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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코드 헌터 (1) (2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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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코드 헌터 (1)

“좋아, 숫자 헤아린다.”

유선이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고,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흥분에 찼다.

“5, 4······.”

유선은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금방이라도 덮치도록 자세를 취했고, 엘레노어는 그런 유선을 보면서 계속해서 히죽 웃고 있었다.

“······3, 2, 1. 땡!”

“꺄하하하!”

유선은 전력으로 달려가 엘레노어를 잡으려고 몸을 날렸다. 하지만 엘레노어는 손끝에도 미치지 않고 유선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유선 님, 나 못 잡아!”

“어이구, 반드시 잡아 주마!”

유선은 단련하는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느껴 머리를 차분히 식힐 겸, 잠깐 일을 쉬기로 했다.

많이 뾰로통해진 엘레노어 탓에 그녀의 기분을 푸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산책하러 나가다, 무심코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노는 걸 보았다.

유선은 그 놀이를 보고 훈련과 동시에 엘레노어의 기분 전환이라는 일석이조를 건질 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바로 ‘술래잡기’와 ‘숨바꼭질’이었다.

“거기 서라!”

“꺄하하하!”

영원히 따라잡지 못할 술래잡기로 민첩성과 체력을 키우고.

“이 녀석······, 어디에 있지?”

“푸흐흡······.”

넓은 공원에서 숨바꼭질로 <감지> 특성을 훈련했다. 보통 성인의 발상으로 할 수 없는 유아적인 수단이었다.

그러나 온종일 놀아도 지치지 않는 엘레노어의 체력과 유선의 근성이 합쳐진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민첩성도 많이 올랐을 뿐만 아니라, <감지> 특성 레벨도 3까지 이끌었다. 테이머의 역할뿐만 아니라 흔하디흔한 정찰병의 역할로도 충분한 스펙이 되었다.

“에고······, 항복, 항복하마······.”

“유선 님, 오늘도 나 못 잡았어.”

“널 잡으려면······ 100년은 이른 것 같다.”

술래가 바뀌지 않아 술래잡기의 진미를 느낄 수 없었지만, 엘레노어는 유선의 리액션만 봐도 함박웃음을 짓기에 상관없었다.

유선은 땀을 뻘뻘 흘려 저지 지퍼를 열며 말했다.

“점심이나 먹자.”

“나면이야?”

엘레노어는 잔뜩 기대했지만, 유선은 그 기대에 충족해 주지 못했다.

“아니, 도시락인데?”

“부으······.”

라면은 가성비가 아주 좋은 식단이었지만, 외견상으로 좋지도 않았고, 부실한 영양 때문에 모르는 사이에 허약해지면 곤란했다. 질리면 되겠거니 한 안일한 생각으로 몇 달이 넘어가도록 라면에 질려 하지 않으니, 유선은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식단을 조정했다.

“나면이 좋은데······.”

“다른 것도 먹어야지. 라면은 하루에 한 끼만 먹자고 약속했으니, 오늘 저녁에 먹자.”

“응······.”

툴툴거리긴 했지만, 엘레노어는 싫지 않다는 듯이 포크로 밥을 찍어서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편식은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싸 온 것은 골고루 모두 먹어 치웠다.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다.’

유선은 엘레노어의 전체적인 상태를 보고 안심했다. 트라우마를 안겨 줄 뻔했던 사실도 지금은 완전히 안정된 걸 느꼈다.

‘슬슬 다시 일하자.’

더 넓고 좋은 집을 위해서 오늘까지만 휴식하고 헌터 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때, 유선의 휴대폰에서 울렸다.

“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정유선 헌터님 휴대폰인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유선은 어디서 전화가 왔나 싶었다.

-국가 던전 관리청에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국가 던전 관리청이란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갑작스럽게 연락드려서 곤란하신 줄 압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정유선 헌터님에게 EX급 사역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그렇습니다만······.”

엘레노어로 또 뭔가 헛수작을 부리려는 생각인가? 도시락을 먹는 엘레노어를 슬쩍 보다가 다시 전화에 집중했다.

