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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수입 (13/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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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첫 수입

기율이 유선을 태운 채로 고층 빌딩 앞에 섰다. 대문에는 K&C라는 커다란 간판이 섰고, 유선은 처음 와 보는 장소였다.

“내리시오.”

“여긴 어디야?”

“코어 받으셨다면서? 제때, 제때 팔아야 하지 않겠소?”

K&C은행.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으로, 코어를 매각, 매입을 겸한다. 대부분 은행이 코어를 사고파는 걸 담당하지만, K&C가 국내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고 그만큼 거래 가격도 타 은행과 비교해 고가로 받는다고 한다.

단순히 정보로만 알았지만, 목적지도 얘기 안 해 주고 오는 기율을 고운 눈으로 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네 멋대로 여기다 내려 주냐?”

“지금이 시세가 제일 좋을 때요. 어물쩍거리다가 좋은 시기 놓칠까 봐 동생이 배려하는 모습 아니겠소?”

유선은 피곤해 죽을 것만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면 당장 뻗어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인데, 멋대로 행동해 버렸으니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용서해 주는 이유는 시세가 최고치라는 말이었다. 그럴 때, 팔지 않으면 분명히 땅을 치고 후회할 게 뻔했기에 궁시렁거리지 않고 차에서 내렸다.

“넌 여기에 있을 거냐?”

“가야 되오. 오늘 가족들이랑 저녁 약속이 있어서. 생각보다 형님 집이랑 가까운 곳이니까 걸어가셔도 충분할 거요. 그거 다 생각해서 한 거니 걱정하지 마시오.”

“휴우······. 그래, 알았다.”

스포츠카의 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기율은 다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유선은 코어를 팔러 발걸음을 옮겼다.

루이 14세의 절정기처럼 황금을 도배해 놓은 것처럼 벽이 황금색으로 빛났고, 높은 천장 위에는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달렸다. 보이는 창구만 수십 개. 하지만 그 수십 개 창구도 저녁 시간대인 지금도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다행히도 코어 판매 담당 쪽은 의외로 한산해, 유선은 바로 접수했다.

“어서 오세요. K&C은행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유선은 여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이 들고 있는 코어를 보여 주었다.

“코어를 팔러 왔습니다만······.”

“코어를 매각하러 오셨군요. 기계 장치 안에 넣어 주시면, 순도를 측정해 드리겠습니다.”

데스크마다 놓인 기계 전면부가 열리더니 뭔가를 집어넣을 공간이 생겼다. 유선은 코어를 그 안으로 집어넣자, 뚜껑이 닫히면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측정한 결과, 모니터로 크기와 순도가 체크되어 화면에 나타났다.

“네, 고객님. 측정 결과 순도가 50%인 소형 코어네요. 판매하시면 290만 원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290만 원이요?”

피로가 확 날아가는 금액이었다. 유선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다이얼 울프 세 마리를 잡아서 얻어 낸 코어와 비슷한 값어치였다.

“네, 고객님. 현재 최고 시세가로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시면, 290만 원이 나옵니다.”

“파, 팔겠습니다.”

더 고민할 것 없었다. 유선은 코어를 바로 넘겼다.

“네, 그러면 입금받으실 계좌랑 성명을 여기에 적어 주시고······.”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정상적으로 절차를 모두 밟자, 곧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290만 원이 정상적으로 입금되었다는 것과 함께, 유선은 통장 앱을 켜서 자신의 통장 잔액을 확인해 보았다.

“290만 원······.”

혹시 자신이 꿈을 꾸는 게 아닌가 싶어서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본다. 하지만 290만 원은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난생처음 일 한 번에 얻은 거금이었다. 꽉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래, 이게 내가 원한 그림이었지.’

유선이 테이머라는 직업을 얻기 전까지 여태까지 바라온 헌터의 미래였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제대로 된 보수! 어린 시절부터 괴롭혀 온 돈 문제에서 해방되는 삶!

유선은 고개를 떨어뜨려 옆에 달라붙은 엘레노어를 보았다.

“이게 다 네 덕분이야.”

유선은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에 닿는 감촉이 기분 좋은지 배시시 웃어 보였다.

-엘레노어의 호감도가 올라갔습니다.

사소하게 올라간 호감도마저 대박을 터트린 것같이 느껴졌다. 유선은 기분이 좋아져 엘레노어에게 물었다.

“뭐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다 사 줄게.”

