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 루데릭 (1) (3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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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루데릭 (1)

국가 재난, <코드 네임: 어비스> 던전이 사라진 지 4시간이 지났다. 정상적으로 굴이 처리된 것을 보고 철수를 시작했다.

이번 코드 헌터 상황은 대한민국에서 유례없는 역대급으로 마무리되었다. 하마터면 실종자가 하나 있을 수도 있지만, 마지막에 아슬아슬하게 틈에서 벗어난 덕분에 전원 생존으로 귀환했다는 비극이 없는 희소식만 남겼다.

코드 헌터 상황에 대해 후유증을 치료하고자, 참가자 전원에게 무료로 종합 진단을 해 주는 서비스를 큐앤 종합 병원에서 제공해 주었다.

유선도 그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는 중이었다.

“자, 들어갑니다. 힘 빼시고······.”

뜨둑!

“아악!”

뼈가 제자리로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유선의 짧은 비명. 어깨가 빠진 유선의 뼈를 제자리에 맞췄다.

“헌터들을 진찰하다 보면 대부분 베이고, 찢어지고 해서 다치는 게 대부분인데, 탈골은 또 희귀한 케이스네요. 어쩌다 탈골하셨습니까?”

“원심동력기에 들어갔다 나오니 그런 거 같습니다.”

의사는 그 말이 무슨 소리인지 몰랐지만, 더는 묻지 않았고 처방전을 써 주었다.

“부상자가 없다는 건 다행이죠. 지금 정유선 환자분이 이번 코드 헌터 상황에서 제일 심한 부상자인 거 아세요?”

“정말입니까?”

“네, 이번 코드 헌터 상황이 쉬웠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병원 클레릭 클래스들만 치유할 것들도 모조리 치유된 상태로 오셨더라고요. 다들 기초적인 진단만 받고 다 돌아가셨답니다.”

“······.”

엘레노어가 걸어 준 마법의 효과였다. 그것은 루데릭의 말대로 이루어졌다. 모두 큰 상처 없이 무사히 귀환했다. 의사는 처방전을 끊어서 유선에게 건네주었다.

“당분간 오른쪽 어깨는 쓰지 마세요. 기본적으로 헌터들 회복력이 일반인과 비교해선 월등히 높은 편이니 별 이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일주일분 약을 처방해 줄 테니까, 식후 30분마다 꼭 드시고요.”

“네.”

유선은 처방전을 받고 곧바로 자리에서 나왔다. 문을 열자 맞은편에서 얌전하게 기다리던 백발 소녀가 일어나 다가왔다. 유선이 고통을 신음하면서 구급차에 올라탄 것까지 본 엘레노어였기에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

“괜찮아. 당분간 어깨는 못 쓰겠지만, 뭐······.”

“아, 안 괜찮아?”

“아, 아, 괜찮아, 괜찮아!”

쓸데없는 소리로 괜히 자극하는 것 같아 말을 빠르게 정정했다. 엘레노어는 늘 그렇듯이 유선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엘레노어는 발견했는데 이상하게 한 명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하하, 형님! 괜찮소?”

그 생각을 하자, 기율이 귀신같이 나타나 다가왔다. 유선은 기율을 보곤 경악한 얼굴로 기율에게 물었다.

“너야말로 괜찮냐?”

유선은 기율과 정면으로 박치기해 버렸단 사실을 알았다. 머리에 밴드를 붙여 놓은 게 심상치 않았지만, 기율은 평소처럼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괜찮소. 이 정도에 죽으면 차기율이겠소?”

“그럼 다행이긴 한데······. 너, 어딜 보고 말하냐?”

“어이쿠, 아직 후유증 때문에 형님이 두 명으로 보여서 말이오.”

유선은 그의 증세가 걱정되었다.

“입원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한 달 정도는 입원하라는데······. 회장님 자식새끼인데, 뭔 일이 일어나면 큰일 나니까 그냥 호들갑 떠는 거요. MRI니 CT니 뭐니 지랄할 것 없이, 별 이상이 없다고 했을 때, 끝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자신이 괜찮다니, 더는 간섭하지 않았다. 유선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뭘 잊어버렸나 하고 잠깐 생각할 새도 없이, 루데릭을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선은 다급히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혹시 루데릭 못 봤어?”

