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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제의 대부분은 처음 찍은 게 맞는 법 (2) (1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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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문제의 대부분은 처음 찍은 게 맞는 법 (2)

싸늘한 분위기다. 각성한 다이얼 울프와 조우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긴장감이 온몸을 굳혔다.

엘레노어가 가만히 다이얼 울프의 머리였던 것을 보다 몸을 빙글 돌려 유선을 보았다.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다시 유선 앞에 섰다.

그녀가 공포와 경악에 섞인 표정을 짓는 유선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냥!”

자신이 만들어 낸 난장판에 성취감을 느끼는 표정이었다. 무언가 반응을 요구하는 것 같았기에, 유선은 그녀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자, 잘했어.”

유선은 얼떨결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했다. 어린애 취급하는 것이 상당히 좋은 모양인지 세 개의 메시지가 떴다.

-엘레노어의 호감도가 올라갑니다.

-엘레노어의 스트레스가 대폭으로 내려갑니다.

-적응도가 올라갑니다.

스트레스가 대폭으로 줄어들고, 호감도가 올라갔다. 그리고 꿈쩍도 하지 않던 적응도도 함께 올라갔다.

하나 지금 패닉 상태인 그가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엘레노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저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 선배?”

“꿈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했던 이들이 한순간에 판도가 뒤집히자 믿지 못했다.

수풀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났고, 뒤늦게 위기를 알아차리고 오는 홍승오 대장이 보였다.

“너희 괜찮냐? 갑자기 무전이 안 돼서 걱정했는데······.”

세림과 주현이 시선을 두는 곳으로 고개를 돌린 홍승오 대장도 따라서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그 뒤를 이어서 온 공격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머리가 깨진 지면의 가운데에 처박은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게 뭐야?”

“누가 폭탄이라도 떨어트렸어요?”

홍승오 대장은 주변에 나무가 쓰러지고, 대지가 갈라진 광경을 보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슈프리머시 시절의 그가 많은 헌터와 몬스터를 봐 왔지만 이만큼 처참하기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홍승오 대장은 이 상황을 목격한 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설명할 사람이 있나?”

***

공격대는 이계에서 빠져나왔다. 틈이 약해진다는데 각성한 다이얼 울프를 죽인 것이 원인이었다.

생각한 양만큼 잡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손해를 보면서 빠진 것도 아니었다. 굳이 틈이 닫히지 않더라도, 각성한 다이얼 울프를 보았다는 시점에서 사냥은 그것으로 끝낼 예정이었다. 각성한 다이얼 울프를 2마리씩이나 한꺼번에 만났음은 더 많은 각성체가 돌아다닌다는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이길 수 없는 도박은 애초에 하지 않는 걸 지향하는 공격대였기에 철수할 이유는 충분했다.

다른 각성한 다이얼 울프는 머리가 으깨진 것을 보고는 도망갔는지 공격대는 다른 다이얼 울프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일은 크게 벌어지지 않고 마무리된 상태. 유선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듯 안도했다.

이계에서 다시 돌아온 유선은 배낭을 공격대에 반납했다. 관전 견학자의 임무는 이거로 완전히 끝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쉬지도 않고 지속해서 쌓은 피로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얼른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멋대로 사라지면 예의가 아니었기에, 유선은 물자를 파악하던 홍승오 대장에게 다가갔다.

홍승오 대장은 유선을 보고 먼저 그에게 사과했다.

“첫 관전 견학이실 텐데, 우리가 너무 부주의하게 행동한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아, 괜찮습니다. 이 견학을 받을 때부터 목숨 걸고 왔으니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홍승오 대장이 유선에게 주머니 하나를 건네주었다.

“받으시죠.”

“이건 뭡니까?”

“각성한 다이얼 울프를 대신 잡은 대가입니다.”

주머니를 펼쳐 보자 코어 구슬이 안에 있었다. 엘레노어가 때려잡은 다이얼 울프의 코어였다. 코어의 크기는 다른 다이얼 울프와 비슷했지만 다른 코어들과 다르게 더욱더 반짝였다.

“이런 걸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그들의 입장에선 코어 하나라도 중요할 텐데, 유선에게 넘긴다는 건 큰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홍승오 대장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담 가지지 마십시오. 저 아이가 제때 나서지 않았다면, 유선 씨는 우리가 보호 못 해드렸을 겁니다. 거기다가 세림이나 주현이도 온전하게 돌아오지 못했을 거고요. 염치가 있다면 이건 우리가 아니라 유선 씨가 갖는 게 맞습니다.”

