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다이얼 울프 (2) (1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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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이얼 울프 (2)

두 번째 식사 시간이 찾아오면서 유선은 소소하게 기쁨을 느꼈다. 배낭의 무게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무게가 겁나게 줄었어!’

8시간의 탐험에 두 끼분을 먹어 가져온 식량의 양이 많이 빠져나갔고, 무전기가 끊어지지 않도록 휴대용 중계기가 배낭 속에서 빠져나가 현재 배낭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제야 사람이 들 만한 무게가 만들어졌다.

“얘 피부 봐. 탱글탱글한 게 꼬집어 보고 싶다.”

“이름이 뭐예요?”

공격대의 두 여성은 옆에서 밥을 먹는 엘레노어에게 관심을 보였다. 흔하지 않은 백발에 인형이라 해도 믿어질 정도로 귀여운 외모가 이유였다.

정작 무한한 관심을 보이는데도, 엘레노어는 그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으며, 건식을 손으로 주섬주섬 챙겨 먹기 바빴다. 식량 봉지에 바닥이 보이자, 유선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밥.”

두 봉지째였다. 그녀가 방금 먹은 것이 유선의 몫이었다. 다이얼 울프의 시체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자신의 손에 묻은 피비린내 때문에 식욕이 싹 사라져서 엘레노어에게 건네주었다.

“언니 밥, 먹을래?”

“밥.”

“눈 마주쳤어, 꺄악!”

요지부동이던 엘레노어가 밥이란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세림은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며 기뻐했다. 엘레노어는 세림의 식량 봉투를 받고, 바로 취식에 들어갔다.

“너, 정말 잘 먹는다. 언니는 이거 반만 먹어도 배부르던데······.”

“잘 먹으면 잘 크지. 언니 것도 먹으렴.”

마법사의 몫까지 받았다. 눈을 마주치고, 밥이라는 소리만 했는데도 반만 남은 식량 봉지 두 개를 얻어 냈다.

“관전자 씨, 가방에서 포션 하나 꺼내 주실래요?”

“네.”

“고마워요.”

“관전자 씨, 저도 하나 좀······.”

“네, 드리겠습니다.”

“관전자 씨, 여기 좀 도와주세요.”

“네.”

반면, 유선은 정신없이 움직였다. 제대로 휴식을 취하려 하면, 정신없이 불러 대서 피로를 조금이라도 풀 수가 없었다.

유선의 일은 이러했다.

전투에 돌입하면, 짐을 잠시 벗어 두고 안전한 장소에서 그걸 확인한다. 전투가 끝나면, 다이얼 울프 몸에 있는 코어를 추출한다. 그리고 다시 짐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짐을 메고, 다시 공격대를 따라간다. 일정 거리가 벌어졌다 싶으면 중계기를 꺼내,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휴식을 취하고 정비할 때는 가방에 든 물건을 꺼내 준다.

자투리 시간마저 허용하지 않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유선은 피곤해진 얼굴로 엘레노어를 향해 고개를 떨어뜨리며 생각했다.

‘부럽다.’

밥이라고 하면 밥이 떨어지고, 돈이라고 하면 돈이 떨어지는 그런 인생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깐이고, 유선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미친. 사람이 피곤하면 별의별 병신 같은 생각을 다 한다더니.’

유선은 자신의 뺨을 때리며, 노곤한 정신을 깨웠다. 의미 없는 상상에 열등감에 빠지는 멍청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얻어 가는 게 있잖아.’

중계기 설치법, 코어 추출법, 대원들이 가진 GPS 기기 작동법······. 헌터로서 필요한 기초 지식을 얻어 낸 건 큰 수확이었다.

앓는 소리만 냈다면 결코 불가능했으리라. 유선은 이 견학은 충분히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대원들이 식사하고 쉬는 한편, 홍승오 대장은 열심히 일하는 중이었다. 휴대용 중계기 상태를 확인하고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바깥에 들리냐?”

-이상 무입니다.

이계의 틈 밖에서 대기하던 대원 하나가 응답했다.

“거기 상황은 어때?”

-아직 틈이 닫히거나 변이하려는 징조는 없습니다. 몇 마리 사냥하셨습니까?

홍승오 대장은 들고 있는 주머니를 만져 보다가 대답했다.

“대충 서른 마리. 돈으로 하면 3천만 원 번 것 같다.”

-다행히도 이익을 많이 봤네요. 대충 50~70마리 정도 잡을 것 같은데, 틈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감시해.”

-고생하십쇼.

