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17. 코드 네임: 어비스 (4)
-죽지 않는다. 엄살 부리지 마라. 꼬맹이보다 겁먹으면 어쩌잔 거냐?
루데릭의 말에 엘레노어를 보았다. 그 말대로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꺄하하!”
유선과 다르게, 엘레노어는 천진난만하게 그 상황을 즐겼다. 루데릭의 말대로 심각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크앗!”
바닥에 도달했다. 빛이 완전히 사라져 보이지 않았기에, 그대로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아흐으으······, 아프······지가 않네?”
그만한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
-말하지 않았느냐, 죽지 않는다고.
“그 대신 겁나 아플 줄 알았지. 여기에 구멍은 왜 뚫려 있지?”
-언젠가는 복수하고 탈출하려고 남은 힘을 모두 짜내서 만들어 놓은 구멍이다. 아무래도 입구는 사념화해서 통과할 수가 없어서 말이지.
입구가 좁다라······. 하지만 도망치려 파 놓은 곳이 좁지, 그곳을 조금만 벗어나면 드러나는 통로 자체는 생각보다 넓었다. 높이만 3m 정도인 구멍인데, 이 구멍을 홀로 못 탈출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가장 유력한 건 마법이었다.
“엘레노어, 혹시 뭔가 여기 주변에 있어?”
“응.”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건지 알려 줄래?”
“그러니까······. 음······, 막······ 커다란데, 누가 오면 막 쾅! 하고······ 그러니까······.”
말처럼 잘 설명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방법을 바꿔서 엘레노어에게 핵심적인 것만 묻기로 했다.
“그게 나한테 위험해?”
“아냐, 유선 님한테는 괜찮아.”
“그래, 알겠어.”
일단은 괜찮다니 안심했다. 유선은 그에게 물었다.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기다려라.
“뭘?”
-뭐겠냐? 벨제브가 공격하기까지다.
***
유선이 벨제브의 공격을 기다리는 도중, 윤수현 대장은 각 공격대의 대장을 모았다.
“지금 뱃맨이 총 몇 번이나 왔습니까?”
“8번 왔습니다. 유례없을 정도로 상당한 숫자로 몰려들었더군요.”
여태까지 뱃맨이 등장했던 것은 총 4번이 끝이었다. 그 이상 뱃맨이 등장하는 건 그들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포션이나 장비 등, 파손된 건 많습니까?”
가져온 물품들의 상태들이 전체적으로 어떤지 살펴보았다. 한 공격대장이 다행이라는 듯이 대답했다.
“원래대로라면 가져온 물자의 50%가 지금쯤 날아갔을 겁니다.”
“원래대로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보고하던 공격대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유선 씨의 그 꼬마 아가씨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는 의미입니다. 다행히도 포션이나 소모품들을 20% 사용한 게 끝입니다.”
자그마치 30%! 조금 절약된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이 뱃맨을 네 번 잡을 때도 25%를 사용했다.
“너무 들떠 버려서 서로 자기 과시에 정신없어서 이렇게 많이 올 줄 알았다는 건 다들 몰랐을 겁니다. 그 꼬마가 써 준 마법이 없었더라면, 물자를 밖에서 공수해 와야 했을 겁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안도도 잠깐이었다.
쿵!
동굴 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여서 회의하던 공격대장들은 그 흔들림에 주춤거렸다.
“이 진동은······?”
“드디어 깨어났군요!”
뱃맨이 올라올 때도 이만한 진동이 없었다. 이건 명백하게 최종 보스가 등장하는 전조였다. 무섭게 감시하던 공격대원이 무전기에 대고 소리쳤다.
-각자 위치 사수! 코드 네임: 발록이 출현한다!
공격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공격대장들도 바로 해산하고 자신의 공격대를 지휘하려고 뛰어갔다.
윤수현 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아직 오지 않은 자신의 대원을 불렀다.
“유선 씨, 발록이 나타났어요! 얼른 돌아오세요!”
그에게 외쳐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진동은 점점 가까워졌고 윤수현 대장도 점점 조여 오기 시작했다.
“유선 씨? 들리세요? 유선 씨!”
