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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드 네임: 어비스 (2) (2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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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드 네임: 어비스 (2)

비밀로 하라는 말에 유선은 잠깐이나마 고민했다. 마냥 고민만 하면 의심받기에 유선은 결국 입을 떼며 윤수현 대장에게 말했다.

“잠깐 무전기 너머에서 제가 아는 사람 목소리가 들려와서요. 하하, 혹시 무슨 말이라도 하셨습니까?”

유선이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슬슬 다른 공격대 대장들을 모아서 작전에 관해서 이야기해 봐야겠군요. 유선 씨가 소속한 공격대의 대장은 없으니, 제가 지휘하기로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죠?”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발록이 나오기 전에, 잔챙이들이 분명히 우리를 노리러 올라올 겁니다. 그전에 사역수 상태를 한번 확인해 주세요.”

윤수현이 등을 돌리고 가자, 귓가에 들리던 목소리가 유선에게 칭찬했다.

-좋아, 순조롭게 넘겼군. 잘했다.

유선은 그 칭찬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넘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어.”

-그런 경우는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인간. 자네처럼 호기심이 많은 사내라면 분명히 내 요구를 받아들일 걸 알았으니까.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

큭큭 웃는 목소리. 마치 모든 걸 꿰뚫어 본다는 듯이 말했다. 유선은 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넌 뭐야?”

-지금 당장 내 소개를 하고 싶지만······ 나중에 하지.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뭐?”

-그대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배트맨’이 10초 뒤에 올라올 테니까 준비나 하게.

“뱃맨?”

던전 정보에서 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가 말하기 무섭게, 감지 마법으로 레이더 역할을 하던 마법사가 소리쳤다.

“대장님! 밑에서 뱃 맨이 올라옵니다!”

“뭐, 뱃맨?”

“우리 돈줄 님이 강림하신다고?”

쉬던 헌터들이 뱃맨이 올라온다는 말에 헌터들은 모두 흥분해 앞으로 달려갔다. 원형 다리에 공격대들이 자기 포지션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윤수현 대장도 있었다. 유선은 그에게 물었다.

“뱃맨이 도대체 뭔데, 이렇게 뛰어갑니까?”

윤수현 대장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총사령관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여태까지 발록을 잡으면서 느낀 건 이게 묘미입니다. 유선 씨.”

윤수현 대장도 검을 뽑으며 뱃맨이 오기를 기다렸다.

마치 동굴 속에 잠든 박쥐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그 박쥐들의 크기는 모두 인간만 하다는 것. 그리고 전부 인간과 비슷하게 생겼다.

-끼에에엑!

-벨제브 사마로 코나!

뱃맨이 날아와 헌터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위협적인 발톱이 달린 발로 헌터들의 머리를 노렸다.

“으아악!”

“진형을 갖춰! 방패를 들어 앞에 서고, 검사들은 저격수들을 호위해!”

윤수현 대장은 무전을 통해서 지휘를 시작했다. 각 공격대의 대장에게 전달해도, 말처럼 딱딱 끊어지게 움직이진 못했다.

타 회사에 소속된 만큼 공격 성향도 다른 게 문제였다. 단체적으로 약해 보여도 그들은 소규모 팀워크나 개인 기량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금방 자신의 위치를 찾고 뱃맨의 공격을 대비했다.

“좋아, 좋아!!”

유선의 옆에 있던 근육질의 사내들이 있는 공격대에서 소리쳤다.

“형님, 다 모았습니까?”

“풀 차지 왔다! 비켜!”

키보다 큰 대검에 오러를 모으던 검사가 검신에 푸른 기운을 모두 모아 내자, 방어 자세를 취하던 방패병에게 말했다. 방패병은 재빨리 빠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흐아아압!”

허공을 향해 크게 휘둘렀다. 그가 벤 날카로운 궤적에 오러의 흔적이 남더니, 그 오러의 흔적이 화살처럼 날카롭게 쏘아졌다.

-끼에에엑!

콰앙!

궤적을 따라 그리며 날아가 반대쪽 벽에 폭음이 울렸다. 마검사의 스킬로 영창 시간이 길지만, 파괴력은 궤적에 걸리는 모든 적을 베어 버리는 스킬이었다. 피하지 못한 뱃맨들은 모두 두 동강이 난 채 다시 구덩이로 떨어졌다.

“나이스!”

뱃맨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무전기에서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류가림 너였지?

-와, 인성 보소. 누구는 스킬이 없어서 안 쓰냐?

“크하하, 너희도 아니꼬우면 쓰든가!”