유선의 물음에 엘레노어는 허공을 올려다보더니, 머리에서 단어들이 떠올랐다.

-나면.

-나면.

-나면.

행동만 봤을 때는 먹고 싶은 게 많은 줄 알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머릿속에 선택지는 온통 라면뿐이었다.

“나면!”

거기다가 모르는 선택지가 있는가 싶을 정도로 오랫동안 고민한다 싶더니, 대답마저 똑같은 라면이었다. 돈을 아끼는 방법이긴 했지만, 엘레노어가 벌어 준 돈이기 때문에 좀 더 좋은 걸 먹이고 싶은 생각이었다.

“고기 같은 건 안 먹고 싶어? 삼겹살이나 목살 같은 맛있는 고기.”

-고기?

-나면?

엘레노어는 유선의 물음에 잠깐 갈등하더니 곧 대답이 나왔다.

“나면!”

일관성이 있었다. 유선은 졌다는 듯이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럼 가서 라면 먹을까?”

“나면!”

엘레노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선은 환전소에서 멀지 않은 마트를 찾아 걸어갔다.

‘한 박스를, 아니 열 박스 정도 사 놔야겠다. 얘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 가늠이 안 되니까. 그리고 한 번에 많이 먹을 테니깐 대형 냄비도 하나 사 놓고······.’

유선은 엘레노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살림을 준비했다.

***

-만족.

라면 한 번들을 먹어 치운 엘레노어의 머리에서 뜬 단어였다. 한 봉이 아니라 한 번들이었다. 함께 사 온 대형 냄비에 딱 맞는 양이며, 물 반, 면 반을 이루던 냄비 속이 순식간에 가뭄의 현장처럼 사라졌다. 유선은 한 입도 안 먹은 상황이었다.

‘한 박스에 6번들이 있으니까 2~3일 치고······. 그러면 열 박스는 총 20~30일 버틸 식량이란 말이로군.’

열 박스나 사 온 라면은 엘레노어의 한 달 식량이었다. 라면 한 봉에 5천 원, 한 박스에 3만 원이며 열 박스면 모두 30만 원이다. 거기서 추가로 들어가는 돈을 합쳐도 50만 원은 넘지 않았다. 그녀가 한 번에 벌어 준 돈은 290만 원. 6분의 1 정도였다.

“사역수에게 드는 돈이 이렇게 적을 리가 없는데······.”

유선은 식비가 너무 기형적으로 적은지라 포털 사이트에 사역수에 관한 내용을 다시 한번 더 검색해 보았다.

우리나라 유명 테이머 중 한 명인 윤서정이란 헌터의 인터뷰 내용 중, 테이머로서 사역수 하나를 먹이는 데 얼마나 드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최소 한 달에 1천만 원이라고 했다.

물론 F 등급 언저리에서 노는 소형 몬스터라면 더욱 싸게 먹히는데, 윤서정 테이머의 기준은 B 등급 몬스터였다.

F 등급 소형 몬스터가 금붕어처럼 싸게 구하고 키우기 쉬운 동물로 치면, 윤서정 테이머의 소형 몬스터는 수시로 온도를 체크하고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하는 열대어 같은 존재이다.

까다로운 입맛에 맞춘 사료에 가끔 이계에서 직접 공수해 온 특식을 먹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환경을 제공해 준다.

식비만 1천만 원이지 환경 유지비까지 대면 금액은 동물원에 있는 사자 우리 유지비급이라고 한다.

그에 반해, 엘레노어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압도적인 가성비였다. 좁은 단칸방에서 불평하지 않으며, 한 끼는 라면 한 번들로 끝내면 된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에 불평은 당연히 없다.

‘이거 완전······.’

완전히 쓰레기 같은 발상이었다. 자기는 스테이크를 뜯고 재주 구른 곰에게 잡초를 먹이는 꼴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래서 유선은 엘레노어에게 맞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것을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먹을 것.’

왜인지 모를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유선은 그렇다고 다른 걸 억지로 먹일 생각은 없었다.

‘한 번쯤은 물릴 때가 있겠지.’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라 하면 질릴 수밖에 없다. 그때가 되면 다른 음식으로 대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유선은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사람이 살면서 음식 다음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옷이로군.’

음식보다 훨씬 민감한 사항이었다. 그녀의 옷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면 국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머리를 냄비에 처박을 기세로 머리를 담그지만, 주의 깊게 먹지도 않고, 애들처럼 먹다가 보면 안 튈 수가 없었다. 옷을 바꿔 입어야 할 텐데, 지금까지 애들 용으로 놔둔 옷이 없어서 문제였다.