-현재 뉴스를 보시면 지금 왜 전화했는지 짐작하실 거로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유선은 곤란하게 됐다는 어투로 말했다.

“최근에 뉴스를 잘 안 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는데······.”

엘레노어와 자신의 멘탈을 관리하려고 마음을 비우고 잠깐 사회생활을 뒤로했다. 그 덕에 유선은 더 좋은 단련법을 얻었다. 바깥세상과 단절이나 다름없던 상태에서 지금 처음으로 정보를 접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간단히 브리핑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현재 코드 헌터 상황으로, 국가 재난급의 던전이 발현돼 실력 있는 헌터들을 최대한 모으는 중입니다. 정유선 헌터님에게 참여해 주셨으면 하고 전화했습니다.

“아, 네, 그렇구나······. 네? 잠시만요? 구, 국가 재난급이요?”

말로만 듣던 국가 재난급 던전의 출현. 일명, 코드 헌터!

3년 전에 한 번 이런 일이 터진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국가 재난급 던전은 5년에 한 번꼴로 터진다고는 들었는데, 그게 설마 이번일 줄은 몰랐다.

-지금 많은 인원을 모으지만, 그 인원만으로는 국가 재난을 막기는 불가능합니다. 지금은 정유선 헌터님의 힘이 절실합니다!

“국가 재난급 던전이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참가하지 않는 것은 국민으로서 의무가 아니다. 그걸 알지만, 유선은 가장 먼저 중요한 걸 물어보았다.

“보상은 제가 봤던 그대로입니까?”

아무래도 좋으니까 보상이 가장 중요했다. 젊은 시절에 언젠가는 꼭 참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찾아본 그때의 보상 자료가 맞는지 궁금했다.

-언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대로일 겁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우리 국가 던전 관리청에 보시면 나올 텐데,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자면, 정상적으로 레이드를 마치시면 국가 유공자로서 표창과 함께 공적도에 따라, 최대 10억 원의 보상금과 연금을 지급합니다.

10억에 연금! 역시 그대로였다. 국가 유공자 표창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니까.

-하시겠습니까?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유선 헌터님! 헌터님의 소중한 전력이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형식적인 마침 멘트로 마무리하고 전화를 끊었다. 유선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도시락을 긁어먹는 엘레노어를 보며 말했다.

“엘레노어.”

“응?”

“드디어 네가 큰일을 할 때가 왔구나.”

“큰일?”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선은 이 일에 과연 얼마나 능력을 발휘해 줄지 벌써 기대되었다.

***

코드 헌터 상황을 벌인 근원지가 발현된 장소는 남산 공원. 평소의 개방적인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고, 민간인들의 출입을 막는 바리케이드와 공포탄을 장전해 놓은 총을 든 군인들이 서 있었다.

바리케이드 라인에는 수많은 방송국의 카메라가 특종을 노렸다. 국내 방송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온 기자들도 속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보도하려고,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중이었다.

“이야,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더니, 제대로 된 히어로 총집합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형님도 그렇게 느끼지 않소?”

유선과 함께 바리케이드 안으로 들어온 기율은 기자들로 즐비한 곳에서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늘어놓는 데 여념이 없었다. 유선은 그렇게 들뜬 기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넌 올 필요 없다니깐, 왜 오고 난리야?”

“에이, 이런 진귀한 광경을 한두 번 보겠소? 보시오. 일반인들은 저 멀리서 카메라로 찍으면서 와, 저 안쪽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아녀자의 스커트를 탐하는 변태 신사처럼 ‘안쪽이 보고 싶다.’ 이럴 것 아니오?”

“너, 이······.”

유선은 별 시답지 않은 이유여서 화가 나려 했다. 그런 유선의 마음을 읽은 듯 다른 이유도 늘어놓았다.

“그리고 혹시나 형님이 쓰러지면 구해 줄 게 나 하나뿐······.”

“안 쓰러져!”

전부 말하기도 전에 엘레노어가 호통쳤다. 헛소리하던 기율이나 가만히 듣던 유선, 누구 할 것 없이 경악한 표정이었다.

