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루데릭 (3) (3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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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루데릭 (3)

전화는 그렇게 끝났다. 몰래 그 전화 내용을 엿듣던 루데릭이 그에게 물었다.

“단순한 일로 불려 가는 거로 생각하나?”

“뭐, 공적치 문제도 있겠지만, 그건 거의 부차적인 목표일걸. 분명히 주된 이유는 따로 있겠지.”

유선은 대충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중 가장 이유가 될 만한 가설은 루데릭의 존재였다.

루데릭은 모든 사람이 지켜봤고, 형체도 없이 검은 물체로만 이루어졌다. 지켜봤다면 심상치 않은 물체라는 건 분명히 다들 인지했을 것이다.

목격한 사람 중엔 국가 재난 관리청에서 일하는 직원도 분명히 있었고, 그걸 상부에 보고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도 유선은 그거로 기발한 생각을 떠올렸다. 말려들기만 한다면, 분명히 이번 일에 가장 큰 영웅으로 부각할지도 몰랐다.

“루데릭.”

“왜 그러냐?”

“내가 거짓말 좀 할 생각인데, 혹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는지 봐주겠어?”

“일단 들어는 보마.”

유선은 대충 어떤 계획인지 루데릭에게 알려 주었다. 그의 말을 꼼꼼하게 들은 루데릭의 반응이 메시지 창으로 나타났다.

-루데릭의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성공적인 모양이다.

“약아빠진 사내 같으니라고.”

“마음에 드나 본데, 해도 되겠지?”

“해라. 어차피 인간들에게 내 정체를 알려 줄 생각은 없으니.”

유선은 루데릭의 허락을 받고 미소 지었다.

“아, 그런 계획이라면 기꺼이 거드는 차원으로 이걸 주지.”

루데릭은 뭔가를 유선에게 건넸다. 유선은 그가 건네준 작은 물건에 경악했다. 루데릭 또한 그 반응에 즐거운 표정으로 유선에게 물었다.

“뭔지 알 것 같나?”

“하······, 이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설마 있을 줄이야······.”

유선은 당연히 그것을 알았다. 발록의 코어와 똑같았다. 검붉은 색으로 빛나던 코어와 똑같이 기분 나쁜 오라를 품었다. 다만 그게 구슬이 아니라 이제는 그 일부지만 말이다.

“이런 걸 꿍쳐 놓고 뭐 할 속셈이었냐?”

뭔가 속셈이라도 품었냐는 듯이 묻는 말에 루데릭은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대가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고마워해라. 꼬마가 처리하지 못한 후환을 자신이 거둬 주었으니.”

“그래, 그렇겠지. 고마워.”

유선은 발록의 코어 조각을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이거로 계획은 완전히 차질이 없어졌다.

***

국가 던전 관리청. 마왕 이후에 지속적인 이계의 틈이 발생해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기관이었다. 그 안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전부 일반인으로 헌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헬 난이도로 취급받았다.

유선은 그곳에서 취조실처럼 한적한 장소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만.’

왜인지 영화 속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게 기다리던 도중, 누군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정장을 입고 노트북을 가지고 온 게 조사원이 분명했다.

“국가 던전 관리청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유선 헌터님.”

“아닙니다. 이번 코드 헌터 상황에 관해서 얘기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사원 사내는 가져온 노트북을 펼쳐 타자하기 시작했다.

“네, 우선 정유선 헌터님이 이번 레이드에서 공적치가 63,520으로 현재 2위와 격차는 세 배에 역대 최상으로 나와 포상금은 차등 분배에 따라 최상치로 받으실 겁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알려 주시겠습니까?”

“아마도 일시금인 10억 원을 표창식 때 지급해 드리고, 월 200만 원이 지속해서 지급될 겁니다.”

유선은 웃음기가 나올 뻔한 것을 재빨리 숨기고 억눌렀다. 지금 저 인간이 내뱉는 좋은 말에 휘둘리면 안 된다. 유선은 그저 담담한 어조로 애써 자신의 흥분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게까지는 예상 못 했는데.”

“사역수의 마법 덕분에 모든 헌터분이 부상 없이 무사히 귀환했다는 점이 큽니다. 물론 싸움에도 없는 사람에게 공적을 준 것에 적지 않게 불만이 있었죠.”