류가림이라는 남자가 도발해 오자, 그것에 기꺼이 응하는 사람이 있었다.

-좋아, 보고 울지나 마라, 새꺄.

한 곳에서 지팡이를 세우고 양손을 벌렸다. 마나가 온몸에서 끓어오르며, 그의 양손에 집합했다. 전신에 담긴 마나를 끌어 올린 마법사가 다시 스태프를 쥐자, 스태프를 향해 모든 마나가 집결하기 시작했다.

끝 봉오리에 달린 수정구에 모든 마나가 모여들자, 사내는 크게 외쳤다.

“용의 숨결!”

마법진이 푸른빛으로 그려지고, 마법진에서 붉은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용이 숨을 내뱉는 것처럼 거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메우던 뱃맨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10초간 이어진 화염 방사 끝에 모든 뱃맨이 하늘에서 떨어져 다시 어비스로 돌아갔다. 상황은 그렇게 종료했다.

“이야, 아저씨. 놀지만 않았다, 이거지?”

-새끼, 내가 던전에서 하루 이틀 그냥 놀기만 한 줄 아냐? 비법서 얻어서 제대로 수련하고 왔다.

마법사가 득의양양한 얼굴로 자신의 승리를 자축했다. 과시해 보인 힘에 경악과 부러움의 눈길을 독차지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강해졌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주적은 언제나 발록입니다.

윤수현 대장은 마법사가 한 행동이 상당히 거슬리는지, 무전에 대고 말했다. 자신들이 너무 들떴다는 것은 그들도 스스로 인정했다.

-죄송합니다.

-주의할게요.

-다시 정비하시고, 혹시 부상자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윤수현 대장은 그들에게 경고하고 무전을 끊었다.

몬스터가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위 말하는 한 웨이브가 그렇게 지나갔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것에 비교해서 전력에 손실은 크게 입지 않았다. 그들은 대충 자신들의 상태를 파악하고, 얼른 단검을 뽑아 들었다.

쓰러진 뱃맨들의 시체 속에서 코어를 빼 가려는 것이었다.

“코어 벌었다.”

“캬, 이놈 한 번 실하네.”

“쌍란처럼 코어 두 개 품은 놈 없을까? 그런 놈 있으면 좋겠는데.”

뱃맨 사체의 대부분은 일부러 끌어와 바닥에 처박아 처형시켜 얻어 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거기서 더 나아가, 잔꾀를 부린 궁수들은 모두 줄 화살을 쏘아 격추한 뱃맨들을 다시 끌어올려 코어를 회수했다.

‘이거로구먼.’

윤수현 대장이 말한 코드 헌터의 묘미가 이것이었다. 발록을 잡는 게 아니라, 그 잔챙이들을 잡으면서 얻는 전리품!

나라의 부름에 답해서, 얻어 낸 코어는 회사에서 가로채지 않고 고스란히 자신의 몫으로 돌아오니까. 최대한 뽕을 뽑아 갈 심산이 분명했다.

사태가 수습되자, 멈췄던 목소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멍청한 인간들. 그 구슬 덩어리라는 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달라붙어서 힘을 빼는지 이해를 못 하겠단 말이야.

유선은 조용히 그 목소리에 물었다.

“넌 뭐냐?”

-내가 그 물음에 답할 거로 생각하나?

“안 하겠지.”

목소리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아이도, 그 무엇도 추측할 수 없이, 베일에 둘둘 싸인 목소리. 그런 목소리를 지닌 녀석이 순순히 자신을 밝힐 리가 없다.

“이 목소리는 왜 나한테만 들리지?”

-그건 그대의 능력이지, 내 능력이 아니다. 여태 많은 인간에게 대화를 시도했지만, 자네처럼 또렷하게 듣는 이는 나도 처음이다.

그렇다는 말은 <교감> 특성에 그 목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 목소리는 몬스터의 목소리임도 알았다.

‘단순히 머릿속 생각만 보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능력이었다.

-자네는 스스로 알면서도 자꾸 물어보는군, 그래. 어리석다, 어리석어. 그대도 생각보다 따분한 사내로구나.

“어리석다, 어리석다, 하지 마, 그렇게 따지면 여기에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없어.”

-왜 없느냐?

목소리가 반문했다.

-어리석지 않은 것, 옆에 붙은 꼬맹이가 있지 않으냐?

그 목소리에 유선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엘레노어가 서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얘가 싸우려 들지 않았네.’

그녀는 평소처럼 ‘사냥’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들뜨지 않고, 가만히 유선의 옆을 지켰다. 무슨 일인가 싶어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엘레노어는 안 잡을 거야?”