쿠웅!
크게 울렸다. 파열음과 함께 윤수현 대장의 시야에 위압적인 몸채가 나타났다.
발록이 나타났다.
-그아아아아아!
***
-시작됐군. 이제 움직여라. 동굴을 따라서!
쿠르르릉!
커다란 진동이 울림과 동시에,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져 내렸다.
유선과 엘레노어는 무너지지 않을까 생각해 달렸다. 100m가량 되는 긴 통로 끝의 공간이 넓어졌다. 희미하게 보였던 공간이 빛은 들지 않았지만 구조가 어떤지는 이상하게 보였다.
원형 형태로 크게 난 공간, 유선은 그 안에서 루데릭에게 말했다.
“말대로 도착했다, 루데릭.”
“그래. 그대의 모습이 보이는군.”
귀를 파고들어 왔던 목소리가 이제는 어딘가에 있다는 듯이 들려왔다. 유선은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기겁하고 말았다.
“이런, 눈 둘 곳이 없는 추한 모습을 보여서 사과하지.”
녹는 듯한 목소리와 형체. 그 사이에서 보이는 붉은 안광. 그리고 몸이었던 것을 관통해 벽에 박힌 날붙이들. 그 형체는 무기들에 꽂힌 채로 그저 살아 있음만 증명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잔인한지, 유선은 한순간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강인> 특성이 있어서 다행이다.’
모습의 기괴함이 엘레노어의 살기를 버티고 얻은 강인이 없었더라면, 계속해서 눈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강인의 레벨이 5인 엘레노어는 아무 거리낌 없이 루데릭을 보았다.
유선은 그 형상을 유지하는 모습 속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을 보았다. 단순히 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이, 감정이 휘몰아치는 게 폭풍 같았다.
-증오.
-분노.
회오리치는 감정의 폭풍 중, 두 글자가 가장 거대하고도 뚜렷하게 보였다.
유선은 대강 그 상태를 확인하고 루데릭에게 물었다.
“네가 단순히 나를 끌고 오려고 이곳으로 온 것 같진 않고, 여기에 발록을 없애는 수단이 있는 게 확실하지?”
“확실하다, 인간. 자네 뒤편 의자 위를 보면 알 것이다.”
“뒤에 의자······였네?”
처음에는 단순히 울퉁불퉁한 벽인 줄 알았지만, 그것이 곧 의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니 화려하니 옥좌라 칭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 옥좌에 올라앉는 데만 키의 다섯 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딱 발록을 위한 자리였다.
언뜻 봐도 자신이 올라가긴 무리였다.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엘레노어, 위에 뭐가 있는지 찾아줄래?”
“할 수 있어!”
엘레노어는 보란 듯이 점프 한 번으로 그 위를 올라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지고, 잠시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유선 님, 뭐 있어.”
“뭔데?”
“밥!”
웬 생뚱맞은 소리인가 했는데, 엘레노어가 작은 구슬을 보였다. 루데릭은 그 구슬을 확인하고 유선에게 말했다.
“그거다. 그것이 벨제브의 끈질긴 생명력의 근원이다.”
코어의 생김새와 비슷했다. 다만, 그 코어의 색깔이 특이했다. 다른 것과 다르게 투명하지 않고 검붉었다. 붉은색 바탕에 검은 안개가 들어 눅눅하고 보기만 해도 꺼림칙한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이건 코어 아냐?”
“그래. 자네들이 흔히 코어라고 부르는 것들이지. 어떠냐? 이것이 그대의 욕망을 꿈틀거리게 하느냐?”
비릿하게 미소 짓는, 그런 목소리로 물었다. 탐나지 않는다면 그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유선은 코어를 들어 올렸다. 크기는 몬스터들의 대형 코어나 중형 코어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해 유선의 손안에도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코어의 가치는 분명히 수십억, 아니 수백억이 넘어갈 것이다.
‘그것도 일반 코어의 얘기.’
이것이 발록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주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이걸 파괴하지 않으면 발록은 영원히 죽지 않고 대한민국의 재난으로 나올 것이 분명했다.
