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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강해져야 한다! (2) (2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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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강해져야 한다! (2)

“고마워.”

유선은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그녀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엘레노어는 불안해했지만, 결국 자신의 스킬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가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녀의 행동에선 느낄 수 없었지만, 그녀가 스킬을 사용한다는 걸 느낀 건, 얼굴에서부터 나오는 기운이었다.

소리가 먼저 들려오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드는 감각이 먼저였다.

고오오!

엘레노어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아니, 그녀의 눈으로 집중되는 게 아니라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순진무구한 눈이 한순간에 거친 맹수의 눈으로 바뀌었고, 그 맹수에서 그치지 않았다. 맹수의 눈은 그 어느 것도 범접할 수 없는 공포로 변했다.

“아, 아······.”

몸이 요동친다. 유선은 그 공포를 직면해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우웁······!”

유선은 그대로 속에 있는 내용물을 게워 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몸에 있는 땀구멍이 고장이 난 것처럼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유선 님아!”

엘레노어는 유선의 상태를 보고 얼른 살기를 거두었다. 그녀가 다급한 얼굴로 다가오며 그를 흔들었다.

“유, 유선 님아! 유선 님아!”

“게헥······. 콜록, 콜록······.”

살기가 걷혔는데도 유선은 아직도 지옥을 걷는 기분이었다.

“죽지 마, 안 돼.”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선은 혼란스러운 정신 줄을 애써 잡아 보려 했다.

“싫어, 싫어······.”

유선은 겨우 혼미한 정신 줄을 잡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중얼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엘레노어를 보았다.

-싫어.

-싫어.

-싫어.

한 단어가 엘레노어의 머리를 도배해 가기 작했고.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올라갑니다.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올라갑니다.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올라갑니다.

그와 동시에 그녀에 관한 메시지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유선은 심상치 않다는 것만은 알았다.

‘이런······.’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그녀의 스트레스가 치솟기 시작했다. 유선은 100%에 도달하는 상황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결코 좋은 꼴은 아닐 것이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해야 했다. 유선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는 엘레노어에게 다가가며 그녀의 양어깨를 세게 움켜잡았다.

“짜잔!”

“에······?”

엘레노어가 양손을 떼고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유선은 해맑게 웃으며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엘레노어는 왜 이렇게 잘 속지? 어이구······.”

“아, 아······.”

“진짜 이래서는 나중에 놀리지도 못하겠다, 야.”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유선 님, 안 아파?”

“안 아파. 겨우 그런 거 가지고 아프겠어? 하하, 그냥 장난쳐 봤어.”

‘싫어.’라는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단어가 사라짐과 동시에 떠오르는 단어는 ‘분노’였다.

“나쁜 사람!”

엘레노어의 주먹이 어깨를 쳤다. 오거를 때려잡고, 몬스터를 눌러 죽인 그런 손이 아니었다. 한없이 약한 소녀의 주먹이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 놀랐지?”

“유선 님, 바보! 악당! 심술쟁이!”

엘레노어는 빈약한 어휘로 나쁜 놈이라고 말하며, 어깨를 치다 곧 유선의 목을 손으로 감았다. 그녀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서로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때, 유선의 얼굴에는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뒈지겠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유선은 그 눈을 보고 아직도 후유증에 속을 게워 내고 싶다고 위장이 요동쳐 왔다.

하지만 엘레노어의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에, 한 사람은 적어도 온전해야만 했다. 유선은 어떻게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엘레노어의 호감도가 내려갔습니다.

-적응도가 올라갔습니다.

“하하······.”

예상대로 호감도가 내려갔다. 짓궂은 장난의 대가였다.

하지만 적응도가 올라간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덕분에 그녀의 상태 창에 새로운 글줄이 생겼다. 유선은 바로 확인해 보았다.

“아······.”

그것을 확인한 유선은 짧은 탄식을 흘리며 엘레노어를 꼭 끌어안았다.

‘몹쓸 짓을 제대로 해 버렸던 거였구나.’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줄은 이러했다.

-엘레노어는 홀로 남겨지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엘레노어는 구토하고 괴로워하는 유선을 보고 분명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대로 죽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자신은 다시 홀로 남겨질 텐데 그런 시절로 돌아가는 자신을 상상하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유선은 자신의 욕심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 알았다. 유선은 엘레노어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내가 정말로 미안해.”

