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11. 인간적으로 삽시다.
진종오 과장이 뭔가를 들여다보았다. 그가 막 등록을 마친 헌터 기록이었다.
“정유선 헌터님은 지금 상태를 보니 F-등급 정도입니다. 그렇죠?”
“······.”
유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종오 과장은 그의 대답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이 헌터계에 몸을 담근 지, 어언 15년이 지났습니다. 정유선 씨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봐 왔습니다. 각성했지만 등록 당시에 등급이 전혀 좋지 않아, 좌절에 빠진 꿈나무들을 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재기하도록 모든 정성과 노력을 했지요.”
이 다음에는 절대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예감했다.
“하지만 피를 토해 가며 노력하던 꿈나무들은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흔한 E 등급조차 들어가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기껏해야 F+급 정도일 뿐이죠.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흔히들 말하는 ‘재능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피 토하는 노력을 해도 재능의 벽에 그들은 무력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진종오 과장은 여태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유선 씨에게 좀 짓궂은 소리인 것 같지만······. 우리는 더는 꿈을 심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 줘야만 합니다. 단순히 회사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늪지에 가라앉는 줄도 모르고 하늘의 광명을 잡으려 드는 꿈나무들을 위해서기도 합니다.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수긍해야만 합니다.”
진종오 과장은 유선의 가슴에 최종적으로 낙인을 박았다.
“그러니 당당히 말하겠습니다. 유선 씨가 F-등급에서 빠져나올 확률은 사실상 0%입니다.”
유선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EX급 몬스터를 사역했다고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F-로서 삶을 인정하라고 했다.
유선은 진종오 과장의 말을 잠자코 듣다 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궁금해 미칠 것 같은 질문이 입에서 나왔다.
“만약 제게서 산다고 쳐도······ 엘레노어를 어떻게 다루실 생각입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유선은 그게 뭔지 듣고 싶었다. 진종오 과장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우리 회사에는 고급 테이머 한 분이 계십니다. 헌터 등급으로 따지면, A+급이시고, <조련> 특성은 무려 레벨이 4가 넘으십니다. 테이머 특성에 가장 필요한 <지배> 특성도 3을 넘으셨죠. 현재까지 사역하신 몬스터 숫자는 총 120마리. 그중에는 S 등급 판정을 받은 몬스터도 있습니다.”
S급 몬스터는 한 도시를 쓸어버릴 만큼 강력하다. 그만큼 자아가 뚜렷할 텐데, 그런 몬스터를 길들였다는 것은 실력이 좋은 건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유선은 턱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비스듬히 바닥으로 놔두었다.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진종오 과장은 기세를 몰아 그를 설득해 나갔다.
“3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만, 전직 테이머이신 이······ 아, 고객 정보 보호 차원에서 이름은 밝히면 안 되는군요. 아무튼, 그분께서는 최근에 D-등급 판정을 받은 사역수를 우리 회사 측에 분양 책임비를 받으시고 은퇴하셨습니다.”
“······.”
“그 금액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유선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으며 그를 보았다. 진종오 과장은 손가락 하나를 펼치며 자문자답했다.
“1억입니다.”
“1억······.”
다이얼 울프가 D-등급이다. 그리고 그 코어의 가격은 100만 원 정도였다. 조련해 놓은 다이얼 울프가 100마리 코어만큼 가치 있다고 했다.
진종오 과장이 유선의 표정을 보고 신이 나서 말을 이어 갔다.
“네, 자그마치 1억. 사역수를 우리에게 파시면서 은퇴하셨는데요. 그간 벌었던 돈이랑 합쳐서 지금은 이렇게 장사하고 계십니다. 한 번 보십시오. 매일 자신의 사역수에게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사셨던 분이 이렇게 행복해하지 않습니까?”
진종오 과장은 사진을 들이밀어 보여 주었다. 닭집에 미소 짓는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말처럼 행복해 보였다.
“유선 씨 같은 경우에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EX 등급의 몬스터를 사역하시죠. 강한 힘을 가진 만큼 유선 씨에게 안겨 줄 것도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불안감도 적지 않을 겁니다. 만약 그렇게 믿던 사역수가 자신에게 발톱을 들이미는 순간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생각에 말이죠.”
“······.”
그런 경우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침대에 강제로 눕혔을 때 생각을 해 보았다.