프로 의식이 상당했다. 유선도 주머니 사정이 썩 좋지 않았기에 홍승오 대장이 내민 코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건 여담인데, 지금 소속된 공격대나 회사가 있습니까?”

“아직 회사나 공격대 같은 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홍승오 대장은 기회다 싶은지 유선에게 제안했다.

“혹시 우리 회사에 들어올 생각은 없습니까?”

“제, 제가 말입니까?”

유선이 헌터가 된 이후로 들어 보는 섭외였다.

“네, 말 들은 대로 보통이 아닌 애를 데리고 다니시는데, 저 아이를 데리고 있는 테이머라면, 유선 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건을 최대한 들어줄 겁니다.”

유선은 그의 말을 듣고 약간 실망하고 말았다. 이건 순전히 유선의 역량이 아닌 엘레노어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유선은 어찌 됐든 결정권자이기 때문에, 홍승오 대장의 제의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길거리에서 생각할 만큼 간단하지 않아서······.”

그런 일에 생각해 둔 적이 없었기에, 지금 당장 기회에 좋다고 넙죽 받을 수가 없었다. 유선의 물음에 홍승오 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신중하게 한번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십시오.”

홍승오 대장이 자신의 명함을 건네주었다. 유선은 그 명함을 받아 들었다. 유선은 그 명함을 보고 자신의 지갑 속에 보관해 뒀다.

“유선 씨!”

홍승오 대장과 이야기를 마치자, 세림이 유선을 불렀다. 고개를 돌려 보자 자신을 부른 세림과 옆에는 암살자 헌터인 주현이 서 있었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유선 씨한테 고맙단 소리를 못 한 것 같아서요. 고마워요. 유선 씨가 없었으면 우리가 꼼짝도 못 하고 당했을 거예요.”

유선은 미소를 지으며 건넨 감사의 인사에 손사래를 쳤다.

“아뇨, 제가 한 게 아닌데요, 뭘······. 감사는 엘레노어한테 해야죠.”

유선은 고개를 떨어뜨려 엘레노어를 보았다. 세림은 엘레노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으며 미소 지었다.

“우리 꼬마 아가씨 덕분이야. 고마워.”

“······.”

엘레노어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기뻐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세림을 볼 뿐이었다.

주현은 엘레노어에게 감사의 인사 대신 유선을 계속해서 슬쩍슬쩍 보기만 했다.

“왜 그러십니까?”

“그······. 저기······.”

쉽사리 말을 내뱉지 못하고 입 안에서 맴도는 듯했다. 곧 얼굴을 붉히더니 허리를 숙여 그에게 사과했다.

“죄송했습니다! 흥분해 버려서 그만 소리를 쳐 버리고······. 견학자한테 제가 그러면 안 됐는데······.”

유선은 그의 열과 성을 다한 사과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그의 사과를 받아 주었다.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위기의 순간이기도 했고, 저도 살짝 멘붕해서 뭘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지난 일에다가 특별히 악감정이 없었기 때문에, 걸고 넘어갈 필요가 없었다. 주현은 관대하게 나오는 유선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

“저를 구해 주신, 이 은혜는 반드시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 알겠습니다. 나중에 꼭 갚아 주십시오.”

유선은 그 은혜를 갚는 날이 다시 올까, 썩 기대하지 않으며 공격대에서 멀어졌다.

부우우우웅!

기분 좋게 집으로 향하던 도중, 거친 엔진 소리가 골목길을 울려 왔다. 소리가 점점 커진다 싶더니 전방의 스포츠카가 거침없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유선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스포츠카의 몸체가 살짝 들리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익!

기다란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유선의 앞에 정차했다. 스포츠카의 문이 위로 열리면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모습을 보였다.

차기율이었다. 그가 흥분에 들뜬 표정으로 유선에게 말했다.

“형님! 아주 주옥같은 희소식이······.”

“어, 그 희소식이 뭔지 알 것 같다. 그러니 말 안 해도 돼.”

득도한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자르자, 기율은 자신이 뒷북을 침을 알았다.

“······몸소 체험하셨구려.”

“그렇다, 동생아.”

기율은 늦은 소식통에 무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튼 고생하셨소. 태워다 드릴 테니 타시오.”

기율은 반대쪽 문을 열어 주었다. 유선은 기율의 차에 올라탔다. 뒤에 앉을 자리가 있나 했는데, 없었다.

“근데 이거 2인승인데 엘레노어는 어떻게 하냐?”

