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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익스플로러, 김현태 (1) (2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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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익스플로러, 김현태 (1)

유선은 휴대폰에 있는 통장 앱을 확인해 현재 모아 둔 돈을 확인해 보았다.

“1억이라······.”

어시스트비와 코어를 팔아서 모은 돈이었다. 여기서 자이언트 오거의 코어까지 합하면 1천 정도가 추가된다. 유선의 입꼬리가 실룩실룩했다.

월 400만 원의 꿈을 가지며 헌터 시험장에 들어갔던 것이 불과 두 달 전, 그때의 생각과 다르게 2년 어치 연봉을 단 2주 만에 모았다.

‘엘레노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겠지.’

전투 능력이 부족한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선은 항상 엘레노어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좀 더 모아서 넓은 집에다가 방이 나뉜 곳으로 가자.’

언제까지고 엘레노어를 좁아터진 집에서 키울 수는 없었기에, 유선은 최대한 빨리 돈을 모을 생각뿐이었다. 그때, 유선의 휴대폰이 울렸다.

차기율이 그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오스 헌터 컴퍼니 쪽에서 내일 난입 대기자로 일 좀 해 달라는데, 어떻게 하시겠소?

돈을 모으는 데 집중한 유선에게는 너무 뻔한 질문이었다. 그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OK.

지금은 일만 집중하자는 생각이었다.

***

“그래서 인원 모집은?”

정확히 2주 뒤, 유선은 기율을 놓고 청문회를 연 듯이 물었다. 기율은 시선을 회피하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온다고 하는 놈을 못 봤소.”

“이 무능한 놈!”

유선은 기율의 얼굴을 꼬집었다.

“아야야! 어쩌겠소? 막 태어난 햇병아리 같은 놈들은 제 이상에 눈이 멀어서 저 하늘만 바라보는데, 내가 직접 싸대기를 때려서라도 데려올 수 없지 않겠소?”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보여 주었어야지, 인마.”

유선은 기율의 볼을 놓아주었다. 유선은 기율이 가진 능력을 보고 썩 기대하진 않았다.

기율이 헌터 협회에 가서 막 각성한 사람을 붙잡을 만큼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곳은 애초에 정글이었고, 영업에 특화된 사냥꾼들이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기 때문에, 초짜인 기율이 그 자리에서 성공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래도 형님은 돈 많이 벌지 않소? 계속 난입 대기자로 들어가는데······.”

확실히 유선은 이리저리 불려 가면서 돈은 많이 벌었다. 그의 통장 맨 앞자리가 이제는 3에 육박했다. 어지간한 중상위 헌터들의 수익은 가볍게 넘었다.

돈 버는 것이 1순위이긴 했지만, 유선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유선은 자신의 힘으로 엘레노어와 함께 던전을 탐사해 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공격대의 틀을 맞춰야 하는데, 그런 틀조차 맞추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흐음······.”

유선은 지체되어 어쩔 수 없이 작전을 변경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우리 회사로 F 등급 던전은 구할 거라고 그랬지?”

“그렇소. 일단 형님이랑 꼬맹이가 있으니까, F급 던전은 허가가 난 상태요.”

책임져 주는 회사만 있다면, F 등급 던전을 입장하는 데 허가받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이후로는 공격대의 숫자나 전체적인 실력을 꼼꼼히 검토하기 때문에 상당히 힘들어진다.

“그럼 우선 F 등급부터 사들이고 시작하자.”

본래 목적은 공격대원을 모아서 호흡을 맞춰 던전 등급을 높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원은 계속 모이지 않고, 시간은 흘러가니 유선은 어쩔 수 없이 차선을 택해야만 했다.

“괜찮겠소? 그쪽으로 가면 벌이도 심심하고, 무엇보다 폼이 안 살 텐데.”

“지금 폼이 문제냐? 네가 사람을 못 구한다는 게 제일 문제지.”

“커흑, 정곡을 찌를 줄은······. 그럼 제가 익스플로러를 통해서 던전을 구해 드리리······.”

“아서라. 지금 사람도 못 구하는 놈이 무슨 일이냐?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아 둔 익스플로러에게 연락해 두고 좌표나 찍어 줘.”

기율이 제 일이 바쁘기도 하고, 괜히 나섰다가 어떤 바가지를 쓰고 올지 몰랐기에, 유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기율은 우는 시늉을 하며 유선에게 좌표를 찍어 보내 주었다.

