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루데릭 (4) (3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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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루데릭 (4)

조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 앞에서 기다리던 누군가가 유선에게 다가왔다.

“유선 씨?”

“아, 윤수현 대장님. 안녕하세요?”

잘 아는 사람이었다. 코드 헌터 때 입었던 갑옷이 아니라 정장을 입어 윤수현 대장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얼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는 이젠 대장보다 CEO 느낌이 물씬하게 풍겨 왔다.

다만 표정이 착잡한 생각에 젖어 겨우 미소 짓는 것 같아 침울한 분위기였다.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죄지은 사람처럼.”

“죄라면 있지요. 그 죄에 사과드릴 생각으로 왔습니다.”

죄? 윤수현 대장이 자신에게 지은 죄가 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 게이트 닫으려던 사건 말씀이시군요.”

유선은 부랴부랴 게이트를 넘어온 입장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진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후에 기율에게 들은 게 다였다. 기율이 호들갑 떨면서 개새끼니, 소 새끼니 하긴 했지만, 유선은 그 선택이 결코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해합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억지로 닫히려던 걸 유지하다가 내린 결단이지 않습니까? 대장님은 더 많은 생명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겠죠.”

“······.”

“제가 만약 그런 상황에 놓였더라면 그 결단을 못 내리고 이도 저도 못 했을 겁니다. 그러다가 재앙이 올 수도 있었겠죠. 윤수현 대장님의 결단력에 원망하진 않습니다.”

그의 판단은 몹시 잘못되진 않았다. 그래도 유선은 적잖게 실망한 감도 있었다. 아무래도 용맹하게 뛰어들어 과감한 행동을 하는 윤수현 대장으로 유명하니 말이다.

윤수현 대장은 그의 용서에 고개를 숙였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유선 씨를 끝까지 찾으려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한 번 더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코드 헌터도 끝났는데, 푹 쉬고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유선은 그에게 인사하고 다시 갈 길을 갔다. 윤수현 대장은 그의 호의에 조금은 마음을 놓았다.

***

일주일 뒤, 코드 헌터를 끝으로 그토록 미루고 미뤘던 이사를 진행했다.

“그 물건은 이쪽에 놔 주세요. 그건······. 네, 저쪽에 놔주시면 될 것 같네요.”

이삿짐센터 직원들을 지휘하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정작 원룸 시절에 쓰던 물건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가구를 몇 개씩 사서 이삿짐 직원과 가구점 직원이 방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유선 님, 유선 님!”

엘레노어가 유리창에 딱 붙어 말했다.

“왜?”

“엄청 높아! 우리 집보다 높은 것 같아.”

방실방실 웃는 엘레노어. 유선은 웃음을 터트리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야.”

“원래 집 안 가?”

“왜? 여기 싫어?”

“좋아! 새집 좋아!”

엘레노어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유선은 엘레노어가 마음에 들어 해서 안심했다.

그가 이사한 곳은 큐앤 기업의 간부들만이 들어가는 초고급 아파트! 유선의 인맥에, 넉넉한 자본을 합쳐서 입주했다.

‘마침 방 빼는 사람이 초고층에 있을 줄이야.’

그토록 많은 사람이 탐내는 스카이 뷰!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게 만들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우월감을 느낀다는 곳에 유선이 지금 이사를 진행했다.

많은 간부가 고층으로 올라가려고 뒷돈을 찔러 넣고 별짓을 다 했다. 유선은 큐앤 간부들이 벌이는 자기들만의 리그 중에 끼어들어 밥에 코 빠트려 영역 표시한 거나 다름없었다.

막내아들 차기율의 연도 있지만, 무엇보다 언론에서 터트린 일 덕분에 스카이 뷰에 발을 들이는 데 힘이 되어 주었다. 말대로 영웅 대접에 소홀하면 안 된다는 게 실현되는 나라였다.

삐리리리-.

초고층 하늘을 보며 감탄할 때, 유선의 휴대폰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어머니였다.

“어, 엄마.”

-아들, 지금 엄마가 티브이 보는데 이상하다?

“이상하다니? 뭐가?”

유선은 어머니의 말에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뉴스가 시작했고, 유선은 밑에 커다랗게 한 줄로 이렇게 쓰인 것을 보았다.

-코드 헌터 상황, 역대 최고의 공적치를 얻은 정유선 헌터.

그리고 유선이 대통령과 함께 악수하는 장면도 보였다. 유선은 저 절도 있는 미소를 지으려고 수없이 연습한 것과 정신없이 터지는 플래시가 기억났다.

-왜 공중파 뉴스에 아들 얼굴이 보이니? 브라운관이 맛이 가서 우리 아들 이름이랑 얼굴이 보이는 것 같네.

