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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드 네임: 어비스 (1) (2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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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코드 네임: 어비스 (1)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현재 던전 정보에 관한 자료들입니다. 들어가기 전에 한 번씩 읽어 주십시오.”

“네.”

사전 조사를 마친 자료들이 담긴 태블릿을 유선에게 건네주었고, 유선은 천천히 그 자료를 읽었다.

제42-4152호.

발현 날짜: 2042년 8월 10일.

던전 등급: SS.

몬스터 종류: 식별 불가.

식별된 몬스터: 뱃 맨.

클리어 조건: 보스 제압.

대부분 던전의 클리어 조건은 ‘서식원 제거’ 혹은 ‘우두머리 제거’로만 통한다. 하지만 보스를 제압하는 건 여태까지 코드 네임 어비스뿐이었다.

제압은 제거와 달리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비스 던전은 5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나타난 시련이었다.

마왕이 봉인된 이후로 몇 년 단위로 꾸준히 드러나는 국가 재난급 던전이지만, 이번에는 5년이란 룰을 어기고 3년 만에 모습을 보였다.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는 건 이번에는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SS 등급이라······.”

유선은 엘레노어를 향해 슬쩍 눈길을 던졌다. 자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소녀는 무려 EX 판정을 받았다.

“엘레노어보다 아래네.”

호들갑 떤 것과 비교해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가 과연 어떻게 싸울지는 아직 감이 잡히지 않은 게 문제지만.

‘늘 그랬듯이 펀치 한 방으로?’

늘 그런 모습만 봤기 때문에, 떠오르는 방법이라곤 원 펀 걸의 엘레노어뿐이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낸다면, 아마 모든 공적이 유선에게 돌아갈 것이기에, 마음 같아선 그렇게 끝내고 싶지만, 그거로 확정지어 자만하진 않았다.

“이분이 오늘 처음 오신 정유선 씨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누겠습니다.”

대위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유선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그 남자도 유선의 정보망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명한 사람이었다.

‘골렘의 윤수현······.’

상당한 거물이었다. 그가 유선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골렘 헌터 컴퍼니의 이사이자, 동시에 코드 헌터의 총사령관 자리를 맡은 윤수현이라고 합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였다.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면서, 한국에서는 최고의 수색꾼으로 통하=는 남자였다. 그의 앞에는 <은신>이란 특성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리하고 날카롭다. 본 역할뿐만 아니라, 수색꾼이란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검술도 뛰어나 찾아낸 몬스터는 될 수 있으면 자신이 알아서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었다.

단순히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이고 투철한 군인 정신에서도 유명했다. 위험을 강행해서라도 낙오되거나 실종된 헌터들을 구하려는 겉멋 들지 않은, 탁월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모험담으로 유명해졌다.

그런 미담 덕분에 지금은 대장으로서 역할을 해도 불만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유선은 존경이 담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내민 손을 잡았다. 수많은 고난을 겪어 돌덩이처럼 피부가 딱딱했다.

“반갑습니다.”

“코드 헌터 상황은 처음 받아 보셨지요?”

“네, 그렇습니다.”

윤수현 대장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겠지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매번 작전 범위 내에서 활동해 주는 분들은 항상 안전하게 복귀하셨으니까요.”

그 말은 작전 범위 내에서 벗어나면 생명에 지장이 간다는 말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말을 잘 들으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대장님만 믿겠습니다.”

“어휴, 그래 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선은 일단 그의 편이 되어 주겠다는 식으로 윤수현 대장을 안심시켰다.

“유선 씨도 짐작하셨겠지만, 이번 코드 헌터 상황은 정유선 씨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제게 말입니까?”

“네, 유례없는 EX급 사역수를 얻으신 만큼 우리가 상당한 기대를 품습니다. 그 작은 주먹으로 모든 것을 날려 버린 펀치가 유명하니까요.”

윤수현 대장도 엘레노어에 관한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바깥 소식통을 단 한 번도 접한 적이 없으면 모를까, 몇 달이 되도록 끊이지 않게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 원 펀 걸, 엘레노어였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라면······.”

윤수현 대장이 엘레노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대해야 할 몬스터의 크기겠지요.”

