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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큐앤 헌터 컴퍼니 (2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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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큐앤 헌터 컴퍼니

때는 3주일 전, 유선이 본격적으로 난입 대기자를 하기 1주일을 남겨 놓았던 일이었다.

부우우웅!

부우우웅!

“으, 으······.”

늦은 밤, 유선은 달콤한 잠에 빠졌다가 바닥을 울리는 진동음에 고개를 들었다. 진동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전화가 온 것이 분명했다.

“어떤 놈이 전화해서 사람 속 시끄럽게······.”

유선은 몸을 굴려 전화 보류로 돌려 버렸다. 이렇게 늦은 밤에 전화하는 놈이 누군지도 궁금하지 않아 전화번호도 확인하지 않았다.

다시 잠이나 자자, 그렇게 몸을 누이는 순간.

부우우웅!

다시 한 번 더 울리는 진동음. 유선은 그것에 짜증이 나서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세상에, 개념을 어따 처 팔아먹은 놈이 늦은 밤에 전화질이야. 진짜 이런 씨······.”

차마 욕은 할 수가 없었다. 유선은 혹시나 해서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엘레노어는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대고 잘 잤다. 그의 욕을 듣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이 씹······년이 지나가도 잊지 못할 놈.”

발신자의 이름을 보고 욕이 치밀어 올랐다. 입 밖으로 거의 다 낼 뻔하다가 그걸 애써 용어 순환 필터에 집어넣었다.

유선이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하이 텐션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형님에게 할 말이 있어서 전화했소!

차기율이었다. 유선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지금 몇 시냐?”

-1시지 않소.

“네 입으로 말하고 느낀 건?”

-한 시간 전만 해도 어제였다는 게 놀랍고, 시간의 흐름은 무시할 수 없는 게 너무나도 두렵구나, 정도?

“······.”

유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유선은 사과하기를 기대해 한숨을 내쉬면서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이 늦은 밤에 왜 전화하고 지랄인지 물어볼까?”

기율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톤을 내리깔며, 유선에게 말했다.

-형님, 내가 어제까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오.

“생각? 네가 생각을 한다고······?”

방탕아인 차기율이 뭔가 생각해 낸다. 그게 유선에게는 썩 좋은 기억으로 남은 적이 없었다.

-일단 들어 보시오. 알고 보면 형님은 증명된 사업 아이템이나 다름없잖소.

“너 이······ 그래서?”

혈압이 한 번 더 치밀어 올랐지만, 한 번 더 애써 눌렀다. 아이템이라는 단어가 썩 거슬렸지만, 지금 건전한 단어로 그에게 다그칠 자신이 없었기에 대충 넘어가 버렸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니, 형님을 이용해서 헌터 회사 하나 차려 보라더군!

“······.”

유선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에게 말했다.

“야, 내가 있잖아. 지금 네 얘기를 들으면서 생각났는데, 예전에 드라마에 아줌마 한 명이 개그 프로그램 보다가 웃다가 사망한 장면이 있거든. 너 그거 알지?”

-그거 알지! 드라마 한때 좀 챙겨 볼 때, 그 장면 나왔거든.

“그거 보고 어떻게 생각했냐?”

-어떠냐니? 당연히 정말 뜬금없고 어이없는 장면이라 생각하지 않겠소?

유선은 기율이 바로 이해해 줘서 고마웠다.

“어, 그게 지금 딱 내가 네 얘기 듣고 느낀 심정이다.”

유선은 근래에 들어 본 최고의 헛소리가 아닌가 생각했다. 유선은 차기율이 회사를 차린다는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을 터트렸고, 기율은 자기 사정을 설명했다.

-그럴 수도 있겠구먼. 그런데 내 얘기 좀 들어 주시오. 오늘 가족이랑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했는데, 요즘 아버지가 자꾸 뭐 하는 거 없냐고, 뒤에서 쪼아 대지 않겠소?

“그거야 익숙하지 않냐?”

방탕아 타이틀에 등골 브레이커는 필수 조건이었다.

-나도 나이 먹고 마냥 받아 처먹고 사는 게 눈치 보이는 입장이지 않겠소? 마냥 닥치고 밥 먹다가 큰형이 아버지에게 말하더군. 요즘 헌터 산업이 주류로 되어 가는 세대인데, 우리는 안 뛰어들어도 되느냐고 말이오. 그랬더니······.

유선이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기회를 틈타, 방탕아 차기율이가 이 형님에 관해서 얘기하고, 자기가 한번 나서보겠다고 아버지한테 얘기하니, 뭐, 그래, 우리 아들 하고 싶은 거 해 보라고 하더냐?”

-정확하오. 역시 형님!