“못 봤어.”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있다면 엘레노어와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기율을 보았다. 한참 기절 중이라 모를 것 같았지만 한 번 물어보았다.

“너는? 엘레노어랑 나랑 같이 온 애 못 봤어?”

“같이 온 애? 혹시 그 악마 말이오?”

“역시 모르······ 알아?”

의외의 지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담당의가 지금 악마가 들어왔다고 난리도 아니더군. 보니까 병원 내에서 근무 중인 클레릭 클래스들이 잡아서 격리소에 집어넣어서 다행이라느니 그런 걸 들었소.”

유선은 엘리베이터 앞 안내표를 읽어 확인해 보았다. 같은 라인, 같은 층에 있어 걸어가도 충분한 곳이었다.

“형님, 그 악마가 그렇게 중요하오?”

“당연히 중요하지! 내 두 번째 사역수인데!”

“두 번째 사역수? 아주 경축할 일이구먼!”

기율은 들뜬 채로 소리쳤지만, 유선은 인상을 팍 쓰며 격리 병동으로 걸어갔다.

격리 병동이라 쓰인 문을 열려고 하자, 굳게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간호사가 뒤늦게 와서 막아서며 말했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관계자 외에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여기에 제가 데리고 다니는 애가 있습니다.”

“마음은 알겠지만, 그렇게 무작정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담당의와 함께 오셔야만 우리가 안으로 들여보내 드릴 수가 있습니다.”

간호사가 완고하게 나왔다. 유선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기율이 그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 주었다. 기율은 차분한 모습을 보이며 간호사에게 말했다.

“큐앤 헌터 컴퍼니의 대표, 차기율입니다. 죄송하지만 우리 회사 인재가 안에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으니, 원활한 일 처리를 위해서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지 않겠습니까?”

“차, 차기율 대표님입니까?”

간호사는 병원에 VVIP가 온다는 말에 이름 정도는 외워 두었다. 기율은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회사를 위해서 일을 빠르게 처리해야만 합니다. 같은 큐앤 계열사로서 이해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 네······. 네. 드, 들어가셔도 됩니다.”

능숙한 비즈니스맨처럼 친절하게 대하자, 간호사는 어버버거리며 자신의 ID카드를 찍어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격리 병동인 만큼, 희귀병에 걸린 환자들이 많았다. 대부분이 감염성이 있고 치사율이 높은 질병이거나, 아니면 면역력이 약해 바이러스에 약간만 접촉돼도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유선은 루데릭을 발견했다. 형태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악마가 격리실 구석에 처박혔다.

루데릭을 볼 때, 누군가가 몰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을 중심으로 많은 청년이 유선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여긴 외부인 출입 금지인데, 저 사람은 누구······ 아, 도련님······.”

기율을 보자마자, 바로 깍듯하게 인사했다. 유선은 그들 중 가장 권위 있어 보이는 중년에게 물었다.

“저 아이는 왜 여기에 갇혔습니까?”

“저 아이? 아, 저 악마 말이군요. 구급차에 몰래 탑승한 것 같습니다. 도련님이 탄 구급차에서 내렸던데, 아무래도 환자분과 도련님의 목숨을 노리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들은 얼굴이 되었다. 중년은 그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저런 악마가 설마 우리 병원까지 올 줄 상상도 못 했습니다. 다행히도 우리가 격리했으니 안심하십시오.”

유선은 뭔가 이 상황이 돌아가는 게 어처구니없었다.

“죄송하지만, 저기 갇힌 건 제 사역수입니다.”

“사역수? 혹시 테이머입니까?”

“그렇습니다. 제 사역수니까 그만 풀어 주십시오.”

유선은 중년에게 문을 열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중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무리 테이머가 있는 사역수라 해도 저건 악마입니다. 대한민국을 헤집어 놓은 놈 중 하나란 말입니다.”

유선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요?”

“그런 악마를 풀어 줄 순 없지 않습니까? 겨우 국가 재난이 지나갔는데, 이 악마가 난동을 부린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유선은 엘레노어로 인해 한 번 들어 본 말이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유선은 루데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악마가 당신들을 보고 위협했습니까?”

“네?”

“당신들을 죽이겠다고, 영혼을 취하겠다고, 난동을 부리겠다고, 뭐 그딴 위협적인 소리를 내뱉으면서 조금이라도 협박했습니까? 당신들에게 끌려올 때, 사상자가 생길 만큼 거센 저항이라도 했습니까?”