홍승오 대장이 험악한 목소리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사실상 목숨 줄을 잡은 사람이나 다름없기에 거칠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홍승오 대장이 바깥과 무전을 끝내자, 바로 선발대의 보고가 들어왔다.

-대장님, 다이얼 울프 3체를 발견했습니다.

“그래, 곧바로 거기로 가겠다.”

-한 가지 특이 사항이 있습니다만······.

“특이 사항?”

-네. 2체는 동쪽에 있고, 남은 1체는 서쪽에 있습니다. 정반대인 데다 거리도 꽤 됩니다.

“흐음······.”

큰 특이 사항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시할 만큼 사소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입장에선 한 마리라도 더 많이 잡고 싶었지만, 동선 낭비는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한참 생각하던 홍승오 대장이 선발대원에게 물었다.

“일단 다이얼 울프 상태부터 말해 봐.”

-동쪽에 있는 2체는 휴식을 취하는 중인 것 같고, 서쪽에 있는 1체는 수면 중입니다.

홍승오 대장이 보고를 듣고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수면한다면 일격에 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세림이랑 주현이가 수면하는 한 놈을 맡게 하고. 나머지는 우리가 맡기로 하자.”

-알겠습니다.

“다들 들었지?”

“네.”

대장의 지시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홍승오 대장은 손뼉을 치면서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자, 밥들 다 먹었으면 다시 일하러 가자.”

***

다이얼 울프가 있는 두 곳의 중앙에 도착하자, 홍승오 대장이 다시 한 번 더 명령했다.

“주현이랑 세림이. 너희가 상대하는 다이얼 울프는 아직 수면 중이라니까, 단번에 끝내고 와.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때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몸 조심히 다녀와라.”

“대장님도요.”

홍승오 대장이 동쪽에 찍힌 좌표로 이동했다. 세림과 주현은 그 반대인 서쪽에 찍힌 좌표로 방향을 잡았다.

“유선 씨는 우리를 따라오세요.”

“네.”

유선은 어디에도 배정받지 않은 세림의 파티에 끼었다. 아무래도 수면하는 쪽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유선은 가방을 벗어 놓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가지 않아, 수면 중인 다이얼 울프를 발견했다. 그것은 말대로 수면 중이었다.

“혼자 할 수 있겠지?”

“어릴 적부터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데요?”

“헛소리하지 말고. 일격에 끝내고 와.”

주현이란 사내는 키득거리면서 인비저블 스킬을 사용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후면을 노려 목을 따려는 생각이었다.

기습이 진행되는 도중, 유선은 그 다이얼 울프에게서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그걸 느끼게 된 계기는 다이얼 울프가 생각하는 단어가 가장 컸다.

-대기.

자고 있으면 수면, 뭔가가 잘돼서 기분 좋으면 행복, 누군가의 기척을 느낀 경우에는 경계라고 뜬다.

이 다이얼 울프는 수면도, 행복도 아닌 대기였다. 하지만 녀석은 눈을 감았다. 마치 자는 것처럼.

그의 특성이 빗나가지 않았다면, 지금 자는 척하며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기다리는 건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다이얼 울프가 대기하면서 주변에 다가오는 것은 주현이란 헌터뿐이었다.

주현이 위험하다! 유선은 얼른 세림에게 다가가 말했다.

“세림 씨. 저 다이얼 울프 은신으로 잡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 그러세요?”

“지금 저 다이얼 울프는 저분이 오는 걸 기다려요.”

“기다린다고요?”

세림은 유선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질 못했다.

“지금 수면을 취하는 상태잖아요? 지금이 가장 기습하기 좋은 상태인데요?”

“그러니깐 저 다이얼 울프는 수면 중인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몬스터의 생각을 엿보는데, 저 녀석은 지금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기다려요.”

“음······.”

세림은 유선의 추측을 듣고 가만히 지켜보다가, 무전기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주현아, 일단 물러서 봐.”

한 발자국만 더 떼면, 다이얼 울프의 공격 범위이며, 위협적인 상황에 놓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주현은 조심스레 세림에게 되물었다.

-지금요? 기습할 수 있을 듯한데······.

“아냐. 작전 취소하고, 지금 당장 물러나.”

세림은 조심해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했다.

단검을 들고 접근하던 주현이 세림의 말을 듣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다이얼 울프의 대기라는 단어가 흐트러지더니 곧 다른 단어로 바뀌었다

-실패.

역시나.

추측한 것이 들어맞았다. 숨통을 끊으려 했던 다이얼 울프는 수면을 취하는 것이 아니었다. 암살자가 자신의 반경에 가까워지면, 역으로 기습 공격해 치명적인 공격을 피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처리 끝났나?

