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12. One Punch girl (2)
후임은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아 선임에게 물었다.
“저런 애가 저 덩치 큰 놈이랑 싸운다고요?”
“겉만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긴 한데······. 그래도 실력은 있다니까. 저게 그 유명한 EX급 몬스터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 새끼, 거, 되게 사람 못 믿네. 그러니까 영상이나 보지 그랬냐?”
“EX고 나발이고, 애잖아요. 만약 틀리면 어떻게 돼요?”
“시끄러워, 네거티브 맨 같으니! 영화 필름은 돌아가고, 그걸 지적한다고 바뀌는 건 없어. 우린 팝콘이나 뜯어서 먹으면서 지켜보기만 하면 돼. 헌터들 사이에선 요새 핫한 영상들을 네 눈으로 직접 볼 기회라고.”
그때까지도 후임은 선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그 말을 왜 했는지는 몇 초 지나지 않아서 바로 알았다.
묵중한 몸을 이끌고 달려오는 거대한 오거가 선두에 선 엘레노어를 발견했다.
-작은 인간! 작은 인간도 위험하다! 작은 인간 죽인다!
도끼를 양손으로 잡아서 들어 올린다. 그걸 엘레노어를 향해 찍을 생각이었다.
위협적인 말에 위협적인 크기, 그리고 위협적인 몸짓에 모든 공격대원이 얼어붙었지만, 엘레노어는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어떤 것도 무섭지 않다는 듯 오거를 향해 소리쳤다.
“사냥!”
소녀는 자신의 주먹으로 자이언트 오우거의 복부를 타격했다.
쿠웅!
앙증맞은 주먹이 배에 닿자마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듯, 느닷없이 폭풍이 일어났다.
“으윽!”
“모두 자세를 낮춰!”
뒤편에 있는데도 묵직한 풍압에 휘말려들 것 같아 공격대원들은 모두 자세를 낮췄다. 엘레노어를 내리찍으려던 도끼는 머리 위에 들려진 채, 그대로 있었다.
“꾸륵······. 꾸르륵······.”
오거는 자신의 죽음도 모르고 선 채로 죽었다. 들고 있던 커다란 도끼가 땅을 울리고 나서야, 자이언트 오거의 시체가 중력에 이끌려 떨어졌다.
일격에 자이언트 오거를 보내 버렸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쓰러지면서 드러난 오거의 등짝이었다.
엘레노어가 내지른 주먹에 맞은 뱃가죽은 손상이 없는 반면, 등가죽을 보면 압력에 못 이겨 터져 나간 것이 보였다. 내부 장기들이 망가지다 못해 어디론가 날아가 버려 깔끔하게 비워진 속이 보였다.
“이야, 역시 대단하구먼. 한 방 때리면, 상대를 가릴 것 없이 다 부숴 버린다더니, 원 펀 걸이야, 원 펀 걸.”
후임은 제대로 말을 못 했고, 선임은 그 광경을 보며 홀로 감탄했다. 선임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자이언트 오거의 등가죽을 보는 후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너, 아까 했던 약속은 잊지 않았지?”
“······저, 저게 대체 뭐예요?”
“야, 너는 그토록 말해 줘도 못 알아들었냐?”
선임은 재차 못 알아들은 후임을 위해 말해 주었다.
“저게 바로 EX급 사역수의 위력이야, 인마.”
***
엘레노어는 자이언트 오거를 때려잡고 곧바로 유선에게 돌아왔다.
“사냥했어!”
-칭찬해 줘!
엘레노어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늠름하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 보이지만, 유선의 입장에선 강아지처럼 꼬리를 살랑살랑하는 것 같았다.
“옳지, 옳지. 장하다.”
유선은 늘 그랬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는 기쁘다는 듯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어느 정도 호감도가 올라가니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오는 메시지 창은 더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머리만으로 도달할 수치가 거기까지인 게 분명했다. 그저, 손 느낌에 기분이 좋다는 듯한 반응뿐이다.
공격대장은 일격으로 자이언트 오거를 쓰러트린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들리시죠?
밖에서 틈을 확인하는 대원 하나가 물었다.
“어, 들린다.”
-방금 뭔가를 잡으시면서 틈이 크게 흔들렸는데, 아무래도 이제 나오셔야 할 것 같아요.
