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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익스플로러, 김현태 (2) (2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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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익스플로러, 김현태 (2)

“알겠습니다. 그 외에 특별히 필요한 건 없습니까?”

“제가 알아서 준비하면 될 것 같아서 특별히 없습니다.”

유선이 사전 공부를 상당히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던전 모험에는 초짜였다. 유선의 사정을 대충 아는 현태는 유선에게 물었다.

“음······, 주제넘은 이야길 수도 있겠지만, 게키는 구하셨습니까?”

“게키 말입니까?”

유선에게는 생소한 단어였다.

“게이트 키퍼(Gate Keeper) 말입니다. 틈의 상태를 확인해 주고, 타 공격대나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 그걸 게키라고 하는군요. 게키는 없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현태가 눈을 크게 떴다.

“게키 없이 하시겠다고요?”

“네. 차원이 닫히기 전에 전조가 항상 일어나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 안 해서요.”

무엇보다 비용이 크게 들었다. 타 회사에서 보내서 감시해 달라고 할 만큼 상황이 되지 않았다. 현태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전조가 일어나는 방식도 거의 랜덤입니다. 통상 1시간 전에 전조가 일어나지만, 5분 전에 전조가 일어나는 일도 허다합니다. 그래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알려 주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게키는 거의 필수 조건입니다, 유선 씨.”

“그렇군요.”

“던전을 제대로 도시겠다면 제대로 된 게키가 망을 봐 주는 게 필요합니다.”

“음······.”

게키로 쓸 사람은 없었다. 명색이 사장인 기율을 시킬 수도 없는 일이었고, 그렇다고 다른 회사 사람을 불러 어시스트하기엔 돈이 너무 빠져나갔다.

F 등급에서부터 불필요한 지출에 유선은 지출이 상당히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현태는 유선을 따라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유선에게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제가 유선 씨의 던전 게키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게키를 말입······.”

“거기다가 유선 씨가 던전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와 물품, 그리고 현재까지 회사 사정으로 받지 못하는 서비스까지 모두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

그가 얹어 준다는 내용에 유선은 할 말을 잃었다. 그건 좋다 못해 외려 의심만 들게 했다.

“돈은 얼마나 받으실 생각입니까?”

현태는 장사꾼이다. 그래서 과연 얼마나 받을 생각인지 궁금해 물어보았다.

돌아온 답변은 예상외였다.

“게키비, 서비스비, 그리고 장비 대여비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공 아이템 중에 포션 같은 소모품들은 언제나 최고의 품질이자, 저렴한 가격인 아이템들을 선정할 것이니, 가격 부담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얼마나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적을 거라는 의미였다. 정말 더없이 좋은 조건들이었지만, 유선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상당히 의심스럽게 하는 발언이군요.”

“그렇죠. 이걸 단순하게 준다고 넙죽 받았더라면, 아마 저도 유선 씨에게 제안했던 건 없던 거로 했을 겁니다.”

“그에 대한 조건이 뭡니까?”

현태는 손가락 하나를 펼쳐 보이며 대답했다.

“조건은 단 하나. 앞으로 던전 거래뿐만 아니라 장비, 포션 등 거래는 저하고만 할 것.”

큐앤 헌터 컴퍼니에 독점 계약을 맺겠다는 의사였다. 유선은 씨익 웃으면서 그에게 물었다.

“독점 계약이군요······. 제가 상당히 안 좋아하는 방식인데······.”

“독점이라는 게 상당히 부정적으로 쓰이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 독점 당하는 건 아주 좋은 일이지요. 저만한 전문가는 언제나 믿음과 신뢰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가격과 품질을 언제나 엄격하게 따져서 선정하고, 유선 씨에게 바가지 씌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선뜻 신뢰할 수는 없었다. 현태도 그 심정을 이해하겠다는 듯이 말을 덧붙였다.

“뭔가 꼬투리를 잡으셨다거나 뒤가 구린 걸 확인하셨다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간 드렸던 물품들을 돌려 달라느니 그런 말은 하지 않으니까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유선은 이런 맹목적 신뢰로 얻는 게 뭔지 궁금했다.