유선은 엘레노어가 자신에게 회의감을 느끼며 그 무지막지한 힘으로 눌러 죽이려 든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은 과연 그 힘에 저항하고 살아남을까?
그리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생각이었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S급도 아니고 EX급의 사역수가 폭주할 경우, 유선 씨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마왕을 봉인한 것처럼 이 세상을 구할 새로운 용사가 다시 등장할지도 의문일 테고요. 그렇게 되면 정유선 씨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피해를 보는 상황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
유선은 고개를 숙인 채로 대꾸하지 않았다. 진종오 과장은 그런 유선의 반응을 예상했다. 그는 마무리 지으려고 수첩 한 장을 뜯어 빠른 속도로 뭔가 적으며 말했다.
“우리가 그 괴물을 책임지도록 한다는 분양 책임비로 제시하는 가격입니다. 최저 금액이니 그 이상을 생각하신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진종오 과장은 종이를 뒤집은 채로 유선에게 보여 주었다.
유선은 내민 종이를 뒤집어 보았다. 진종오 과장이 뒤집어 보고 놀라는 표정을 짓기 바란다면, 그건 아주 성공적이라 하겠다.
0의 개수가 너무 많았다. 대충 계산해도 죽을 때까지 사치를 부려도 남는 돈이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만한 돈이 최저액이었다. 그 말은 그 가격보다 더 위를 불러도 상관없다는 의미이다.
“제가 감히 상상도 못 해 본 액수로군요.”
만약 헌터를 하고 살았다 해도, 평생 못 만져 볼 돈이 아니었을까? 비현실적이라 유선은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진종오 과장이 미소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모든 게 그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했다. 정유선에 관한 사전 조사는 이미 마친 상태. 돈이라면 분명히 그가 넘어오리라고 믿었다.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진종오 과장의 예상은 빗나갔다.
유선은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종이를 다시 덮어 진종오 과장에게 돌려주었다. 진종오 과장이 예상외의 단호함에 놀라 유선에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드시는 거라도 있습니까? 돈이 더 필요하다면 돈을 더 드리겠습니다. 뒤가 켕긴다면 당연히 우리가 뒤에서 봐줄 수도 있습니다. 사역수에게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일체 책임을 묻지 않는 건 당연하고 말이죠. 이만한 조건에도 안 되십니까?”
유선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애를 그쪽 회사에 넘길 만한 조건이 다 안 되는군요. 그러니깐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죠.”
그러자 진종오 과장이 곤란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유선을 설득하려 했다.
“하아, 유선 씨······. 정말 무지하시군요. 우리는 정말 유선 씨를 걱정하는 겁니다. 좋게 말할 때 우리가 제시한 금액으로······.”
“야.”
진종오 과장이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자신이 압도할 거로 확신했던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유선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눈조차 제대로 못 맞추듯 굴던 사내는 없어졌고, 독기가 가득 서린 눈동자가 그를 잡아먹으려 들었다. 진종오 과장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좋게 말하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그러니깐 좋게 말할 때 알아들어. 엘레노어를 괴물 새끼 취급하는 네놈들한테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팔 거라고.”
남자는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으려 다시 마음을 굳히며 유선에게 말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에게 솔직해져서 말입니다. 유선 씨는 F-등급밖에 안 되는 테이머입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이 사역수는 세계 재앙급인 EX 등급 판정을 받은 녀석이죠. 그걸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유선 씨가 그 괴물을 컨트롤해 낼 거로 생각······?”
진종오 과장은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유선이 주먹으로 그 재잘거리는 입을 향해 주먹을 날렸기 때문이다.
우당탕탕!
소파에 앉은 중년이 바닥으로 굴러갔다. 유선이 아무리 약한 헌터라지만, 그의 힘은 이미 일반인 이상이었기에 가능한 리액션이었다.
“어떠십니까, 정말 약한 F-등급 헌터한테 맞은 주먹맛이?”
“콜록, 콜록······. 이, 이게 무슨······! 쿠헉!”
말을 더 하려고 했지만, 엎어진 진종오 과장의 배에 힘이 실린 발차기가 날아왔다. 그가 데굴데굴 구르며 벽 쪽으로 몰렸다.