엘레노어의 공격 때문인지, 아니면 자이언트 오거의 코어를 추출하면서 생긴 문제인지, 틈이 닫히려고 했다.
“오냐.”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상황의 긴박함을 넘겼고, 나름대로 이익을 많이 취했기 때문이다.
“자, 한바탕 폭풍도 지나갔고, 이제 돌아가면서 남은 오우거나 몇 마리 잡고 시마이하자.”
공격대는 자이언트 오거를 마지막으로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
***
유선은 2주간, 많은 공격대의 난입 대기자로 있으면서 깨달았다.
‘힘이 생각보다 들쭉날쭉하네.’
C급 몬스터와 B급 몬스터, 두 가지를 하나씩 상대하는 데 힘을 느껴 보면 B 쪽이 더욱 처참하고, 충격파에 휩쓸려 벗겨진 흔적이 더 많았다. 그 말은 즉 엘레노어는 상대를 가리고 그 실력에 맞춰 싸워 간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다.
불필요한 힘을 최소한으로 해서 일격에 보낼 만큼의 힘만 준다는 의미이다. 엘레노어는 자이언트 오거와 싸울 때도 한 방에 골로 보낼 힘만 주었다.
‘하기야, EX급 몬스터가 힘을 최대로 이끌어서 싸우려 들었다면······.’
일대 초토화는 물론이거니와, 유선이나 그 누구 가릴 것 없이 먼지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다행히도 그 부분은 엘레노어가 확실히 조절한다고 느꼈다.
‘그래도 한 번쯤은 보고 싶다.’
강한 힘을 확인하는 것, EX 등급이 보여 주는 진정한 힘을 보고 싶은 로망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한 남자가 유선에게 다가왔다.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저기, 죄송합니다······.”
그리고 대뜸 사과를 건넸다. 유선은 갑자기 들어온 사과에 놀라 그에게 되물었다.
“어떤 게 말입니까?”
“제가 난입 대기자에게 괜한 소리를 하는 바람에······. 기분 상하게 해 드린 것 같아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유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부분에 사과한다는 게 놀라웠다. 스스로 결례를 저질렀다고 인정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했다고 하기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 유선은 그 사과를 받아 주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세요.”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돌아갔다. 선임은 꽤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풀이 죽은 후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뭔가 이야기했다.
그 사내의 사과가 끝나자, 바로 공격대장이 유선에게 주머니를 내밀며 말했다.
“유선 씨, 고생하셨습니다. 돈은 말씀하신 대로 입금해 놓았고, 여기 유선 씨가 잡은 자이언트 오거의 코어입니다.”
난입 대기자로 있으면서 어시스트 비용으로 200만 원, 그리고 직접 해치운 자이언트 오거의 코어는 유선의 몫이었다.
‘크다.’
그전까지는 구슬같이 작은 소형 코어만 봤는데 이제는 주먹만 한 코어가 유선의 손아귀에 들렸다.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중형 코어였다.
중형 코어부터는 순도가 낮아도 최소 1천만 원부터 시작한다고 들어 보석 덩어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정말로 200만 원만 받으시면 되나요? 보통 난입 대기자들은 아무것도 안 해도 1천만 원은 기본으로 가져가시는데······.”
공격대장은 뭔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재차 물어보았다.
난입 대기자는 갑 오브 갑.
지휘권을 가지진 않지만, 등급이 대부분 A급 이상으로 높은 헌터이기 때문에, 굳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찍히는 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난입 대기자의 응석을 거의 다 받아 주는 게 공격대들의 일상이었다.
공격대장은 많은 난입 대기자를 봐 왔지만 그중에서 유선을 따라가는 천사는 없었다.
고분고분 지휘에 따라 주며, 불필요한 갑질은 하지 않고, 필요할 때는 생색내지 않았다.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규칙이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기에 규칙을 지켜 주는 것만으로도 크게 고마운 일이었다.
“그 사람들은 노련한 사람들이잖아요. 전문적인 지식도 있으니까, 이것저것 조언도 해 주는데, 저는 엘레노어가 없으면 아직 보잘것없는 몸이니 신경 쓰지 말아 주세요.”
“아뇨, 유선 씨가 보잘것없긴요.”
“그리고 이렇게 싸게 안 부르면, 별로 안 불려 가잖아요.”