“우리에게 유리한 건 좋지만······. 만약 우리가 파산하거나, 그러면 그쪽 돈만 날리는 꼴일 텐데 괜찮겠습니까?”

“사소취대(捨小取大)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걸 얻고자, 사소한 걸 버린다는 말이죠. 유선 씨가 제게 탐이 나는 큰 수라면 어떤가요?”

현태는 그에게 말했다. 우량주이니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투자해 주겠다는 말이었다. 유선은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이 있다니 좋지 않을 수 없었다.

유선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후회는 없으실 겁니다.”

“제가 본 사람인데, 후회하겠습니까?”

현태는 그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그게 자신에게 득이 될지, 아니면 독이 될지 모르지만 지켜보면 되는 일이었다.

“유선 님아······.”

“왜?”

유선이 고개를 돌리자, 엘레노어가 코를 막으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행동에 후각의 감각이 몰리면서 유선도 담배 냄새를 맡았다.

현태가 말하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 물었다.

“저기······.”

“앗, 이런······.”

현태, 자신도 깜빡 잊었다는 듯이 담뱃불을 껐다.

***

던전 계약을 마치고, 유선은 던전에 들어갈 것들을 대강 챙겼다.

‘내일 제가 데리러 가겠습니다.’

김현태 익스플로러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디로 온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회사로 가면 되겠거니 하며 그는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했다.

엘레노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자, 클랙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유선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선 씨, 여깁니다.”

김현태 익스플로러였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캐주얼한 복장에 벤 옆에 선 채로 손을 흔들었다. 설마 집 앞으로 찾아온다는 말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제가 일찍 나왔죠. 생각해 보니 어디서 만나자고 말하지 않아서, 그냥 차기율 사장님께 유선 씨의 주소를 물어봐서 왔습니다.”

김현태 익스플로러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유선이 사는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나저나 유선 씨, 집이 여기일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원룸에서 키우던 겁니까?”

“하하······, 아직 돈을 꾸준히 모으는 중이라서······.”

“음······, 사역수가 인내심이 대단하군요.”

“그렇죠.”

유선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같아선 빨리 옮기고 싶었지만, 아직 적당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고 타십시오. 돈 벌러 가 봅시다.”

현태는 벤 문을 열어 주었다. 커다란 벤 안에는 장비들로 가득했다. 거의 다 유선이 난입 대기자로 있으면서 봐 왔던 물건들이었다.

유선과 엘레노어 두 명이 앉도록 남겨 놓은 자리에 앉았다. 엘레노어는 뭔가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뒤에 있던 물건 중 하나를 건드렸다.

“유선 님, 뒤에 이상한 거 있어.”

“가만히 앉아 있자. 괜히 건드리면 운전하시는 데 방해돼.”

현태가 백미러로 확인하고 말했다.

“아, 지금 엘레노어가 건드린 건 꺼내셔도 됩니다. 그건 유선 씨가 지금 확인해야 할 물건이니까요.”

“아, 그렇습니까?”

유선은 엘레노어가 건드린 것을 꺼내 보았다.

“유선 씨가 착용할 장비들입니다. F 등급 중에서 그나마 제일 품질이 좋은 것들로 엄선했습니다.”

유선은 케이스를 열어 보았다. 흔히 부르는 숏 소드가 은빛 광채를 뿜었다.

몬스터를 잡으려면 단순한 강철 검으로 잡을 수 없다. 헌터들의 무기는 조금 특별한데, 검을 만드는 과정에서 코어를 펄펄 끓는 쇳물 속으로 던져 녹여 버린다. 그 쇳물로 검을 만들면, 그제야 몬스터의 피부를 뚫을 경도가 완성된다.

“그리고 옆에 놓인 그 팔찌가 유선 씨의 몸을 지켜 줄 방어구입니다. 흔히들 MS로 부르죠.”