기율은 놀랍다는 말투였다. 유선은 너무 뻔한 시추에이션에 허허 웃다가 다시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퍽 좋으시겠어요.”

-당연히 좋지 않겠소! 아버지가 그것 때문에 눈물까지 보이셨다오! 우리 아들이 다 컸다면서 말이지!

곧이곧대로 듣는 기율의 말투에 유선은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유선은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게 영 마음에 들진 않았다지만 그건 둘째 치고, 회사 건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았다.

“너 돈은 충분하냐? 아버지가 지원해 준대?”

-걱정하지 마시오! 초등학교 때부터 조금씩 모아 놓은 용돈으로도 건물 한 채 사고, 사무실 차리는 건 일도 아니니 말이오.

“······너한테는 이 세상이 부X마블급으로만 보이나 보다.”

조금씩 모아 놓은 용돈으로 건물을 산다. 과연 슈퍼 다이아수저다운 발상이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은 기만질에 유선은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사업자 신청이나 뭐 그런 건 어떻게 하려고?”

-수능 잭팟 맞은 빡대가리이긴 하지만, 재벌집 아들내미다운 교육을 받았던 몸이오. 그런 기초적인 건 진작 마스터했지. 약간의 인맥, 약간의 야부리, 그리고 약간의 돈지랄······.

“그 과정에서 뇌물도 먹어야 하냐?”

-······크흠, 아무튼! 모든 준비는 내가 할 테니, 형님은 걱정하지 마시고, 우리 회사의 노예가 된다는 서류에 찍을 인감만 가져오시오.

뻔뻔함이 하늘을 치솟는 듯한 말투였다. 유선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대놓고 노예라고 말하는 뻔뻔한 사장 밑에서 일하고 싶겠다, 참?”

-어이구, 말실수했구먼. 돈 뽑아 오는 기계님, 충성, 충성!

유선은 잠 깬 것도 기분 나쁜데 그냥 거절해 버릴까, 생각했다.

어떤 비수를 준비해 놓을지, 모르는 이 정글 같은 헌터 세계에서 믿을 건 없다. 그건 차기율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기율에겐 나름대로 빚을 지는 처지였다.

‘그리고 기율이도 뭔가 재기하고 싶은 여지가 있어 보이니까.’

유선은 워낙 두서없는 놈이긴 했지만, 완전한 방탕아가 되기 싫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거기다 실패하더라도, 적어도 제 욕심에 남에게 피해 가게 하는 놈은 아님을 알기에, 밑져 봐야 나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무능한 사장 때문에 만약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면 어떻게 책임질래?”

그래도 유선은 만약의 차원에서 기율에게 물었다.

-내 그날이 오면 들고 오는 사약마저 달게 받아 마시리라.

정말 믿음이 가지 않는 포부였다.

***

유선은 공격대의 난입 대기자 일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

아직 자신의 것이라 할 자가용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엘레노어를 데리고 걸어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다.

서울 외곽 지역에 자리 잡은 헌터 사무실. 그 건물을 올려다보면서, 유선은 기율이 건물 한 채를 산다는 말에 은근히 모던한 건물을 떠올렸다. 큐앤 건물들은 모두 전면 유리창이고, 디자인도 특이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기대한 만큼 실망으로 돌아온다고 유선은 크게 실망했다. 완전한 최신식은 아니었지만, 여타 다를 것 없는 콘크리트 상가 건물이었다. 유선은 그 건물 옆에 나 있는 계단을 타고 2층 사무실로 올라왔다. 굳게 닫힌 대문 앞에는 이런 문구가 적혔다.

‘큐앤 헌터 컴퍼니.’

그 글자들을 보고 유선은 아직도 사기당한 것 같아 기분을 착잡하게 했다.

“대기업 케어는 개뿔.”

유선은 공격대장이 했던 말을 중얼거리며 문고리를 돌렸다.

“다녀왔다.”

“도착!”

“일찍 오셨네. 고생하셨소, 형님.”

넓이와 비교해 많이 갖춰 놓지 않은 사무실. 신생 회사다운 황량한 사무실 안에는 차기율 혼자서 자리에 앉아 뭔가 열심히 했다.

이것이 유선이 오게 된 큐앤 헌터 컴퍼니!

말이 ‘큐앤’이었지, 그냥 차기율이 혈연의 힘으로 얻어 내 이름만 큐앤일 뿐,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 보였다.

회사 사람은 이제 2명. 사장인 차기율, 그리고 소속 헌터인 정유선. 소기업 헌터 회사로 출발하는 것치고는 너무 인원이 적었다.

“왜 그러시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율을 향해 시선을 두니, 신경 쓰여 물어보았다.