유선은 재차 그녀의 귓가에 대고 사과했다. 엘레노어는 유선의 품에서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

김현태 익스플로러는 게키 역할에 충실했다. 가져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이계의 틈을 보았다. 바닥에는 현태가 피운 담배꽁초로 가득했다. 새 담배나 태우려 담뱃갑을 들자, 유선이 안에서 나왔다.

“생각보다 일찍 오셨군요.”

“네······.”

“사냥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저 그렇게 됐습니다.”

실패였다. 유선이 엘레노어에게 몹쓸 짓을 하는 바람에, 엘레노어는 사냥할 의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 덕분에 소맷자락만 잡던 엘레노어가 이제는 팔 한쪽을 끌어안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엘레노어의 상태를 보고 짐작했다.

“뭔가 트러블이 있는 모양이군요. 이런 상태라면 어쩔 수 없군요.”

“아직 괜찮겠죠?”

“오늘 내로 클리어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직 시간은 남았으니 급할 필요도 없긴 합니다. 뭣하면 다른 회사에 교보재로 싸게 넘기면 되니까요.”

현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말했다. 감시 장비를 다시 달아 두고, 그대로 하산했다.

“후우······, 죽겠다.”

유선은 땀범벅인 채로 벤 앞에 섰다. 똑같은 짐이었는데, 이상하게 더 무거웠다. 엘레노어가 붙은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 차이가 심한 무게감이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물자를 대충 벤 안으로 집어넣을 때, 유선은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 현태에게 물었다.

“현태 씨, 혹시 UST 가지고 계십니까?”

“UST 말입니까?”

현태는 앞 좌석으로 가서 주황색 판을 건네주었다. 유선은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에 설마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현태 씨도 가지고 있군요······.”

“가끔 등급을 높이려고 다른 ID카드를 쓰는 불한당 같은 놈들이 있어서요. 등급에 맞지 않는 던전을 팔면 우리가 손해이기 때문에 가지고 다닙니다.”

유선은 그녀에게서 느낀 살기를 통해 얻은 것이 있는지 확인했다.

이름: 정유선.

등급: F-.

종족: 인간.

생명력 872/872 마나 100/100.

근력 5 마력 3 민첩 3.

보유 특성: 5.

<교감 Lv. 4> <조련 Lv. 1>, <공감 Lv. 2>, <감지 Lv. 2> <강인 Lv. 3>.

보유 스킬: 3.

<사역수 계약> <마인드 워드> <디텍팅>.

스테이터스가 절반 이상 팍 줄어들었다. <살기> 탓에 현저히 내려간 상태여서 스탯 자체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원하던 것은 확인했다.

<강인 Lv. 3>.

“켁.”

생각대로 생성되었는데, 단순히 레벨 1이나, 2 따위가 아니라 3씩이나 됐다. 상상 이상의 수확이었다.

‘그렇게 마음고생 시켰는데, 당연하지.’

유선은 엘레노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전히 매달렸다.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서 맛있는 거나 먹자.”

“······.”

꿋꿋하게 침묵으로 대응하는 엘레노어에게 한 번 더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니?”

잠깐 침묵 끝에 엘레노어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면.”

“그래, 라면이나 먹자······.”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익스플로러가 수익을 내는 구조는 두 가지이다. 직접 찾아서 그 던전을 신고하는 것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던전을 제보받아 찾아가는 것.

그 둘 중에 7할을 차지하는 방법은 후자이다. 넓은 곳을 직접 뛰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민간인들이 익스플로러에게 던전을 제보하는 방법을 시작했다. 그 방법이 돈이 되기 시작하니, 제보에 관한 방법이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진보되어 이제는 앱도 생겨났을 지경이다.

“좋은 제보 감사드립니다.”

청년 익스플로러가 제보해 준 시민의 통장에 입금했다. 시민은 그가 입금한 돈을 확인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엑? 50만 원밖에 안 줘요? 다른 데는 60, 70만 원씩 주던데.”

“하하, 이게 이제는 법으로 막혀서 그 이상 주면 고객님이나 우리가 위험해집니다.”

“쳇, 알겠소이다.”

시민은 똥 밟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돌아갔다. 익스플로러들이 얼마나 남겨 먹는지 사람들은 대강 알아서 똥 씹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도 남겨 먹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십X끼들, 자기들 목숨 아니라고 혀 차는 꼬락서니하곤······.’

수천만 원씩 하는 던전을 50만 원이란 상대적인 헐값에 사들이는 이유는 위험성 때문이었다.