“깜짝이야. 이 꼬맹이가 지금 나한테 소리쳤소?”

“그런 것 같은데?”

엘레노어가 스스로 기율에게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기율은 놀란 것도 잠시 능숙하게 그 말을 받아 주었다.

“물론 우리 꼬마 아가씨가 알아서 다 해 주겠지, 당연히.”

“흥.”

콧방귀를 뀌는 엘레노어. 그리고 기율은 고개를 살짝 돌려 조심스럽게 유선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첫 대화가 호통일 줄이야. 상상도 못 했소.”

“첫 말 뗀 것치고는 아주 훌륭한 편이지.”

유선은 첫 조우 때 했던 말이 ‘나면’이었음을 상기했다. 라면도 아니고 나면.

유선과 기율 그리고 엘레노어는 중심까지 계속해서 이동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텐트로 이루어진 야전 지휘소가 세워져 있었다. 헌터들과 그의 관계자들은 모두 그 주위에 서 있었다.

어째서 들어가지 않고 서 있나 했는데, 그 이유가 야전 지휘소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드러났다. 베레모에 다이아를 세 개 단 사내가 다가와 그들을 제지했다.

“죄송하지만, 이 앞은 헌터님들만 지나가실 수 있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헌터인 정유선이라고 합니다.”

유선은 품에 지닌 ID카드를 제시해 주었다. ID카드에 찍힌 얼굴과 대조해 확인을 마친 뒤, 기율에게 넘어갔다.

“정유선 헌터님이군요. 옆에 분은······?”

“큐앤 헌터 컴퍼니 대표이사, ‘차기율’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던 녀석이 온데간데없고, 제대로 절제된 표정으로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아, 차기율······ 이사님이시군요?”

“네, 제가 바로 그 탕아로 유명한 큐앤 그룹의 아들, 차기율이 맞습니다.”

영업용 스마일과 절도 있는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자기소개였다. 그의 당당함과 별개로 대위는 놀랍다는 듯이 기율에게 말했다.

“대부분은 매니저분들이 찾아오는데, 대표 이사님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하, 기업이 먼저입니까, 사람이 먼저입니까? 저는 항상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을 이끌어 온 한 남자의 아들입니다. 방탕아지만 비록······.”

조잘조잘. 유선은 개소리도 청산유수로 짖는다는 게 놀라웠다. 대위도 더는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은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무튼 알겠습니다. 정유선 헌터님과 그 사역······ 수분을 제외하고 이사님은 이 앞부터는 접근을 삼가셔야 합니다. 이 앞은 자신의 신분 노출을 꺼리는 헌터분들도 상당히 있기 때문입니다.”

기율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수고해 주게, 정 헌터!”

“······네, 사장님.”

어이없었지만, 그의 장단에 대충 맞춰 주며 헌터들만이 가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유선은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에 서 있는 헌터들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걸 보았다. A 등급다운 무기와 장비들로 치장하고, 그중에 유독 돋보이게 갑옷을 입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유선은 안내를 받아 더욱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대위가 보급품이 쌓인 곳으로 홀로 들어가더니, 국방색 가방 하나를 들고 와 유선 앞에서 개봉했다.

“정유선 헌터님께 보급될 국가 보급 품목입니다. 정유선 헌터님 같은 경우에는 몸이 약하시기 때문에, A급 MS를 지급해 드립니다.”

“와아······.”

유선은 입이 쩍하고 벌어졌다. 무려 A급 장비이다.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 원짜리를 유선의 팔목에 차게 되었다. 유선을 위해서 이런 지원까지 해 준다는 게 놀라웠다.

‘과연 정부의 힘은 대단하구나. 이런 것도 선뜻 내놓을······.’

“아 참, 코드 헌터 상황이 끝나면, 꼭 반납하셔야 합니다!”

“······.”

그럼 그렇지. 이것도 국민의 혈세로 만들어진 A급 장비이니 줄 리가 없었다. A급 장비 맛보기라 생각하기로 했다. 유선은 팔찌를 착용하고, 허리춤에 찬 검이 제대로 조여졌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검은 언제나 예비책으로 가지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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