. 중성적이던 얼굴에서 소년이 아닌 아름다운 소녀다운 모습이었다.

-아······. 아차!

그리고 재빨리 거두었다. 혹시나 들켰나 하는 마음에 유선을 보았지만, 마음을 읽은 유선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다.

“푸흡, 엘레노어 볼에 마카롱 묻었어. 크흐흐······.”

애써 자신의 얼굴을 봤다는 걸 모른 체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웃긴 건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루데릭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맛있어서 웃은 게 아니다. 괜한 생각하지 마라.”

“네, 네. 알겠습니다.”

입으로는 부정하지만 상태 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루데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고 알려 주었다.

-‘루데릭’에 대한 적응도가 올라갔습니다.

그는 달콤한 것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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