“가끔 널 보면 후회가 들어서 그래.”

“거참. 아직도 그러시네. 건물이랑 지리, 두 개다 미래 설계자한테 가장 입지가 좋은 곳으로 추천받은 거요. 내 돈으로는 여기에 차려야지 한 10년은 갈 거라고 해서 말이지.”

“망한 채로 10년 가면 뭐 하냐? 얼른 도망칠 구실이나 잡아야겠다.”

“아, 진짜 왜 그러시오······? 나도 힘들단 말이오!”

시답잖은 푸념을 늘어놓는 것도 벌써 일주일 가까이 되었다. 기율은 그래도 아직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도 많이 생각하고 자리를 잡은 거요. 무시하지 마시오.”

“내가 너보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말은 더럽게 안 듣는다. 그러면서 기율은 유선의 말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한 10년 뒤면 이곳은 제2의 강남으로 부상할 거요. 내 장담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유선은 뭘 믿고 저런 소리를 하는지 몰랐다. 어찌 됐든, 유선은 지금 이 회사에 발이 묶인 상태였다.

‘엘레노어가 싫어했으면 정말로 그만뒀겠지만······.’

자리도 개판이고, 직원도 없고 모든 조건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엘레노어를 향한 복지 자체는 좋았기에 유선은 만족하는 편이었다.

엘레노어를 위한 복지 시설로 최고급 소파에 아동용 도서들을 구비해 놓은 서재, 혹시나 몰라 몇 개 사 놓은 아동용 장난감이 있었다. 유아다운 느낌에 화려한 색깔이 안 들어간 게 아쉬웠지만, 사무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느낌이 들 것 같았기에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만족.

엘레노어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환경이었다. 실질적인 전력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것에 잠깐 위안으로 삼았다.

유선은 제자리에 앉아 공격대장에게 받은 매뉴얼을 꽂아 넣었다. 그가 꽂아 넣은 책꽂이 안에는 비슷한 두께로 쓰인 매뉴얼들이 스무 권가량 있었다.

“형님 지식 컬렉션에 또 하나가 늘어났군. 그거 다 읽어 볼 셈이오?”

“당연하지. 내 일이니까 좀 더 많이 알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하여간 형님은 걱정이 많다니까. 아직 공격대도 못 꾸리는데 말이야.”

유선은 그 말에 기율을 노려보았다. 방금 한 말은 순전히 기율이 해야 했던 일이기 때문에, 그건 곧 자신이 무능하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기율은 교묘하게 시선을 회피하며 다시 타자를 했다.

“그나저나 일은 다 해 가? 어떻게 됐어?”

유선의 물음에 기율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보고해 주었다.

“사업자는 성공했고, 익스플로러들에 소개도 다 해 놔서 사업 자체는 그렇게 지장이 없는데······. 문제는 우리가 공대를 차릴 인원이 없다는 것뿐이죠.”

“그거 아직도 해결 못 했어? 천하의 차기율이?”

조롱의 어투로 말하자, 기율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요즘 것들은 말이야, 자기가 흥행 보증 수표인 마냥, 작은 회사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는 게 대다수요. 아마 자기들 분수에 없는 이상향에 매달려서 우리 회사는 보이지도 않겠지.”

“명색이 큐앤인데, 그 이름값도 못 하냐?”

“우리 회사 이름으로 식품 파는 거 한 번 봤는데, 썩 성과는 좋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오.”

자신의 회사 브랜드 하나가 망한 걸 들먹이며, 망할 수도 있음을 은근슬쩍 드러냈다.

“앞으로 어쩌려고?”

“어쩌겠나? 형님은 여러 일로 바쁠 테니 부려먹을 수도 없고, 사장인 내가 발로 뛰어서, 협회 쪽에 막 각성한 새내기들 둘러보고 명함 좀 던져야지.”

유선은 기율의 말이 폭탄적인 발언이었던 것처럼 깜짝 놀랐다.

“천하의 차기율이 자기 발로 뛰겠다고?”

“뭐, 내 두 다리 멀쩡한데 문제라도 있소?”

“아니, 사람이 안 하는 짓을 하면, 그게 자살 신호라더라고. 이게 하나의 자살 신호인가 해서 말이야.”

“형님은 항상 그게 문제요. 한배를 탄 사람끼리 신뢰가 없어, 신뢰가!”

유선의 말을 듣고 기율이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기율은 자신만만하게 정장을 차려입으며 유선에게 말했다.

“조만간 보란 듯이 꾸려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소!”

특유의 들뜬 표정 때문에 전혀 믿음이 안 갔지만 그를 내버려 두었다.

안 믿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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