“이거로 이제 뭘 하지?”
“나한테 넘겨라. 내가 그 구슬을 파괴할 것이다.”
악마에게 넘기라니. 계속해서 따라 주었지만 그것만큼 꺼림칙한 말도 없었다. 유선은 루데릭에게 다가가며 코어를 보여 주었다. 코어를 향하는 두 덩이의 빛. 코어가 가까워질수록 머릿속에 담긴 단어들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증오와 분노가 붕괴할 것처럼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니 날뛰는 게 아니었다. 그 단어들은 그저 끼인 채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단어가 튀어나오기 위한 발악이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오는 단어가 보인다. 그 단어는 ‘증명’이었다.
이 코어는 무엇을 위한 증명이란 말인가! 루데릭의 말을 떠올렸다.
제 동족에게마저 위협으로 여겨져 갇힌 악마. 그것은 제 동족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유선은 깨달았다. 이걸 이용하면 이 비참한 신세의 악마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음을.
“생명을 담당해 주는 것이 코어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어 루데릭을 보았다.
“한 가지만 묻자.”
“뭘 말이냐?”
“이 코어를 너한테 넘기지 않고 파괴할 다른 방법이 있지?”
그의 물음에 루데릭은 대답했다.
“파괴하라면 방법은 많다. 하지만 내가 파괴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고 뒤탈이 없을 거다, 인간. 그러니 내게 넘겨라.”
“흠······.”
유선이 잠깐 고민하다 코어를 쥔 손을 루데릭에게서 거두었다.
“무슨 짓이냐?”
루데릭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유선은 발을 빙 돌려 다시 돌아갔다.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인간!”
유선은 여전히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는 엘레노어의 옆으로 다가가 말했다.
“엘레노어.”
“응?”
“먹을래?”
덜컹!
한순간 동굴에 큰 소리가 울렸다. 루데릭이 격하게 반응했다.
“먹을래.”
덜컹! 덜컹!
엘레노어의 반응에는 더 가관이었다. 몸에 박힌 수많은 창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지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유선은 그의 행동에 확신했다.
“과연, 다른 방법도 있었다는 거군.”
“인간······. 당장 내놔라. 그 구슬은 내가 파괴한다.”
유선은 루데릭의 말을 못 들은 척, 딴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엘레노어가 코어를 먹고 싶어 한 적이 있었거든. 위험할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한번 먹여 본 적이 있었어.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했는데, 그 이빨이 얼마나 센지, 녹인 알사탕처럼 그냥 다 씹어 먹더라. 나중에는 코어를 먹이는 게 좀 안 좋아 보이기도 하고, 라면보다 맛없다고 더 입에 안 댔지만······.”
덜컹!
“당장! 이리 내놔라!”
더 들어줄 수 없다는 듯이 말을 끊고 소리쳤다. 유선은 여전히 여유롭게 딴소리를 했다.
“글쎄, 엘레노어한테 물어볼게. 엘레노어, 얘한테 이 구슬 줄래?”
그러자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는데?”
“너, 너 이······!”
분노의 단어가 커진다. 동시에 그 무서운 형체에서 인상을 쓰는 게 눈에 들어왔다. 끓어오르는 분노에도 유선은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이건 이야기와 다르지 않나, 인간! 맹세한 악마와 이렇게 거래를 마칠 생각이냐!”
그러자 유선이 반박했다.
“우리 거래가 뭐였는데? 우리 거래 중에는 너한테 이 코어를 넘긴다는 것은 없었다.”
“뭐라?”
“처음부터 너와 나 둘의 거래는 이랬어. 네 복수 그리고 그 녀석의 최후. 그게 어떤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건 말이 없었다. 그러니 나는 이 거래 속에서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어.”
“네놈이 어린애 말장난을 하는 것도······.”
“말장난이라면 진실만 말하겠다는 네놈이 은근슬쩍 돌려 말한 것들이지. 틀리냐?”
대답하지 못했다. 유선의 말이 맞았다.
“거래는 진행되고, 이제부터는 옵션이지. 이걸 네 손에 파괴할지, 아니면 엘레노어의 입에서 파괴될지······.”
