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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코드 헌터 (2) (2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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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코드 헌터 (2)

“저 애가 그 원 펀 걸이지?”

“영상으로 봤을 때는 박력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되게 조그마하네.”

헌터들은 모두 엘레노어에게 시선을 향했다. 떠오르는 샛별의 결정체인 엘레노어를 두 눈으로 확인해 저마다 감탄했다.

엘레노어가 그 시선에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 험담하지도 않았기에 유선은 그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유선도 구경하기에 바빴다. 그들이 엘레노어를 처음 보듯, 유선도 단순히 사진과 영상으로 접했던 얼굴들을 실물로 본 것이 신기했다.

‘저 사람은 나이트 클래스 오준찬, 유진 헌터 컴퍼니에 있다고 했나? 아크 레인저 유서찬도 있네. 삼중 샷이 정말 멋졌는데······. 엥? 저 사람은 최근에 마약을 해서 감옥에서 복역 중이라던 플레임 위저드, 류세랑 씨 아냐?’

헌터들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아는 유선의 지식 범위에 벗어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현재 투옥 중인 범죄자들도 참여한다는 놀라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 명씩 볼 때,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유선 씨, 오랜만입니다.”

“홍승오 대장님!”

처음 유선에게 던전 구경을 시켜 주었던 공격대의 대장을 만났다.

“홍승오 대장님도 참여하십니까?”

“갈수록 노망이 들어가는 노병을 부르더군요. 하하. 이제 B급 언저리에서 놀 텐데 말입니다.”

“홍승오 대장님이 그만큼 유능하다는 의미일 겁니다.”

“발린 말이라도 감사하게 듣겠습니다.”

홍승오 대장은 미소를 지으며 받아쳤다. 그는 처음 보았을 때와 다르게 강철 판자로 덮인 갑옷을 입었다. 유선은 그 갑옷이 뭔지 알았다.

“슈프리머시 당시에 입으셨던 갑옷이군요.”

“이것도 기억하시는군요, 하하. 애들을 이끌 때는 아무래도 스피드가 중요하니까 이런 게 필요 없긴 한데, 지금처럼 긴박한 상황에는 필수지요.”

홍승오 대장이 껄껄 웃으며 자신의 갑옷을 손으로 쳤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난 모양인지, 아! 하며 몸을 돌렸다.

“유선 씨,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네······.”

동의를 얻은 홍승오 대장은 잠깐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모습을 보일 때는 그의 손에 한 여자가 잡혀 있었다.

“놀라운 거 보여 준다니까.”

“아니, 승오야. 클랜이 해체된 지가 언젠데 그걸 기억하겠어?”

“야. 들러리나 다름없는 서브 탱커 이름도 기억하는 사람이야. 너 예전에 다녔던 회사 사람들이 너 몰라도, 이분은 아실걸?”

옥신각신 다투면서 오더니,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을 데리고 다가왔다. 홍승오 대장이 그에게 물었다.

“유선 씨, 이 사람 누군지 알겠어요?”

“아, 진짜 모를 거라니까. 저 누군지 모르겠죠?”

30대 초반 여성은 미소를 지었다. 홍승오 대장과 비슷한 또래로 안 보였지만, 조금 전 대화로 홍승오 대장과 나이가 똑같다는 걸 알고, 유선은 그녀가 누군지 짐작했다.

“슈프리머시 클랜의 메인 딜러 중 한 명인 ‘쾌속의 이나현’ 씨 아닙니까?”

그러자 여인은 경악했다.

“허얼, 대박이네요. 그걸 정확하게 아실 줄은······.”

“너무 젊으셔서 순간 홍승오 대장님하고 같은 나잇대라고 생각을 못 했습니다.”

“호호, 피부 관리를 요새 잘하다 보니, 안티에이징이 죽여주네요. 그런데 유선 씨, 그 별명은 함구해 주세요. 이 나이 먹고 쾌속이라느니 뭐니 하면······.”

낯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유선은 최근 그녀의 행적을 알기에 의문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이나현 씨는 은퇴했다고 들었는데도 이곳에 소환됐습니까?”

“뭐, 나라에 인재가 없다느니 그래서······. 거기다가 노후 대비 연금도 상당히 탐나는지라 참여했죠.”