“그런 건 없지만, 그런 게 문제가 아니지······.”

“같은 문제입니다.”

사내의 말을 끊어 버렸다.

“당신들한테 피해도 안 줬는데, 왜 저 애가 가만히 당해야 합니까? 악이니 그냥 깡그리 잡아 죽여 버리면 된다고 여기십니까? 당신은 의료종사자로서 이곳에 있는 것 아닙니까? 선과 악, 그 이전에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그런 사람이 신성한 병원에서 환자를 두고 그딴 망언을 해도 됩니까?”

“······.”

중년은 말을 잇지 못했다. 유선은 그 기세를 몰아서 기율을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차기율 사장님, 이게 그 명성 높은 큐앤 병원의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만히 듣기만 하던 기율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워낙 머리가 써억 좋지 않은지라······. 아마 우리 사촌 누님이 관리하는 병원이니까, 누님이 잘 알 겁니다. 전화하면 현 실태에 관해서 물어볼 수 있겠지요.”

기율이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조용히 번호를 찍었다.

“저, 잠깐만······.”

“무슨 할 말이 있으십니까?”

중년은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경솔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전화만큼은······.”

굽실거리는 과장의 태도에 기율은 다시 스마트폰을 거두었다. 그리고 과장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조용히 넘어갑시다. 원래 우리 과장님 것도 아니잖습니까? 안 그래요?”

“······알겠습니다.”

중년은 대동한 청년들에게 눈짓했고, 그들은 눈치껏 움직여 격리된 문을 열어 주었다. 유선은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이봐요, 적어도 부적은 몸에 지니고······.”

유선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형체를 잡지 못하는 루데릭이 구석에 있었다.

-수면.

지금은 자는 것 같았다. 여태까지 칼침에 박힌 채로 생명력이 서서히 깎이는 채로 증오와 분노를 키웠을 테니까 잘 생각을 전혀 못 했을 것이다.

“루데릭.”

유선의 목소리에 꿈틀거리며 수면이란 글자가 깨졌다. 루데릭의 붉은 안광이 유선과 마주했다. 유선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가자.”

“······.”

구체로 말린 루데릭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체에서 팔과 비슷한 것을 뻗었다. 그가 손을 잡자, 녹아 가는 형체가 인간으로 뚜렷해졌다. 그 과정은 마치 정화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소년이라 할 수도 없고, 소녀라고 할 수 없는 아이였다. 두 개를 구분할 수 없이 애매한 형체가 만들어졌다. 녹아 흐물거리던 형체의 특징에서 볼 거라곤, 검은 머리와 루비석같이 붉은 눈동자, 그리고 화상 자국처럼 몸 형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일부분뿐이다.

“······.”

루데릭은 입을 떼지 않았다. 유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유선은 그저 벽에 걸린 병원복을 입히고,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주인.”

루데릭이 소년과 소녀, 그 사이의 중성적인 미성으로 유선을 불렀다.

“왜?”

“조금만 천천히 걷는 게 좋겠군. 아이의 몸으로 주인의 보폭을 맞춰 주기가 힘드니.”

“그래?”

흥분한 나머지 섬세한 것에 신경 쓰지 못했다. 유선은 그의 말대로 따라 발 보폭에 맞춰주었다. 그렇게 걷다가 유선은 창 너머 정자를 보았다.

‘뭔가를 이야기한다면 저기가 가장 차분하겠지.’

루데릭과 단둘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렇기에 뒤따라오던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엘레노어.”

“응?”

“미안한데, 기율이랑 같이 놀지 않을래?”

“왜애?”

“루데릭이랑 단둘이서 이야기 좀 하려고.”

“부으······.”

엘레노어는 단둘이서 이야기한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율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엘레노어를 보았다.

“꼬마 아가씨, 내가 이래 보여도 재미있는 구석이 많아. 아마 유선 형님보다 더 재미있을걸.”

“······.”

“한 번 서로 토킹 어바웃하면서 릴레이션십을 쌓아서 함께 프렌드십을 형성하자고. 오케이, 리틀 걸?”

기율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라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했다. 기율이 헛소리를 늘어놓는 틈을 타 유선은 얼른 루데릭을 데리고 발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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