이계의 틈으로 들어가서 던전 내부를 이것저것 둘러보고 등급을 매기고 제출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을 익스플로러가 직접 하므로, 그들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거래는 끝났어?”

“네, 영감님.”

영감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회색빛 머리에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의 몸은 청년들 못지않게 정정한 사람이었다.

‘이런 몸에 헌터가 아니라니, 참······.’

청년은 아직도 영감이라고 부르는 사내의 몸에 의문을 품었다.

전직 헌터들이 익스플로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6할은 일반인들이 차지했다.

그들은 헌터들 못지않게, 숨고 관찰하는 능력이 있어, 밥줄이 뺏기는 일은 없었다. 영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감은 배낭을 메고 산책하듯이 뒷짐을 지며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자네도 정말 따라올 텐가?”

“이래 봬도 전직 헌터였습니다, 영감님. <감지> 특성도 레벨이 3이나 되고······.”

“그놈의 특성, 특성······. 인생은 실전이야, 꼬마 친구. 일단 따라와.”

영감은 지겹다는 듯이 말을 받아치면서 이계의 틈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말을 잘라서 감정이 상한 청년도 그를 이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영감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도끼 같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년도 그를 따라서 탐색을 시작했다. 넓은 동굴 안, 축축하지 않고 바짝 마른 데다 미적지근했다. 주변은 몬스터가 없이 깨끗하기 짝이 없었다.

“흐음, 심상치 않은 곳이로구먼.”

“언제는 심상한 곳이었나요?”

“이번에는 단순히 내뱉는 말이랑 달라, 여긴 정말로 심상치가 않아.”

“앗, 영감님! 그 안으로는······!”

동굴 형태로 된 장소. 그 끝까지 가는 것은 원래 안전상 금기시되지만, 노련한 영감은 그런 금기도 필요 없었다.

영감은 초창기부터 익스플로러 생활을 해 왔기에 청년의 감지 특성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그렇기에 청년도 더는 말하지 않고 영감의 뒤를 따라갔다.

어두컴컴한 동굴의 끝이 보였다. 영감은 그 앞에 섰고, 청년도 그 옆자리에 섰다. 그 앞으로는 더는 이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구멍이 있었다. 크기는 대강 지름만 100m 정도,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그 안에 있는 내용물은 볼 수가 없을 정도로 깊은 듯했다.

“우아, 크네요. 크긴 한데, 이거로 우리가 장사를······.”

“쉿!”

노인은 청년의 입을 막았다. 노인은 그 구멍 안을 계속해서 들여다보았다. 그때, 영감은 뭔가를 보았다. 그 어두컴컴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뭔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영감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걸음으로 되돌아갔다.

“영감님, 왜 그러십니까?”

청년의 물음에도 영감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빨리 나가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뭔가를 중얼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청년은 영문도 모른 채로 영감의 뒤를 이어 이계의 틈 밖으로 나왔다. 영감은 그제야 멈춰 섰다.

“······미쳤어, 미쳤어······.”

“얼마 정도에 팔릴 것 같습니까, 영감님?”

심각해진 영감의 속도 모른 채로 철없이 물어보는 사내를 보며 호통쳤다.

“팔긴 뭘 팔아? 이건 팔 수 없어!”

“팔 수 없다니요? 그렇게 가치가 없습니까?”

“아니야, 이건 가치로 매길 수 없는 물건이야.”

신호가 몇 번이고 가서야 겨우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어, 아가씨. 지금 국장 어딨어?”

-국장님은 지금 퇴근하셨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지금 다 필요 없고, 국장한테 이렇게 전해. 휴대전화로 말이야. 그러면 국장도 뭔 말인지 알아들을 테니까.”

-네? 아, 알겠습니다. 남기실 말씀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안내양이 애써 침착하게 대응했고, 영감은 이렇게 대답했다.

“어비스를 발견했다.”

-어비스를 발견했다······. 네 알겠습니다. 혹시 성함을 여쭈어보아도······.

영감은 더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한시가 바쁘다는 듯이 끊어 버렸다.

청년은 영감이 한 말을 잘못 들었으리라 생각하며 당황했다.

“영감님, 어비스라니요? 그 말은······.”

“우리 같은 중계자가 역할이 몹시 커졌지. 지금 매스컴에 다 연락 돌려. 대충 비상사태만 알려 줘도 분명히 낚아챌 거니깐.”

영감은 익스플로러로서 던전의 등급을 매기는 일을 했다. 던전 등급 란에 자필로 거칠게 두 글자를 써넣었다.

던전 등급: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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