“응.”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활발할 것 같은 애가 얌전해지니 이상했다.

“엘레노어가 사냥을 안 하다니, 왜?”

“지금은 안 돼.”

엘레노어는 고개를 젓고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까만 게 쿠우웅! 하고 나오면, 그때 싸워야 해. 그전까진 안 돼.”

-정말 바람직한 생각이로군. 별 위협도 되지 않는 녀석을 잡으려고 힘 빼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박수갈채라도 보내듯 엘레노어의 행동을 칭찬했다. 그리고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뭐 그래도 아주 똑똑한 꼬맹이는 아니군. 그렇게 잡아선 벨제브를 완전히 쓰러트릴 수가 없는데 말이야······.

벨제브? 생소한 단어에 물었다.

“발록을 말하나?”

-발록? 아, 너희는 그걸 발록이라 부르지. 어디에서 따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별명이다.

유선은 동일한 몬스터라는 사실을 듣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놈은 그 발록을 쓰러트리는 방법을 안다는 거야, 설마?”

-글쎄? 내가 그걸 알까? 모를까?

“대답해.”

유선이 목소리를 내리깔며 딴소리하는 녀석에게 말했다. 키득거리며 중얼거리던 목소리가 제대로 대답했다.

-당연히 안다.

“······.”

유선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수십 년에 걸쳐서 대한민국을 괴롭혀 온 어비스 던전이다. 해결책이 없어 그저 몇 년마다 찾아오는 재앙으로만 여겼는데, 그에 대한 해결책이 있었다.

“그게 뭔데?”

-캬하하하, 어리석은 인간! 내가 순순히 답할 것 같으냐? 하늘에 대고 기도하면 답을 툭 던져 주는 신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말은 거래하자는 거로군.”

충분히 유추해서 얻을 질문이었다. 웃던 목소리가 큭큭거리며 대답했다.

-이해가 빠르구나. 그래, 거래하고 싶군.

거래. 그 말에 유선은 슬슬 신중하게 나오기로 했다.

“하지만 그 거래도 네 정체를 알았을 때 이야기다. 거래하고 싶다면 네 정체부터 밝혀라.”

-급한 건 그쪽이다, 내가 아니라.

유선은 순순히 그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았다.

“급할 이유가 없어. 만약 해결책이 없다고 해도, 우리 엘레노어가 올라오는 족족 박살 내버릴 테니까. 늘 그랬듯이 말이야.”

“박살!”

옆에 서 있던 엘레노어가 뜬금없이 받아쳤다.

-흐음······.

처음으로 고민하는 소리를 흘렸다. 자신만만하던 녀석이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은 이번은 전혀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의미였다.

-좋다. 말대로 내 정체를 밝히지. 내 이름은 루데릭, 너희가 흔히 말하는 악마다.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과 정체를 밝혔지만, 유선은 어째서인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스스로 악마라 소개하는 것이 아무래도 큰 원인이었다.

‘믿기 힘든 말이네.’

-믿기 힘든 말이란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말해 주었다.

그는 유선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이 대답했다.

-의미 없이 저항하지는 마라. 그대의 머리를 쥐어짜 생각해도 그대는 결국 나와 거래해야만 할 거다.

“그 이유는?”

-그대는 물러 터졌거든.

“······뭐?”

-지금 인간들이 모두 벨제브를 쓰러트리고 살아서 귀환할 확률은 80%다. 그리고 3초 뒤에 75%로 떨어질 예정이고.

말하기 무섭게 바깥에서 경계하던 헌터의 목소리가 유선의 귀에 울렸다.

“뱃맨들이 올라온다!”

“제대로 풍년을 즐겨 보자고!”

그가 말하는 타이밍에 정확히 다시 한 번 더 뱃맨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은 다시 뱃맨들을 사냥하기 정신없었다. 루데릭은 마치 멀리서 지켜보는 듯 유선에게 말했다.

-확률은 계속해서 떨어질 거다. 인간들이 제 어리석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구슬을 탐낼 때마다 말이다. 벨제브가 이날을 기다리기만 했으니, 자네들이 안전히 귀환할 확률이 0%일 때까지 그대들을 괴롭힐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유선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돈을 벌겠다고 흥분해, 전력으로 잡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알게 모르게, 그들 자신도 모르게 모두 힘을 뺄 것이다.

‘3년 만에 다시 나온 이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만약 이걸 막지 못한다면······.’

국가 재난은 분명히 그대로 실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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