“흑흑, 알겠소. 형님께서 이렇게 열정적인 노예가 되어 주신다는데, 황송해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나중에 혀 깨물어서 갚아.”

유선은 대충 지도를 확인하고, 소파 위에 누운 소녀를 향해 말했다.

“엘레노어.”

“응?”

책을 읽던 소녀가 고개를 들어 유선을 보았다.

“밖에 나가자.”

“소풍?”

엘레노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엘레노어가 말한 소풍이란 의미는 다르다.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도시락을 까먹는 일반적인 소풍이 아니라, 사람들에게는 흔히 던전에 들어가는 것을 그녀는 소풍이라고 받아들였다.

“소풍 갈 자리를 선택하는 거야. 어때?”

“갈래, 갈래!”

엘레노어는 아이처럼 들떠 소파에서 일어나 뛰어왔다. 늘 그렇듯이 유선의 소맷자락을 잡으며 그를 따라 걸어갔다.

“아, 형님.”

기율이 깜빡했다는 듯이 유선을 불렀다.

“그 사람 만나면 제가 직접 못 가서 미안하다고 안부 좀 전해 주시오.”

“그래, 알았어.”

유선은 그의 부탁을 받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

유선은 몇 번이고 지도 앱을 확인했다. 주변 풍경도 생각보다 낙후되었고, 무엇보다 익스플로러가 살 만한 건물이라는 게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맞나?”

그가 찍어 준 좌표에는 부동산 하나뿐이었다. 유선은 기율이 길을 잘못 알려 준 것이 아닌가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부동산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사내가 꽁초를 비벼 끄며 유선에게 다가왔다.

“정유선 씨입니까?”

그 남자는 유선의 이름을 알았다. 유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정유선입니다.”

“맞는군요. 익스플로러, 김현태라고 합니다. 차기율 도련님이 소개하셔서 오셨죠?”

익스플로러, 김현태. 30대 중반이라고 말했는데, 유선에게는 아무리 봐도 40대 중반으로만 보였다. 개털 같은 머리에, 어중간하게 자란 수염, 그리고 야근에 지쳐 늘어진 다크 서클이 그 노화의 원인이었다.

“아, 저는 헌터 정유선입니다, 그리고 이 애는······.”

“엘레노어······라고 하지요?”

“아십니까?”

유선은 놀랍다는 듯이 현태에게 물었다.

“사심 없이 팩트로만 말하자면, 정유선 씨보다 더 유명할 겁니다.”

“하하, 그것참······.”

미묘하군. 보통 사역수보다 테이머가 더 유명하기 마련인데, 유선은 그 반대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기율이, 아니 차기율 사장님이 직접 못 봬서 죄송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공식적인 자리이기 때문에 유선은 기율의 호칭을 바꾸었다. 현태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차기율 도련님 얼굴이나 봤으면 좋았겠지만, 앞으로 일하면서 안 보는 일이 없을 텐데요.”

현태는 기율에 대해서 알고 지냈다는 말에 궁금해 물음을 던졌다.

“죄송하지만, 혹시 차기율 사장님과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예전에 전속으로 모셨던 도련님이었습니다. 한 4년간 모셨죠.”

차기율이 막내아들이라 해도 집 안까지 들여보내는 최측근이라면 상당한 엘리트임이 틀림없었다.

유선은 그런 엘리트가 왜 익스플로러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큐앤하고 안 좋은 사정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아, 아닙니다. 큐앤과 차씨 가문에 빚은 마찰은 없습니다. 제가 그 일을 그만둔 것은 어디까지나 방랑벽 탓에 한곳에 오래 있질 못하거든요.”

그래서 던전을 찾는 게 중심인 직업이 천성에 맞는 익스플로러의 직업을 택했다.

유선은 바보 같은 질문임을 자각했다. 만약 안 좋은 사정이 있었다면, 기율이 아는 척해 달라는 말도 안 했을 테니까.

현태는 하품하며 유선에게 말했다.

“아무튼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러 오셨으니,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유선은 현태가 열어 준 문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보잘것없는 외견과 달리, 유선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보잘것없는 외견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여태까지 찾아보았던 익스플로러들의 사무실과 다를 게 없는 최신식 기계들이 배치되었다. 인테리어 자체는 보잘것없었지만, 건물이 주는 느낌과 안의 갭이 커서 더욱 돋보였다.

현태는 홀로그램 지도를 켜서 유선에게 보여 주었다.

“현재, 서울에는 매일 평균 75개 던전이 새로 발견되고 매일 평균 64개 공략이 완료됩니다. 언뜻 보면 던전이 항상 많이 남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언제나 던전의 공급이 부족하죠.”