“살살 찼습니다, 과장님. F-등급 헌터 발차기라 형편없었을 텐데,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떠십니까?”
유선은 그에게 걸어갔다. 진종오 과장은 아직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듯이 눈에 힘을 주며 유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다,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내, 내가 말이야, 회사에서 부르면 너는 이미······!”
퍽!
“으윽! 이, 이 개새끼가! 사람을······!”
퍽퍽!
진종오 과장이 말하려고 하면, 유선은 자비 없이 그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쿨럭! 진종오 과장은 헛구역질하며 쓰러졌다.
“이, 이······.”
또 뭔가를 말하려 하자 멱살을 잡아당겨 진종오 과장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했다.
“입이 아직 나불거리네요, 과장님?”
“······.”
싸늘하게 굳은 그의 얼굴. 오늘을 사는 것처럼 그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죽일 수 있다는 의지를 보았다.
진종오 과장이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진종오 과장이 다리에 힘이 풀려 공포에 질린 채 유선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면 당신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니까 닥치는 게 현명하다는 것도 알겠죠. 배우신 분이라면 말이에요. 안 그래요? 뭐, 정말 배우신 분이었다면 처음부터 닥쳤겠지만요.”
차가웠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분노로 일그러졌다.
“당신, 사람 잘못 봤어. 왜? 가난하게 살아서 거금을 쥐여 주면, 쉽게 꼬드길 거로 생각했나 보지?”
유선은 다시 주먹을 꽉 쥐었다.
“천만에.”
빠각! 시원하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한 번 더 진종오 과장의 몸이 굴렀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새끼가 돈지랄하면서 사람 무시하는 새끼들이야. 특히, 사람이 사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새끼는 정말 혐오하거든.”
컥! 컥! 진종오 과장이 숨을 제대로 못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유선은 그를 잡아 올렸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좆도 모르는 새끼가 그 애를 ‘괴물’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패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나게 해 주는군.”
퍼억! 옆구리를 강타했다. 그의 몸이 때린 방향으로 접히자, 빈 옆구리를 걷어찼다.
진종오 과장이 더는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으며 헛구역질했다.
“으헥······. 으허어억······!”
괴상한 신음을 낼 때, 유선은 다시 그를 잡아서 들었다. 유선의 힘에 딸려 올라간 진종오 과장은 공포에 질린 눈이 되었다.
“벌써 눕지 마세요. 아직 버틸 수 있지 않습니까? 일부러 급소는 다 피해 갔습니다, 진종오 과장님. 아무래도 내 힘으로 사람 함부로 패면 까닥하다가 뒈지는 수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약한 F-등급이라도 말이죠.”
유선은 그대로 진종오 과장을 뒤로 던져 버렸다.
바닥을 구르며 신음을 흘렸다. 진종오 과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자, 고통에 몸부림치던 진종오 과장이 애써 기어오며 유선의 다리에 매달렸다.
“아, 이것 참······ 왜 남의 다리를 잡아요? 남사스럽게?”
“모, 목숨만 살려 주시오! 내, 내가 잘못 했으니, 제발 목숨만······!”
처음에 봤던 자신감에 넘치던 진종오 과장은 온데간데없고 겁먹은 중년만이 남았다. 유선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진종오 과장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아, 이거 왜 이러십니까? 누가 보면 제가 사람 잡는 줄 알겠습니다.”
유선은 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한 대 더 때리는가 싶어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는 더는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지 않았다.
유선은 진종오 과장을 넘어진 아이를 세워 준 것처럼, 옷에 묻은 먼지들을 손으로 털어 주기 시작했다. 그가 때렸던 부분은 특히 세게 툭툭 치면서 고통을 자극했다.
유선은 마지막으로 손수 어깨 칼라까지 정리해 주며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다음부터 그딴 개 잡소리는 네 집 자식새끼들 교육할 때나 써먹어. 말 안 들어 처먹으면 돈 받고 소말리아로 팔든, 고아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이야. 괜히 멀쩡한 남의 애보고 괴물이니 뭐니 지껄이면서 헛수작질하지 마시고. 알겠습니까, 진종오 과장님?”
진종오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은 확실히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그의 넥타이를 검지로 툭툭 치면서 문을 향해 꺼지란 제스처를 취했다. 진종오 과장은 허겁지겁 달려 나가 그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