어딜 가나 불만은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유선도 버프를 주고, 마냥 노는 게 아니었기에 당당했다. 조사원은 본격적으로 유선에게 자신을 부른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그것을 조사하려고 정유선 헌터님께 전화했습니다.”

그렇겠지. 유선은 양손에 깍지를 끼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대충 예상했다.

‘분명히 루데릭에 대해서 걸고넘어지겠지.’

당장 문제는 그것뿐이었다. 조사원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정유선 헌터님이 테이밍에 성공하신 몬스터는 EX급 미지의 몬스터, 엘레노어라고 부르는 아이 한 명뿐인데, 이상하게 둘이서 나왔다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닫혀 가는 이계의 틈 속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몸이었으니, 거의 모든 사람이 지켜봤을 것이다.

“정유선 헌터님은 현재 EX급과 확인할 수 없는 몬스터를 데리고 있습니다. 정황을 추적해 보면 정유선 헌터님이 나오면서 테이밍한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까?”

유선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정유선 헌터님의 사정을 막론하고 우리가 안보 차원으로 조사를 꼼꼼하게 해야만 합니다. 그 사역수의 정체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유선은 조사원의 강압적인 부탁에 사뭇 진지해진 표정을 지었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역수는······.”

유선은 비장미가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발록입니다.”

“사역수는 발······. 바, 발록 말입니까?”

담담하게 말하던 조사원이 당황해서 한 번 더 그에게 물었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게 맞습니다. 발록. 그 작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던 것이 발록의 몸이었습니다.”

“그 경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어비스 던전에서 지하 깊숙한 곳에 박힌 발록의 코어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 발록을 사역수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죠.”

“발록을 테이밍하셨다······.”

타자하던 조사원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유선에게 세부적인 정보에 관해서 물으려 했다.

“죄송하지만······.”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미사여구 다 빼고 본론만 말씀하시죠. 뭐든지 다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하시다 존재를 알게 되고, 발견했습니까?”

코어를 발견하게 된 경위. 유선은 그것을 생각해 놓았고 조사원에게 대답해 주었다.

“제 사역수 덕분입니다.”

“사역수라 하면······. 엘레노어라는 EX급 사역수를 말씀하시겠군요?”

“그렇습니다. EX급인 만큼 발록이 숨겨 놓은 것들을 모조리 알았습니다. 동굴에 숨겨진 벽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을 타고 내려가면 코어가 숨겨진 곳을 알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그렇군요······.”

무슨 능력이 있어서 그런 감을 알아차렸는지는 묻지 않았다. EX급이니까 뭔들 못 하겠나 하는 생각에 넘어간 것이 분명했다. 예상 범위여서 다행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발록의 코어에 대해 증명하실 방법이 있습니까?”

“증명이라 하면······.”

유선은 긴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장황하게 말로 해야 했던 설명을 귀찮지 않게 도와준 루데릭에게 감사하며 그 코어를 보였다.

“이겁니다.”

“이건······.”

“발록의 코어 조각입니다. 보기만 해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게 느껴지시죠?”

리액션이 상당히 볼만했다. 국보급 유물이라도 발굴해 온 것처럼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코, 코어 조각이라······. 원래는 구슬이었습니까?”

“이것도 원래 구슬이었습니다. 깨부수고 남은 일부지요.”

“왜 그러셨습니까?”

구슬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고 위험하게 왜 깨서 놔두었을까? 그러자 유선은 대답했다.

“발록의 생사권을 제가 쥐기 위함입니다. 톡 쳐도 부서지게끔 말입니다. 사실 죽이려고 부순 건데, 그래도 살아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이거로 이제 협박한 겁니다. 죽을지, 아니면 나를 따를지.”

“그렇군요. 그래서 그 몸체가 그만큼 작아졌겠군요.”

“······그렇습니다.”

유선은 상상도 못 한 걸 멋대로 추측해 줘서 고마웠다. 조사원은 재빠르게 타자해 내려갔다. 그의 이야기를 종합했다.

“그러니 정유선 씨가 여태까지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발록의 코어가 있는 장소를 알았고, 그걸 파괴하려고 했지만, 완전히 파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코어를 이용해 발록을 테이밍하셨다······는 게 되는군요.”

“그렇죠.”

타닥타닥······.