서울 지도 곳곳을 메우던 스폿이 보였다. 상당히 많은 숫자였지만, 현태가 장치에 조정값을 설정하자, 순식간에 수십 개 스폿만 남았다.

“죄송하지만 가격부터 알려 주시겠습니까?”

“가격이 중요하긴 하지요. 가격을 먼저 밝혀 드리자면 서울에 있는 F 등급 던전들의 기본 가격은 400~500만 원입니다. 차기율 도련님, 아니 사장님이 세우신 큐앤 헌터 컴퍼니 쪽에 생겨난 던전은 452만 원에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유선이 여태 난입 대기자로 있었던 다른 던전들과 비교하면 한없이 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유선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가격 범위를 벗어나서 가장 싼 것은 없습니까?”

“가격 범위라······. 그러고 보니 최근에 시세가 떨어진 장소가 있습니다. 이건 350만 원에 받습니다.”

주택이 모인 스폿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저가에서 자그마치 50만 원이나 깎았다. 틈이 생기는 게 얼마나 싫은지 알 것 같았다.

“지속해서 민원이 들어와서 빨리 팔지 않으면 안 된다고 독촉하는 경우엔 평소보다 싼 가격에 내놓죠.”

유선은 그렇게 보던 도중에 서울 중심부 던전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여기 있는 것들은 얼마나 합니까?”

“음······, 혹시 회사에서 눈에 띄는 광고 같은 걸 바라십니까?”

“네? 꼭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그런 기능이 있다면 좋겠죠.”

기율이 못 한 일을 유선이 한 번 해내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현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도심지 같은 경우에는 가격이 2~3배 뛰기 때문입니다. 유선 씨가 가리킨 곳도 1천만 원이나 받는 곳입니다.”

“······.”

유선은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 자신의 손을 거두었다.

“정말 비싸군요.”

“인지도와 명성, 그리고 홍보를 위해서 있는 던전들이죠. 실력이라고 믿는 헌터 회사에도 필요한 것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도심지 던전들은 매스컴 타고 싶은 이들의 핫 플레이스입니다.”

설명을 마친 현태가 피곤에 절어 하품을 내뱉었다. 거의 기계처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담뱃갑의 밑동을 툭 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흐아암······, 죄송하지만 흡연 좀 해도 되겠습니까?”

“흡연 말입니까?”

실내에서 흡연하는 건 유선에겐 딱히 상관하지 않았지만, 옆에 엘레노어가 있어서 달랐다. 어린애에게 흡연 연기는 독약이다.

“죄송하지만, 어린애가 있어서 흡연은 안 될 것 같습니다.”

“아, 아······. 그렇죠. 어쩔 수 없군요.”

현태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다 다시 얌전히 담뱃갑 안으로 집어넣었다. 현태는 헛기침하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그에게 마지막으로 추천했다.

“유선 씨가 효율적으로 도실 생각이라면 주택가 스폿에 있는 350만 원짜리를 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유선은 종합한 말에 잠깐 고민했다. 확실히 싸긴 싸다.

“효율적으로라······.”

유선은 그의 말을 듣고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350만 원짜리이면 분명히 가장 싼 스폿이라고 설명해 줄 텐데, 어째서 효율적인 스폿이라는 걸까?

어린애 말장난 같지만, 현태는 어디까지나 상인이었다. 유선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아예 싼 곳은 없습니까?”

“······예리하게 나오시는군요.”

현태가 놀랍다는 듯이 반응했다. 유선의 짐작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그가 홀로그램에 대고 제스처를 취하자 서울만 보이던 지도가 점점 좁아졌다. 서울 인근 위성 도시까지 나오면서, 스폿의 개수가 늘어났다.

현태는 산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가장 싼 곳은 이 산 중턱에 있습니다. 가격은 200만 원. 지리적으로 좋지 않아서, 사람도 오지 않고, 내버려 둬 놓아도, 전혀 지장 없을 구역입니다. 그래서 구하려고도, 가려고도 하지 않는 장소죠.”

던전에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해도, 안에서 정작 무슨 돌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장비를 긴급적으로 공수하거나 돌발 상황이 발생 시에 재빠르게 지원 요청할 수 있느냐도 선정 지분을 잡아먹는 요소였다.

유선은 그런 면에서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사전 준비를 적절하게 해 놓았다면 분명히 어렵지 않으리라 믿었다. 유선은 그 스폿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걸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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