단순히 회사의 이미지나 개인의 이미지 때문이 아니라 연금을 준다는 말에 다시 복귀한 이들도 심심찮게 있었다.

“나현! 너니?”

“응? 아! 어머 어머, 혜림아, 이게 웬일이니! 전 이만 가 볼게요, 유선 씨! 던전에서 다시 만나요.”

“네, 고생하세요.”

나현은 그렇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쪽으로 사라졌다. 나현을 데리고 온 홍승오 대장도 마냥 이럴 순 없어 자기 공격대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저도 돌아가야겠군요. 유선 씨도 슬슬 제 공격대로 가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로 오셨다면 같이 돌아가면 됐을 텐데······.”

홍승오 대장은 아쉽다는 듯이 끝말을 흐리며 중얼거렸다.

“아직 마땅한 공격대 같은 건 없습니다. 엘레노어와 둘이서 왔거든요.”

“공격대가 없습니까? 그쪽 사장이 일을 잘 못 하는 것 같군요.”

“하하······. 신생 회사가 어쩌겠습니까?”

가만히 있던 기율이 딜을 맞았다.

“음······, 뭐 상관없지요. 우리 회사 사람들을 다 합쳐도 유선 씨와 그 아이만큼 전력을 못 뽑을 겁니다. 유선 씨는 2인 군단이니까요.”

모든 전력을 담당하는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다. 사실상 1인 군단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좋은 걸 얻어 가길 기도하겠습니다, 유선 씨.”

“홍승오 대장님도 부디.”

홍승오 대장은 행운을 빈다는 말과 함께 인파 무리로 사라졌다. 그렇게 떠들고 나니 넓은 지휘소 텐트 안에 사람들이 차기 시작했다. 틈에 들어가기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유선은 그제야 자신이 찾지 못했던 회사를 찾았다.

‘역시 유니콘 헌터 컴퍼니 사람도 있네.’

거대 기업인 유니콘이 빠질 리 없었다. 엘레노어를 매매하라는 것을 시작으로 악감정이 있는 회사였다. 그렇다는 말은 유선이 여태껏 꺼려 왔던 사내도 코드 헌터를 받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그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누군가가 뒤에서 등짝을 때렸다.

“어이, 정유선이!”

윤정도였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정장 차림의 이미지에 깔끔해 보였다면 이번에는 위협적인 기사였다.

은색으로 도금한 풀 플레이트 아머에 사람만 한 대형 방패, 그리고 늘씬한 롱 소드를 가졌다. 팔라딘이라는 이미지 사람들을 보호하는 기사다운 차림이었다.

“아, 윤정도, 너구나. 오랜만이다. 너도 불려 왔어?”

“당연하지 인마! A급 팔라딘인데, 안 불러 가면 섭섭하지.”

“하하······.”

처음부터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A급까지 치고 올라오는 데 상당히 빨랐다. 기대 유망주다웠다.

“나는 네가 의외다. 어떻게 그런 스펙으로 여기에 불려 나올 수가 있냐?”

유선은 그의 가시 돋친 물음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내 파트너가 강하다 보니까, 불려 온 것 같네.”

그러자 정도는 시선을 낮춰 유선 옆에 있는 소녀를 보며 말했다.

“아 참, 원 펀 걸인가 뭔가 하는 그 애를 가졌다고 했지? 이야, 참 좋겠다. 테이머 인생으로선 활짝 폈네!”

“그렇지 뭐.”

유선은 짧게 대답했다. 윤정도의 표정이 비꼬기 모드로 시동을 건다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누구는 죽을 각오로 아주 일하는데, 누구는 어린애 앞장세워서 돈을 챙긴다라······. 키야, 이만큼 꿀 빠는 직업이 어디에 있겠어?”

“그래.”

“예전부터 공부만 해 대서 애인도 없었던 인생인데, 좋겠다야. 뭐 몸이 작지만, 애인도 대행할 수 있지······.”

“너 슬슬 가야 하지 않니?”

유선이 불편하다는 듯이 말을 끊으며 묻자, 윤정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팡팡 치며 말했다.

“야야, 왜 말을 끊고 그러냐. 친구가 왔는데, 잠깐 정도 시간은 할애할 수 있지!”