“······그건 그렇죠.”
대장은 금방 수긍했다. 다른 헌터들과 똑같은 가격을 제시했다면, 제아무리 EX 등급의 사역수를 가진다 해도, 유선 대신에 다른 헌터들을 선택할 것이다.
힘으로만 대처할 수 없는 제대로 된 곤경에 빠졌다면, 그래도 도움이 되는 게 노련한 A급 헌터들이기 때문이다.
“혹시 뭐 더 필요하신 거라도 있습니까? 제 능력 범위 내에서 도움은 드리겠습니다.”
뭔가 더 해 주고 싶은 대장의 말에 유선은 못 이기겠다는 듯 그에게 물었다.
“혹시 던전에 관한 자료나 그런 거 있으시면 공유해 주시겠습니까?”
“영업 기밀을 말입니까?”
공격대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아닙니다. 영업 기밀 수준까지 말고······. 적어도 던전에 들어가면 어떻게 대처한다는 그런 매뉴얼이 필요해서요.”
“음······, 우리 회사에 매뉴얼이 있긴 한데, 세상이 매뉴얼처럼 돌아가지 않는지라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공만 해 주셔도 됩니다. 혹시 곤란하십니까?”
“아닙니다, 드리겠습니다. 어이, 김 군아. 회사에 연락해서 던전 매뉴얼 복사본 있으면 하나만 가져와 달라고 해라!”
유선은 공격대장의 명령을 듣고 몰래 미소 띠었다.
‘순조롭군.’
매뉴얼을 주는 것에 특별히 거부감이 없었다. 어차피 인생을 실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유선은 그걸 알기에 매뉴얼을 달라고 요구했다.
사실 유선이 난입 대기자로 파티에 참여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런 지식을 받을 기회 때문이었다.
EX급 판정을 받은 엘레노어를 데리고 다닌다면, 그 어떤 던전도 타임 어택급으로 심심풀이 게임이 된다. 그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선은 그런 도전보다 관전 견학자나 다름없는 난입 대기자로 던전을 도는 데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는 게 좋을 거로 생각했다.
‘나중엔 엘레노어와 둘이서 가야 하는데, 어떤 지식도 없다면 큰일이니까.’
엘레노어야 원래 몬스터였던 몸이니 던전에 익숙하겠지만, 유선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사람이었다. 위험이 도사리는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에 관한 지식이 많아야만 했다.
“마침, 신참 하나가 매뉴얼을 가지고 있다니 바로 드리겠군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혹시 이거 유출됐다고 곤란하진 않겠지요······?”
곤란할 게 없다는 걸 알지만, 유선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물어 초짜처럼 굴었다.
“하하, 괜찮습니다. 유출해서 죄송한 일을 하시면, 우리 회사에 들어오시면 됩니다. 대우는 충분히 해 드릴 테니 말이죠.”
은근슬쩍 들어오는 제의. 유선이 거절할 것을 알겠지만,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유선은 그 거절을 이제 단순히 생각해 보겠다고만 하지 않고 그 구실을 만들어 냈다.
“저, 이제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라서 그럴 수는 없겠군요.”
이제 그도 어엿한 컴퍼니 소속의 헌터였다. 대장은 농담조로 은근슬쩍 던진 질문을 얼른 거두었다.
“하하, 그렇죠. 당연히 농담이었습니다. 회사 이름을 제대로 못 들어 본 것 같은데, 혹시 무슨 회사에 들어가셨는지, 여쭈어보아도 될는지요?”
유선이 받아들인 회사가 과연 어딘가 궁금했다. 유선은 뭔가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큐앤’ 헌터 컴퍼니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큐앤이요? 큐앤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그 큐앤이 맞습니까?”
“네, 맞긴 맞습니다.”
유선은 떨떠름하게 웃었다. 공격대장은 놀랍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이야, 거기는 헌터계에는 발 안 들이려는 것 같던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뒤늦게 발을 들였네요.”
“하하, 그렇죠.”
“좋으시겠습니다. 대기업급이면 대기업급 케어가 있을 테니 말이죠.”
대기업급 케어. 그 말에 유선은 한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한순간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인물 하나에, 침착하던 유선은 이빨을 갈기 시작했다.
‘망할 사장······.’
그는 아직도 3주 전 자기가 했던 행동을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