엘레노어는 크기가 5m나 되는 자이언트 오우거도 상대했다.

“크기 차이가 심합니까?”

“엄청 심합니다. 유선 씨, 태블릿에 영상이 있으니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의 말에 유선은 태블릿을 손가락으로 움직여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몬스터는 발록이라는 몬스터입니다.”

그가 말하는 순간, 유선은 제목이 일치한 영상을 하나 찾아냈다.

<코드 네임: 발록>.

유선은 그 영상을 눌러 재생시켰다.

-치지이이익······. 젠장, 또 제대로 안 되네.

-이번에는 제대로 담아내야 하는데······.

-괜찮겠지.

구아아아아!

이 부분에서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젠장! 뭐야?

-발록이 깨어났다!

-집합! 집합! 얼른 모여!

카메라를 든 사내는 얼른 달려갔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마법 영창과 방어 태세를 준비했다.

쿵! 쿵!

진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쿵······.

충분히 가까워졌다고 생각했을 때, 잠시 멈췄다 싶더니······.

콰앙!

철골 구조물 파편을 튀기고 뭔가가 튀어나왔다. 그 일대에 서 있던 사람들은 몸이 튕겨 나가 구멍 안으로 떨어졌다.

-저게 발록이야?

-히이익!

발록의 모습이 갈라지는 영상 속에서 드러났다. 마왕처럼 무시무시한 뿔을 지녔고, 눈에는 불꽃이 타오르는 듯했으며, 숨을 내쉴 때마다 적색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유선은 단순히 보는데도 전율했다.

-발록이다!

-발록이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해!

당황도 잠시 헌터들은 일제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발록의 몸이 폭발로 도배되었다. 주춤거리는 기세조차 보이지 않으며 그것은 여유롭게 그들을 향해 기선 제압을 시도했다.

-구아아아아!

그게 마지막 영상이었다. 발록이 포효하자 시끄러운 잡음을 내더니 결국 끊어졌다.

“보기보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이죠?”

윤수현 대장의 물음에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합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초기 사건을 제외하면 여태 큰 사고는 많이 없었으니까요.”

실제로 사상자를 집계한 것을 보면, 부상자와 중상자가 많지, 사망자는 초기 당시를 제외하면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실종 처리는 뭡니까?”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실종 처리가 된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3차 코드 헌터 때, 발록이 다시 나올 테니까, 제대로 목숨을 끊어 버리겠다고 해서 어비스로 간 사람들입니다. 이틀 동안 이계의 틈을 강제로 벌려서 귀환을 최대한 기다려 보았지만, 결국 돌아오진 못했죠.”

최후의 숨통을 끊으려고 밑바닥으로 이동하는 헌터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실종 처리가 되었단다. 사실상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자료를 뒤져 보니 윤수현 대장이 한 얘기가 나왔다. 그 실종 사건이 이 던전을 어비스라 명명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밑바닥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게 심연과 어울렸다.

“자료는 다 찾아보셨죠?”

“네.”

“그러면 이제 들어가 봅시다. 유선 씨는 특별히 제가 하나씩 알려 드리지요. 우선 소형 무전기부터 차시지요.”

윤수현 대장은 유선에게 귀에 들어가는 무전기를 가져다주었고, 유선이 그걸 차는 동안 군인 한 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틈 안으로 진입할 테니, 헌터분들을 모아 주시고, 전부 이계의 틈으로 입장시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군인은 무전을 통해, 윤수현 대장의 말을 전파했다. 일을 진행하는 것을 잠깐 지켜보고, 윤수현 대장은 앞장서서 텐트 중심에 있는 이계의 틈으로 발을 옮겼다.

유선은 엘레노어와 함께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 안은 바깥의 텐트만큼이나 분주했다. 밖에서 대기하던 헌터들을 제외하고도 몇 명이 이미 들어온 상태였다.

“그 장비는 이쪽으로 옮겨 주세요.”

“철골 부족한 거 밖에서 좀 더 공수해 와 주시겠습니까?”

“나사도 더 필요해요!”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하도록 공사를 진행했고, 그 공사는 거의 다 진행된 상태였다.

어리석은 놈들, 무의미한 일만 반복하는군.