‘일단 내 옷을 입히고······.’

아마 엘레노어라면 주는 옷을 가리지 않고 입겠지만, 방치형으로 두는 것 같아 유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옷은 내일 당장 사러 간다.’

옷 문제도 일단 지금 돈으로 해결하기에 충분했기에 일단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였다.

‘거주지.’

사실 유선에겐 이게 가장 중요했다. 대학 시절에도 느꼈지만, 사람 두 명이서 이 단칸방에서 계속 지내기는 무리였다. 어젯밤에 엘레노어와 한 침대를 쓰면서 느낀 점이었다.

어젯밤은 엘레노어가 별 반응이 없어 함께 침대에서 잤지만 계속 그럴 수가 없었다.

‘좀 더 넓은 곳으로 가야지.’

돈을 빨리 벌고,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한 다음에 엘레노어의 방을 하나 마련해 준다. 일단 전체적인 계획 틀을 그렇게 잡았다.

당장 목표를 확실히 정해 놓았다. 유선은 메모지에 대충 메모해 놓고 엘레노어가 먹은 라면 냄비를 치웠다.

당장 설거지를 하고 싶지만, 피로가 몰려와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아 바로 휴식을 취하자는 생각뿐이었다.

‘이제 좀 자야겠다.’

유선은 손님용으로 놔둔 이불을 가져와 바닥에 깔았다. 유선은 엘레노어와 계속 한 침대에서 잘 수 없었기에 그 불편함을 감수할 생각이었다.

이불을 바닥에 깔고 앉자, 침대 위에 누운 엘레노어가 이상하다는 듯이 유선을 내려다보았다.

-???

유선은 머리에 떠 있는 물음표가 엄청 거슬렸다. 세 개나 떠 있는 걸 보면 유선만큼이나 뭔가가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는 의미가 분명했다.

“왜 그래?”

“······.”

질문해도 대답할 리 없다. 추리 소설에 나오는 단서들을 이용해, 그녀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대충 유추해야만 했다.

“왜 내가 바닥에서 자는지 궁금해서 그러니?”

끄덕끄덕.

물음표 세 개가 한 번에 사라졌다. 이놈의 촉이란······.

“엘레노어가 그 위에서 자고, 나는 밑에서 자려는 거야. 침대가 좁기도 하고, 아무래도 남남에 남녀 사이기도 하니······.”

구질구질한 변명이라는 듯이 옷깃을 잡아당겼다. 유선은 말이 끊긴 채로 엘레노어를 봤고, 엘레노어는 남은 왼손으로 침대를 팡팡 치며 짧게 말했다.

“자.”

침대 위에서 함께 자자는 의미였다. 말을 전혀 안 들었다.

“안 돼.”

유선이 거부하자, 엘레노어는 한 번 더 침대를 손으로 쳤다.

“자.”

“이건 네 주인인 내가 결정한 거야. 그러니깐 나는 밑에서······.”

“자!”

“우왁!”

짜증이 난다는 듯이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엘레노어가 유선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이 실리더니 단숨에 유선을 잡아당겼다. 유선은 꼼짝없이 딸려 가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엘레노어는 그때를 노려, 빠르게 유선의 한쪽 팔을 온몸으로 휘감아버렸다.

“자.”

“아니, 글쎄 나는······. 얘가 왜 이렇게 무거워?”

엘레노어는 유선의 팔을 완전히 묶어 버리자, 그렇게 가볍던 소녀가 어째서인지 지금은 돌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팔을 끊어 내지 않는 이상, 엘레노어를 떼어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선은 어쩔 수 없이 엘레노어의 어리광을 들어주어야만 했다.

“알았어. 위에서 잘게. 이불도 거두고, 불도 꺼야 하니까 잠깐 놔주겠니?”

“······.”

그제야 놔주었다. 허튼짓하는지 지켜보는 것처럼 유선을 노려보았다. 유선은 그녀에게 말했던 대로 이불을 거두고, 불만 끄고 바로 침대로 돌아왔다. 착 달라붙었던 엘레노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얌전하게 옆에 누워서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유선은 조금 전 행동으로 한 가지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고집을 피울 때마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힘으로 눌러 버린다면······.’

목숨에 위협이 가는 날도 있지 않을까? 유선은 걱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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