이야기가 정리되자, 조사원은 깜짝 놀란 얼굴로 유선에게 물었다.

“잠시만요. 그렇다면 이 사태는 이제 완전히 정리되었다는 말입니까? 더는 코드 네임 어비스로 인한 코드 헌터 상황은 없다는 말씀입니까?”

그걸 이제 묻는군. 유선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 겁니다.”

유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원은 속으로 흥분을 애써 숨겼다.

‘세상에, 이런 소식을 내가 가장 먼저 들을 줄이야······!’

국가 재난이 한 사람의 손으로 정리되었다는 말을 가장 먼저 들었다는 게 영광이었다. EX급 사역수를 가졌다고는 했기에, 손쉽게 정리는 되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설마 이렇게 마무리를 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유선은 조사원의 표정을 보며 미소 지었다.

‘먹혀들어 갔군.’

조사원에게 속이고 싶은 것들을 모두 의도대로 속였다. 굳이 속일 만큼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가 루데릭의 존재를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차라리 발록이라 하는 편이 속 편하니까.’

루데릭은 사실 어떤 애고, 그래서 자신이 데리고 왔다느니 속 시끄럽게 이야기하다 보면 떨떠름하게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신빙성이 없는 데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낭패 보는 건 유선뿐이다.

거기다가 그 진실을 아는 사람도, 파헤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없기에 증거만 좀 보여 준다면 분명히 속아 넘어갈 거로 믿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속아 주었고.

조사원은 흥분하는, 자신의 가슴을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 사역수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루데릭 말씀입니까?”

“루데릭은 누구······?”

“······발록의 이름입니다. 자신을 루데릭이라 하더군요.”

속으로 아차 했지만, 부드럽게 넘어갔다. 조사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네, 앞으로 루데릭이란 사역수에 대한 대책이 궁금하군요. 정유선 헌터님이 코어 파편으로 협박하는 건 좋지만, 그 이외의 다른 장치라도 놓은 게 있는지요?”

유선은 그 물음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대응했다.

“제 능력으로 데려온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제게 맹세했고, 제게 충성을 다하겠다는 뜻을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제 사역수입니다.”

“그래도 배신할 그런 상황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두려워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예방책이나 있습니까?”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하는 소리가 비슷하군.

뚜렷한 대책이 있다고 해도 못 믿을 것이고, 없다고 하면 없는 대로 욕먹을 것이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욕먹는 상황이었기에 유선의 대응은 이러했다.

“루데릭이 날뛰지 않을까 걱정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해결책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자살하십시오.”

“······네?”

수기하려던 남자가 그 소리에 당황해,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 유선은 그에게 말했다.

“계속 적어 가십시오. 저는 당당하니까 말입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질까 봐 무서우면 자살하는 게 낫습니다. 없는 일에 걱정한다면 그 일을 걱정할 필요 없는 세상으로 가는 게 아주 좋으니 말입니다.”

“······.”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전해 주십시오. 저는 제 능력을 믿고, 그 애들을 모두 제 손으로 컨트롤할 거라고 말입니다.”

“애들, 애들이라······.”

유선의 말에 조사원은 중얼거렸다. 발록을 애라고 칭하니 자신감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선은 숨을 고르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시늉을 했다.

“루데릭은 지금 막 제 사역수가 된 몸입니다. 있지도 않은 불안감에 휘둘릴 생각이 없으니, 쓸데없는 걱정에 발목 잡히고 싶진 않군요.”

“하하, 이해했습니다······. 그렇게 적어 두겠습니다.”

조사원은 머리를 끄덕거리며 적는 것을 마무리 지었다. 물을 만한 것들은 모두 물어보았다. 그가 더는 유선을 묶을 이유가 없었기에, 조사원은 노트북을 덮으며 말했다.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유선 헌터님.”

“아닙니다. 이렇게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는 제가 영광이었습니다.”

“정유선 헌터님의 말을 들어 보니······. 보통 사항이 아니라서 아무래도 상부에 보고하면 한바탕 발칵 뒤집히겠군요.”

“제게 돌아오는 것도 몇 가지가 있겠죠?”

조사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있을 겁니다. 이 나라에서 영웅 대접이 소홀하면 큰일이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의도대로 돌아가는 거지.

“알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유선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조사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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