유선도 말로는 들어 본 아이템이었다. 이건 팔라딘이나 순수하게 탱커들을 위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탱커 직업의 경우에는 코어를 녹인 쇠로 만든 방어구들이 대부분이기에, 무게는 상상을 초월하며, 일반 탱커들 이외에 장비하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팔찌가 경량화 중심으로 가야 하는 딜러들을 위해 개발해 낸 장비이다. 몬스터 스킨(Monster Skin)으로 약칭, MS로 유명하다. 효과는 피부가 착용 중에는 몬스터의 피부처럼 단단해지고 받는 데미지를 경감시키는 효과를 가졌다.

다만, 시간 내에 일정 데미지가 쌓이면 내구도가 닳는 게 흠이었다. 그 흠은 언제나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비를 한 번이라도 소홀히 받았다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된다.

유선은 팔찌를 착용하고, 현태에게 물었다.

“이 장비들은 얼마나 드셨습니까?”

“그건 제가 보관하던 물건입니다. 심심해서 모아 놓은 컬렉션 중에서 싸고 좋은 물건이니까, 그건 유선 씨에게 드리죠.”

“공짜로 주시는 거라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F 등급 장비라도 수백만 원씩 할 텐데, 그런 물건을 선뜻 준다니 고마울 뿐이었다.

유선은 숏 소드를 들어 대충 상태를 확인할 때, 가만히 지켜보던 엘레노어가 입을 열었다.

“유선 님, 머싰어.”

“그래?”

“용사 같아.”

“하하, 고마워. 내가 용사면, 엘레노어는 공주님이겠네?”

유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공주라 말하자, 엘레노어는 고개를 저었다.

“공주님 싫어, 용사할래!”

“엥?”

보통 여자들은 공주가 되고 싶어 하지 않나? 잠깐의 편견을 깨고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왜 용사가 하고 싶어?”

“유선님이랑 사냥할 수 있어.”

짐작은 했지만, 맥이 빠지는 이유였다. 유선은 같이 있고 싶다는 말에 흐뭇하게 웃으며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용사하고 싶으면 용사해야지.”

유선은 엘레노어의 꿈을 딱히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

산 중턱까지 올라가자 유선은 이계의 틈을 보았다. 등산 코스가 아니어서 올라가는 길이 험난했지만, 그 주변 자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금방 눈치챘다. 몇 개 장치가 곳곳에 설치되었는데 그건 익스플로러인 김현태가 설치해 놓은 장비이리라.

“어디 보자. 여기서 이걸 먼저 설치하고······.”

현태는 가져온 짐 더미를 풀어 알아서 뭔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차원 문에 이변이 생기면 잠깐이나마 보호해 줄 안전장치였다.

작동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유선은 이게 작동되면 어떤 식으로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유선은 평소 사람 좋은 성격에 현태에게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유선 씨는 물자 정비 다 끝나셨습니까?”

“네, 지금 막 다 끝났습니다.”

“그러면 그냥 출발하십시오. 지금은 1분 1초도 아까운 시기이니 말입니다. 유선 씨가 신경 쓸 걸 쓰시면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정감이 없는 거절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유선은 짐 배낭을 메고 자신의 오른손을 문질렀다.

이름: 엘레노어.

계약 날짜: 2042년 04월 06일.

호감도: 52%.

스트레스: 12%.

적응도: 9%.

-엘레노어는 유선을 믿습니다.

호감도는 거의 정체기를 맞이했고, 스트레스는 엘레노어의 상태가 좋은 만큼 수치가 낮았다.

‘특별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고······.’

기본 스트레스가 40%가 되면, 엘레노어가 상당히 거칠어지고, 징징거리는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유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골치 아파지는 게 문제였다. 유선은 그런 일을 피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적응도도 곧 10%가 되네.’

현재까지 제대로 신경 쓰지 않은 수치였다. 그가 추측하기엔 그녀의 생각이 구체화되고, 일정 수치를 넘으면 정보를 알려 주는 수치라고 여겼다. 그게 과연 10%가 되면서 새로운 정보를 줄지는 아직 의문이었다. 그걸 알 방법은 10%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엘레노어의 상태까지 체크하고 나서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말했다.

“엘레노어, 소풍 가자.”

“소풍!”

엘레노어는 들떠 먼저 틈 안으로 들어갔고, 유선은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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