대학 시절이었더라면, 부담 없다는 듯이 어깨동무를 해 오는 것을 그대로 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선은 지금도 그렇게 비굴하게 자기주장도 못 하며 살고 싶진 않았다.

유선은 그를 따라 미소 지으며, 그 어깨동무를 풀었다.

“미안한데, 내 눈에는 네가 친구보다는 거치적거리는 놈으로만 보여서 말이야. 좋은 말로 했을 때, 가 주었으면 좋겠는데.”

심기를 건드리는 직구였다. 싱글싱글 웃던 윤정도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너 뭐라 그랬냐?”

유선은 그 눈을 마주하며 대답했다.

“서로 친하지도 않으니 건드리지 말고 제 갈 길 가자고 말했다. 짧게 줄여서 말해 주면 ‘넌씨눈’이라더라.”

플레이트 아머의 건틀렛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유선의 멱살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어이, 정유선. 많이 컸다! 대학 시절에는 눈도 못 맞추던 새끼가 말이야. 형님이 아는 척해 줬으면 빌빌 기어야지. 새끼가 지금 제 분수도 모르고 깝치냐?”

“아, 그랬나? 네 기억에 그랬다면 미안하다, 야.”

압도적인 상황인데도 유선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그에게 사과하며 씨익 웃었다.

“그땐,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문제를 만들 만한 별 희한한 미친놈들은 피하고 싶었던 때였거든.”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 하니······.”

그의 주먹에 힘이 실려 들어갔다. 하지만 유선은 절대로 당황하지 않았다. 때리고 싶겠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는 폭력을 행사하였다간 자신의 흉한 부분이 드러나는 꼴이 될 뿐이었다.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윤정도라면 분명히 주먹을 휘두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유선의 생각일 뿐, 옆에 서 있는 다른 한 사람은 또 달랐다. 윤정도의 살기가 계속 유선을 향했고, 정도의 손에 힘이 실린 순간부터 엘레노어는 그를 향해 살기를 쏟아부었다.

고오오!

“으으윽······.”

꼼짝없이 당한 그녀의 살기에 윤정도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강인> 특성이었던지라, 유선처럼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토하는 대신 두 다리로 애써 버텼다.

“잠깐만, 갑자기 웬 한기가?”

“누가 에어컨이라도 틀었나?”

그 살기가 얼마나 진한지, 윤정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이 가기 시작했다. 윤정도에게만 영향을 주었다면 모르는 척 입 다물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살기를 거둬야만 했다.

“엘레노어, 그만둬.”

유선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진하게 풍기던 살기가 확 빠져나갔다.

“후욱! 후욱!”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윤정도가 엘레노어가 살기를 거두자마자 다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얼굴에 식은땀을 흘리며 탈진한 것처럼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왜 이렇게 깝치면서 나왔는지는 네가 더 잘 알 거야. 지난 일들을 못 떠올린다면······. 그대로 모른 채로 살면 돼. 차라리 그러는 편이 나을 테니까.”

유선은 윤정도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쓸어내려 주며 말했다.

“난 더는 너와 트러블을 만들기 싫었고, 그래서 학기 시절에도 애써 네놈을 피해 왔어. 그러니까 더는 쓸데없이 감정 소모하지 말자. 어차피 너나 나나 이런 일 이외에는 더는 부딪칠 일도 없을 테니깐.”

유선은 선을 딱 잘라 그었다. 유선은 더는 윤정도를 삶 일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고, 서로 더는 기분 나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나서 반가웠다.”

유선은 예의상 인사를 던지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뒤를 돌아 자리를 뜰 때, 윤정도도 자신의 공격대로 이동하려고 발을 옮겼다.

까드득, 까드득.

윤정도의 입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윤정도가 비틀걸음을 걸으며 이빨을 갈았다.

“정유선, 이 개 같은 새끼······.”

매번 능멸로 얻은 쾌감과 우월감에 젖었던 정도는 처음으로 유선에게 분노를 느꼈다.

불편했던 상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유선을 안내했던 대위가 태블릿을 가지고 다가왔다.

“정유선 씨,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왜 그러십니까?”

“표정이 밝아 보여서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항상 당해 왔던 입장에서 윤정도가 식은땀을 흘리는 광경을 보니 고소해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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