그중에는 부정적인 말을 꺼내 중얼거리는 이도 있었다. 윤수현 대장은 그걸 못 들은 채로 하는지, 무시하고 컨트롤러를 쥔 남자 쪽으로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드론은 여전히 작동 안 되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자 장비는 거의 무용지물이에요. 기껏해야 무전기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겠지. 여태까지 너희가 가져온 요상한 물건들이 단 한 번도 제대로 작동한 적이 없는데 되겠나?

한 번 더 빈정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현 대장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뭐, 별로 기대는 안 했다. 전자 장비는 전부 철수시켜.”

최신식 장비를 써서 제대로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이상하게 그 주변은 작동하지 않아 그림의 떡이었다.

동굴 밖으로 나가자, 해가 뜬 하늘과 그것만으로는 안을 비추기 힘든 바닥이 이어진 구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싱크홀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동굴 밖을 나서면 바로 철골 구조물로 이루어진 인공적인 발판이 동굴 가를 둘러쌌다. 아직도 완성이 덜 된 모양인지, 이어지지 않은 끝부분에서 마법사들이 발판을 다루는 모습이 보였다.

유선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는 구멍 아래를 내려다보며 윤수현 대장에게 물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저 밑에 있습니다.”

윤수현 대장이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유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어두컴컴할 뿐. 그 밑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유선 씨가 보는 게, 보이는 겁니다. 언뜻 형상이 보이지 않나요?”

형상? 유선은 시야에 집중해 그것을 제대로 살펴보았다.

꿈틀.

뭔가가 살짝 움직였다. 유선은 그걸 보고 소름이 쫙 돋고 말았다.

“설마 저 동굴 전체를 덮는 크기가······.”

“네, 맞습니다.”

상상 이상의 스케일이었다. MMORPG 게임에서 보스 몬스터들이 아주 크게 나오긴 하지만, 실제로 그 크기를 가늠하자니 비현실적이었다.

“영상에서 본 건 더 작은 것 같은데······.”

“웅크려서 그렇습니다. 몸을 쭉 펴면 아마 구멍의 절반에서 그보다 조금 더 크겠지요.”

구멍 폭의 절반이라 해도 크기가 상당히 크다. 엘레노어의 크기랑 비교하면 수십 배는 확실히 차이가 났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특이 사항이 없다면 아직 별다른 일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 밑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녀석이 일어날 때까지 준비합니다. 그리고 일어나면 그때 싸웁니다.”

윤수현 대장의 계획을 듣자 반사적으로 나오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지나쳤다.

그런 의미 없는 짓이나 하니 매번 다시 나오지. 어리석은 놈들.

희미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이번엔 의심할 여지 없이 유선의 귀에 제대로 꽂혀 왔다. 동굴에 들어오면서 계속 들려오는 부정적인 목소리가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이겠거니 했지만, 이번에는 유선과 윤수현 대장 둘뿐인 공간 속에서 정확하게 윤수현 대장의 말을 받아쳤다.

그리고 목소리의 형체는 어딜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시나요?”

“혹시 무슨 말 못 들었습니까?”

윤수현 대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선이 들었는데, 그가 못 들었을 리 없었다.

“무슨 말 말입니까? 뭐, 어비스 쪽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윙윙거리는 게 들린답니다.”

“아뇨, 그냥 목소리였는데······.”

유선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뚜렷한 목소리였다. 잘못 들었나 생각하려던 찰나, 그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 들어왔다.

-호오, 내 목소리가 들리나?

“응?”

이건 유선에게 묻는 것이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래. 들린다.”

-설마 내 목소리를 들을 인간이 존재할 줄이야. 여태까지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건만 드디어 숨통이 트이는 것 같군!

인간? 유선은 대체 이 목소리는 뭘 얘기하나 싶었다.

“유선 씨?”

윤수현 대장이 정신이 팔린 유선의 어깨를 톡톡 치며 깨웠다. 유선은 고개를 돌려 다시 윤수현 대장을 보았다.

“네?”

“유선 씨, 누구랑 대화하는 겁니까?”

“그게······.”

사실을 말하려는 찰나,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비밀로 해라. 이 이야기는 그대와 나, 둘이서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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