“내가 보는 데는 전우성이라고 보이는데? 그러니까 티브이 좀 바꾸자니까, 왜 아직도 그런 걸 잡고 있었어?”

-이런 경사에 전화 한 통도 안 하니까 어미가 그런 거 바꿀 생각이 있겠니? 이 후레자식아?

버럭 화를 내는 소리에 유선은 웃음을 터트렸다.

“미안해요. 요즘 너무 바빠서 전화 한 통 못 드렸네.”

-됐고, 우리 아들 얼굴이나 한번 보고 싶다. 되도록 빨리 올라올 수 없겠니?

유선은 대충 잡힌 스케줄을 생각했다. 마땅한 시간이 없어 보였다.

“아마 설날 때쯤 시간 비울 것 같아.”

-어미는 뒷전이다, 이거지?

“에이, 누가 그래? 엄마 사랑하는 거 나뿐이잖아.”

-아들내미한테 사랑 구걸 받을 만큼 엄마 안 외롭거든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까다롭긴. 그렇게 말하다가 유선은 뭔가 생각났다.

“아, 엄마. 잠시만. 엘레노어, 잠깐만 이리 와 봐.”

“왜?”

유선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고 영상 통화 모드로 들어갔다. 집을 둘러보던 엘레노어가 다가왔다.

-갑자기 웬 영상 통화니? 그리고 엘레노어는 누구야?

“애 이름이야. 소개해 줄게.”

-애? 너 사고 쳤니? 유명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고를 치고 다녀?

쓸데없는 잔소리가 날아왔다. 유선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듯이 대답하지 않고 카메라가 잘 나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카메라를 엘레노어를 향해 돌렸다.

“인사해. 우리 엄마야.”

“엄마?”

엘레노어의 얼굴을 보자, 유선의 어머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머, 귀여워라! 완전 아기네, 아기!

그것과 별개로 엘레노어는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며 화면을 보았다. 계속해서 감탄하다가 유선에게 묻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인형 같은 아기를 어디서 납치해 왔니?

“이계에서 납치해왔어.”

-······진짜 납치해 왔니?

“뭐 납치랑 다른 게 없긴 하지.”

어머니는 그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어 홀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마. 나 안 잡혀가니까.”

-됐어. 네 상판대기 치우고 애나 좀 보여 줘라.

“아, 네. 한 번 더 보시죠, 여사님.”

유선은 다시 휴대폰을 돌려서 엘레노어를 향했다.

-아이고, 세상에 텔레비전에나 나올 것 같은 아기가 이렇게 있을 줄이야. 에구에구, 몇 살이에요?

엘레노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물을 뿐.

“유선 님, 여기에 이상한 게 움직여.”

“푸흡!”

-이상한 게 아니란다. 아줌마는······.

“말도 해.”

“푸흐흐흐흐······.”

더 놔뒀다간 상처받는 게 아닌가 싶어 영상 통화를 돌렸다.

“미안해. 애가 외국에 있어서, 한국말이 어색해서 그래. 엄마가 이상한 건 아니니까.”

-됐어. 아줌마가 이상하면 이상하지. 거기다가 애가 귀여우면 장땡이니까. 나중에 엄마가 김치 가져다주러 갈 때 한 번 더 보자.

“그때도 집에 있을까 모르겠지만, 시간 있으면 올라오세요.”

-그래, 알았어. 일한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엄마는 너 돈 버는 것도 좋지만, 네가 몸 상해 가면서 돈 버는 건 찬성 안 해. 엄마 맘 알지?

“알았어요.”

-잘 먹고 잘살아라.

“어머니도요.”

삑.

삐리리리-.

통화를 끊자마자 다시 한 번 더 휴대폰이 울렸다. 큐앤 헌터 컴퍼니의 사장, 차기율이었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아우가 희소식을 접하고 전화한 거 아니겠소? 회사에 형님 ID카드가 날아왔소.

유선은 한정판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흥분한 얼굴이 되었다.

“아, 그 S급 헌터 ID카드?”

새로 ID카드를 발급할 테니, 주소를 불러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유선은 이사가 아직 확정된 시기가 아니어서 집 주소를 적기 애매해 회사로 보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게 오늘 올 줄이야.

-보니깐 장난 아닌데? S급 할 만하겠소. 황금색 바탕에 홀로그램도 삐까번쩍한 게 주민등록증 골드 에디션이네.

“그 주민등록증 골드 에디션을 받으려고 많은 사람이 피나는 노력을 하지.”

대한민국에 50명도 안 되는 S급 헌터들. 유선은 코드 네임 어비스를 완전히 마무리 지은 공적을 인정받아 이제 잘나가는 S급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잘난 유망주인 윤정도도 아직은 A급이지.’