“안고 타면 되잖소?”

“애를 안고? 그게 얼마나 위험한데.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아이가 위험해질까? 각성한 다이얼 울프도 주먹으로 일격에 보낸 앤데?

유선은 머리만 아파질 것 같아, 그 이상 생각하지 않고 엘레노어를 안고 탔다.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엔진 음을 내며 도로로 달렸다.

유선은 스포츠카 내부를 보며, 황홀한 동시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슈퍼카는 대체 왜 타지? 시끄럽고, 기름값도 많이 들고, 대한민국에서 속도감을 체험할 데도 없고 말이야.”

“형님, 차는 피부 같은 거요. 얼굴이 아무리 잘생겨도 피부가 안 좋으면 마이너스 요소지. 보시오.”

그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면, 도로변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확 이끌었다. 슬림한 디자인에 톡톡 튀는 색깔에 이끌려 넋을 잃은 듯 보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에 혐오감이 섞인 시선도 없지 않았다.

기율은 녹색 신호를 기다리던 도중, 유선에게 물었다.

“내가 온 게 이런 이유가 아니었지. 그런데 형님, 애가 그만한 힘이 있는데, 제 측정기가 잘못됐다느니 그런 소리는 왜 한 거요? 뭘 착각하셨기에 그런 거요?”

기율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유선에게 물었다. 그건 유선도 억울한 입장이었다.

“넌 이해 못 하겠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힘이 엄청 약했어.”

“네?”

“어제 나도 너무 믿어지지 않아서 얘한테 내 손가락 잡으라 했는데, 그때는 힘이 약했다니까. 엘레노어, 손가락 한 번 쥐어······.”

무심결에 검지를 내밀다가 다시 거뒀다. 유선은 다이얼 울프의 머리를 납작하게 해 준 그 힘을 본 후로는 그 말이 쉽사리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기율은 대용으로 할 만한 악력계를 하나 꺼내 유선에게 건넸다.

“이거 한번 쥐어 보게 하시오.”

유선은 시험 삼아 자신이 한번 악력계를 쥐어 보았다. 각성 후에도 살짝 버거울 정도로 타이트하다.

“엘레노어, 이거 한번 쥐어 볼래?”

“꽈악?”

“응, 꽉! 쥐어 봐.”

“꽈악.”

엘레노어는 유선의 말대로 악력계에 힘을 실었다.

파스스슥-.

천천히 부서지면서 나는 빠드득거리는 소리도, 한 번에 부서지는 파각! 같은 소리도 아니었다.

그 소리는 모래주머니를 터트려서 모래를 쏟는 소리에 가까웠다. 단단한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악력계가 분필 가루처럼 완전히 으스러져 엘레노어의 치맛자락으로 흘러내렸다. 그녀의 작은 손아귀에서 벗어난 부분을 제외하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근력이 8천이나 되면 이게 당연했다.

기율은 스프링 부분밖에 남지 않은 악력계를 보며 물었다.

“형님, 요새 궁하게 살면서 뭐 잘못 주워 먹고 다니시오? 악력계가 가루가 된 걸 보면 정상이지 않소?”

“아니라니까! 엘레노어, 내 손가락 쥐어 봐.”

“꽈악~.”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엘레노어에게 검지를 내밀었다. 처음 쥐어 보라고 했을 때, 했던 말을 반복하며 그의 검지를 쥐었다.

유선의 손에는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앙증맞은 힘이 가해졌다.

“봐! 안 부서지잖아. 각성하면서 내 손가락에 다이아 처리라도 했단 말이냐?”

기율은 순간 유선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형님, 생각해 보시오.”

“뭘?”

“지금 형님을 배려해 주는 거라는 생각은 안 드오?”

“배려······?”

“이 꼬맹이가 그대로 힘을 주면, 형님 손가락이 한순간에 가루가 돼서 바닥을 뒹굴면서 ‘아이고 나 죽네. 동네 사람들 여기 보소!’ 이럴 줄 아니깐, 일부러 힘을 안 준 것 아니겠소?”

과장된 말이 섞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약 악력계를 쥔 듯, 유선의 손을 쥐었다면, 분명히 긴급 병원으로 후송되었을 것이고, 손가락 한 짝이 없는 불구로 살았을 것이다.

“형님의 이런 면을 가끔 보면 저보다 바보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니깐.”

“켁······.”

기율의 말이 비수처럼 꽂혀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멋대로 판단한 것은 바보짓이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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