다이얼 울프 두 체를 처리했는지, 홍승오 대장의 무전이 날아왔다. 세림은 그 질문에 대답했다.

“아직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왜?

세림과 주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고 보낸 홍승오 대장이었기에, 적잖게 배신감을 느낀 것 같았다. 세림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유선 씨가 접근하려는 다이얼 울프가 잠드는 척한다고 주장해서 그렇습니다.”

-뭐? 잠시만, 내가 확인해 보지.

홍승오 대장이 멀리서 망원경으로 다이얼 울프의 상태를 직접 확인했다. 세심하게 살펴보며, 다시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이런, 큰 실수를 할 뻔했군. 설마 다이얼 울프도 거짓 수면을 할 줄이야!

“유선 씨가 한 말이 맞았습니까?”

-그래. 주현이 녀석의 목숨을 빚졌군.

세림이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냈다. 매끈하게 갈린 화살촉이 거짓 수면 중인 다이얼 울프의 미간을 향했다.

“그러면 제가 선공하겠습니다.”

-그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활시위를 놓았다.

피슝!

푹!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다이얼 울프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

-크어엉!

적중했다. 하지만 머리 안쪽까지 파고들지는 못했다. 주현은 단검을 고쳐 잡고 날뛰는 다이얼 울프를 향해 달려들었다.

“흡!”

주현은 재빠르게 다이얼 울프에게 접근했다. 뭔가를 보았다고 하기 무섭게, 하얀 다이얼 울프의 뒷다리가 붉은 피로 물들였다.

다이얼 울프가 주현을 노려 발톱을 휘둘렀다. 재빠른 주현을 따라잡을 수 없어 공격은 허공을 가르기만 했다.

모든 공격을 피해 낸다고 주현이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암살자 클래스로 민첩했지만, 다이얼 울프의 공격을 한 대라도 맞는 순간, 치명상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빈틈을 노려 공격하기도 쉽지 않았다.

“으윽!”

그렇게 민첩하게 움직였지만, 다이얼 울프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낼 수 없었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주현은 어떻게든 막아 보려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푸슉!

다이얼 울프의 올라간 앞발은 주현을 공격하지 못했다. 주현이 다시 고개를 들어서 보자, 웬 화살 하나가 목덜미를 덮은 비늘을 파고들어 꽂혔다.

“선배.”

“졸지 마. 남자가 돼서 그깟 발톱에 졸아서 쓰겠어?”

주현은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세림이 있기에 얼마든지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는 있었다. 다이얼 울프가 주현을 노리면서 드러난 약점을 다시 한 번 더 명중시켰다.

-크어어엉!

다이얼 울프가 고통에 날뛰기 시작했다. 당황했던 주현은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방어적인 자세를 풀었다.

“역시 선배입니다.”

주현은 든든한 서포터가 있음을 상기하고 다이얼 울프를 향해 파고들었다. 바람 같은 움직임으로 상처 내지 않은 뒷다리 한 곳에 마저 단검을 찔러 넣었다.

-크엉!

털썩!

뒷다리 두 개의 힘줄을 끊어 내는 데 성공했다. 다이얼 울프는 휘청거리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정신을 못 차리는 틈을 타, 주현은 단검 하나를 더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안에 잠재워 놓았던 뭔가를 일깨운 것처럼 다이얼 울프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슈슈슉!

양손에 쥔 검이 다이얼 울프를 쉴 새 없이 공격했다. 춤을 추듯 부드러운 움직임이 배 속으로 재생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격을 맞을 때마다, 다이얼 울프의 움직임은 점점 둔해졌고, 자세도 위태롭게 무너지려 했다. 그럴수록 춤을 추는 쌍 단검은 박차를 가하듯 속도가 빨라져 갔다. 다이얼 울프는 결국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크릉······. 크르으······.

다이얼 울프가 힘 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주현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단검을 목에 꽂아 넣었다. 주현은 확인 사살까지 마치고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다이얼 울프 처리했습니다.”

그러자 신경질이 섞인 답신이 돌아왔다.

-상당히 시끄러웠어.

“······죄송합니다.”

주현은 면목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혼자서 한 방을 노리기 어려우면 세림이가 좀 더 서포트해서 들어가도 되니깐, 세림이가 좀 더 신경 써 주고······. 다음부턴 그렇게······. 하도록······. 치지직······.

홍승오 대장이 무전기에 대고 잔소리를 하던 도중, 잘되던 무전기에서 잡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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