그건 결코 윤정도가 과평가된 게 아니라 유선이 비정상적으로 빠른 승급을 한 것뿐이었다. F급에서 S급으로 오른 것은 전 세계를 통틀어서 유선이 유일할 것이다.

“그것 말고 다른 소식은 없던?”

-그것 말고도 역시 더 있지. 형님 얼굴을 신문에서 볼 줄은 알았지만, 무려 신문 전면에 등장할 줄은 누가 알았겠소. 문구가 뭔지 아시오? ‘재난은 끝났다!’ 크으······. 이거 완전히 영화 포스터 선전 문구 아니오? ‘캡틴 나부랭이와 그 아이들, 이제 재난은 끝났다! 8월 30일 대개봉!’ 완전 이건데?

“별거 아니네. 청와대도 같이 갔는데,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 않냐?”

-웃겨서 그렇지. 그리고 이거, 이거. 이것도 찾아보시오. ‘F 등급 헌터, EX에 이어서 SS급 보스까지 조련에 성공!’ ‘압도적인 재능!’ ‘국가 재난이 한순간에 한 남자의 손으로 해결.’ ‘발록을 가지고 앞으로의 행적은 미지수.’ 이건 아주 가관이네. ‘그는 과연 ‘마왕’이 될 것인가?’ 소감이 어떠오, 마왕님?

“하여간 기레기들 같으니. 싹 다 고소해 버려야지.”

유선도 킥킥 웃으면서 장난스레 말했다.

‘마왕이라······.’

유선은 거물 취급해 준다는 게 가장 기분이 좋았다.

거짓말한다는 게 양심에 찔리긴 했지만,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었고 그 덕에 유선은 재난을 끝낸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았고, S급 귀족들만이 받는 대우를 철저하게 받았다.

-그전에 꼬맹이 있을 때는 별말 없던 것 같았는데, 역시 유명해지는 게 최곤가 보오.

“그렇긴 하지.”

-아무튼 형님, 오늘은 이사하시면서 쉬시고, 내일부터 출근해 주시오. 내일부터 이제 일이 많을 테니까.

“그래, 알았어.”

유선은 전화를 끊었다.

“정유선 고객님, 혹시 이건 어디에 놓을까요?”

“아, 그건 이쪽으로······.”

이사는 여전히 바쁘게 진행 중이었고, 유선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

이사에 뒷정리까지 마치고 나자 유선은 바로 저녁을 차렸다. 4인용 식탁에 앉은 루데릭과 엘레노어 앞에 커다란 냄비를 내려놓았다. 안에는 라면이 맛있게 익었다.

“자, 먹자!”

“나면이다!”

엘레노어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주었다. 작은 소녀의 체구와 어울리지 않은 대형 냄비에 끓여 낸 라면을 그녀는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다.

유선은 그 틈에 조심스레 젓가락을 넣어 면 가닥을 건져 먹었다.

‘순한 맛을 사긴 했는데, 이렇게 순할 줄이야.’

평소의 매콤한 자극이 없어 입이 심심해 손에 안 댄 라면이었다. 그가 평소와 다른 라면에 손댄 이유는 다름 아닌 루데릭 때문이었다.

“으엑.”

루데릭은 젓가락을 써서 라면을 집어 한입 씹어 먹었는데 상당히 볼 만했다. 뱉지 못해 애써 입을 가리며 역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도 별로야?”

루데릭은 몇 번 씹지도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넘기며 대답했다.

“너무 싫다. 냄새나 매운 건 나아졌다 쳐도 이것도 짜다. 거기다가 혀를 쿡쿡 찌르는 강한 맛이 너무 난다. 이걸 인간이 먹는 음식이라 만들었나?”

이것마저 실패였다. 이렇게 되면 루데릭은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라면 그 자체를 극히 혐오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루루루룹!

그 말이 무색할 정도로 흡입하는 엘레노어. 호불호가 극에 달한 서로의 성향이었다.

“그럼 밥이라도 먹어라.”

유선은 어쩔 수 없이 루데릭의 밥을 따로 주었다.

“차라리 이게 낫지. 저건 먹을 것이 안 된다.”

밥도 좋아하는 것 같진 않지만, 라면보단 나은 것 같았다. 육류, 나물이나 한식은 대부분 먹여 봤는데, 그가 반응하는 음식은 없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어보지만, 이 세상의 음식이 아니기에 그걸 구현할 방법이 없었다.

‘돈이 많이 들 수도 있겠다.’

루데릭은 상당히 소식하지만 입이 까다로운 탓에, 많이 먹는 엘레노어보다 식비가 더 들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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