“그렇게 한다면 내가 기필코 네놈에게 파멸을 저주해 주마!”
루데릭이 저주한다는 말을 퍼부었다. 유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옵션이 하나 더 늘었군.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너를 죽일지 말지도, 선택해야 한다니 말이야.”
“나를 죽이겠다고? 그대가? 나를?”
유선의 협박에 루데릭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잔꾀를 부리는구나, 인간! 나를 협박하겠다는 거냐? 하지만 말했다시피 네 꼬마는 마나를 모두 잃었다. 단순히 쥐어 팬다고 해서 나를 이 땅에서 죽일 수단은 없다.”
그 조건으로 거래했다. 그래서 엘레노어에게나 유선에게 위협될 만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유선은 여전히 더 높은 패를 쥔 사람처럼 굴었다.
“너를 죽일 수단이 왜 없어?”
유선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코어를 만지작거렸다.
“설마······ 발록을 데리고 오겠다?”
“난 테이머다, 악마. 누구든지 사역수로 들인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그딴 걸 어떻게 믿겠나?”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네가 꼬마라고 부르는 엘레노어도 내가 사역해서 들인 아이다.”
“그 꼬마를······?”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그건 몰랐나 보지?”
우연인 데다 과정도 모르지만, EX급도 사역해 낸 몸이었다. 그 말은 SS 등급도 완전히 불가능한 소리는 아니라는 의미이다. 유선은 그가 그렇게 받아들이도록 말했다.
“발록 따위도 내가 손만 대면 바로 내 편으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머리 위에 논다고 생각하는 네놈보다 말이야.”
있는 사실로 들면 충분히 가능한 스토리였다. 루데릭은 슬슬 궁지에 몰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다면 우리 거래는 깨진다. 네놈에게 맹세까지 해 가며 한 거래를 깰 생각이냐, 인간?”
“깰 생각은 없어. 거래를 재조정하자.”
“거래를 바꾸겠다?”
“아니 좀 더 내 뜻대로 가자는 말이다.”
서로 입장을 알았으니, 더는 동등할 수 없었다. 유선이 대담하게 제안했다. 하지만 루데릭은 비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그때였다. 루데릭의 머리에서 ‘불안’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됐다.’
유선은 그제야 자신이 완전한 패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벨제브는 분노와 탐욕, 그 자체에 사로잡힌 놈이다. 그 과정에서 너를 죽일 수도 있지.”
루데릭은 맹세를 깨지 않는 선에서 블러핑을 시도했다. 하지만 유선은 말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려하는 대로 내 편으로 만드는 것도 되지.”
“네 세상이 엉망으로 되는 꼴을 보고 싶은가? 그 녀석이 네 밑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말을 잘 듣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미친개한테는 옛날부터 매가 약이랬어. 그건 엘레노어 전문 분야고.”
무슨 말을 할수록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루데릭은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재조정하고 싶은 거래가 무엇이냐?”
“간단하게 말해 줄게.”
유선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내게 충성을 맹세해라.”
“······충성?”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루데릭의 머릿속에 든 혼란이 점점 커졌다. 그는 유선이 무슨 의도로 그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유선은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고 그에게 물었다.
“대답은?”
“······질문하지.”
“얼마든지.”
“어째서 내가 살 여지를 남겨 주지?”
그는 발록을 사역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발록은 강하다. 루데릭을 제압하고, 써먹을 구석이 많다. 사역수로 길들이는 데 성공해 행동을 통제한다면 충분히 녀석을 부려 먹을 수 있다.
겉의 가치를 따지자면, 발록의 가치가 훨씬 우월하다. 그를 살려 두는 이유보다는 맹세를 무색하게 만들고 배신하는 이유가 더 많았다.
유선이 그의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평생 의미 없는 증오와 분노로 얼룩진 채 살고 싶으냐?”
“······.”
루데릭이 그 말에 두 눈덩이가 커졌다. 유선은 그런 루데릭에게 호언장담했다.
“너도 살아 있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가치를 아는 이와 함께하고 싶겠지. 내게 충성을 맹세한다면 너 자신을 증명하게 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